아내들의 학교 서양문학의 향기 9
몰리에르 지음, 김익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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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튀프>를 재미나게 읽은 기억. 재미나다라고 말하지만 당연하게 17세기 작품인 걸 감안해서 재미나게 읽었다는 얘기. 하여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 몰리에르의 작품을 하나 정도 더 읽어보려 했었다가 딱 골라낸 책. 근데 어째 제목이 좀 수상하다. <아내들의 학교>.

 고전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없는 것의 전형. 코메디를 전개해 나가고 갈등을 거쳐 클라이막스까지 치닫는 건 좋으나, 마지막 결론으로 가서 현대인, 당시 시각으로 얘기하자면 400년 후 지구 위성에 살아남았을 후대인後代人을 맥빠지게 하는 경우가 딱 이 작품 <아내들의 학교>다.

 대강 스토리를 얘기해보자. 이런 작품은 스토리를 얘기해도 괜찮을 거다. 읽으실 분 거의 없을 테니. 주인공 아르놀프는 신흥 부르주아. 당시 부르주아한테 끝없는 선망의 대상은? 옙, 귀족입니다. 귀족 선망으로 아르놀프는 이름을 드 라수슈라고 바꿨으나 사람들은 당장 익숙한대로 아르놀프라고 부르고 그때마다 아르놀프는 열이 치솟는다. 이 중늙은이가 데려다 키우는 여자 아이가 하나 있다. 아네스라고. 얼굴 반반한 이 아이를 주워 기르는 동네 빈민한테 돈 좀 주고 데려와 집구석에 콱 박아놓은 다음에 순진 그 자체, 남자 손 때 하나 묻히지 않고 온전한 숫처녀로 키워놓고 정성을 다해 키워 이제 열일곱,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으니 드디어 혼인을 시키려고 하는 단계다. 남자도 구해놨다. 드 라수슈라고 하는 나이 지긋하고 돈 많고 사회적 지위까지 있는 법적 노총각.

 여기까지 얘기하니까 대강 나머지 스토리도 짐작하시겠지? 새파랗고 조금은 경망스런 귀족 젊은이 오라스가 등장해 우여곡절 끝에 아가씨 채간다는 얘기. 맞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딱 그 꼴인데 <... 이발사>보단 좀 간결하다.

 17세기엔 이 작품을 놓고 파리에선 논란이 무척 많았었다고 한다. 기존의 희곡 문법을 파격적으로 파괴해버렸다나 어쨌다가. 그래서 몰리에르 지지파와 반대파가 진짜 주먹다짐을 했다는 건 아니고 하여간 주둥이와 펜으로 난투극 이전구투를 벌였으며, 급기야 부르봉 왕가의 귀에도 진흙탕 속의 개 두마리 짖는 소리가 들려 왜 지랄들인가 들어보고는 몰리에르 손을 들어줬다나? 당시엔 아무리 학계, 공연계가 주둥이질을 해대도 왕실에서 그건 이거여, 라고 한 번 얘기하면 그 순간 모든 문제가 매듭이 지어지던 절대왕조 시대이니만큼 몰리에르의 콧대는 베르쥐라의 천재시인이자 쌈꾼이자 연애조작단장 시라노 만큼 치솟았다고 한다.

 그 때 반대파가 하도 극렬하게 몰리에르를 비난하는데 기분이 팍 상해서 몰리에르는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난을 잠재울까 고민하다가 또 한 편의 희극을 만드는데 그게 이 책에 두번째로 실린 <아내들의 학교 비판>. 20세기로 말하자면 신문지상에 최고의 화제 가운데 하나였던 지상논쟁紙上論爭 대신 또 한 편의 희극을 만들어 그걸로 대신했는데, 요지는, 너네들이 아무리 짖어도 최고의 비판자는 관객인 만큼 관객이 넘쳐나는 내 작품 <아내들의 학교>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

 그것도 모자라 당시 부르봉 왕가에서 궁전에서의 공연을 위해 연극 하나를 만들어라, 라고 하자 또다시 <아내들의 학교>에 관해 반대파를 조롱하는 희극을 공연했으니 이 책의 세번째 작품 <베르사이유 즉흥극>.

 자, 후진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는 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하나면 충분하나니 굳이 여기까지 고된 길에 오를 필요는 없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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