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악마
존 웹스터 지음, 고현동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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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6년에 런던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때 런던의 랜드마크이기도 했던 여러 성당도 홀랑 타버렸는데 당시 런던 시민들의 출생증명서는 세례를 받은 교회에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뭐 아나, 소설책 읽어보니까 그렇더라. 근데 런던교구 예배당이 불길에 휩싸이는 바람에 유명인사의 생몰 기록도 함께 사라져 정확한 출생, 사망 연도를 모르는 일도 생겼다. 이 가운데 하필이면 셰익스피어와 거의 동시대에 극작가 활동을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이름이 생소한 존 웹스터도 끼어 있어 이제 영문학자들이 탄생이 1578년 아니면 79년, 사망은 1627년에서 34년 사이로 추정한다. 오늘의 교양. 런던 대화재 때문에 사라진 교회를 새로 짓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여전히 세계적인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렌’이다. 소설 작품 여러 편에서 이이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렌의 제자 가운데 니컬러스 혹스무어라는 인간이 있어 이때 교회 여섯 개를 개축하며 이름을 날렸으나, 혹스무어가 슐레밀 성향이 있는 인간이라 하는 일마다 꼬여 아마 말년이 좋지 않았지? (슐레밀: 하는 일마다 꼬이는 불운한 인간. 토머스 핀천의 작품 <브이.>에 나오는 이디시어 단어) 이 혹스무어를 차용해 대체역사 소설을 쓴 피터 애크로이드의 작품이 읽어볼 만하다.

  하긴 존 웹스터가 때를 잘못 골라 하필이면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활약한 것만 가지고도 웹스터 역시 슐레밀 인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이 더러워 2등은 별로 기억하지 않거든. 제일 유명한 2등이 모차르트한테 찌그러진 안토니오 살리에르? 위대한 소프라노 가운데 한 명이라서 그래도 ‘라이벌’이란 칭호를 얻어듣기는 했던 칼라스 시대의 레나타 테발디. 근데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는 거지? 하여간 웹스터가 <하얀 악마>를 쓴 것이 1612년 왔다갔다니까 만년의 셰익스피어시대 맞다. 이거 얘기하느라.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관례로 보아 역자 고현동이 썼을 거 같은, 본문 뒤에 붙은 해설을 보면, 작품의 초연이 1612년에 런던 레드불Red Bull 극장에서 있었고, <하얀 악마>는 공연되기 30년 전쯤에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극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중 등장하는 피렌체의 추기경 몬티첼소가 콘클라베에서 교왕으로 선출, 바오로 4세가 된 해가 1555년이니 적어도 60년 전쯤에 있었던 사건이 맞겠다. 바오로 4세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하여튼 극 중에서 교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내린 교왕령이 매춘부 교화소에서 탈출한 비토리아 코롬보나와 이 매춘부의 정부이자 브라치아노의 공작 파울로 지오다노 오르시니를 파문하고 로마에서 추방하는 일이었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이었을까? 그렇다. 한 마디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은 사건이다.


  여기부터 등장인물도 많고 이름도 길어서 헷갈리기 쉽다. 눈 피곤하면 단락 그냥 훌쩍, 뛰시라.

  다른 가문도 아니고 피렌체 디 메디치 가문의 딸 이사벨라를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아내로 맞은 브라치아노 공작. 당연히 이사벨라는 살아 생전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 없이 곱게 자랐을 터이니 살갗 뽀야니 얼마나 예뻤겠나. 그래 젊어서는 여기서 쪽, 저기서 쪽, 볼때마다 물고 빨고 했지만 아들 지오바니가 이제 열다섯 왔다갔다 할 때는 그저 소 닭 보듯 했다. 사실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다. 더 늙어 아내한테 얻어 터지지 않고 살려면 딱 이 때부터 잘 보여야 하거늘, 공작은 안면 싹 가리고 귀족 떨거지이자 자기 부하인 카밀로의 환장하게 어여쁜 젊은 아내 비토리아 코롬보나한테 눈이 휙 돌아가 버렸다.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지. 아내 이사벨라는 15세기부터 유럽 최고의 재력을 바탕으로 세 명의 교왕과 두 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한 디 메디치 가문의 영애였고, 눈독 들인 비토리아도 현직 추기경(훗날 바오로 4세 교왕이 될 지는 몰랐겠지만) 몬티첼소의 조카 며느리였다. 이사벨라가 메디치 가문의 그냥 영애도 아니고 현 토스카나 대공위의 자리에 있는 피렌체 공작 프란체스코 디 메디치의 친 동생이었으니. 하긴 뭐 여자한테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을 못해? 하여간 꼬다리 달린 남자새끼들이란…….

  근데 이게 브라치아노 공작 혼자 죽기살기로 비토리아의 몸과 마음을 갈망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비토리아도 나이 들어 머리가 홀랑 벗겨진 남편, 아니면 매독이 벌써 상당히 진행해 머리카락까지 말짱하게 빠져버린 남편하고 잠자리는커녕 입맞춤도 하지 않은 게 하 세월이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는데, 왜 그랬는지는 설명이 없다. 진짜 매독 때문이지(아닐 듯), 늙어 발기부전이 생겼는지(조금 그럴 듯), 너무 못생겼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든지(조금 더 그렇다), 권태를 더 못 견디겠든지(많이 그렇다), 공작의 아내가 되어 더 멋있게 살고 있었든지(아주, 아주 많이 그렇다) 했다가, 이게 시간이 갈수록 진짜 사랑이란 걸 하게 된 거다. 덧붙여 친동생이자 세상없는 악당인 플라미니오가 공작과의 사이에서 슬금슬금 모닥불을 피워주니 비토리아 간땡이가 슬슬 붓기도 했고.

  이 비토리아 코롬보나가 작품의 제목인 “하얀 악마”인데, 간이 얼마나 부었느냐 하면, 꿈 꾼 이야기를 이렇게 한다. 당연히 진짜 꾼 꿈은 아니겠지만.

  “한밤중에 교회 옆 묘지로 걸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곳에 크고 매력적인 주목(朱木) 나무가 땅에 커다란 뿌리를 내리고 있었죠. 그 주목 아래에서 오랜 세월 비바람에 상처 난 어떤 무덤에 기대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곳으로 공작님의 부인과 제 남편이 슬그머니 왔어요. 한 명은 곡괭이를, 다른 한 명은 녹슨 삽을 들고서 말이에요. (중략) 공작부인과 남편이 말하더군요. 제가 잘 자란 주목을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시든 가시나무를 심어 놓으려 한다고요. 그래서 저를 산채로 묻어 버리겠다고 맹세했어요. (중략) 그때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커다란 주목의 거대한 가지를 떨어뜨렸고, 공작부인과 제 남편은 그 성스러운 주목에 맞아 그들에게 걸맞은 초라하고 얕은 무덤 안에서 죽어 버렸어요.”

  여기서 “주목朱木”의 영어 발음이 you와 같단다. 그리하여 비토리아가 꾼 개꿈의 결론은 자기를 위하여 공작부인 이사벨라와 자기 남편 카밀로를 죽여달라는 거다. 그래야 자신이 공작부인의 자리를 꿰찰 수 있으니까. 나는 여기까지 읽으면서 기어이 브라치아노 공작이 아내와 카밀로를 죽이고 말겠구나, 하는 건 탁 눈치를 챘지만, 이게 16세기 중반에 실제로 다른 집구석도 아니고 메디치 일가에서 있었던 일이란 건 생각도 못했다. 출연진에 “프란체스코 드 메디치: 피렌체의 공작이며 이사벨라의 오빠”라고 씌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디 메디치 가문한테 이런 불명예를 줄 깡다구 있는 바보 멍청이라 있었을까,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철없는 브라치아노 공작은 자꾸 귀찮게 구는 디 메디치 공작한테 정 꼬우면 전쟁 한 판 뜨자고 하더라니까, 글쎄. 자기들 집안의 명예 하나 때문에 공국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망실할까봐 오히려 디 메디치 공작이 전쟁에 반대하고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고? 좋다. 이 희곡은 안 읽거나 아주 극소수만 읽을 거 같아 화끈하게 일러드리지. 사실은 희곡이나 오페라, 발레 같은 공연물, 당연히 영화 장르는 빼고, 거의 모든 공연물은 극의 내용을 미리 알고 관람하는 것이 백번, 천번 옳은 일이어서 내용을 몽땅 드러내는 일에 거부감이 훨씬 덜하긴 하다. 미리 희곡을 읽고 연극을 보는 거하고, 말짱 생으로(‘생으로’라고 쓰지만 발음은 ‘쌩으로’ 하는 게 훨씬 더 호소력 있지?) 극장에 가는 거하고, 이거 많이 다르다.

  1. 이사벨라 브라치아노 공작부인. 공작의 파도바 성에서 늘 습관적으로 자기 전에 세 번 인사하고 입맞춤을 하는 공작의 초상화 입술에 독을 발라놓은 줄 꿈에도 모르고 평상시처럼 아무렇지 않게 두 번 입맞추었다가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리다 새벽에 죽는다. 물론 조금 과장해서.

  2. 카밀로. 공작의 하수인이자 비토리아의 동생인 플라미니오가 카밀로와 뜀틀 놀이를 하다가 카밀로의 목 경추를 거꾸로 접어버린 후 뜀틀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져 죽은 것처럼 위장한다.

  카밀로의 죽음으로 의심을 받아 비토리아는 종교재판에 넘겨져 매춘부 교화소에 입소한다. 공작과 불륜관계라는 건 세상이 다 알았고, 당시에 불륜은 교회에서 재판을 했다고. 거기서 얼마 지내다가 현직 교왕이 사망해 콩클라베가 소집되어 교회가 어수선해지자 브라치아노 공작이 비토리아를 빼내 파도바의 성으로 데려가 새로 결혼을 한다. 이런 커플이 행복하면 참 불공평하겠지? 그리하여 파도바의 성으로 진입하는 정의의 사나이들. 누구냐하면, 차마 알려드리지 못하겠네. 재미있으니 직접 확인하시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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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23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론 존 웹스터가 영어 사전을 낸 그 사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7,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은 웹스터 영어사전 하나씩은 있었다고 하던데 암튼 영어 사전을 낸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걸 번역한 사람도 대단하지 않나 싶습니다.

Falstaff 2024-04-23 16:1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웹스터가 그 웹스터군요. ㅎㅎㅎ 전 XX년대 영어사전 쪽인데 아무래도 민중서관이던가에서 나온 에센스가 제일이었습죠.
큰 아이 고등학교 올라갈 적에 영어사전 사줬더니 이게 멍뮈? 하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ㅋㅋㅋㅋ 사전은 말 그대로 사전적 의미로만 있더구먼요.
아하, 그 웹스터가 이 웹스터! ㅎㅎㅎ 고맙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stella.K 2024-04-23 18:12   좋아요 1 | URL
가만히 계셨으면 중간은 하셨을텐데 그 순간 나쁜 아빠로 등극하는 순간이셨겠어요. ㅋㅋㅋ 아드님은 내심 입학축하 상여금이나 최소한 문학이나 사상전집 같은 걸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다락방 2024-04-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너무 재미있겠는데요??

Falstaff 2024-04-23 16: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 죽입니다. 원래 치정, 살인이 기가 막힌 소재 아닙니까.
 
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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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자마자 별점 주면 딱 별5. 근데 일주일 지나면, 스토리가 어떻게 되더라? 두 주일 지나면 작품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자주 경험하는 일이 발생하지. 전형적인 미국 소설답게 역시 해답은 돈. 마른 하늘에 돈벼락 맞는 합법적인 방법? 묻기는, 알면서. 그런 의미에서 징그럽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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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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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9월 16일. 이날 하루 부산 이곳에서 많은 뜨내기들과 토박이들이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그들의 지난 경험을 모은 책. 표지에 “김숨 장편소설”이라 박혀 있어 독자는 자연스럽게 언제 주인공이 출현하는지 촉각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백 쪽에 육박할 때까지 도무지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을 찾을 수 없을 때쯤, 이 작품이 수많은 인물의 단상을 연결해 1947년 당시 부산의 모습을 그렸구나, 짐작할 수 있다. 즉, 많은 등장인물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길을 지나다 옷깃도 스치지 않고 그냥 서로 지나치기도 한다. 초판이 2023년. 무대는 1947년. 76년 세월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당시의 거리, 물가, 의상, 언어를 그대로 되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자료와 사진을 많이 궁리하고 들여다보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특히 언어는 가능하지 않다. 김숨도 현명하게 작품 속에서 부산 사투리나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구사하는 사투리 대신 거의 현대 표준말을 사용했다. 나는 김숨이 쓴 <바느질하는 여자>를 읽었다. 그러나 준수한 작품 속에서 너무도 많은 오류를 발견하는 바람에 이번에 읽은 <잃어버린 사람>은 겉으로만 훌훌 훑었을 뿐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 <바느질…>처럼 오류투성이 명작일까봐.

  이번에도 참 유려한 문장이다. 너무 유려하고, 섬세하고, 어떤 때는 화려하다. 수식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침에 죽 끓여먹고 점심과 저녁은 냉수 한 사발로 대신하는 극빈자일지언정. 작품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검은 새 하나가 쇠사슬에 매달린 저울추처럼, 땅이라는 접시 위에 오롯이 놓인 세상과 무게를 겨누며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한다.”

  여기 나오는 “검은 새”는 정말로 조류, 하늘을 나는 새를 말한다. 요즘에도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다. 까마귀? 까치? 정확하게 새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검은 새로 일컫는 이 조류는 책이 끝날 즈음에 한 번 더 나온다. 새 “한 마리”가 아닌 물질 “하나”가 하늘에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광경을 이렇게 쓴 거다. 하필이면 그 하나가 “쇠사슬에 매달린 저울추”라고 쇳덩어리를 연상해 그냥 중력방향으로 꽂히고 마는 단단한 것, 그래서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 대신, 이게 도대체 뭘 은유하는 것일까, 쓸데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는 부두를 이렇게 묘사한다.

  “바다에 반사돼 생겨난 빛까지 더해지자, 부두는 썩은 고구마 같은 몰골로 죽어 있는 생쥐의 부패한 눈동자마저도 금은보화처럼 영롱히 반짝일 만큼 빛으로 넘쳐난다.”

  어떤 광경인지는 알겠는데, 좀 심한 거 같지 않나? 도무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수사법 교범을 읽는 기분이 들만큼 극한의 미문이 촘촘하게 박여 있다. 마음먹고 인용 해야겠다, 싶은 문장이 있었지만 본문만 650쪽이 넘어가는 책이라 그 문장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글 좋은 건 알겠는데, 좀 심하다. 다듬고 쪼고 갈아 만든 문장도 과하면 질릴 수 있구나.


  그래도 가장 많은 빈도로 출연하는 등장인물이 애신. 어린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가 만주 일대에서 종군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해방 이후 귀국해 집에서는 일본군 군복 만드는 공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집안 어른들은 속으로 믿지 않는 눈치지만 이런 거야 안 믿으면 서로 속만 썩는 거라서 그냥 믿기로 작정해주었다는 것이 표가 났다. 때마침 부산 미도리마치, 녹정綠町, 1916년 일제가 서구 충무로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공창지역에서 윤락여성으로 있는 친구가 해운대 사진이 찍힌 엽서를 보내 자기한테 오면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번 한 것을 철썩 같이 믿고 부산에 도착한다. 언제? 1947년 9월 16일에. 부산진역에 내린 애신은 여러 사람한테 길을 물어가며 내년인 1948년엔 달을 보며 즐기는 동네 완월동으로 개명하고, 1982년엔 다시 충무동으로 이름을 바꿀 곳을 향해 걸어간다. 가는 길에 조선 남자와 결혼해 패전 후 남편을 따라 조선에 왔다가 소박맞고 돌아갈 뱃삯도 없어 거지꼴이 된 일본 여성도 만나고, 전혀 쓸모없는 금붕어 한 마리가 든 어항도 사고, 실물보다 예쁘게 보인다는 거울도 선물로 산다. 그렇게 오후가 되어서야 언덕배기의 영업장에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야한 원피스를 입은 친구를 만나, 아마도 친구와 비슷한 일을 할 것 같다. 짐작이다. 그렇다는 말은 없다. 이곳의 친구는 애신과 같은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있다가 귀국해 집에 가서 부모한테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할 용기가 없어 미도리마치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을 듯.

  등장인물 거의 다 이동거리가 긴 편이지만 애신이 부산진역에서 미도리마치까지 하루 종일 걷는 역할이라 걸으면서 앞에서 이야기했듯 다른 등장인물과 제일 많이 스쳐 지나가면서 인연이면 인연이랄 수 있는 만남을, 대부분 하루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만나 인물들끼리 얽힌 고리를 만든다. 도대체 몇 명이나 등장하는데 그러느냐고? 모르겠다. 안 세 봤다.


  일제강점기를 마감한 미군정기의 부산. 일본과 중국으로 떠난 징용/유민들이 공식적으로 입국하고,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소위 야매배를 타고 오는 바람에 빈손으로 도착한 조국. 그들이 전부 고향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숱한 사람들이 부산에 남아 거친 노동에 종사했고, 삼팔선 이남 지역에서도 미군들의 도착지라서 일자리가 제일 많다는 소문을 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이 가운데 김숨이 주목한 것은, 일본과 중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왔으나 고향에 가지 못한 군상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반 강제 징용살이를 하다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얼굴과 손이 뭉그러진 사내, 도끼 같은 사람들. 간도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종잣돈을 마련해 은붙이 장사를 하며 중국 각지를 떠돌다 상하이 귀국길에 사기를 당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천복. 앞에서 이야기했던 버림받은 일본인 처 가쓰코, 시나마치 거리 중국음식점 춘화원 사장 천서방의 치파오를 입은 중국인 며느리를 위해서도 한 꼭지 씩을 마련해두었다. 당연히 부산 토박이들도 대거 등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인물은 모지포의 가장 늙은 과부 쑥국과 재작년 입춘 무렵에 풍을 맞아 얼굴이 조금 돌아가고 팔이 불편한 백발의 어부 말똥. 말똥은 돛이 하나 달린 외돛배를 타고 나가 생선을 잡는데 유난히 쇳빛나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다. 사실 여부는 다음으로 하고, 김숨은 이 쇳빛 물고기를 ‘다금바리’라고 말한다. 말똥은 어려서부터 거의 이 물고기를 먹고 자랐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라는데, 그게 부산 근해에서 그리 많이 잡혔나? 하여간 이 날 새벽에도 다금바리를 몇 마리 건져 들고 오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쑥국 할머니 집 울타리 넘어 휙 던진다. 마당에 앉았던 쑥국 할머니는 눈이 지물지물하지만 귀는 잘 들려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게 다금바리인 것을 알고 냅다 문밖으로 달려나갔지만 그새에 골목엔 아무도 없다. 조금 지나 오중, 오정을 넘어 점심 때가 됐고, 쑥국은 다금바리를 손에 들고 동네의 끝에서 다른 끝 쪽으로 걸어간다. 그곳에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외로운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있다는 걸 알아서, 먹을 것을 나누기 위하여. 이 시간에 15년 전에 집을 뛰쳐나간 아들 호식이 억새밭을 뚫고 길을 찾아 옛집으로 오고 있다는 건 쑥국이 알 턱이 없다.

  낳은 아이마다 몇날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다음에 낳은 아이한테 명줄을 붙들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들이라 지었다. 붙들은 곡정 까치고개에서 나이 깨나 들도록 살았다. 그러다 1947년 9월 16일이 왔다. 까치고개에 움막을 짓고 들어와 사는 아낙네가 이날 아침에 아이를 낳고 삼을 갈랐다(삼을 가르다 = 탯줄을 자르다. 이 단어가 몇 번 나온다). 없는 집에서 산모가 조리는커녕 밥이나 한 끼 제대로 먹었을까 싶은 붙들이. 붙들이는 직접 겨울 바다에 나가 바위에 붙은 걸 낫으로 베어내 말린 미역과 말린 갈치를 쑴벙쑴벙 썰어 넣어 끓인 미역국을 들고 산모를 찾아간다. 땜질한 자국이 많은 양은 솥을 높이 걸고, 늙은 땔감 장수 옆에 앉은 젊은 땔감 장수한테 산 땔감으로 불을 피워 국수를 한 솥 끓여 이제 새롭게 장사를 시작한 석분은 작품이 끝날 때쯤 해서 자기 양은 솥보다 한뼘은 더 큰 양은솥을 발견하고 모른 척, 시치미 뚝 떼고 손수레에 싣고 가버린다. 조금 후 풀밭에서 오줌을 누고 나온 아낙네가 자기 양은솥이 없어진 걸 알고 땅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망연히 한숨을 쉬고.


  참 없던 시절에 없이 살던 사람들의 초상.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문장 때문에 리얼한 느낌이 감해졌다고 말하면 그게 못 배운 티를 내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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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2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하면 질릴 수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Falstaff 2024-04-22 16:00   좋아요 1 | URL
그럼요, 뭐든지 마찬가지지요. ㅎㅎㅎ 저도 독후감을 너무 많이 쓴 거 같아서 말입죠. ^^;;
 
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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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하고 끝도 없는 단어와 문장과 문단의 연속. 유장한 언어의 큰 강어귀, 그 속에서 빠져 죽기 일보 전이다. 2백쪽도 안 왔는데 환장하네, 이거. 하긴 이렇지 않으면 헨리 제임스가 아니지. 안 읽는다, 안 읽는다 하면서도 보이면 꼭 읽게 되는 제임스. 내가 밋쵸요, 밋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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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사랑 이야기 거장의 클래식 2
찬쉐 지음, 심지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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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쉐의 신간이 한 번에 두 권 나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격정세계>는 도서관에서 따로 구입 계획이 있다고 반려됐다.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신세기 사랑 이야기>만 ‘첫빠따’로 읽었다. 작가의 덧붙이는 말도 없고, 역자 해설도 없이 본문만 506쪽. 작품은 전위적이다. 무수히 상징적이고 메타포가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며, 전체적으로 초현실주의적이다. 장황한 출판사 책소개에는 욕망, 온천여관, 성접대부, 추파 등을 앞부분에 나열하여 여차하면 <신세기 사랑 이야기>를, 신세기라고 했으니, 21세기 현대인의 허리하학적 연애 이야기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그런 거 믿고 책 읽기 시작하면 코피 터진다. 심지어 야한 장면이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예 기대하지 말고 그냥 찬쉐가 풀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될 듯하다.


  독후감 쓰기가 난감하다.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건 분명한데 딱 집어서 주인공이라 하기에는 좀 어색한 마흔여덟 살의 유부남 웨이보를 둘러싼 여자들, 그리고 이 여자들의 남자들이 중심이다. 그러나 한 줄기를 이루는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마지막 연인>을 읽을 때처럼 습관적으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가 곧바로 집어치웠다. 처음엔 서른다섯 살 먹은 과부이자 계량기 공장 창고관리인으로 일하는 뉴추이란과 마흔여덟 살로 비누공장 다니는 평사원이지만 지식인인 웨이보의 만남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1년 전쯤 성sex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천여관에 입장한 웨이보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입장하면서 추이란과 옷깃을 스쳤고, 퇴장하면서 불쑥 추이란 생각이 나 여관의 데스크를 통해 정보를 알아내 연인사이를 시작한 커플이다. 48세의 웨이보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아들 둘을 독립시켰고, 아내 샤오위안은 중학교 교원으로 교양 있고 말도 부드럽게 돌려 하는 교양인이다. 지금은 가르치지 않고 교직원으로 학교 업무로 중국 각지에 출장다니는 일이 잦다. 이들은 서로 무심한 단계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라 각자만의 비밀이 따로 있어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성인군자 사이의 교류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내 샤오위안은 밤열차 객실에서 만난 저 시골 현에서 병원 개업하고 있는 양의洋醫 닥터 류와 각별한 관계를 맺는데, 오해하지 마시라, 플라토닉이다, 플라토닉.

  웨이보는 이제 뉴추이란과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다. 그래 오늘 당장 추이란의 집에서 대낮에 만나 뼈와 살을 태우려 했거늘, 그리하여 추이란은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색조화장까지 싹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드디어 웨이보가 오긴 왔는데,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해, 이 말 하러 왔어. 이러고 꽁무니를 빼버렸다. 웨이보와 한낮의 엑스터시를 만들기 위해 연차까지 낸 추이란은 혀가 쑥 빠졌다. 그러나 자신은 절대 남자한테 질척대는 여자가 아니라고 믿는 추이란. 웨이보가 괜찮은 남자이긴 하지만 남자가 밥 먹여 주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추이란은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아, 추이란은 온천여관에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온 것이지 매춘을 하기 위한 건 아니다.

  매춘을 위해 이 집에 들락거리면서 추이란과 알고 지내는 두 여성은 룽쓰샹과 진주. 이들은 방직공장에 다니다가 공기중에 한없이 많은 입자로 나풀거리는 먼지를 더 들이마시면 북망산이 두어 걸음일 거 같아 공장을 그만두고 온천여관의 윤락녀가 된다. 이미 삼십대 중반쯤 되는 많은 나이로 업소에 자리를 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같은 공장을 다니다가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뛰쳐나가 업소에 터를 잡은 선구자적 윤락녀 아쓰와 몇몇 남자의 후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쓰는 웨이보에게 미스 쓰絲라 불리며 한때 연애도 했으나 관계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등장인물은 이 정도면 됐다. 이들은 전부 어떻게라도 서로 인연이 있고, 없더라도 두어 사람만 거치면 서로 알 수 있는 사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 글쎄 그걸 좇아가려면 책 읽기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니까. 찬쉐는 달랑 <마지막 연인>과 <황니가>를 읽었을 뿐이지만, 적지 않은 독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마지막 연인>보다 <신세기 사랑 이야기>를 해독解讀하는데 더 어려움이 있었고, 책을 덮은 다음에 분명히 나름대로 읽어냈고 이해도 어느 수준까지는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게 어떤 것인지 설명하자니 앞뒤로 갑갑하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이 책소개 전면에 나온 것처럼 불륜, 윤락, 자유분방, 특히 허리하학적 자유분방과 별로,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 찬쉐가 쓴 작품이라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으니 나는 당연하다 생각하는데, 혹시나 해서 미리 깔아두는 말 또는 정보다.

  좋다. 작품을 읽은 감상으로서 독후감 대신, 책을 읽으며 든 의문을 한 번 이야기해보자.

  제목이 ‘신세기’라고 했고 출간연도도 2013년이다. 찬쉐는 밀레니엄 이후의 21세기 식 사랑에 관해 쓴 작품인가? 그것 참 모호하다. 이 독후감을 시작할 때 “상징적”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메타포” “전체적으로 초현실주의”라고 했으니 모호한 것이 당연하겠지만 사실 사랑이면 사랑이지 21세기 식 사랑이란 것이 특별하게 존재할 만큼 드라마틱한 의식의 변화는 있었던 것 같지 않고, 작품 속에서도 이 시대의 특별한 사랑 방정식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주요 등장인물의 나이도 미스 쓰, 즉 아쓰만 제외하고는 30대 중반 이후의 여성과 40대 후반 이후의 남성이다. 더 이상 “조신한 여성”으로 불리기 원하지 않는 것도 이번 세기 들어 등장한 신여성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등장인물과 작가 찬쉐는 지난 날, 저 멀리 고향이나 시골, 그러니까 “존재의 시원”의 장소나 기억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 나의 생각이 시원始原하는 곳. 그곳에서 근원적 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영향을 주었던 인물. 이런 것들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이 돈과 시간과 땀을 대가로 찾아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다시 돌아오면서 뒤돌아보면 이미 사라진 사촌 오빠네 집, 몇 십 년 전에 묻힌 넷째 숙부가 되고, 이렇게 한 번 초현실적으로 방문한 옛 고향 동네 사촌오빠 집과 이미 죽은 넷째 숙부는 작품 속에서 계속 출몰한다. 이건 뉴추이란의 경우이고, 자아의 시원을 발견하지 못한 웨이보는 결국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 하천에서 모래 채취작업에 투입된다. 감옥에 들어가니 참으로 다양하게 시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천지다. 이들은 갖은 방법을 통해, 예를 들어 총을 들고 교도소로 쳐들어왔다가 그 길로 수감되고, 이후에도 별의 별 방법을 써서 교도소에서 출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곳이 그들에겐 가장 편한 시원의 장소이니까. 웨이보도 마찬가지다.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 웨이보는 그것으로 자취를 감춘다.


  시원의 장소는 뒤 돌아보면 벌써 사라지고 만 사촌 오빠네 집일 수도 있고 원하는 사람이 발길을 돌리면 나타나는 자유항의 거대한 슬롯머신 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일 유념해 보아야 할 곳은, 가장 선한 등장인물인 닥터 류의 시원의 장소, 사람이 생기기 전에 미리 준비해 있던 ‘사람을 위한 약초’가 많은 차오산의 동굴. 서양 의술을 전공한 양의이지만 중국 전래 한방의 약초 치료에도 일가견이 있는 닥터 류는, 훗날 웨이보의 아내 샤오위안이 지리 교사로 부임하는 이상향 또는 거의 이상향인 소도시 차오현을 유토피아로 만든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데, 그의 시원의 장소인 차오산의 동굴이 작품의 뒤로 가면 아편 밀매를 하는 건달이자 아쓰의 애인이 특별 통행증을 갖고 횡행하는, 더러운 오수가 흐르는 미로 같은 지하도와 혹시 관련이 있을까? 닥터 류의 차오산 동굴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약초로 차 있는 반면, 아편 판매자의 하수구를 통해서는 사람을 환희와 중독으로 이끄는 아편이 이동하는 장소이다. ‘동굴’하면 나는 자동적으로 장용학이 쓴 <원형의 전설>에서 마담 빠타플라이 이지야李芝夜의 이복 오라버니 이장李章이 친아버지와 죽음의 담판을 벌이는 고향집 뒷산의 사적 감옥, 동시에 근친상간의 원죄의 동굴을 연상한다. 찬쉐의 동굴 또는 하수도는 분명 실존이나 원죄의 동굴은 아니고, 치유 혹은 아편(이게 무엇을 위한 메타포인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의 동굴과 이동 통로일 터인데 그게 도대체 뭘까? 이럴 때 흔한 역자해설이라도 있으면 커닝이라도 할 텐데 그것도 없고, 거 참, 아쉽게 됐다.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얼핏 보면 처음엔 그런 거 같지만 육체적 사랑의 이야기도 아니다. 육체적 사랑을 기대하시면 차라리 <격정세계>를 읽으시라. 근데 신기한 것이 작품이 한 1백 페이지를 넘어가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을 헤매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도 하지, 계속 따라 읽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대개 이럴 때 책 읽기에 지극한 권태가 생겨 급기야 때려 치우게 되지만 찬쉐가 특별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지금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감을 못 잡아도 기꺼이 따라 읽게 된다는 거. 심지어 지루하지도 않다는 거. 비록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어가면 된다. 확실하게 그림을 그리지는 못해도 기화한 드라이아이스 흰 연기로 일종의 형태를 만들 듯 비록 애매하지만 독자들 나름대로 한 형상을 더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상징, 메타포, 초현실주의를 기껏해야 더듬었을 뿐인데 이 정도로 마치 다 이해한 것처럼 <신세기 사랑 이야기>가 대박이다,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별점으로 5별을 주지 못하는 이유로 이 정도 변명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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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19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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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존 웹스터, <하얀 악마>
목요일. 조지 손더스, <12월 10일>
금요일. 존 스타인벡, <달콤한 목요일>

그레이스 2024-04-19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토론했는데, 발자크와 찬쉐의 엄청난 간극과 온도차때문에 어질!합니다. ㅋ

Falstaff 2024-04-19 18:43   좋아요 1 | URL
<골짜기의 백합> 재미있잖아요. ㅎㅎㅎ
찬쉐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곧바로 이어 읽으면 나름대로 묘미가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