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이아 3부작 을유세계문학전집 77
아이스킬로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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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서양 소설을 읽어보면 물론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아이네이스>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의 세 작품에 진정한 주인공인 오레스테스의 친모살해와 저주받은 방랑에 관해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그러니 언젠가 이 책을 읽어보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책은 세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난 그리스 비극에 대하여, 역사적인 위대성과 뭐 비슷한 기타등등에 대해 언급할 재주도 없거니와 관심도 별로 없어서, 언제나 그렇듯이 감상만 적을 뿐이다.

 <아가멤논>은 타이틀 롤 아가멤논이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에서 아르고스로 개선해서 죽을 때까지. 그가 왜 죽었느냐, 하는 점이 두고두고 호사가들에게 얘깃거리를 만든다. 트로이로 전함을 몰고 떠나려고 할 때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아 배가 항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예언에 따라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하고 출정해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로 하여금 불타는 증오, 죽음이 아니면 끌 수 없는 증오의 불길에 휩싸여 살해하게 되었는가, 사촌 아이기스토스의 입장으로 보면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가 자신의 아버지 티에스테스한테 티에스테스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먹게한 복수로 아가멤논을 죽게 했는가, 그리고 20세기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시각으로 보면 골치 아프게 딸이나 아버지 또는 형제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아가멤논이 10년 동안 전장에 나가 수십명의 현지처들과 진탕 즐기고 있는 사이에 독수공방을 지키던 클뤼타이메네스트라가 하고한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며 견디다가, 견디다가, 견뎌내다가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사촌 시동생 아이기스토스와 붙어먹었는데 재수없게 아가멤논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것도 전리품으로 트로이의 미녀 예언자 카산드라를 데리고 귀향을 하니 아이기스토스와의 불붙었던 밤을 잊지 못해 그냥 도끼로 까버렸는가, 하는 것들. 참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거리지만 그거 뭐 아름답지도 아니하고, 아름다기는커녕 잔혹무비한 누아르 작품을 그리도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도 오랜 세월 동안 이러니저러니 숱한 이바구를 풀어낸 건, 바로 <아가멤논>에 이은 두번째 작품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혜성같이 등장하는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생모 클뤼타이메네스트라의 머리통을 똑같은 방법으로, 즉 도끼로 까버리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참 잡것들이다. 이 비극의 내용을 전부 믿는다면, 자신의 아버지한테 아들의 고기국을 먹인 잔인무도한 행위를 복수하기 위해 흉악무도한 짓을 한 아트레우스의 큰아들 아가멤논을 척살한 아이기스토스한테만 동의할 수 있겠다. 동양에서도 은나라 주왕이 희창의 맏아들 백읍고를 죽여 고기를 푹푹 삶아 몸에 좋은 곰탕이라고 희창한테 줬는데 희창은 그게 백읍고의 고기로 만든 걸 알면서도 궁을 향해 절을 두번 한 다음에 말끔히 다 먹고 나중에 힘을 길러 은 주왕을 불태워 죽여 은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워 주 문왕이 된 적이 있으니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 않겠는가. 근데 천만의 말씀. 자기 배 아파 딸을 낳고 근 이십년 동안 금이야 옥이야 귀하고 귀하게 키워 절세의 미녀에다가 심성 고운 천하의 재원을 만들어놨더니 바람이 안 불어 배가 뜨지 않는다고 그걸 죽여?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어디가 덧나? 하긴 클뤼타이메네스트라의 심사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근데 왜 아가멤논 없는 사이에 둘이 붙었을까? 복수에 활활타는 두 남녀가 의기투합하다보니 몸도 투합한 걸까? 그렇겠지 뭐. 그거 말고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 정말? 아니지, 아냐. 이미 남녀지합의 '즐거움을 아는 몸'들이, 이 표현을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다들 아시겠고, 하여간 나이 먹어 이제 즐거움을 아는 몸들이 오직 딱 그거 하나, 즐거움을 위하여 같은 침상을 썼다고 해도 그게 뭐, 조금 그렇지만 이상한 건 아니다.

 아하, 그래서 수백년 동안 이야기 거리가 되겠구나.

 근데 내가 실망한 것이, 마지막 작품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오레스테스의 저주가 넘 황당하게 풀린다는 거. 하긴 21세기 독자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서기 전 5세기 사람이 읽고 연극을 보기엔 심금을 울리는 대단한 설명일 수도 있으리라.

 솔직한 평. 위대한 작품이지만 소포클레스보단 재미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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