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시를 읽은 연륜이 짧아,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라 검색을 해봤다. 위키백과를 보면, 1966년 생으로 경남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묘지 관리 일을 하다가 1999년부터 서울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다 쫄딱 망했다고 한다. “채널 예스”에 시인 김도언이 이이를 만난 인터뷰가 있는데, 벤처 기업이 화학 실험실로 숱한 화학실험에 미쳐 있었다가, 드디어 ‘실패하는데 성공’하고 만다. 그러다 완전히 가산을 탕진한 2013년 5월, 20대 시절을 지냈으며 처가가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 장인장모를 도와 마산 어시장의 잡부로 새벽 세 시부터 하루 14시간 동안 생선 나르는 고된 일과를 계속했다고 한다. 채널 예스는 사업하기 전에 신문사 기자, 시청 공보과 소속 공무원의 이력을 갖고 있다고 한 반면, 위키에선 묘지 관리를 했다는데, 모르겠다, 묘지관리가 시청 공보과 공무원의 일인지. 하여간 다양한 이력의 시인인 건 확실하다. 근데 채널 예스의 인터뷰가 너무 길고 장황해서 다 읽으려면 날을 샐 거 같아 여기까지 읽고 말았다. 시인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도 시를 제대로, 내 식대로 맛보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핑계를 대고.
 시집은 2016년 8월에 나왔다. 시인이 만 오십 세 되는 해. 물론 시집에 실린 모든 시는 50세 전에 썼겠지만 시인이 발표하기로 결정했으며, 발표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퇴고한 시기가 그의 나이 만 50이란 얘기. 이미 한 시절엔 잘 나가는 벤처 기업에서 각종 물질을 서로 섞어 인간생활에 도움이 될, 사람살이에 도움이 되는 대신 자기한테는 떼돈을 벌게 해줄 신 물질을 발견/발명하기 위해 미쳐있었기도 했고, 정말로 신비의 연금술 공식이 완성되려는 찰라, 투자자와의 의견대립으로 거덜이 나기도 했으며, 눈물을 흩뿌리며 마산 어시장에서 막일을 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을 담았을 수밖에 없었을 터.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내가 먼저 주목했던 건 첫 번째 시였다. 당연하지. 시집을 열자마자 나오는 시니까. 한 번 읽어보자.



 납 Pb



 단단한 네 마음일지라도
 금속피로가 오지 않는 이유는
 늘 피로한 빛을 하고 있어서 그래.
 계속되는 슬픔은 피로해지지 않아.
 등등함마저 버리고
 네가 이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의 추처럼
 떨어져 있는걸.
 어느 날 낚싯바늘을 매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라도
 숲 그늘에 드러누운 눈밭처럼
 넌 너대로 거기 있으렴.
 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
 더 큰 빛이야.   (전문)



 여기서 ‘금속피로’라는 건, 금속재료를 구부렸다 폈다를 자주 가하면 연성延性이 점차 감소해서 결국 잘라지는(파괴되는)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납. 하면 생각나는 건? 내 경우엔 ‘죽음.’ 약실에서 공이가 뇌관을 때리면 화약이 폭발하면서 조그만 납덩이를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한다. 이 납덩이가 사람의 몸에 박히거나 몸을 관통하면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남긴다. 총알이 무쇠로 만든 종鍾에 부딪혀 확 퍼져 표면에 들러붙은 모양을 마루야마 겐지는 “납장미”라고 서정적으로 묘사했으나, 죽음의 냄새를 짙게 내포하는 장미였다. 시에서는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달아놓은 낚시 추를 납의 대표선수로 선발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흔히 사람한테 미움 받고 멀리하고 싶게 만드는 금속인 납을 시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올린 건, 혹시 시인이 경제적으로 거덜이 나고, 과거의 사장님이었던 등단시인이 생선 상자를 옮기는 일을 하며, 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권토중래의 뜻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넌 그대로 있으렴. / 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 / 더 큰 빛이야.”라고.
 전반적으로 시집엔 제목처럼 화학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심지어 <화학적 거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좀 맹랑하다.



 화학적 거세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이 텍스트의 목적이다.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향남성 호르몬제) 화학식 구조


 한 무제가 사마천에게 물었다.
 목이 잘릴래,
 돈을 낼래,
 거시기를 잘릴래?


 사마천이 대답했다.
 …… 거시기.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굴욕을 참았다.
 명예로운 죽음은, 웃기는 얘기라며.  (부분)



 사마천의 궁형은 그가 <사기 서>에 들은 명문장 “보임소경서補任小卿書”에서 참담한 심정을 직접 토로하고 있는 바, 같은 서생으로 이렇게 가볍게 노래하기는 무리가 있는 듯하지만, 시대가 21세기, 존재의 가벼움이야말로 이젠 시대의 특징이 되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가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것 역시 앞에 인용한 <납 Pb>와 유사하다. 사업의 폭망으로 가산 탕진, 처갓집에 빌붙어 사는 처지를 빗댄 건 아닐까.
 이리 삶을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로 이야기하는 건 참신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인처럼 잘 나가다가 완전 폭망한 사람들의 노래가 독자들과의 공명을 이루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아니, 못한다는 것. 만일 이런 시를, 시인의 상황을 모르는 채 그냥 읽어도 공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지뢰가 깔려있다. 아니, 깔려있을 수 있다. 내가 뭐 시를 안다고 단정을 하겠는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지.
 그가 경험한 극과 극의 상황에다 너무 과한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아니라면, 너무 의도적으로 자신, 또는 인류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주려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뭐라?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맞다. 당신 말이.
 마지막으로, 마지막 작품으로 실린 시집의 표제작을 감상하며 독후감을 끝낼까 한다.



 밤의 화학식



 밤이 온다. 밤이 어둠을 받아 온다.
 당신의 밤엔 무엇이 많은가.
 그러니 모든 이들이여, 대답하라.
 살아 있어야 한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전문)



 그림은 시인이 구상한 도식을 화가 장우희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림을 보면, 밤이란 개체에 탄소(C), 질소(N), 산소(O), 수소(H) 화합물이 아르곤(Ar) 환경 안에서 서로 유기적 결합을 하고 있다. 아르곤은 불활성不活性 원소로 다른 물질과 여간해 결합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탄소(C)다. 유기결합체치고 탄소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 진짜로 탄소 하나만 결합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 화학구조식처럼 탄소를 생략하고 그린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질소가 많은 이유도 모르겠고. 그런 거, 독자가 일일이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한 마디로,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이 잠겨있는 밤이 엉망진창인 미친 지랄이란 뜻. 그래서 여기서 나가겠다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L PENDOLO DI FOUCAULT
 by UMBERTO ECO

 

Copyright (C) 1988 Gruppo Editoriale Fabbri,
 Bompiani, Sonzogno, Etas S.p.A.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C) 1990 by The Open Books Co.

 

 <푸코의 진자> 첫 장을 넘기면 위와 같이 쓰여 있다. “Fabbri Editori"라는 회사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지은 <푸코의 진자>의 판권을 사 와서, 대한민국의 ”The Open Books Co." 즉 출판사 열린책들이 한국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1,135 쪽까지 책을 다 읽으면 역자 이윤기가 쓴 “옮긴이의 말”이 나오는데 자신이 번역한 원서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책을 번역했다는 말을 역자가 왜 하지 않는지 궁금해서 내가 읽은 이윤기의 번역서를 한 번 뒤져봤다.

 

 

 

 

 

 그리스 사람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이태리 사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이번에 읽은 <푸코의 진자>, 서양 책을 읽기 위한 기초체력을 쌓으려면 피할 수 없는 책, 로마 사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리고 유고 사람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 거참 신기하다. 고故 이 선생이 만 30세에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초빙 연구원으로 5년 세월을 보내, 이이가 영어를 잘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읽은 번역서 가운데 영미 문화권의 작가는 한 명도 없다. 왜 그랬을까. 확실하지 않으면서 이유를 추리하지는 말자. 고인의 이름에 누가 될지도 모르니까. 일찍이 어떤 책을 번역했다고 전혀 밝히지도 않았고, 어떤 회사에 지재권 수수료를 지불하는지 알 수 없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번과 2번, <변신 이야기> 후기에서 선생은 영어 본을 기본으로 하되 일어 본을 참고로 했다고 밝힌 바 있으니,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인 1947년생인데 일본어까지 잘 했다면 언어 습득에 관해서 남다른 수재가 있었나보다. 사실 이이가 쓴 한국어 소설도 문장이 매끄럽고 이해하기 쉬워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이가 <푸코의 진자>나 <장미의 이름>을 이태리어 원서를 보고 직역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역자의 말을 들어보면 <장미의 이름>은 일본보다 빨리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럼 이태리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중역한 속도가 일본의 이태리 문학자 다니구치 이사무 교수보다 더 빨랐다는 뜻. 미국, 프랑스, 독일 이렇게 삼국에서는 에코를 전담해 번역하는 에코 전문 번역자가 있으며, 이들이 고령 등의 사유로 은퇴를 하면 후임자는 반드시 오디션을 통해 뽑는 걸 원칙으로 한단다. 에코 전문가들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작품들을 번역하기 위해 수시로 원작자와 의견을 교환해가며 신중하게 번역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런 복잡하고 지루한 번역 과정을 거쳐 나온 <장미의 이름> 영어 본을 다시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이윤기의 역서가, 직역을 시도한 일본의 책보다도 빨리 나왔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왜 <장미의 이름> 타령이냐 하면, 내가 읽은 <푸코의 진자>가 비록 1995년 개정 번역한 것의 후속 판일지언정 둘이 비슷한 수준의 번역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서이다. 배달민족의 독특한 특징을 살려, 빨리빨리, 후딱 번역해 시장에 내놓았을까? 아니면 역자가 이방의 문자, 즉 영어로 번역한 문학을 이해하여 한국말로 다시 번역, 전달하는 수준이 이태리 문학 전공한 일본 교수보다 한 수 위여서 순식간에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원래 언어에 수재가 있는 인물인 듯하니 하는 말이다. 하여간 둘 가운데 하나일 터. 결론은 내지 않겠다. 혹시 모른다. 이태리어를 한국어로 직역했는지도(정말?).
 사실 <장미의 이름>도 그렇지만 <푸코의 진자> 역시 내용은 간단하다. 이틀 전 선배 박사 야코포 벨보의 전화를 받은 화자 나, 카소봉. 벨보는 파리의 카페 정도로 유추할 수 있는 번잡한 곳에서 전화를 했는데, 아주 급박한 상황이며 당시만 해도 첨단 기록장치인 PC를 열어보라는 말을 남기고는 비명과 함께 전화가 끊기고 만다. 벨보의 집을 찾아가 어려움 끝에 패스워드를 유추해 PC를 연 카소봉이 벨보가 사실 그동안 함께 연구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 없는 내용인 비밀기사단, 연금술 등에 관한 정보, 벨보의 문학적 잡문 등을 다시 읽어보고 급박하게 파리의 국립 과학연구원에 방문해,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제목은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원에 설치되어 있는 장치로 19세기 중반에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67미터짜리 진동 추를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문제인가 하면, 이리 간단한 내용이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진짜 직업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기호학자라서, 벨보,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디오탈레비, 그리고 화자 카소봉, 세 명과 이들의 주위에 포진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성배를 둘러싼 기사단의 비의를 파헤치는데 온갖 현학적인 주제와 변주를 난사하고 있다는 것. 사실 스토리 라인만 따라가기 위해서는 넉넉잡고 처음부터 50쪽과 뒤에서 200쪽, 합해 250쪽만 읽어도 눈앞이 훤하게 밝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리 쉽게 읽으려면 뭐 하러 에코를 읽겠는가. 당신이 에코를 선택한 순간, 일종의 정신적 고문, 인내심 실험, 감각의 오리무중을 견디겠다는 전제조건이 들어 있지 않았겠는가.
 <푸코의 진자>에서도 에코는 얄짤없이 독자들을 미궁으로 초대한다. 게다가 독자들은 아리아드네의 실 꾸러미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냥 에코가 주장하는 것을 읽고, 기억하고, 그러다가 잊으면 다시 앞으로 넘겨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있었더라, 확인하고, 그러면서 머릿속에 쥐나고, 에잇 이따위 하나 읽으며 메모까지 한 번 해봐야 할까, 마음도 먹다가 치워버리고, 진도 안 나가는 페이지를 함부로 넘기기도 하는 득도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아니라고? 읽어보시면 안다.
 나는 지금 듣기에 따라 조금 엉뚱한 주장을 하고 싶다. 돌아간 분에겐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푸코의 진자>는 <장미의 이름>과 더불어 다시 번역해야 한다고. 역자 이윤기가 “역자의 말”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 “역자는 학문으로서의 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힘에 부쳤기 때문”에 “에코 문학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기호>, <코드>, <포스트모더니즘>, <인터텍스추얼리티(相互典據性)>, <개방성> 같은 개념을 가지고 이 소설을 해설하기에 역자의 힘은 부쳐도 많이 부”치기 때문이다. 독후감의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소설가 이윤기의 문장도 좋아한다. 그리고 원서를 읽지 못하는 일반 독자로서의 나는 또한 영어를 번역한 이윤기의 한국어 문장도 나쁘지 않게 읽는다. 그러나 스스로의 독백처럼 원작자의 뜻, 특히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에코 문학의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힘이 많이 부치는 역자의 결과물을, 참으로 아쉽게도 선뜻 인정하게 되지 않는다. 직접 읽어보면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게) 무려 근 900쪽을 할애해 설명해놓은 각 기사단, 프리메이슨, 유대교 등과 기독교의 연관성, 오리엔트 문화의 영향, 흑마법, 악마주의, 연금술, 비의 등을 설명할 때 역자도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가 마구 쏟아지기 때문에, 이윤기의 문장이 비록 쉽고 잘 읽히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비전문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한국말에서 좀 어렵거나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는 일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혹시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영어 본에 의한 중역이 나와 절찬리에 팔리고 있는데도, 일본에선 그때까지 번역작업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푸코의 진자>를 읽으면 그동안 경험했던 세 편의 에코가 다 생각난다. 중세 기독교 내부에서의 이단 논쟁에서 당연히 <장미의 이름>을, 저 높은 기둥 위로 올라가 수도에 전념했던 주상柱上수도사는 <바우돌리노>를, 벨보가 자란 시골집에서 찾은 자잘한 옛 시절의 기념품에서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말씀.
 재미있는 책을 나는 고 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읽었으나, 내 아이들은 이태리 문학을 전공한 이의 참신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역자가 영어책을 번역한 것이라면 제일 앞에 써놓은 “Copyright (C) 1988 Gruppo Editoriale Fabbri,  Bompiani, Sonzogno, Etas S.p.A.”가 무슨 뻘짓인지 모르겠다. 영어책 번역하고도 이태리 회사 Fabbri Editori에 판매 권수에 따라 지적재산권에 의한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뜻?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8-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코의 책들은 컬렉션하면서도 절대 읽지
않는 깡다구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장미의 이름>도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항상 말로만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들의 물결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요...

언급해 주신 대로, 이태리 원서에서 다시 번역
하는 데 찬성합니다. 다만 여러 방면에 다양한
지식을 갖추신 분이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죠.

Falstaff 2018-08-23 11:46   좋아요 0 | URL
요즘엔 이태리 문학을 전공한 분들도 많잖아요.
저도 그분들이 재번역한 책들이 나오면 다시 읽어볼 용의가 있습니다.
진짜로,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유재원이란 분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직역해서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당장 보관함에 집어 넣었습니다. 올해 안에 읽을 예정입니다.
지나가는 얘긴데, 이윤기 쌤이 그랬다면서요. ^^
˝나 죽기 전엔 <그리스인 조르바> 직역하지 말아줘.˝
 
지금이 아니면 언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기율표>에 이어 두 번째 읽은 레비. <주기율표>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속 화학공장에 만난 독일인과 유대인 화학자의 인연을 그린 바 있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이태리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재원이라 주기율표에 나온 원소 기호를 따 재미있게 한 인생을 그린 매력적인 소설로 기억한다.
 그러나 레비는 소설가. 비록 이이가 4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해 나와 먹고 살기 위해 1977년까지 니스 공장에서 일을 했다하지만, 소설가인 만큼 비슷한 주제로 여러 작품을 우려먹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터. <주기율표>와 아주 다르게, 유대인이 2차 세계대전이란 격랑에서 생존하며, 심지어 항독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그렸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1945년 여름에, 밀라노 난민 지원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한 친구로부터 들은 유격부대원들의 경험한 처참한 고통과, 그럼에도 존엄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당당한 모습을 소설작품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소설을 탈고한 것이 1982년. 레비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그의 마지막 소설에서 유일하게 실존했던 인물은 오직 한 명. 작중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역할의 유대인 여자 비행기 조종사 ‘폴리나.’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종전 직후 유대인에 대한 대량학살은 두 개의 정부 아래에서 일어난다. 전쟁 직전과 전쟁 중에는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에서. 전쟁직후에는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모든 계급과 차별을 철폐시킨 공산주의 정권인 소비에트 연방에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나도 사실 근래에 알게 됐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원수들, 사랑 이야기>를 통해.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보면, 20세기에 들어와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증오심이 비등점으로 치닫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마자 동부 유럽에서는 나치의 손에 의하여, 나치의 지시에 의하여, 그리고 상당부분 유럽인들의 마음에 딱 맞는 정복 나치군의 방침에 스스로 동조하여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군 점령지에 소련군 패잔병 속에도 유대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을 터. 이들은 동부유럽 각지에서 모인 패잔병들과 함께 파르티잔 활동을 하거나,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유격부대로 활동을 한다. 간혹 비유대인으로 구성된 유격부대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스탈린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 강제 입소, 굶주림과 학살의 위협 속에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게 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유격부대는 러시아 사람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유대인들로 구성한 파르티잔으로, 러시아 사람 한 명을 포함한 모두가 시오니즘에 입각해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워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꿈을 지니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러시아, 폴란드, 독일 등에 살고 있던 유대인을 아쉬케나지라고 일컬으며 이디시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작품을 심지어 작품을 이디시어로 쓰기까지 했다), 작품의 주인공들, ‘게달레’를 대장으로 하는 유격대원, 이른바 게달리스트 거의 모두가 이 아쉬케나지들이다. 이들 가운데 늙고 몸이 좋지 않아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노인 한 명만 고향인 동쪽 시베리아로 귀향을 선택하고, (도중에 전사하는 몇 명을 제외하고)나머지 전부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1943년 7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 유대인에게 가장 이물감을 느끼지 않는 나라라고 하는 이태리의 밀라노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이 긴 여정과 그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520쪽이 넘는 픽션을 만들었다.
 문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예술에서 ‘아이’의 탄생은 밝은 미래를 은유한다. 이 책도 한 유대 어린 아이가 탄생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면서, 비단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국한하지 않고 전 유대인의 열린 미래를 의미하며 대단원을 맞는다. 레비는 이 작품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의 학살, 그것을 당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의 무저항적 수동성을 반박하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 30여 년 전 난민 지원센터에서 자원 봉사한 경험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비록 소련군 패잔병의 신분이지만 유대인에 의한 항독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았을까.
 내게 첫 레비였던 <주기율표>는 발상의 신선함과, 독일인과 유대인 화학자, 두 수재를 등장시켜 독특한 재미를 주었었다. 그러나 이번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읽는 내내 조금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수백만이 학살당한 유대인의 슬픈 과거는 충분히 위로받아야 하며, 학살의 가해자는 쉼 없이 반성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에 의하여 저질러진 팔레스타인에서의 원주민 핍박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어서인가? 유대인이 과거에 그리 학살당하고, 레비의 주장대로 조직을 이루어 독일군대에 저항해 전투를 벌였으며,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시오니즘 국가 건설에 참여했으면, 자신들의 아픔을 반면교사로 현지인들과 더 나은 관계를, 적어도 무력에 의한 다툼으로 귀결하지는 않는 협상을 할 수는 없었을까? 20세기 중반부터 유대인, 이스라엘 국민들은 홀로코스트의 불행한 역사를, 자신들이 주변 민족을 학살할 수 있는 면허증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난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책을 읽는 이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화학자 출신의 소설가. 이이가 독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살아생전 이스라엘에 의하여 저질러진 팔레스타인에서의 원주민 탄압에 대한 작품, 아니면 적어도 반대 입장의 표명 같은 것도 하나 이상 있어야 할 텐데, 과연 있을까? 너무 야박한 발언일 수 있으나 한 마디 하자면, 아우슈비츠 생환이 어쩌면 이이한테 눈부신 훈장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8-17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비판은 엘리 위젤 같은 극우
유대계 작가에게 걸맞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출신 프리모 레비가 인류
애를 발휘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갑자기
생겨난 유대인 국가 때문에 현지에서 겪는 고
통을 다루었다면 정말 대단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면허증 혹은 까방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우
슈비츠 생존자로서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되살려 후세에 남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레비가 열차를 타고 다시
아우슈비츠를 찾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
는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Falstaff 2018-08-17 09:28   좋아요 0 | URL
저도 레비가 팔레스타인 학살에 동조했다, 이런 의미로 쓴 건 아니고요 ^^; 주로 미국 내의 유대인처럼 홀로코스트 비즈니스에 대한 비평을 좀 했으면 훨씬 좋았을 걸, 뭐 이런 수준의 의견입니다.
레삭매냐 님이 이 독후감에 한 마디 하실 줄 알았었답니다. ^^;; 아우슈비츠 방문을 미리 레삭메냐 님 글에서 읽었거든요. 저도 시간나면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어쨌든 읽는 도중에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느낀대로 쓴 거예요. 그게 독후감이니까요.

생쥐스뜨 2021-07-02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레비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댓글을 남깁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간행된 1982년 6월 이스라엘군이 PLO의 군사거점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쁘리모 레비 역시 <이스라엘의 레바논에서의 철수요구서>에 서명을 합니다. ˝우리는 우선 민주주의자인 다음에 유대인, 이탈리아인 등 그밖의 존재여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 서명을 하게 된 하나의 이유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친이스라엘파, 반이스라엘파 모두에게 비판을 받게 되죠..(이를 둘러싼 사정은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전한‘ 미국에서 홀로코스트를 ‘비평‘하는 것과,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자신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국가 공인 미남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5
박상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제일 마지막 차례가 “시인의 말”이다. 인용한다.


 나는 늘 / 시 한 줄로 감동을 못 주기 때문에 / 소설과 동화를 여러 권 쓰고 있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도 / 소설과 동화에 안 맞는 이야기는 어찌해야 할지 늘 고민했다. / 여기 묶은 시편들은 / 소설과 동화로 쓰기엔 ‘쪼깐 거시기’했던 이야기들이다. / 음식은 그 음식에 맞는 그릇이 있다. / 간장을 접시에 담지 않고 / 국이나 밥을 간장 종지에 욱여놓지 않는다. / 그래서 / 이야기가 나를 찾아오면 / 그 이야기에 맞는 장르를 택해 이야기를 담아냈다. // 그간 이야기 속에서 살았고 / 앞으로도 이야기 속에서 살 것이다 / 산다는 건 이야기를 만나는 것 아닐까? /// 2016년 여름 무산서재(無山書齋)에서 / 박상률


 ‘시인의 말’을 진심으로 썼다면, 시 한 줄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시인일까? 이이가 쓴 책을 검색해봤더니 105권의 책이 나온다. 105권 가운데 절판이나 품절 품목 빼고 당장 살 수 있는 책이 74권. 74권 중에서 시집은 실천문학사의 <국가 공인 미남>과 지만지에서 나온 <꽃동냥치>만 보인다. 이이의 대표 시집은 <진도 아리랑>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게 기억이 나 <국가 공인 미남>을 선택해 읽었다. 정작 <진도 아리랑>은 절판이라 구할 수가 없다. 시집을 다 읽고 ‘시인의 말’을 보는 순간, 나는 초두에서처럼 이런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 한 줄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시인일까?”
 시로는 감동을 주지 못해서 소설과 동화를 무려 백 권 가까이 낸 사람. 심지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우리말로 옮겼다고 주장하는 이. 시공주니어에서 찍은 열 권짜리 <우리말로 쉽게 풀어 쓴 완역 삼국지>, “지은이 나관중, 그림 백XX, 옮긴이 박상률” 이렇게 쓰여 있으면, 역자 박상률이 당연히 나관중이 쓴 표의문자를 한글로 옮겼다는 뜻이다. 맞지? 내 상식으로는 맞다. 근데 믿지는 못하겠다. 심각한 비극이다. 독자인 나는 절대로 박상률이 나관중의 원문을 보고 직접 옥편을 찾아가며 번역했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거. (아, 정말 이이가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로 손수 번역했으면 송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대개 출판사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시집의 미덕은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이 책도 그렇다. 쓸데없이 사용한 난감한 비유법이나 기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시 읽기를 마치는 순간, 시가 주장하는 바를 즉각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뭔가를 착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시집에서 내가 읽을 수 있기 바라는 건 절대적으로 “시” 자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제목을 단 이 시집은, 말이 시집이지, 읽는 기분을 그대로 얘기하자면, 종이 위에 인쇄한 ‘트윗’들이다. 한 트윗에 올리기엔 글자 수가 좀 많은 것들을 종이에 인쇄한 것. 시인의 말대로 소설과 동화에 쓰기에는 ‘쪼깐 거시기’한 것들을 골라 시로 써서 시집으로 만들었다고? 그러면 본업은 소설가 또는 동화, 또는 청소년 문학전공 작가인데 ‘쪼깐 거시기’한 것들, 산문에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골라 시의 틀을 입혔다는 얘긴가? 그래, 내용이야 어쨌건 간에 시인이 시라고 주장하면 그건 시다. 일찍이 (좀 사납기로 이름난 미모의 인기 시인)김XX에게 누군가가 “이게 시냐?”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김XX 시인이  “그래 시다, 씨발놈아!”라 답글을 쓰려다가 열을 삭히고 그냥 메시지만 지워버렸다는 내용의, 트윗을 했단 얘기도 들었다. 그러니 이것들도 틀림없이 시일 것이다.
 가장 최근의 현대사에 보수당 출신 대통령이 둘 있었다. 이들에 대해 많은 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 두 개만 소개한다.



 변태(變態)



 애초에
 오렌지가 어린 쥐로 바뀌는 걸 보여주더니
 나중엔
 도둑 정권과 도덕 정권의 차이도 없애버렸나니!


 얼핏 보면
 영장류 닮은 동물인데
 실은
 설치류를 대표하는 동물이라네
 그래서


 지랄도 쥐랄이 되얐디야  (53쪽, 전문)




 별호



 소주가 ‘쏘주’로 톡 쏘지 않는 술자리
 어느 작가 말하길, 내 별호를 ‘이새’에서 ‘씹새’로 바꿨어!
 옆 사람들 뭔 소리인가 싶어, 왜?
 책 내면 2쇄가 어디야라고 해서 ‘이새’라고 했는데,
 이젠 10쇄를 염원해야 될 것 같아.
 그러자면 ‘씹새’라 해야지……
 모두들(옆자리 사람들까지), 하하하!


 18년 동안 독재한 자칭 불행한 군인의 18년,
 18년의 발음이 묘하게 거시기하네, ‘씹팔년!’
 그 ‘씹팔년’을 우려먹고 사는 어떤 상속인 있고……
 그 ‘씹팔년’이 좋다는 지지자도 있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52쪽, 전문)


 

 이것들이 시다. 이걸 읽고, 이게 시냐? 라고 묻지 마라. 대답은, 그래 시다, 씨발놈아! 이기 십상이니. 읽기를 끝마치자마자 한 번에 누구를 희화화한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쉬운 시. 명쾌하다. 명쾌해서 좋다. 근데 너무 명쾌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쾌하다. 내가 위에서 종이 위에 인쇄한 트윗이라고 했던 이유다. 이 씨와 박 씨를 향한 거의 욕설과 비등한 수준의 위와 같은 희화화가 이것 하나씩만이 아니다. 시집을 마칠 때까지 과장해서 퐁당퐁당, 하나 건너 한 개씩이다. 물론 과장을 좀 하자면 그렇다는 뜻. 이 씨와 박 씨가 없었으면 어떻게 시의 소재를 구할 수 있었을까 궁금할 정도. 뒤에 해설을 보면 초기 시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변했을 수 있다. 변했거나 말거나 나는 이 시들을 읽으며, 군중 속에 섞여 다중의 무리가 외치는 선동적인 욕설을 그냥 따라하는 시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이 씨 정부 초기 촛불 집회가 한창인 어느 날, 광화문 거리에 있었것다. 그때 마침 무거운 방송용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멘 사내 둘이 다가와 다짜고짜 마이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보매, 두어 달 전 책 읽기 방송 일로 만난 적이 있는 ‘구면’들이었다. 본시 카메라를 보면 살짝 ‘울렁증’이 있는 인종이라 ‘이크’ 잘못 걸렸구나 싶어 수풀 속 꿩처럼 머리만이라도 들이박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인산인해 지경이라 달아나지 못하고 카메라 낚시에 딱 걸리고 말았으니, 일수가 몹시 사나웠던 것이라 자위하고 말았다.”  (<나, 어떡해?> 부분,  44쪽)


 현직 숭의여대 문창과 교수이며, 공중파 방송에 책읽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카메라를 보면 울렁증이 생긴다는 말도 미덥지 않을뿐더러, 카메라를 보는 순간 인산인해, 사람들의 틈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건 왜 그랬을까. 이 씨 정부 초기면 과거 노 전대통령이 추진해온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일 것이다. 당시 사촌 동생이 가톨릭 농민회던가 하여간 카농에서 한 자리 했던지라 잘 기억한다. 시인이라고 이런 집회에 나가 군중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지 말라는 법, 없다. 잘 했다. 집회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건 절대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사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구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쓸 수 있는 마땅한 자리는 원고지가 아니다. 어딘가 하면, 트윗이다. 한 번 정도면 원고지도 좋겠지. ‘퐁당퐁당’이면 적당한 자리는 역시 트윗이고.
 시를 읽어가며 나는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시인이 58년 개띠. 시집을 내기 위해 최종적으로 시를 검토한 시기가 2016년. 그의 나이 쉰아홉. “팔만대장경 구석구석 다 뒤져봐도 / 누울 와(臥)자보다 더 좋은 글자 없고 / 사서삼경 위아래로 다 훑어봐도 / 먹을 식(食)자보다 더 좋은 글자 없”는 속을 알 만한 나이(<낱말 찾기> 14쪽)에 이른 시인은 전직, 현직 대통령들에게 “설치류를 대표하는 동물”이라고도 하고, “‘씹팔년’을 우려먹고 사는 어떤 상속인”이라고도 한다. 시인은 쉰아홉 살의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수는 대표적인 인텔리 계급으로 치는 것이 보통. 근데 이 시인이 아주아주 팔팔했던 20세기가 궁금한 건 왜 그렇지? 특별하게 콕 집어서,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시절엔 어떤 시를 썼을까? 시집의 제목 <국가 공인 미남>이 무슨 뜻인가 하면, 소설가 송기숙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이에게 전국으로 지명수배령이 내려 송기숙, 이문구 등의 컬러 사진이 시골 차부에도 걸려 있었는데, 송선생의 사진 아래 선생의 외모를 두고 “이 자는 호남好男형으로…” 운운했다는 거다. 국가가 송선생을 일컬어 미남이라고 했으니 국가 공인 미남 아니겠느냐는 뜻. 그것도 송선생과 이선생이 술잔을 나누며 서로 주고받던 농담에 섞여 나온 말이다. 시인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나도 알고, 시인도 알 듯, 송선생이나 이선생은 시국사범으로 몇 번이나 걸려 곤욕을 치룬 투사형에다가 타고난 반골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두 깡패한테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혹시 시인 박상률, 그는 폭압적인 전두환 집권 시절엔 찍 소리도 못하다가 세월 좋아지니 이리도 험한 욕설을 마음껏 퍼붓는 거 아닌지가 매우 궁금했다. 시가, (송기숙 선생이나 이문구 선생의 글들과는 달리) 불의에 항거하는 장부丈夫의 노래라고 읽히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뭐 하긴, 특정한 역할을 했건 안 했건 정부에 대고 욕하는 건 민주시민의 권리이기는 하다. 나이 든 중늙은이가 입이 좀 험한 게 ‘쥐랄’이긴 하지만.
 시인의 젊은 시절이 궁금했던 이유. 시인이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제발 아니길 바라는 충정 때문이라고 치자. 그렇게 생각해주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과 북 1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아마 조정래의 <태백산맥> 초판이 나오기도 전이었을 거다. 정확하게 몇 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해 6월의 한 월간 문학잡지 특집으로 한국의 전쟁소설을 다루었다. 당시 난 한 방 맞은 거 같았다. 1920년대에서 40년대 초반에 태어난 작가들이 숱하게 한국전쟁을 소재로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전체를 구성해서, 따져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정의를 내리는 작품을 읽은 적이 없어서였다. 지금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평론가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한국 최고의 전쟁소설을 선택해서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특집이었던 것 같다. 누구는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꼽았고, 어떤 이는 유명한 <광장>을 들었는데, 누군가가 홍성원의 <남과 북>을 지목하며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전쟁 전체를 아우르는 대작이라 이야기할 때부터 <남과 북>에 관심을 두었었다. 잡지를 읽고 곧바로 찾아간 도서관 개가실에서 이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기억하기로 무척 두꺼운 양장본 몇 권으로 구성된 것에,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단 분량에 쫄아서, 일독을 다음으로 미루었었다. 그리고는 당연히, 다른 재미난 책들도 얼마든지 많았기 때문에, 제목만 기억한 채로 무한정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새 머리엔 흰 눈이 쌓였고, 눈은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세월, 정말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닌 세월을 쓰며 정작 내가 읽은 <남과 북>은 엘리자베스 클래그헌 개스켈이 빅토리아 시대에 쓴 영국 소설이었으니 생각해도 좀 우습고 약간 쪽팔리기도 했다. 그래 당시에 늦게나마 홍성원의 <남과 북>을 읽어보려 했지만 책은 품절이 되고 말았다. 이제 늦게나마 초판이 아니라 2000년에 작가가 대폭 고쳐 쓴 개정 중판 <남과 북>을 헌책방에서 찾아 읽었다. 만시지탄이 있기는 하나 아예 읽지 않은 것에 비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모두 2,500쪽이 넘는 대하드라마. 길기만 해서 “대하”란 접두사를 붙여주지 않는다. 이 타이틀을 얻으려면 한 가지 큰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조망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관통해 그려내야 한다. 이 책 덕분에 즐겁고도 살처럼 빠른 한 주일을 보냈다. 작가는 재판을 내면서, 처음 출간할 1977년 당시에는 엄혹한 파시즘, 유신체제의 박정희 시대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왜곡할 수밖에 없었고, 상당부분 편향된 시각으로 소설을 써야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틀림없이 이 작품을 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1970년대 한국문학, 특히 소설 쪽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분야가 이른바 호스테스 소설이란 건, 이미 세월이 너무 흘러 기억하는 독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문화적 암흑시대. 무수한 유행가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가 됐던 시기. 시인, 작가들이 쓸 수 있었던 소재는 사실 거의 없었다. 착한 마음씨의 아가씨가 가족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술자리 접대부의 길을 선택해 자기 인생 종치는 이야기 말고는. 이런 시대에 한국전쟁에 관한 소설을 썼으니 국군은 무조건 선하고, 인민군은 악의 화신으로 그려야만 했으리라. 그러나 작가가 1937년생이니 열네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치룬 전쟁의 여러 모습은, 같은 시대를 경험한 조금 윗세대의 경험담까지 보태 다양한 진실을 알고 있었을 테다. 실제로 주인공들 가운데 한 그룹인 우씨(禹氏) 가문은 여지없이 작가 홍성원의 고향인 수원 부근의 한 농촌마을로 보이기도 한다.
 다시 세월을 좀 거슬러 월간 문예지의 전쟁소설을 인용, 기억하면, 잡지의 편집인이 왜 한국에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나 앙드레 말로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는가, 라고 탄식했던 것 같다. 물론 비단 이들 뿐이랴. 이제 늦게나마 책을 좀 읽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전쟁을 소재로 해서 무수한 작품을 만들었고,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동시에 적어도 문제의 그 월간 문예지가 나왔을 무렵까지는 대한민국에선 아예 기본적으로 전쟁소설이나 반전문학을 움틔울 여건이 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지금이야 자연스럽게 스스로 양심의 자유라는 범위에서 작가들이 거의 모든 분야를 소재로 글을 쓰지만, 박정희의 유신보다 더 살벌한 파시스트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지배”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의 ‘전쟁의 공포’를 강제로 주입시켜왔기 때문에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자신의 직접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대로 전쟁의 추악한 면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2000년에 개작해 다시 나온 <남과 북>에서 제일 먼저 돋보이는 것은 주인공들이 남한 사람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이북 사람들도 주인공의 일원으로 등장하여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목숨을 거는 장면이었다. 여인네들을 집단 윤간 혹은 그냥 능욕하는 군대는 물론 우연이겠지만 국군과 미군으로 추정되는 외국군이다. 중공 오랑캐는 꽹과리를 두드리며 인해전술로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온 야만인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 전 중국인민들의 전적인 비호와 도움을 받으며 혁명에 성공한 인민의 군대답게 통치지역에서 추호의 약탈과 학살을 허락하지 않은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군대로 등장한다. 수만리를 걸어 대륙을 관통했던 중국 붉은 군대의 대장정을 떠올리면 정말로 그랬을 것 같다. 중공군 고위 장교는 이북의 인텔리 장교와 함께 이동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늙은이들을 제외한 인민들은 모두 인민군들의 남하를 피해 도주하느라 정복지마다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을 보며, 해방전쟁의 실패를 지적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미국의 언론사 특파원과 정보기관에 소속한 영관급 장교를 등장시켜 한국전쟁이 당시 세계 정치판에 미친 영향, 특히 미국의 국내 정치가 어떻게 한국전쟁을 변질시키는지 다른 어떤 작품보다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건 내 오래된 의구심, 어떻게 휴전선이 전쟁 전의 38선과 거의 유사하게 그어졌는지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힌트를 준다. 이상하지 않은가. 전선이 처음엔 남쪽으로 초음속의 속도로 내려가다가 순식간에 또 비슷한 속도로 압록강변까지 치닫는데, 다시 한 번 순식간에 서울이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비슷한 전쟁. 그러다가 그 후 2년 4~5개월동안 고착되는 전선. 미친 듯이 내려오거나 올라가지는 못했을지언정 어찌 그리 힘의 균형이 잡혀 38선 부근에 그대로 정체할 수 있었을까. 세계 전쟁사에 이런 경우가 있었나 싶다. 오래된 궁금증이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풀렸다. 그리고 그걸 이 독후감을 읽는 분께 굳이 가르쳐드리고 싶지 않다. 지금은 품절이지만 책이 시장에 나오면 직접 읽어 아시라는 뜻에서.
 레마르크나 말로의 작품을 그래도 제법 읽어봤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헤밍웨이, 조지프 헬러를 포함한 그들과 홍성원을 비교하자면, 서양 작가들의 경우, 전쟁이나 혁명의 규모가 한국전쟁보다 월등하게 커서 그런지 소설의 시공간적 무대인 전쟁, 혁명의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한 개인이나 사건에 국한한 작품을 쓴 반면, 홍성원은 한국전쟁 전체를 조망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 전쟁의 의의와 전쟁을 치룬 한국, 한국인들의 특징과 성격을 확실한 톤으로 말하고 있는 점에서 오히려 그들의 작품보다 더 윗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왜 2000년 판 홍성원의 <남과 북>이 품절일까. 어느새 시절이 한국전쟁에 관해 논의하는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세월로 변했을까? 이건 확실하게 하자. 한국전쟁과 전쟁의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을 통치의 한 방편으로 삼는 일을 반대할지언정, 지난 세기 한가운데 벌어진 불행한 전쟁의 진정한 모습을 정확하게 진단해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이런 의미에서 홍성원의 기념비적인 작품 <남과 북>은 언제나 품절 상태에 있으면 안 될 우리의 자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