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당통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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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체크>와 <당통의 죽음> 이렇게 두 희곡을 담은 책.
 <보이체크>는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오페라 <보쩨크>의 원작으로 언젠가는 읽어야할 목록에 벌써부터 들어 있었던 것인데 이제야 읽었으니 만시지탄. 이 책을 이번에는 꼭 읽어야겠다, 작정하게 만든 건 전에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으면서 이왕이면 <당통의 죽음>을 먼저 읽을 것을 그랬다고 조금 후회 비슷하게 한 점이 첫째요, 두 번째는 빅또르 위고의 <93년> 속에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세 거인의 풍모가 소개되는데 개인들에 관해선 깜깜 무지, 이왕이면 이들의 삶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음악(보이체크)과 전에 읽은 독서(당통의 죽음)에 이은 연속 독서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작용했다고 할 것인데, 내가 생각해도 거 참 기특하다.
 <보이체크>는 오페라 <보쩨크>와 거의 내용이 같은데, 당연히 원작을 조금 생략, 수정한 것이 후배 베르크가 작곡한 <보쩨크>. 따라서 오페라에서 나오지 않는 장면이 약간 등장하고 순서가 왔다 갔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부터 하는 얘긴 완전 내 생각이다. 어디 가서 이 이야기 써먹고 옴팡 망신당하는 건 당신 자유니까 알아서 하시라. 내가 먼저 1925년에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보쩨크>를 VHS 필름과 DVD로 보고, CD들로 충분히 들은 다음, 1836년에 쓴 <보이체크>를 읽어서 그랬는지, <보쩨크>가 훨씬 나한테 맞았다. 무엇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불과 스물 네 살의 삶을 살고 간 뷔히너가 ‘19세기 전반기’에 이런 희곡을 썼다는 것. 가히 경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극작을 시도했다는 점. 뷔히너야말로 천재가 가져야 하는 미덕인 대단한 작품의 생산과 일찍 맞이하는 죽음을 다 가진 작가인데, 이런 인물에게 흔히 사용하곤 하는 헌사를 바치자면, 조금만 더 길게 살았다면 얼마나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었겠는가, 비슷한 말. 근데 뷔히너가 죽고 약 90년이 지난 독일 땅에 평생 골골하는 약골 중의 약골로 태어난 알반 베르크, 어느 날 <보이체크>를 보게 된다. 거기서 찌질이 보이체크 이등병이 군대에서 찐따 노릇을 하는 걸 보고 자신과 완전 동일시하는 건, 하도 몸이 좋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는데도 젊은 베르크는 참전하지도 못하고 후방에서 민방위대에 근무하며 온갖 비아냥을 다 들어서라고 한다. 물론 이건 들은 얘기. 여기서 베르크는 여태까지 현대 음악, 그 중에 오페라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무조성 음악기법을 채택해 연극을 보고 집에 가서 곧바로 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희대의 전환점을 만든 오페라 작곡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그러니 19세기 초반의 획기적인 드라마를 20세기 초반 획기적인 조성의 오페라로 만든 두 천재의 작품을 듣는 21세기 인간. 그가 어떤 작품을 선호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 가는 대로겠지만 내 경우엔 원작이 담고 있는 하층민의 소외와 가난과 부조리, 또 실존방법의 모색 같은 첨단을 얘기하는 위에 획기적인 무조와 불협화음을 통째로 덧씌워 이를 극한으로 표현한 오페라가 더 좋더란 얘기에 불과하다.
 어떤 드라마고 어떤 오페라인지 궁금하시지? 대개 이쯤에서 유튜브 영상을 하나 덧붙이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생략하는 건, 5분도 안 되는 한 장면만 따와서는 두 천재에 의하여 만들어진 한 영상을 소개하는데 도무지 가능하지도 않고, 19세기에 완성한 공연물과 달리 유려한 화성의 아리아나 독백 장면 또는 웅장한 합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아, <보쩨크>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을 통째로 보고 들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서다. 어째 얘기가 희곡 <보이체크>가 아니라 오페라 <보쩨크>로 쏠린다 싶겠으나, 위에서 말했다시피 원작의 손상도 별로 없고 틀어진 것도 거의 없어서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란 점 양해하시기 바란다. 거기다가 찌질이 이등병 하나 등장하는 엽기, 잔혹, 치정극의 스토리 또는 힌트를 드릴 수 없는 바에 아예 방향을 이렇게 잡았다는 것도.
 그래도 오늘 내가 <당통의 죽음>에 관해선 한 마디도 안 했잖은가. 왜? 아, 뻔하지 뭘. 직접 읽어보시라고. 온건한 혁명으로 더 이상 죽음의 왕녀 기요틴의 무거운 칼날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을 지향한 육체적 거한이 맞는 죽음은 어떨까. 읽어보시라. 당통의 죽음으로 대혁명도 어느덧 석양을 맞고 말지 않는가. 원래 뭐든 그런 거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가는 거. 왕서방. 누군지 아시지?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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