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스물여덟 살에 쓴 아체베가 연이어 힘을 줘 서른 살에 <더 이상 평안은 없다>를 쓰더니 서른네 살에 <신의 화살>로 이른바 아프리카 삼부작을 완성한다. 이 세 권의 책 전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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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체베는 피 식민을 경험한 제3세계 출신 대표선수로 전 지구의 문학 판에 식민, 반식민 논쟁의 불을 붙인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그나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관심을 두었다고 여겨지고 있던 조지프 콘래드조차 아체베의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벼른 붓 끝에 의해 거덜이 나고 만다. <암흑의 핵심>, <로드 짐> 같은 것들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식민의식을 기반으로 한 인종차별적 작품이라고 일갈을 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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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적으로 이런 영향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체베의 아프리카 삼부작이 나오고 약 10여년이 지난 후에 백낙청이 그의 명저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서 피 식민 문학으로 아체베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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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몇 번의 중판을 거쳐 오른 쪽 그림의 두 권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게 내가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의, 치누아 아체베라는 작가에 관해 처음으로 들은 정보였다. 78년에 나온 백낙청의 저서가 지금도 여전히 책꽂이에 꽂혀 있지만 그거 꺼내 확인하려면 푸닥거리를 한 번 해야 할 만큼 깊숙이 묻혀있어 위에서 한 발언이 정확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서른여섯 살, 1966년에 또 다른 장편 <민중의 사람>을 쓴 후에는 단편소설과, 시, 아동문학만 집필하다가 1987년에 ‘마지막 장편소설’로 발간한 책이 바로 <사바나의 개미 언덕>이란다.
아프리카 삼부작에서는 피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식민모국인 백인들에 의해 와해되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과, 영혼의 피폐를 원주민의 삶의 모습과 함께 잘 그려냈다면,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선 식민 상태가 끝나고 식민모국이 임의대로 그어놓은 경계선에 따라 복잡하게 구성된 서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캉안’에서 벌어지는 식민 후유증, 끊임없이 벌어지는 군사 쿠데타와 장기집권, 독재, 부정부패, 경찰국가화 경향에 대해, 그리고 결론으로 아프리카가 나가야 할 화해의 궁극적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읽어본 한계 안에서 말하자면 그의 역작 아프리카 삼부작과 정말로 잘 어울리는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얘기해 우리나라 역시 경험한 식민통치 후 반식민(半植民) 상태의 제3세계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생한 독재와 군사 쿠데타 속 지식인들의 양심적 저항의 모습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씀. 식민 시대의 반식민(反植民) 주제가 식민 후의 반식민(半植民)으로 넘어가는 건 전 지구적으로 자연스럽다는 뜻. 유사한 작품으로 응구기와 티옹오의 <피의 꽃잎들>과 <십자가 위의 악마>, 에스키아 음파렐레의 <2번가에서>,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일련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예를 들려면 수도 없이 많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70년대 호스티스 소설 이후 무더기로 쏟아진 작품들도 비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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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다시 언급을 하자면, 식민에 반대하는 반(反)식민 문학을 거친 아체베가 독립 후 절반쯤 식민 상태인 반(半)식민을 넘어 진정한 아프리카의 독립을 모색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이후 나이지리아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가 한 명 혜성같이 등장하는데, 바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한 흥미진진한 <아메리카나>의 해설에서,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란 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이이의 비빌 언덕은, 이미 대영제국에서 아메리카로 넘어간 다음이다. 21세기로 넘어온 아프리카의 작가들은 이제는 피부색과 빈부의 격차, 지역, 그리고 무엇보다 성적 차별에서의 해방을 외치고 있다. 이들 제3 세계로의 아프리카 문학은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알라 알와스아니를 필두로 하는 사하라 이북 지역의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쓰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나는 민음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인간이다. 우연히 그 회사 책을 많이 인용하게 됐다.)
어떻게 쓰다 보니 건방지게 아는 척을 너무 많이 한 거 같다. 여태까지 쓴 거 그냥 이것저것 읽으면서 저절로 품게 된 ‘개똥철학’, 아니, '개똥문학' 범주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 괜히 기억하실 필요 없다. 이제 책의 스토리로 넘어가보자.
해방 후 독립한 서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캉안에 쿠데타로 집권해 대통령 자리를 꿰찬 '샘'이란 작자가 이웃국가들의 절대 독재자들, 아민, 보카사, 무가베 등한테 배운 바가 있어 자기도 평생 대통령을 해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국민투표를 하게 됐는데, 남부 열대우림 지역은 별 거 없는데, 북쪽 건조한 사바나 지역이 조금 문제라, 투표를 앞두고 우물 파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네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지금 우두머리가 영원히 통치할 수 있도록 투표하는 데 동의하라고 요구했지만 (우두머리 자신은 영원히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단 말이요.) 지역 대표 촌로는 그 말에 속임수가 있다는 걸 깨닫고 이리 묻는다.
“누가 우두머리에 강요합니까?”
“국민들이요.”
“국민이라면 우리를 뜻하나요?”
대답을 못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만 있던 낯선 이를 보고 간계가 있다는 걸 안 촌로는 그냥 고맙다는 말만 전해 그들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두머리는 양식 있는 사람이라 영원히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소. 심지어 남자가 여자와 결혼할 때에도 영원히 결혼하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 둘 중 한 명이 죽을 것이고 그러면 결혼 관계는 끝나지요.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과 난 동의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216~217쪽 요약해 다시 씀.)
때는 바야흐로 전 아프리카의 사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초기. 이젠 문제의 사바나 지역 아바존에는 도무지 건기가 끝나지 않는 시절을 맞는다. 때 맞춰 정부는 여태까지 시공하고 있던 우물 굴착을 중도에서 뚝 끊어버려 아바존 지역에선 농사나 목축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상태에 이른다. 원래는 이 지역을 방문해 표를 좀 얻어 볼까 했던 대통령도 관계자의 보고를 듣고 방문을 취소해버린다. 당장 우물을 파야 하는 아바존 사람들은, 힘 있는 대통령이 오지 않겠다고 하니 당연히 약자인 지역민들이 우두머리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법이라 대표단 여섯 명을 수도로 파견을 하는데,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거다. 이 파견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에 택시 운전수, 마약공급자, 강도, 깡패, 좀도둑, 실업자, 양아치 등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수 천 명의 아바존 출신자들이 모두 모여 대통령궁 앞에서 알현을 부탁하는 걸 보고, 이들이 지금 나더러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건가, 겁을 덜컥 먹은 대통령이, 이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며, 대통령과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한 동기동창이었고 심지어 영국 유학도 함께한 현재 신문사 편집장으로, 매사에 대통령의 의견을 거스르는 사설만 써재끼는 아켐을 납치, 숙청해버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원래부터 가상 국가 캉안에 형제처럼 친한 삼총사가 있었으니, 이들이 나중에 자라 공부 못했던 순서로, 샘은 대통령이 되고, 크리스는 공보처 장관이 됐으며, 하켐이 신문사 편집장 자리에 머물렀는데, 하켐이 야밤에 수갑을 찬 채 끌려가 분명 고문을 받고 죽었다는 걸 알고, 이미 자신에 대한 샘의 우정도 종을 쳤다는 것을 인식한 크리스는, 이제 완전한 독재자가 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대통령 샘을 피해 잠수를 타기로 결정한다. 자 어떻게 됐을까. 원래부터 스토리 전부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내가 여기서 크리스가 체포되어 죽기 바로 전에 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화해하면서 평생 자기가 죽인 하켐을 애도하며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게 사실일까, 거짓말일까.
이 책의 스토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숨겼다. 하나는 아바존의 촌로가 수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경구. 표범과 거북이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 아무리 졸라도 이 두 가지는, 안 알려줌. 좋은 책이니 직접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