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당통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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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체크>와 <당통의 죽음> 이렇게 두 희곡을 담은 책.
 <보이체크>는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오페라 <보쩨크>의 원작으로 언젠가는 읽어야할 목록에 벌써부터 들어 있었던 것인데 이제야 읽었으니 만시지탄. 이 책을 이번에는 꼭 읽어야겠다, 작정하게 만든 건 전에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으면서 이왕이면 <당통의 죽음>을 먼저 읽을 것을 그랬다고 조금 후회 비슷하게 한 점이 첫째요, 두 번째는 빅또르 위고의 <93년> 속에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세 거인의 풍모가 소개되는데 개인들에 관해선 깜깜 무지, 이왕이면 이들의 삶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음악(보이체크)과 전에 읽은 독서(당통의 죽음)에 이은 연속 독서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작용했다고 할 것인데, 내가 생각해도 거 참 기특하다.
 <보이체크>는 오페라 <보쩨크>와 거의 내용이 같은데, 당연히 원작을 조금 생략, 수정한 것이 후배 베르크가 작곡한 <보쩨크>. 따라서 오페라에서 나오지 않는 장면이 약간 등장하고 순서가 왔다 갔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부터 하는 얘긴 완전 내 생각이다. 어디 가서 이 이야기 써먹고 옴팡 망신당하는 건 당신 자유니까 알아서 하시라. 내가 먼저 1925년에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보쩨크>를 VHS 필름과 DVD로 보고, CD들로 충분히 들은 다음, 1836년에 쓴 <보이체크>를 읽어서 그랬는지, <보쩨크>가 훨씬 나한테 맞았다. 무엇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불과 스물 네 살의 삶을 살고 간 뷔히너가 ‘19세기 전반기’에 이런 희곡을 썼다는 것. 가히 경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극작을 시도했다는 점. 뷔히너야말로 천재가 가져야 하는 미덕인 대단한 작품의 생산과 일찍 맞이하는 죽음을 다 가진 작가인데, 이런 인물에게 흔히 사용하곤 하는 헌사를 바치자면, 조금만 더 길게 살았다면 얼마나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었겠는가, 비슷한 말. 근데 뷔히너가 죽고 약 90년이 지난 독일 땅에 평생 골골하는 약골 중의 약골로 태어난 알반 베르크, 어느 날 <보이체크>를 보게 된다. 거기서 찌질이 보이체크 이등병이 군대에서 찐따 노릇을 하는 걸 보고 자신과 완전 동일시하는 건, 하도 몸이 좋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는데도 젊은 베르크는 참전하지도 못하고 후방에서 민방위대에 근무하며 온갖 비아냥을 다 들어서라고 한다. 물론 이건 들은 얘기. 여기서 베르크는 여태까지 현대 음악, 그 중에 오페라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무조성 음악기법을 채택해 연극을 보고 집에 가서 곧바로 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희대의 전환점을 만든 오페라 작곡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그러니 19세기 초반의 획기적인 드라마를 20세기 초반 획기적인 조성의 오페라로 만든 두 천재의 작품을 듣는 21세기 인간. 그가 어떤 작품을 선호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 가는 대로겠지만 내 경우엔 원작이 담고 있는 하층민의 소외와 가난과 부조리, 또 실존방법의 모색 같은 첨단을 얘기하는 위에 획기적인 무조와 불협화음을 통째로 덧씌워 이를 극한으로 표현한 오페라가 더 좋더란 얘기에 불과하다.
 어떤 드라마고 어떤 오페라인지 궁금하시지? 대개 이쯤에서 유튜브 영상을 하나 덧붙이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생략하는 건, 5분도 안 되는 한 장면만 따와서는 두 천재에 의하여 만들어진 한 영상을 소개하는데 도무지 가능하지도 않고, 19세기에 완성한 공연물과 달리 유려한 화성의 아리아나 독백 장면 또는 웅장한 합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아, <보쩨크>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을 통째로 보고 들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서다. 어째 얘기가 희곡 <보이체크>가 아니라 오페라 <보쩨크>로 쏠린다 싶겠으나, 위에서 말했다시피 원작의 손상도 별로 없고 틀어진 것도 거의 없어서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란 점 양해하시기 바란다. 거기다가 찌질이 이등병 하나 등장하는 엽기, 잔혹, 치정극의 스토리 또는 힌트를 드릴 수 없는 바에 아예 방향을 이렇게 잡았다는 것도.
 그래도 오늘 내가 <당통의 죽음>에 관해선 한 마디도 안 했잖은가. 왜? 아, 뻔하지 뭘. 직접 읽어보시라고. 온건한 혁명으로 더 이상 죽음의 왕녀 기요틴의 무거운 칼날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을 지향한 육체적 거한이 맞는 죽음은 어떨까. 읽어보시라. 당통의 죽음으로 대혁명도 어느덧 석양을 맞고 말지 않는가. 원래 뭐든 그런 거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가는 거. 왕서방. 누군지 아시지?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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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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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하게 두껍고, 글자 빽빽해서 진도도 안 나가는 19세기 서양에서 쓴 번역 소설을 읽고 나서 곧바로 우리나라 말로 된 현대 소설책 읽을 때의 편안함이라니. 거기다가 출간 당시 나이 만 34세 젊은 작가의 엽기발랄한 말장난까지 난무하는 경쾌하고 자유스러운 작품을 읽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뭐라? <달콤한 나의 도시>가 경쾌하고 자유스러운 작품이라고? 그렇다. 근데 그건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어법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가 가볍다는 얘긴 아니다.
 내가 정이현을 주목하게 된 건 그의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다. 거기서 그는 자기 세대가 남자건 여자건 나이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정해진 이정표에 까지 걸어가면 이정표 옆에 ‘입학’과 ‘졸업’을 지나 ‘취업’에 이어 ‘결혼’, ‘출산’, ‘둘째 출산’이란 지시판대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행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마지막 세대쯤이라고 강조하는데,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그런 일상적 단계로의 이행에 관한 딜레마를 (소설의 주인공들이 흔히 그렇듯이) 불행한 세 여성을 통해, 약간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 책의 발간 시점이 <달콤한…>이 2006년, <오늘의…>가 2007년이지만, <오늘의…>는 단편집이라 각각의 단편을 발표한 시점이 <달콤한…>보다 늦다고는 할 수 없다. 뭐 그래서 두 작품(집)을 거의 동시에 발표했다고 가정해도 오늘 2017년엔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정이현이 서른다섯 즈음해서는 이미 청춘도 가버렸고, 이제 살면서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인생 전체를 실패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한데, 뭐 그 나이에,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똑같은 강박관념이 계속된다는 건 당연히 알지 못하겠지만, 하여간 그리하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 직업과 직장과 결혼 같은 것들을 실수 없이 해치워야 한다는 집념이, 그중에서도 결혼이라고 하는 분명한 지옥 속으로 빠져야 한다는 데 대한 비극적 갈등과 한편으로는 기꺼이 바로 그 지옥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랄까, 자연스러움이랄까, 그것도 아니면 보험이랄까 할 것들에 대한 미련과 동시에 거부감까지를 집중 탐구하고 있다.
 몇 번의 연애 끝에 비뇨기과 전문의를 골라 결혼에 성공하는 재인이는 난리굿을 하듯 결혼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아서 결혼이란 것이 여자나 남자를 가리지 않고 양쪽모두에게 똑같은 지옥이라는 걸 확인한 후 정식 부부의 연을 끝내는 걸 기념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하고 이혼해버리고, 근 십년 전 용가리라는 별명의 사내한테 장렬하게 버림을 받은 후 시니컬한 능력자의 독신녀로 살다가 새삼 느낀 바가 있어 잘 나가는 직장(그것도 과장 자리를) 때려치운 유희는 난데없이 꿈을 찾아 뮤지컬 가수 지망생 노릇을 하는 와중에 그 우라질 용가리가 딸 하나 둔 이혼남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다시 정분이 생겨버린다. 이 두 여성은 우리의 주인공 은수와 함께 어려서부터 대나무 말을 타고 논 옛 친구들로, 은수가 과거에 벌인 몇 번의 진한 연애와 실패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을뿐더러 지금 현재 한 방에, 졸지에 생긴 세 명의 남자와의 관계까지 뚜르르 꿰고 있다. 세 명의 남자라는 건, ① 남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그날로 같이 자고 이후 만나기만 하면 술 마시고 섹스하는 습관을 들인 일곱 살 연하 ‘태오’란 이름의 매우 섬세하고 은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키스의 초절정 고수, ② 여태까지 10년이 넘게 그냥 친구 사이였던 부동산 부자의 상속자이자 유희의 사촌 ‘유준’으로 하루 24시간 오피스텔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은둔형(외톨이는 아니고) 인간이었다가, 애인과 헤어진 후 은수하고 ‘그냥 친구’에서 ‘남자 친구’로 전환하기 위해 지금은 비록 은수가 두 명의 애인이 있으나 언젠가 그 사람들과 헤어지면 그때 결혼하자고 갑자기 중학교 학원선생으로 취직해버린 늦깎이 직장인, ③ 아주 기본적인 외모와 친절로 무장한 중소기업 사장 김영수란 작자로 은수와 맞선을 봐 연결이 됐으나 엄격한 선線을 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식 아래 모든 일을 선 안에서 수행하려는 인간이지만 예상 외로 무지하게 자상한 측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특정 환경에선 매우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하는 다섯 살 연상의 남자를 말한다.
 등장인물 소개를 빙자한 소설의 내용은 이쯤이면 됐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애가 목적이 아니라 결혼, 인간이 만든 인간을 구속하고 급기야 지옥으로 만드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처하는 젊은이들, 서른하나 부터 둘까지 젊은 여성 특유의 엽기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입담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앗, 큰일이다. 여기까지 쓰고 쐬주 한 병 마셨다. 술기운 퍼지기 전에 얼른 써야 한다.)


 솔직한 감상을 쓰자면, 먼저 내가 50대 후반의 남성이란 점을 먼저 밝히고(작중 주인공이 30대 서울 시민이란 점을 강조했듯이) 얘기하자면, 독후감을 처음 시작할 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외국 소설의 길고 긴, 근데 재미는 별로 없는 번역물을 읽다가 현대 여성이 쓴 재기발랄한 우리 말 소설을 읽을 때의 환희와 재미의 감격이, 여기서 주목하시압, 넘쳐나서 소설의 주제가 주는 묵직함을 과하게 엽기적 깜찍한 언어로 하지 않았는가, 하는 조금의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정이현, 참 좋은 작가다. 요새 작가(라고 해도 내 기준이며 젊은 독자에 따라선 벌써 맛 간 작가일 수도 있는데)치고 참 이야기를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이 마음에 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소설판에서 ‘읽는 재미’가 사라진 아쉬움의 ‘일부’를 정이현이 싹 씻어준다는 건 확실하다. 아직 이 작가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고, 솔직히 그렇지도 않지만, 주목할 만하다. 그리하여 가까운 시일 안에 한 권의 책을 더 읽어볼 것이다. 그때 ‘또 한 권 더’ 혹은 ‘앞으로 계속’ 아니면 ‘이걸로 끝’을 결정할 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요한 여성 등장인물 은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김영수한테 청혼했으며(영수가 은수에게 청혼은커녕 신체접촉도 해오지 않아서), 재인이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접어 이른바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서고, 유희 역시 직장을 그만 둔 다음 자신의 꿈을 찾아 뮤지컬 배우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이혼한 옛 애인 용가리와 다시 접촉한다. 또, 남자 윤유준은 은수에게 프로포즈를 하고서야 생애 처음으로 직장, 즉 돈벌이를 시작하는 거. 작가 정이현이 꼭 찍어서 말은 안 했지만, 글을 쓴 시점 2006년에는, 2006년 까지도, 여성은 사회생활 하다가 (물론 남성과 비교해 더 힘겹게 직장생활을 했다는 건 인정한다만) 그게 힘들고 괴로우면, 결혼이라는 도피처로 날아가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성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집중 탐구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힘들고 역겹기까지 한 경제생활 또는 정글 속 생존을 남성에게 일임하기 위한 결혼의 측면도 역시 한 번 쯤 꼬집고 넘어가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또 하나, 수구 골통에다 돌이킬 수 없는 틀딱임에 틀림없는 은수의 아버지. 은퇴한 다음 이제 산악회에 가입해 등산 하나에 취미를 붙이고 나머지는 경제생활을 하던 때와 똑같이 집구석에서 위세잡고 독재하며 깽판부리는 역할로 등장한다. 은수 엄마는 이런 남편하고 살면서 원래는 밝았던 성격마저 우울해지는 증상을 겪은 피해자로 역할을 맡는데, 깨놓고 얘기해서, 은수 엄마는 김포 아줌마라고 하는 오랜 친구라도 있어서 같이 영화도 보고 외출도 하고 이러는 반면, 은수 아버지는 그 양반 나이로 미루어 짐작해, 정말 뼈 빠지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휘고 그러다보니 생전 친구 하나 만들지도 못한 건 물론이고, 있던 친구들도 오랜 세월 만나지 않아 점점 멀어져 외톨이로 사느니 마음엔 들지 않지만 그나마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외로워 죽을 거 같아서 산악회 가입했는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다 애로사항이 있는 거다. 이놈이나 저년이나. 세상 사는데 그냥 칼같이 선 죽 긋고 착한 편은 내 편, 나쁜 놈은 네 편,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이렇게 썼다가 인터넷 어디선가에서 또 등 뒤에 칼 맞는 거 아냐?) 특히 결혼생활하며, 당신의 결혼생활이 지옥이었듯이 (다행스럽게 정이현도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내 결혼생활도 끓는 기름 솥단지 속이었을 수도 있음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나 참. 이런 얘기는 독후감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굳이 평론가 흉내를 내자면, 서사는 좋은데 선택한 길이 좀 거시기. (용서하시라 이모티콘) ^^;



 어이, 기분 째져?
 아니, 아직 아냐.
 맥주 한 잔 더 해야지?
 아무렴. 지금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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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중 독후감..ㅎㅎ 완전 제스타일 입니다.

Falstaff 2017-10-11 15:55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제목대로입니다. 올해 3/4분기에 읽은 60권의 책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을  각각 짧은 촌평을 붙혔습니다.

 제가 읽은 순서로 했습니다. 앞에 나왔다고 뒤에 쓴 것보다 더 좋다는 의미 아닙니다.

 

 

 

 

 

 

1.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잘 쓴 성장소설이 그렇듯 곳곳에 눈물샘을 터뜨리는 지뢰가 묻혀 있다. 저 먼 먼 추억 속의 낡고 해져 이젠 누추한 그림을 꺼내 보는 일이 가끔은 아름답다.



 

 

 

 

 

 

 

 

2. 헨리 제임스, <워싱턴 스퀘어>

 세상살이에 통달한데다가 돈도 무척 많이 번 의사. 게다가 인생살이 모르는 게 없는 재수 적은 인간인데, 또 1830년대에 연 수입 1만 달러의 지참금을 가져온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떴다. 이런 사람을 아빠로 둔 캐서린. 부녀 사이에 멋진 외모, 딱 하나만 가지고 나타난 모리스. 세 명이 결혼을 두고 벌이는 쇼 케이스. 재미 하나 확실하게 보장함.

 

 

 

 

 

 

 

 

 

 

 

 

 

3. 아나톨 프랑스, <신들은 목마르다>

 

 대혁명의 높은 파고에 휩싸인 열혈청년. 비록 순수했으나 왼쪽 팔뚝에 완장 하나 채워주니 순결한 공화국의 이상을 위하여 완장의 힘을 구사하기 시작하는데, 민중의 선두에 선 책 표지의 저 사내. 팔은 이미 잘려나갔고 땅을 짚은 발목이 방금 잘려 우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4. 프랜시스 스콧 핏제럴드, <아가씨와 철학자>

 핏제럴드의 단편소설. 행위와 사고의 필터를 제거해버리고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가며 상대를 봐 가면서 적당히 엿을 먹이기도 하는 두 전쟁 사이 시대의 젊은 군상들. 본격적인 자유의 도래에 관한 웅변.


 

 

 

 

 

 

 

 


 

 

 

 

5.로베르토 아를트, <7인의 미치광이>

 

 세계혁명을 꿈꾸는 도라이들 속에 하구한날 아버지한테 엉덩이에 채찍을 맞고 자란 우리의 에르도사인이 재수없게 회사돈 600 페소 7 센타보를 횡령한 사실이 뽀록이 나 참여하게 된다. 혁명은 오늘도 안녕하실까?


 

 

 

 

 

 

 

 

 

 

6. 프랑수아 모리아크, <독을 품은 뱀>

 가족이라는 이름의 원수들. 이 우라질 것들은 내가 뼈빠지게 한 평생을 바쳐 모아놓은 돈에 대한 증오와 탐욕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는데, 가족 구성원 전체한테 따돌림을 받는 노인, 어디 곱게 죽을 줄 알아?

 

 

 

 

 

 

 

 

 


 

 

7. 클라우스 만, <메피스토>

 

 <파우스트 박사>를 쓴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이 <메피스토>를 쓴 거 이거 우연이야, 아니면 고의야? 자기 매부를 실제 모델로 해 쓴 소설. 아무 생각 없이 입신양명을 위해 평생 별 짓을 다 해온 독일판 꺼삐딴 리.

 

 

 

 

 

 

 

 


 

 

 

 

8. 커트 보니것, <제5 도살장>

 

 시간여행과 순간이동이 가능한 빌리 필그림의 2차대전 참전기. 작센의 수도이자 우아한 고도 드레스덴에 하필 그때 떨어져서 인간을 이렇게 망가뜨리나그래. 뭐 다 그런 거긴 하지만 말씀이야.

 

 

 

 

 

 

 

 

 

 

 

9.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졸업 후 잠깐 취업, 그리고 결혼이란 사이클에 아무 생각없이 또는 별 생각 없이 탑승했던 거의 마지막 세대. 이들의 20대는 그러나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내려앉는 우화의 시대였는데

 

 

 

 

 

 

 

 

 

 

 10. 존 치버, <팔코너>

 

 

 자기 친형을 떠밀기만 했는데 자꾸 검사님은 제가 칼로 푹 찔렀다고 하네요. 여기나 거기나 무전유죄는 별로 다르지 않아서 이 팔코너 교도소에 들어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도 알고보면 미합중국 정부란 거 아세요? 그러니 내가 억울하겠어요 안 억울하겠어요.

 

 

 

 

 

 

 


 11. 아이작 싱어, <쇼샤>

 

 이 사람의 소설은 다 찡하게 슬픈 아름다움이 있다. 이 책, 품절. 중고책 말고는 구할 수 없다. 근데 발품 팔 이유는 충분하다. 차마 폴란드를 떠나지 못하는 아쉬케나지 유대인 이야기. 그 속에서도 이들은 사랑하고 예술을 애호하고 서로를 가여워하다가, 죽어갔다.

 

 

 

 

 

 

 

 

 

 

12. 아르투로 페레스 로베르테, <검의 대가>

 

 재미난 스릴러 소설. 순문학만 좋은 거, 절대 아님. 가끔가다가 이런 작품도 읽어줘야 소위 말하는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 고 하고 싶은데 솔직히 말하면 순문학이고 장르문학이고, 하여간 재미난 게 장땡이다.

 

 

 

 

 

 

 

 

 

 

 

 

 

13. 위화, <가랑비 속의 외침>

 

 아, 이 사람 어째 이리 하나같이 궁상맞아? 소설 써서 돈벼락 맞은 위화의 데뷔작. 이거 읽어보면 처음부터 부자 소설가 될 싹수가 보인다. 궁상맞고 우울한 얘길 어찌 이리 재미나게 만든데?

 

 

 

 

 

 

 

 

 

 

 

14. 뮈리엘 바르베리, <맛>

 

 햐, 참. 정말 맛있게 쓴다. 음식을 구강 안에 넣은 다음 벌어지는 모든 것에 관한 글. 미각? 이거 뿐 아니라 후각, 촉각, 신경각(이로 씹을 때 신경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내가 만든 말) 등과 인체 분비물과의 화학작용 기타등등을 통해 인류가 느낄 수 있는 향연을 맛나게 써버렸다.

 

 

 

 

 

 

 

 

 

15. 존 맥그리거,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책은 품절도 아닌 절판. 약오르지? 북잉글랜드 한 동네에서 벌어진 사고.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 동네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에 관한 드라이한 관찰. 몇 년 후 임신한 내 앞에 나타난 한 청년이 바로 누구냐하면, 안 알려줌.

 

 

 

 

 

 

 

 

 

16. 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뭐, 전적인 구라이긴 한데, 아마도 윤이상 선생을 감안해서 썼을 거 같은 책. 유럽에 정착한 조선인의 후예가 독일에서 훌륭한 작곡가 였는데 <토카타와 푸가>라는 제목의 저작을 내고 느낀 바가 있어 독일 땅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전제 하에, 사건은 벌어지는 거디었다.

 

 

 

 

 

 

 

 

 

17. 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돈 많은 고서적상 얌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고 있노라 체중관리에 실패, 어느날 드디어 혈압상승에 이은 뇌졸중으로 꼴까닥 넘어갔다가, 회복됐지만(참 불행중 다행이다) 대신 기억이 싹 날라가 마누라도 몰라본다. 이 늙은이가 옛집을 찾아 기억을 되살리려 별 걸 다 찾아보다가 드디어 로아나 여왕까지 찾아내는 거잖아 글쎄.

 

 

 

 

 

 

 

 

18. 김혜나, <제리>

 

 

 이미 읽어보신 분이, 어머 미쳤어 이걸 고르게, 하는 지청구가 들린다, 들려. 왜 이러셔, 다 읽는 사람 마음이여. 외롭지 않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청춘들. 얘네들 하는 거 보면 처음엔 참 불편하고 징글맞고 심지어 더럽고 짜증나다가도 마지막 가면 그냥 한 번 얼싸안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

 

 

 

 

 

 

 

 

 

19. 잉고 슐체, <아담과 에블린>

 원초적 남자, 아담. 동쪽 사회주의 독일에서 안분하게 먹고 살고, 적당히 바람 피우고 잘 살고 있는데 그놈의 자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꼭 서쪽 독일로 넘어가야겠어? 거기 가면 내 직업, 재단사가 필요 없다고들 하는데 말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동독 사람들의 진퇴양난.

 

 

 

 

 

 

 

 

 

 

 

 

20. 나딤 아슬람, <헛된 기다림>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집에 모인 러시아 여인과 미국 남자.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자 원주민 청년.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벌어진 폭력은 과연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떤 악순환을 만들어냈을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폭력과 피해자들과 이미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조종.

 

 

 

 

 

 

 

 

 

21. 베른하르트 슐링크, <계단 위의 여자>

 

 그림 한 점을 사이에 두고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벌이는 난장판. 예전엔 몰랐는데 이젠 어마어마한 가격이 나가는 그림을 들고 4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튀어버린 여자가 이제 인생의 막바지에 관련한 인간들을 차례차례 자기가 사는 섬으로 부르는데, 인간은 늙으나 젊으나 그저 그저. 믿고 읽는 작가의 한 사람 슐링크임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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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0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작 싱어 <쇼사> 메모해 둡니다~ 남은 추석 연휴 즐겁게 읽으시고~ 술도 많이 드시고 ㅎㅎ 잘 보내세요!

Falstaff 2017-10-06 19:47   좋아요 0 | URL
근데 문제는 <쇼샤>가 지금 품절이고 출판사 다른우리는, 망한 거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책이 2013년이예요. 도서관을 이용하시거나 중고책을 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읽어보시고 진짜 마음에 드시면 도서관에서 빌린 다음에 잃어버렸다고 돈으로 갚겠다고 땡깡을 부려보시든지요. ㅋㅋㅋ 진자 그런 궁리하시는 분 봤습니다. ㅋㅋㅋㅋ
 
개척자들 대산세계문학총서 141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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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로가 <월든>을 쓴 것이 1854년. <월든>이 세상에 나오기 한 세대 전 1823년에 등장한 이 책 <개척자들>. 작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가 쓴 이 책은 70대 모히칸 족 노인 존, 백인이지만 존과 같은 70대이며 인디언과 깊은 유대를 맺어 숲 속의 사냥꾼으로 곤고한 삶을 사는 수수께끼 늙은이로 레더스타킹(가죽으로 만든 긴 양말 또는 각반)이라는 별명의 내티 범포, 그리고 깍듯한 유럽식 예의와 수사를 사용하지만 인디언 또는 사냥꾼과 비슷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야릇한 젊은이 에드워드 올리버, 이렇게 세 명을 등장시켜 이들이 40여 년간 지켜오던 극도의 폐쇄적 경향, 특히 오두막에 다른 개척민들이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연을 풀어내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과정에, 인디언들이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의 것을 자연에서 얻으며 안분하게 살고 있는 반면, 백인들이 저지르는 생명체에 대한 과도한 살육과 낭비,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위대한 영’이 인간에게 허어한 자연, 동물과 식물, 암석 등을 황폐시키는 걸 날카롭게 비판한다. <월든>보다 한 세대 앞서. 또 악역에 의한 거친 말과 비하를 제외한다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주 예외적인 일.
 미국 역사를 잘 몰라서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북부 (뉴욕 옆 지금의 올버리 부근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북부라고 해도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겠다) 쿠퍼스타운의 1793년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 시에서 교육을 다 받고 이제 정착하기 위해 집에 돌아오는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버지 마머듀크 템플이 맹추위를 뚫고 흑인 하인 아가멤논이 말을 모는 마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초장에 미리 밝힌다. 이 책을 나중에라도 읽어보실 분은, 서문을 합해서 책의 본문만 724쪽의 길고 긴 장편소설인데, 처음 100쪽 까지 읽는 일이 사람에 따라(바로 나 같은 사람을 일컫는 것인데), 고난의 행군이 될 수도 있다. 전형적인 19세기 초반의 고전소설. 작가가 상상하는 화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다 묘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말 콧구멍에서 흰 김이 어떻게 뿜어져 나왔으며, 엘리자베스 아가씨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어떠어떠어떠어떠어떠한 옷을 입었고, 아가씨의 친애하는 아빠 템플 판사께선 장갑 두 개를 겹쳐 꼈는데 첫째 장갑은 이런 모양이었고, 그걸 벗으니 속에 어떤 장갑이 나왔으며 때 마침 자기 앞 몇 로드 앞에 수사슴이 달려들어 어떤 방식으로 총을 집어 들어 어떻게 겨누었으며 총을 몇 발을 쏴서 결론적으로 사슴이 죽었느냐 말았느냐, 하이고, 숨넘어간다. 여기다가 번역한 장은명의 친절은 또 우리가 처음 보는 도량형 ‘로드’가 얼마나 긴 거리인지 가르쳐주기 위하여 20쪽에 고맙게도 각주를 달아 “길이의 단위. 1로드는 5.5 야드, 5.0292미터다.”라고 상세하게 일러주었으니 5.0292미터 = 5미터 2센티미터 9밀리미터 200 마이크로미터, 즉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우리의 템플 판사가 사슴에게 총질을 해댄 거리를 이렇게 상세하게 이해시켜주는 반면에, 그에 앞서 12쪽에선 “옷세고 카운티는 뉴욕 식민지의 내륙지역 대부분과 함께 남북전쟁 전까지 올버니 카운티에 속해 있었다.”라는 본문의 ‘남북전쟁’에 각주를 달아 “남북전쟁  1861~1865”으로 역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나, 이걸 어째, 책의 출판 시점이 1823년. 소설가 쿠퍼 선생께선 앞으로 38년 후 벌어질 노예해방전쟁을 벌써 예견했다고 주장한다.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려 했는데, 미국에선 노예해방전쟁 이전에 ‘남북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 그게 궁금하여 네이버 문학과지성사 포스트에 물어봐도 며칠이 지나도록 귀에 말뚝을 박았는지 입도 뻥긋하지 않는지라 심통이 나서 굳이 밝히는 바이다. 되게 웃겼지?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각주 달고 그래도 출판사의 명성엔 조금도 흠집 나는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메이저 중 메이저 출판사. 근데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맞다. 100쪽 까지 읽기가 고난이었다고. 왜 그러냐 하면, 이 얘기하다가 극도로 세부적인 묘사까지 얘기했다. 여기에다가 19세기 전반기에 일단의 배운 사람, 아니면 돈 많은 종자들이 쓴 말버릇을 그대로 직역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
 
 “그의 말을 듣는 두 사람의 시선이 무심결에 마주쳤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떠오른 홍조가 그녀의 눈에 나타난 차가운 표정과 모순되는 것이었다면 낯선 사람의 입 주위에 다시금 떠오른 모호한 미소 또한 그가 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자연은 마머듀크 템플보다 박애주의적 경향이 더 적은 사람의 마음조차 쉽사리 따뜻하게 해줄 만한 장면이었다.” (59쪽)

 위에서 얘기한 두 가지 이유, 극도로 세밀한 묘사와 낡은 수사들이 넘쳐나서 1793년, 1월에 루이 16세가 죽고 10월에 앙뜨와네뜨가 바통을 이은 그 해의 크리스마스 전날 오후부터 하여간 작가 쿠페가 주장하길 하루가 끝나는 시점까지가, 놀라지 마시라, 282쪽. 여기까지 읽었다면 첫째로 여태까지 읽은 게 아까워서, 둘째로는 이제야 비로소 사건의 진도가 팍팍 나가는 시점에 접어들어서 책장 넘기는 속도가 앞부분과 비교하면 광속이 된다.
 이 책, 암만해도 나이가 좀 든 다음에 읽어야 할 듯. 왜냐하면 초장의 지겨움을 21세기의 청춘들에게 견디라고 하면 그거 혹시 고문?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당신의 인내심이 400쪽을 넘길 수 있을 만큼만 굳세다면 이후로는 거 참, 책 재미나네, 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18세기 말을 무대로 한 개척자들의 이야기라고 인디언이 말 타고 활 쏘고 총도 쏘고, 위스키나 럼도 마시고, 백인들이 무리지어 살갗 벌건 인디언 잡아 죽이느라 존 웨인을 대장으로 모신 청색 군복의 기병대가 나팔 불며 출동하는 전쟁 씬을 기대한다면 천만의 말씀. 대신 크리스마스 날 아침, 99 야드도 아니고 101 야드도 아니고 딱 100 야드 떨어진 곳에 잘 생긴 칠면조 한 마리 가져다 놓고 목만 내밀 수 있게 앞에다가는 돌덩이로 가린 다음, 총 쏴서 대가리를 맞히는 사람이 칠면조의 소유권을 갖되 총 한 방에 6 센트 씩 내야하는, 이걸 뭐라 해야 해? 민속놀이? 하여간 그런 거. 하늘을 완전히 까맣게 덮어버린 철새를 사냥하기 위해 산탄대포를 쏴서 가장 가난한 집안의 식탁에서 내일 모레 늦어도 글피 저녁상에선 거들떠도 보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남획하는 백인들의 욕심. 그물로 호수 속 물고기의 씨를 말리다시피하는 일종의 축제. 이런 것들이 인디언들의 소박한 삶과 삶에 대한 철학과 대비되고, 일찍이 저 멀리 <녹색평론선집>에서 볼 수 있었던 숙고해볼만한 삶의 방식 같은 것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책.
 19세기 초반에 나왔으니 시대적 한계는 있어서, 나중에 밝혀지는 태생의 비밀 같은 거에 많이는 실망하지 마시기 바람. 우와, 너무 심한 거 가르쳐드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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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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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은 벌써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명성을 떨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다른 책에서 인용하는 독특한, 소설일 수도 있으며 읽기에 따라선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을, 새삼스럽게 골라 읽은 건, 랭보의 시집을 골랐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왕비의 신비한 불꽃>에서 계속 인용하기 때문이었다.
 부록까지 포함해 185쪽에 불과하지만, 그리 읽기 녹록하지 않았다. 구성이 어렵다거나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뜻이 아니라, 놀랍게도, 19세기 초반에 쓴 글, 그걸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문장들이 대단히 아름답다는 뜻이다. 글을 만드는 재료들이 정말 다양하고 그것들을 적절하고 교묘하게 버무려 독자로 하여금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속뜻이 무엇일까 궁리하게 만들다가, 자신들의 마음 속 해석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관계없이 글에 공감하게 만드는 기묘한 아우라. 그리하여 갈피를 넘기는 속도가 빠를 수 없다.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해 쓴 글, 그것도 아편쟁이가 과거에 정말로 있었던 일들, 평소에는 바로 그 기억이 뇌의 주름 한 구석에 있었을 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가 아편의 자극에 의하여 끄집어낸 것인지, 아편이 뇌를 몽환으로 이끌어 정말 있었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들었는지,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동서를 가리지 않고 불쑥, 갑자기 솟아오른 불꽃처럼 돋아나는 생각들, 그것들의 묘사.
 어느 날 문득 시골집의 부엌에 나타난 말레이 인. 터번과 더러운 흰색의 바지가 벽에 댄 거무스름한 판자를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풍경. 나는 이 말레이 인과 아무 관계도 없으며 심지어 말레이 인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나는 말레이 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의사소통 없이 말레이 인은 그냥 부엌 바닥에 한 시간 가량을 누웠다 떠나고, 난 그에게 기념으로 아편 조각을 건네준다. 남아시아 인이라면 아편과 친하겠지 싶어서. 말레이 인은 손바닥 위에 놓인 아편 조각을 그냥 꿀꺽 삼키고, 그 정도의 분량이라면 용기병 세 명과 그들의 말까지 한 번에 죽일 수도 있는 치사량임에도 나는 어떻게 할 줄 몰라 그냥 내버려두었으나 다행히 남아시아 사람이 길을 가다 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듣고 안도한다. 역시 아편에 익숙한 남아시아 인임을 확인하며.
 이 일화는 본문 세 쪽에 걸쳐 있는 내용을 요약한 건데, 내가 글재주가 없어서인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리 요약을 잘 해도 원문의 그로데스크, 기이하고 또 쓸쓸한, 이런 거 다 합한 것을 비슷하게라도 쓸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이 내용이 책의 저 뒷부분에 다시 한 번 갑자기 등장해 나의 꿈속에서 거대한 공포로 자리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하나만 꼽아본 (19세기 초반에 쓴 글이란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방식의 글이다. 이런 것들을 다 합해서 난 토머스 드 퀸시의 글을 아름답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자주 쓰는 아름다움하고는 좀 다른 거. 이 책의 초간이 나온 것이 182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쌍코피 흘리고 불과 10년 후, 워털루 전투로 폭망 7년 후에 쓴 글이란 거 감안하면 더 진가를 알 수 있는데, 처음에 얘기했듯 움베르토 에코가 이 작품을 자신의 소설에 즐겨 거론한 건, 책의 2부 세 번째 장, “아편의 고통”, 즉 금단현상을 겪을 때, 특히 꿈속에서 동서양과 아프리카까지 큰 그림의 원시상태와 다양한 파노라마가 <로아나 왕비....>의 주인공 ‘얌보’에겐 아찔한 기억일 수도 있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감상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재미나게 읽었으나 다른 사람의 만족까진 담보하지 못하겠다는 거.
 (어제 술 좀 마셨더니 아, 오늘 아침 글 참 안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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