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시를 읽은 연륜이 짧아,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라 검색을 해봤다. 위키백과를 보면, 1966년 생으로 경남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묘지 관리 일을 하다가 1999년부터 서울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다 쫄딱 망했다고 한다. “채널 예스”에 시인 김도언이 이이를 만난 인터뷰가 있는데, 벤처 기업이 화학 실험실로 숱한 화학실험에 미쳐 있었다가, 드디어 ‘실패하는데 성공’하고 만다. 그러다 완전히 가산을 탕진한 2013년 5월, 20대 시절을 지냈으며 처가가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 장인장모를 도와 마산 어시장의 잡부로 새벽 세 시부터 하루 14시간 동안 생선 나르는 고된 일과를 계속했다고 한다. 채널 예스는 사업하기 전에 신문사 기자, 시청 공보과 소속 공무원의 이력을 갖고 있다고 한 반면, 위키에선 묘지 관리를 했다는데, 모르겠다, 묘지관리가 시청 공보과 공무원의 일인지. 하여간 다양한 이력의 시인인 건 확실하다. 근데 채널 예스의 인터뷰가 너무 길고 장황해서 다 읽으려면 날을 샐 거 같아 여기까지 읽고 말았다. 시인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도 시를 제대로, 내 식대로 맛보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핑계를 대고.
 시집은 2016년 8월에 나왔다. 시인이 만 오십 세 되는 해. 물론 시집에 실린 모든 시는 50세 전에 썼겠지만 시인이 발표하기로 결정했으며, 발표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퇴고한 시기가 그의 나이 만 50이란 얘기. 이미 한 시절엔 잘 나가는 벤처 기업에서 각종 물질을 서로 섞어 인간생활에 도움이 될, 사람살이에 도움이 되는 대신 자기한테는 떼돈을 벌게 해줄 신 물질을 발견/발명하기 위해 미쳐있었기도 했고, 정말로 신비의 연금술 공식이 완성되려는 찰라, 투자자와의 의견대립으로 거덜이 나기도 했으며, 눈물을 흩뿌리며 마산 어시장에서 막일을 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을 담았을 수밖에 없었을 터.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내가 먼저 주목했던 건 첫 번째 시였다. 당연하지. 시집을 열자마자 나오는 시니까. 한 번 읽어보자.



 납 Pb



 단단한 네 마음일지라도
 금속피로가 오지 않는 이유는
 늘 피로한 빛을 하고 있어서 그래.
 계속되는 슬픔은 피로해지지 않아.
 등등함마저 버리고
 네가 이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의 추처럼
 떨어져 있는걸.
 어느 날 낚싯바늘을 매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라도
 숲 그늘에 드러누운 눈밭처럼
 넌 너대로 거기 있으렴.
 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
 더 큰 빛이야.   (전문)



 여기서 ‘금속피로’라는 건, 금속재료를 구부렸다 폈다를 자주 가하면 연성延性이 점차 감소해서 결국 잘라지는(파괴되는)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납. 하면 생각나는 건? 내 경우엔 ‘죽음.’ 약실에서 공이가 뇌관을 때리면 화약이 폭발하면서 조그만 납덩이를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한다. 이 납덩이가 사람의 몸에 박히거나 몸을 관통하면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남긴다. 총알이 무쇠로 만든 종鍾에 부딪혀 확 퍼져 표면에 들러붙은 모양을 마루야마 겐지는 “납장미”라고 서정적으로 묘사했으나, 죽음의 냄새를 짙게 내포하는 장미였다. 시에서는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달아놓은 낚시 추를 납의 대표선수로 선발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흔히 사람한테 미움 받고 멀리하고 싶게 만드는 금속인 납을 시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올린 건, 혹시 시인이 경제적으로 거덜이 나고, 과거의 사장님이었던 등단시인이 생선 상자를 옮기는 일을 하며, 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권토중래의 뜻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넌 그대로 있으렴. / 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 / 더 큰 빛이야.”라고.
 전반적으로 시집엔 제목처럼 화학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심지어 <화학적 거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좀 맹랑하다.



 화학적 거세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이 텍스트의 목적이다.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향남성 호르몬제) 화학식 구조


 한 무제가 사마천에게 물었다.
 목이 잘릴래,
 돈을 낼래,
 거시기를 잘릴래?


 사마천이 대답했다.
 …… 거시기.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굴욕을 참았다.
 명예로운 죽음은, 웃기는 얘기라며.  (부분)



 사마천의 궁형은 그가 <사기 서>에 들은 명문장 “보임소경서補任小卿書”에서 참담한 심정을 직접 토로하고 있는 바, 같은 서생으로 이렇게 가볍게 노래하기는 무리가 있는 듯하지만, 시대가 21세기, 존재의 가벼움이야말로 이젠 시대의 특징이 되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가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것 역시 앞에 인용한 <납 Pb>와 유사하다. 사업의 폭망으로 가산 탕진, 처갓집에 빌붙어 사는 처지를 빗댄 건 아닐까.
 이리 삶을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로 이야기하는 건 참신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인처럼 잘 나가다가 완전 폭망한 사람들의 노래가 독자들과의 공명을 이루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아니, 못한다는 것. 만일 이런 시를, 시인의 상황을 모르는 채 그냥 읽어도 공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지뢰가 깔려있다. 아니, 깔려있을 수 있다. 내가 뭐 시를 안다고 단정을 하겠는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지.
 그가 경험한 극과 극의 상황에다 너무 과한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게 아니라면, 너무 의도적으로 자신, 또는 인류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주려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뭐라?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맞다. 당신 말이.
 마지막으로, 마지막 작품으로 실린 시집의 표제작을 감상하며 독후감을 끝낼까 한다.



 밤의 화학식



 밤이 온다. 밤이 어둠을 받아 온다.
 당신의 밤엔 무엇이 많은가.
 그러니 모든 이들이여, 대답하라.
 살아 있어야 한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전문)



 그림은 시인이 구상한 도식을 화가 장우희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림을 보면, 밤이란 개체에 탄소(C), 질소(N), 산소(O), 수소(H) 화합물이 아르곤(Ar) 환경 안에서 서로 유기적 결합을 하고 있다. 아르곤은 불활성不活性 원소로 다른 물질과 여간해 결합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탄소(C)다. 유기결합체치고 탄소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 진짜로 탄소 하나만 결합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 화학구조식처럼 탄소를 생략하고 그린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질소가 많은 이유도 모르겠고. 그런 거, 독자가 일일이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한 마디로,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이 잠겨있는 밤이 엉망진창인 미친 지랄이란 뜻. 그래서 여기서 나가겠다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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