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PENDOLO DI FOUCAULT
 by UMBERTO ECO

 

Copyright (C) 1988 Gruppo Editoriale Fabbri,
 Bompiani, Sonzogno, Etas S.p.A.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C) 1990 by The Open Books Co.

 

 <푸코의 진자> 첫 장을 넘기면 위와 같이 쓰여 있다. “Fabbri Editori"라는 회사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지은 <푸코의 진자>의 판권을 사 와서, 대한민국의 ”The Open Books Co." 즉 출판사 열린책들이 한국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1,135 쪽까지 책을 다 읽으면 역자 이윤기가 쓴 “옮긴이의 말”이 나오는데 자신이 번역한 원서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책을 번역했다는 말을 역자가 왜 하지 않는지 궁금해서 내가 읽은 이윤기의 번역서를 한 번 뒤져봤다.

 

 

 

 

 

 그리스 사람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이태리 사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이번에 읽은 <푸코의 진자>, 서양 책을 읽기 위한 기초체력을 쌓으려면 피할 수 없는 책, 로마 사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리고 유고 사람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 거참 신기하다. 고故 이 선생이 만 30세에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초빙 연구원으로 5년 세월을 보내, 이이가 영어를 잘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읽은 번역서 가운데 영미 문화권의 작가는 한 명도 없다. 왜 그랬을까. 확실하지 않으면서 이유를 추리하지는 말자. 고인의 이름에 누가 될지도 모르니까. 일찍이 어떤 책을 번역했다고 전혀 밝히지도 않았고, 어떤 회사에 지재권 수수료를 지불하는지 알 수 없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번과 2번, <변신 이야기> 후기에서 선생은 영어 본을 기본으로 하되 일어 본을 참고로 했다고 밝힌 바 있으니,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인 1947년생인데 일본어까지 잘 했다면 언어 습득에 관해서 남다른 수재가 있었나보다. 사실 이이가 쓴 한국어 소설도 문장이 매끄럽고 이해하기 쉬워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이가 <푸코의 진자>나 <장미의 이름>을 이태리어 원서를 보고 직역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역자의 말을 들어보면 <장미의 이름>은 일본보다 빨리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럼 이태리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중역한 속도가 일본의 이태리 문학자 다니구치 이사무 교수보다 더 빨랐다는 뜻. 미국, 프랑스, 독일 이렇게 삼국에서는 에코를 전담해 번역하는 에코 전문 번역자가 있으며, 이들이 고령 등의 사유로 은퇴를 하면 후임자는 반드시 오디션을 통해 뽑는 걸 원칙으로 한단다. 에코 전문가들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작품들을 번역하기 위해 수시로 원작자와 의견을 교환해가며 신중하게 번역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런 복잡하고 지루한 번역 과정을 거쳐 나온 <장미의 이름> 영어 본을 다시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이윤기의 역서가, 직역을 시도한 일본의 책보다도 빨리 나왔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왜 <장미의 이름> 타령이냐 하면, 내가 읽은 <푸코의 진자>가 비록 1995년 개정 번역한 것의 후속 판일지언정 둘이 비슷한 수준의 번역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서이다. 배달민족의 독특한 특징을 살려, 빨리빨리, 후딱 번역해 시장에 내놓았을까? 아니면 역자가 이방의 문자, 즉 영어로 번역한 문학을 이해하여 한국말로 다시 번역, 전달하는 수준이 이태리 문학 전공한 일본 교수보다 한 수 위여서 순식간에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원래 언어에 수재가 있는 인물인 듯하니 하는 말이다. 하여간 둘 가운데 하나일 터. 결론은 내지 않겠다. 혹시 모른다. 이태리어를 한국어로 직역했는지도(정말?).
 사실 <장미의 이름>도 그렇지만 <푸코의 진자> 역시 내용은 간단하다. 이틀 전 선배 박사 야코포 벨보의 전화를 받은 화자 나, 카소봉. 벨보는 파리의 카페 정도로 유추할 수 있는 번잡한 곳에서 전화를 했는데, 아주 급박한 상황이며 당시만 해도 첨단 기록장치인 PC를 열어보라는 말을 남기고는 비명과 함께 전화가 끊기고 만다. 벨보의 집을 찾아가 어려움 끝에 패스워드를 유추해 PC를 연 카소봉이 벨보가 사실 그동안 함께 연구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 없는 내용인 비밀기사단, 연금술 등에 관한 정보, 벨보의 문학적 잡문 등을 다시 읽어보고 급박하게 파리의 국립 과학연구원에 방문해,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제목은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원에 설치되어 있는 장치로 19세기 중반에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67미터짜리 진동 추를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문제인가 하면, 이리 간단한 내용이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진짜 직업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기호학자라서, 벨보,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디오탈레비, 그리고 화자 카소봉, 세 명과 이들의 주위에 포진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성배를 둘러싼 기사단의 비의를 파헤치는데 온갖 현학적인 주제와 변주를 난사하고 있다는 것. 사실 스토리 라인만 따라가기 위해서는 넉넉잡고 처음부터 50쪽과 뒤에서 200쪽, 합해 250쪽만 읽어도 눈앞이 훤하게 밝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리 쉽게 읽으려면 뭐 하러 에코를 읽겠는가. 당신이 에코를 선택한 순간, 일종의 정신적 고문, 인내심 실험, 감각의 오리무중을 견디겠다는 전제조건이 들어 있지 않았겠는가.
 <푸코의 진자>에서도 에코는 얄짤없이 독자들을 미궁으로 초대한다. 게다가 독자들은 아리아드네의 실 꾸러미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냥 에코가 주장하는 것을 읽고, 기억하고, 그러다가 잊으면 다시 앞으로 넘겨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있었더라, 확인하고, 그러면서 머릿속에 쥐나고, 에잇 이따위 하나 읽으며 메모까지 한 번 해봐야 할까, 마음도 먹다가 치워버리고, 진도 안 나가는 페이지를 함부로 넘기기도 하는 득도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아니라고? 읽어보시면 안다.
 나는 지금 듣기에 따라 조금 엉뚱한 주장을 하고 싶다. 돌아간 분에겐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푸코의 진자>는 <장미의 이름>과 더불어 다시 번역해야 한다고. 역자 이윤기가 “역자의 말”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 “역자는 학문으로서의 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힘에 부쳤기 때문”에 “에코 문학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기호>, <코드>, <포스트모더니즘>, <인터텍스추얼리티(相互典據性)>, <개방성> 같은 개념을 가지고 이 소설을 해설하기에 역자의 힘은 부쳐도 많이 부”치기 때문이다. 독후감의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소설가 이윤기의 문장도 좋아한다. 그리고 원서를 읽지 못하는 일반 독자로서의 나는 또한 영어를 번역한 이윤기의 한국어 문장도 나쁘지 않게 읽는다. 그러나 스스로의 독백처럼 원작자의 뜻, 특히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에코 문학의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힘이 많이 부치는 역자의 결과물을, 참으로 아쉽게도 선뜻 인정하게 되지 않는다. 직접 읽어보면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게) 무려 근 900쪽을 할애해 설명해놓은 각 기사단, 프리메이슨, 유대교 등과 기독교의 연관성, 오리엔트 문화의 영향, 흑마법, 악마주의, 연금술, 비의 등을 설명할 때 역자도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가 마구 쏟아지기 때문에, 이윤기의 문장이 비록 쉽고 잘 읽히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비전문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한국말에서 좀 어렵거나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는 일이 있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혹시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영어 본에 의한 중역이 나와 절찬리에 팔리고 있는데도, 일본에선 그때까지 번역작업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푸코의 진자>를 읽으면 그동안 경험했던 세 편의 에코가 다 생각난다. 중세 기독교 내부에서의 이단 논쟁에서 당연히 <장미의 이름>을, 저 높은 기둥 위로 올라가 수도에 전념했던 주상柱上수도사는 <바우돌리노>를, 벨보가 자란 시골집에서 찾은 자잘한 옛 시절의 기념품에서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말씀.
 재미있는 책을 나는 고 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읽었으나, 내 아이들은 이태리 문학을 전공한 이의 참신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역자가 영어책을 번역한 것이라면 제일 앞에 써놓은 “Copyright (C) 1988 Gruppo Editoriale Fabbri,  Bompiani, Sonzogno, Etas S.p.A.”가 무슨 뻘짓인지 모르겠다. 영어책 번역하고도 이태리 회사 Fabbri Editori에 판매 권수에 따라 지적재산권에 의한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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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코의 책들은 컬렉션하면서도 절대 읽지
않는 깡다구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장미의 이름>도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항상 말로만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들의 물결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요...

언급해 주신 대로, 이태리 원서에서 다시 번역
하는 데 찬성합니다. 다만 여러 방면에 다양한
지식을 갖추신 분이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죠.

Falstaff 2018-08-23 11:46   좋아요 0 | URL
요즘엔 이태리 문학을 전공한 분들도 많잖아요.
저도 그분들이 재번역한 책들이 나오면 다시 읽어볼 용의가 있습니다.
진짜로,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유재원이란 분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직역해서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당장 보관함에 집어 넣었습니다. 올해 안에 읽을 예정입니다.
지나가는 얘긴데, 이윤기 쌤이 그랬다면서요. ^^
˝나 죽기 전엔 <그리스인 조르바> 직역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