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의 밀교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김혜란 옮김 / 연극과인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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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희곡. 몰리에르의 마지막 11년을 담았다. 몰리에르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타르튀프>. 지금부터 350년 전에 쓰인 희곡으로 기존 귀족, 성직자 계급을 사정없이 비꼬아버린 유쾌하고 발랄한 작품이며, 원 제목이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이다. 그러면 불가코프의 제목에 나오는 위선자가 누구들인지 대강 짐작이 갈 것.
 그런데. 불가코프를 읽는 독자들에게 숨어있는 꽤 큰 함정이 무엇인가 하면, 불가코프의 작품 속에는 알게 모르게 당시 소비에트의 독재자 스탈린 체제에 대한 은밀한 저항이 작품 속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실제로 불가코프는 스탈린이 집권한 다음에 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을 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작품 활동만 허락을 받았던 불운한 작가 그룹에 포함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런 오해도 한 편으로는 정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불가코프가 자신이 처한 체제를 풍자했을 것이라는 독자들의 기대와 탐색이 정작 불가코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위선자들의 밀교>를 읽어가면서 등장하는 루이 14세, 귀족, 성직자, 근위대장 등을 나도 모르게 스탈린과 고위급 정치인, 비밀경찰로 대입하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이 작품은 1930년에 소비에트 레퍼토리 총국에 의하여 공연불가 판정을 받은 후 1931년에 제목을 <몰리에르>로 바꿔 공연 허가를 얻어낸다. 이후 무려 5년이 넘는 세월을 연습과 리허설에 바쳐 1936년에 이르러 무대에 올렸으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루이 14세 시대에서 벌어진 재판 없는 폭정을 유사하게 풍자했다는 이유로 단 일곱 번의 공연 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스탈린 시대에 대한 약간의 저항을 포함한 풍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자 했던 것이 정당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20세기 중반이면(그것도 자유진영의 국민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21세기까지 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작품의 텍스트에 나오는 그대로를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건 350년 전에 쓰인 <타르튀프>를 읽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허리가 부러지게 웃을 필요도 없고, 웃기지도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1662년 초에 마흔 살, 당시 기준으로 하면 늙은 몰리에르가 주책이 났는지 여배우 아르망드 베자르라는 이름의 여배우를 임신시키고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몰리에르가 원래 부르주아 출신이라 첫사랑이자 연상의 여배우였던 마들렌 베자르와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바 있어, 마들렌의 동생 아르망드와의 결혼에 작은 뒷소문이 있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데, 위키피디아가 정확한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마들렌과 아르망드가 자매 사이가 아니라 사실은 모녀 사이라는 풍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가코프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몰리에르의 아내 아르망드가, 첫사랑 마들렌과 몰리에르 사이에서 출생한 사생아일 수 있다고, 당사자 마들렌의 입을 통해 발언한다. 마들렌이 예전에 동시에 두 남자와 함께 산 적이 있는데 이때 한 명이 몰리에르이며, 임신을 해서 아르망드를 낳은 건 사실이나 아이가 누구의 딸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죽음을 앞두고 파리의 대주교 샤롱에게 고백하는 장면. 샤롱은 <타르튀프>에서 성직자를 모독한 몰리에르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터, 아르망드가 틀림없이 몰리에르의 아내이자 딸이라고 루이 14세에게 고변을 해 궁정극장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극장에서 거의 마지막 작품인 <상상병 환자>을 공연하다가 무대에서 죽는 것으로 처리한다. 실제로 몰리에르가 공연장에서 쓰러진 것은 맞지만 집으로 옮겨져 침상 위에서 죽음을 맞는데 그러면 재미가 덜 하니까 독자가 이해하자.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빼고 초장과 막장만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정작 작품 <위선자들의 밀교>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연출가 스따니슬라프스끼의 연출 노트다. 연극을 연습하고 리허설을 하면서 공연하는 배우, 극작가인 불가코프 등과 의견을 나눈 속기록을 옮긴 것으로 65쪽에 이른다. 서양 사람들은 원고의 분량을 이야기할 때 단어 수를 세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단어 수로 하자면 틀림없이 본문인 희곡보다 더 많은 분량이다. 이 재미있는 노트에서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천재 가운데 한 명인 몰리에르에게 더 극적인 장면을 부여하지 않는 것에 유감을 표명한 반면, 불가코프는 몰리에르 역시 보통의 한 사람으로 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타르튀프>를 보면, 작품 내내 귀족과 성직자들의 비도덕적이고 부패한 측면을 신랄하게 야유하고 있지만, 극작가 자신도 결국은 루이 14세의 극장에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 난데없이 “국왕폐하 만세”로 아첨할 수밖에 없던 생활인 아니었나. 뭐 이런 담화보다, 더 인상 깊게 받은 느낌은, 독자 또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냥 돈 내고 에어컨이 잘 작동되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지만,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 등은 한 권의 책, 한 편의 연극을 위해 그렇게나 진지하게 궁리하고, 토론하고, 실제로 연기해보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맞다. 한 편의 좋은 작품이 어떤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부록 격인 ‘연출 노트’를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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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1 펭귄클래식 46
브램 스토커 지음, 박종윤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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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엔 역시 공포물.
 난 두 편의 <드라큘라> 영화를 보았다. 하나는 1975년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테렌스 피셔 감독, 크리스토퍼 리가 타이틀 롤을 한 것으로 짐작하는데,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큘라를 연기한 것이 몇 편 되는 모양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마차 바퀴살로 드라큘라의 심장을 찔러 죽이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당시엔 또 공포영화 유행이 시작되던 무렵이어서 이미 클래식 급으로 여겨지는 <엑소시스트>, 몇 년 후에 <오멘> 같은 영화가 줄줄이 개봉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진정한 클래식 공포영화는 도금봉 여사가 열연하는 <월하의 공동묘지>였지만.
 그 후 20세기 말에 드디어 내 기억 속에 남은 최고의 <드라큘라>가 세상에 나오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을 하고 게리 올드만이 타이틀 롤을 하는 영화로 이건 엉뚱하게도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모 극장에서 마누라 손잡고 봤다. 가히 최고의 <드라큘라>. 드라큘라를 넘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공포영화 안에서는 단연 명작 중의 명작이다.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루마니아와 헝가리 근처에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외진 성에 은거하던 드라큘라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하는 곳이 영국의 런던이란 설정이? 아, 당연하긴 하다. 원작자 브램 스토커가 고딕 문학의 탄생지이자 성지랄 수 있는 잉글랜드 출신이니 무대를 자기가 익숙한 곳으로 설정했겠지. 근데 드라큘라 백작 입장에서 보면 굳이 자신의 안식처인 관과 트란실바니아의 흙을 싣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거쳐 영국까지 보내는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육지를 따라 관과 흙을 곳곳에 보관하며 조금씩 밤의 제국을 확장해도 저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해 온 유럽을 관통한 다음, 다시 터키, 아라비아, 인도, 중국을 거쳐 캄챠카 반도에다가 베링해협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 전부를 먹을 수 있거늘. 여기에 비하면 실로 코딱지만 하고 춥기만 한 영국 땅에 무슨 미련이 있어 거기까지 갔다가 오히려 수난을 당하느냐는 말이지.
 이런 의미에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가 진정한 승리자다. 영화에선 십자군 전쟁 중 열악한 통신에서 오해가 생겨 장군의 아내가 자살을 하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영원히 구천을 떠도는 원귀 또는 지옥을 헤매는 영혼에 머물러야 하는 아내의 운명을 저주해 칼로 십자가를 푹 찌른 대가로 드라큘라 백작은 천상의 하느님으로부터 ‘불멸’이란 진짜 저주를 받아, 죽지 못하는 형벌을 당하던 중,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영국에서 환생한 걸 알아낸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찌하여 영국행을 머뭇거릴 수 있었단 말이냐 이거지. 더군다나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는 소위 ‘피가름’이란 의식과 매력적인 에로티시즘이 뒤섞인 환상적인 화면이 섞여있어 지금도 내가 이리 상찬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불과 이틀에 걸쳐 한달음에 원전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1, 2권을 읽은 이유는, 지난 달이던가 두 달 전이던가, 어느 책을 읽다가, 작중 주인공이, 톰 울프가 쓴 <허영의 불꽃>에서 셔먼 아니면, 리처드 라이트가 쓴 <스포츠라이터>의 프랭크인 거 같긴 한데 손에 쥐고 시간 날 때마다 기웃거리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기는 하다. 근데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여태까지 설레발을 풀었던 드라큘라 백작의 영국 나들이.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폭풍우와 침몰의 위험부담을 안고 왜 섬나라까지 쳐들어갔는가 하는 정당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 거. 이것만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래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내가 독후감을 이리 막 써나가는 건, 여태까지 <드라큘라>와 비슷한 이야기나 영화, 드라마, 심지어 뮤지컬 같은 소스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스무 살 넘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거 같아서, 새삼스레 작품의 스토리나 등장인물 같은 걸 써 놓아야, 잘해야 본전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걸 읽을래,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를 볼래, 하면, 모르겠다, 나 같으면 영화를 본다. 그게 너무 재미있으면 영화가 원래 어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니까 저절로 책을 찾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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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협장원 중국전통희곡총서 1
구산서회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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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자가 구산서회九山書會에 소속한 한 재인才人이라고 한다. 여진이란 종족이 동북아시아에 있어 그때 까지 잘 나가던 거란족의 요나라를 한 방에 멸망시키고 이름을 금金이라고 했다. 세력을 더욱 확장한 금은 남진을 계속해, 후에 위대한 장군이 될 젊은 악비岳飛가 의용군으로 출전하기도 했던 대 송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126년에 개봉을 점령한다. 개봉은 송의 수도로 이 사건 이전을 북송이라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명판관 포청천이 바로 북송 시대 사람이다. 이후 심기일전한 (그래봤자 상대적으로 문약했던) 송은 항주로 천도를 하니 이때를 후세 사람들은 남송시대라고 한다. 바로 이 남송 시대에 ‘구산서회’라는 문화단체가 있었단다. 여기에 재주 많은 사람이 한 명 있어 남희南戱라는 일종의 연극에 쓰일 작품을 쓰고 제목을 <장협장원>이라 했단다. 한문漢文,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이라 하여 중국 당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를 이야기할 때, 이런 연희의 작품인 ‘곡’은 원대에 와서 발전해 이후 경극 형태로 꽃을 피웠다고 이해하고 있는 바, 이미 송 대에서 원곡의 뿌리는 (당연하게)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을 터이다.
 이 연극, 또는 연희 <장협장원>의 등장인물은 모두 열두 명. 이 열두 역할을 여섯 명이 맡는다. 모든 장면에서 쉬지 않고 등장하는 남녀 귀신 둘과 주인공 장협 역은 한 명이 한 역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는 반면 장면마다 잠깐 들락날락 하는 인물은 한 명의 배우가 둘, 셋, 네 등장인물을 도맡는다. 이는 전에 읽었던 원곡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기억한다. 이런 일인다역은 책 뒤편의 해설에 의하면, 1) 경제적으로 배역을 운용하고, 2) 관객들에게 분장 바꾸기의 현장을 공개함으로써 배우의 물화物化를 통한 상징적이고 회화적 연기로 중국 전통극 미학의 기초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3) 양식화된 단계로 들어서기 전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여기서 2) 와 3)은 시간이 흘러 후대의 연극평론가들이 생각해낸 문화적 해석 아닐까. 역시 주요 목적은 배우를 적게 씀으로 해서 경제적 운용이 가능했으며, 배우들도 이를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사장과 직원 모두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장협장원>에서는 일인다역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무대장치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제사를 올리려고 하는데 제사상이 없을 때, 늙은 배우가 젊은 배우에게 엎드리라고 해서 등판 위에다 음식을 차림으로 제사상이 되고, 문짝이 떨어져나간 상태에서 갑자기 문짝(또는 대문)을 만들기 위해 귀신 역할의 두 배우를 똑바로 세워 한 명이 문 한 짝씩을 맡아 기어이 대문을 만들어낸다. 이런 장면은 물론 배우 또는 연출가의 행위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승인함으로써 가능하게 되겠지만 꽤 괜찮은 연출이고, 이런 것이 벌써 12세기 초에 가능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럼 ‘장협장원’이란 무엇일까. 장협張協은 사람 이름이다. 당연히 남자. 사대부 출신으로 저 남쪽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외진 오기산 부근에 있는 오래된 사당(廟) 근처에서 강도 둘을 만나 입고 있던 옷까지 홀랑 뺏기고 추운 겨울날 문짝 떨어진 사당인 고묘 안으로 숨어들며 극을 시작한다. 고묘 안에 들어 있던 두 남녀 정령 판관과 소귀. 판관은 진흙으로 빚은 (포청천일 거 같은) 인물상이고 소귀는 말 그대로 작은 여자 귀신. 이 귀신들은 고묘에 기어들어온 장협과의 관계를 심화시켜 나중엔 장협과 의사소통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예를 들어 장협이 판관과 소녀에게, 지금부터 문 역할 좀 해주시오, 라고 부탁하면 좀 투덜대다가 정말로 둘이 옆으로 서서 문, 한자 모습 그대로의 문門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장협이 거지꼴을 하고 고묘에 들어서고 조금 있으니 여자 주인공 빈녀, 말 그대로 고묘에서 홀로 사는 가난한 여자가 들어오고, 기타 동네 사람 몇 명도 도착해, 빈녀에게 냄새나는 옷도 빌고, 사람들한테 음식도 얻어먹은 끝에 빈녀와 혼인을 해 두 달 동안 부부의 관계로 지낸다. 그러다 시기가 가까이 와 장협은 서울로 가 과거시험에 응시해, 시험장에 앉아 과제가 나오자마자, 일필휘지로 선장하니 자자이 비점이요 구구이 관주라, 그냥 장원을 해버리는 거 아니냐. 송나라에서도 과거에서 장원을 하면 황제의 명에 의하여 구름 같은 말을 타고 도성을 한 바퀴 돌았으며 관직에 들 때까지 장원한 자에게 허락되는 특정한 집에 거처했던 모양이다. 그래 장협이 과거에 장원을 했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장협장원>으로 정한 것.
 근데, 문제는 이제 장원 급제해 앞길이 훤하게 트인 상황인데 집도 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저 산골의 사당에서 혼자 사는 빈녀를 마누라로 발표하기엔 좀 그렇다는 어쩔 수 없는 사실. 그렇다. 중국에서도 있었고 유럽에서도 있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있었다. 여자가 식모살이, 룸살롱 접대부 하면서 애인 공부시켜놨더니 남자가 떡하니 사법시험 통과해 판사가 된 후에 나 몰라라 하는 일. 그동안 애나 하나 만들지 않았으면 불행 중 다행이나 애라도 하나 있는데 또 그 아이가 어떻게나 귀엽게 생겼는지, 만일 이런 거 생기면 말 그대로 영화 제목 하나 나오는 거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럼 송나라 판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어떻게 되느냐고? 당연히 안 가르쳐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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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1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룽산으로 돌아간 장다이가 떠오르네요...

Falstaff 2019-08-12 14:1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책도 있군요.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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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이쯤에서 이이의 작품과는 연을 끊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소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또 아서 왕의 궁전은 뭐야? 아서 왕, 명검 엑스칼리버, 귀네비어, 란슬롯을 비롯한 원탁의 기사, 성배 등등하고 무슨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마크 트웨인’이란 이름값에 눌려 그의 책을 한 권 더 읽기로 하고 구입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서 무협지다.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난 미국인인 화자 ‘나’는 실용주의 정신이 매우 투철한 양키 중의 양키이며, 대장장이 아버지와 말을 다루는 수의사 삼촌 덕에 어려서부터 쇠붙이 일과 말을 다루는 법을 비롯한 말 관계의 지식이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며, 머리가 굵어지자 무기 만드는 공장에 입사해 온갖 물건, 예컨대 엽총, 권총, 대포, 보일러, 엔진, 그리고 기타 온갖 기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된 수석반장으로 직원을 2~3천 명 거느린 경험이 있다. 소위 ‘기름밥’을 먹는 거친 남자 2~3천 명과 함께 일을 하면 때로는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 법. 하루는 헤라클레스라는 별호로 불리던 덩치 큰 직원하고 시비가 붙어 급기야 싸움이 벌어졌는데 애초부터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여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져 머리통을 기계에 부딪는 바람에 정신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인간의 윤회 아시지? 영혼의 윤회는? 뭐 그게 그건지 아닌지 아리송하지만 대강 짐작은 간다. 그러면 시대의 전위轉位transposition는? 시대가 전위될 수 있다면 육체, 즉 인간의 몸도 전위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책은, 시대건 인간의 몸이건 전위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 씌었다. 더 쉽게 말하면 시간 여행. 그래 ‘나’는 19세기에서 졸지에 6세기 초, 서기 528년으로 무려 13세기 이상 앞선 시대의 잉글랜드, 그 가운데 캐멀롯에 떨어지고 만다. 어디서 본 거 같지? 저항군 대장의 엄마를 죽여 영웅적인 존 코너의 탄생 자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도착한 기계인간. 그가 시대의 전위를 통해 45년 전의 LA에 떨어졌을 때, 터미네이터와 존 코너의 아버지는 맨몸 상태였다. 이게 정상인 거 같다. 그러나 이 책은 1889년에 출간했으니 지금 눈높이에 맞춰 야박하게 굴지는 말자. 하여간 코네티컷 양키 기술자 ‘나’는 체크무늬 양복에 모자를 쓴 상태에서 13세기 전의 영국에 떨어져 일찍이 하버드 졸업생 토마스 불핀치가 <아서왕 이야기>에서 기술한 대충의 장면을 따라간다.
 근데 이게 왜 무협지냐고? 6세기 영국을 생각해보시라. 아서 왕 본인도 아직 브리타니아에 남은 로마 잔당과 숙명의 전투를 벌인 적이 있던 고대인.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지 215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아서 왕, 기사, 성직자들은 백성과 노예들의 등골을 빼 호의호식하고 있음에도, 백성과 노예들은 이런 불합리한 체제가 당연한 진리라고 여겨 숙명적으로 따르고 있는 야만의 상태. 불을 뿜는 용과, 약 4미터에 육박하는 거인족, 마법사, 마녀가 횡행하는 전설의 시대이면서도 아직 로마 가톨릭조차 이런 미신과 마법을 용인하던 시대. 여기에 19세기 최고의 기계공학을 섭렵하고 실제로 기계를 만들 줄 아는 미국인이 등장한다. 무협지에 거의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 부당하게 가족과 집을 잃은 주인공이 산에 올라 도사를 만나 혹독한 단련을 마친 후, 도사가 그를 불러, 이제 하산 하거라, 한 마디 하면서 내려주는 보검. 미국 뉴잉글랜드 코네티컷 출신의 양키 ‘나’는 보검 대신 현대과학이란 초절정의 무기를 갖게 된다.
 비슷한 소설이 한국에도 있다.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 복 씨 책에선 2582년의 인류가 타임머신 “가마우지 호”를 발명해 과거로 쏘았는데, 500년 단위로 이상을 일으켜 2082년에 불시착을 했고, 이 기계를 수리해 2082년에 주인공이자 과학자이자 전직 해군장교이자 다리 한 쪽을 저는 상이군인을 태우고 다시 과거를 향해 발사했지만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 158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0년 전에 불시착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연히 복거일의 작품(총 6권 가운데 20세기에 쓴 1~3권까지)이 훨씬 더 재미있고, 근거도 있고 그렇지만, 트웨인과 복 씨의 사이에 100년의 터울이 있으니 그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복거일은 <역사 속의 나그네>를 스스로 “무협소설”이라 정의하고 나도 동의해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역시 무협소설이라 단정하고 있는 거다. 트웨인은 6세기 영국을 무대로 공화정을 옹호하고 왕정을 부정하며, 가톨릭교회에 대한 불만을 여과하지 않고 내비친다. 근데 꼭 그래야 했을까? 이미 19세기 말, 진정한 왕정을 펼치는 나라도 극소수였고, 노예제도도 없어졌으며,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가톨릭교도의 수보다 훨씬 많아진 세상이었음에도. 트웨인의 전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면, 허클베리와 톰이 벌이는 장난이 도무지 아이의 짓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도 아이들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데 동의하지만, 실제로 어른을 상대로 잔혹한 행위를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건 마크 트웨인 본인의 머릿속에서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 것으로 읽은 적이 있다. 이제 <…… 양키>의 등장인물은 마흔에 육박하는 화자 ‘나’일 바에 조금 더 잔혹해도 그리 무리가 없을 것. 그래서 ‘나’는 19세기 말의 과학이 제공하는 무지막지한 과학기술을 무기로 해 수만 명의 귀족, 왕족, 성직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다시 읽어도 마크 트웨인은 내 체질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의 그림이 내 취향이 아니다. 과한 과장과 전형적인 양키 스타일의 유머 코드가, 미국에서는 마크 트웨인을 세르반테스나 셰익스피어와 견줄 만한 대 문호로 자랑할 수 있을지언정, 솔직히 말할까?, 내가 읽은 마크 트웨인은 철 안 난 어른 비슷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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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대산세계문학총서 137
토머스 하디 지음, 이윤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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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잉글랜드의 풍속 하나를 소개한다. 토머스 하디 본인이 쓴 책의 서문에 나오는 첫 번째 각주를 그대로 옮기는 일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에서는 부유층이 아니면 이혼이 불가능했던 17세기 말 이래 가난한 남편들이 아내를 팔아넘기는 관습이 생겨나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7쪽 각주)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The Mayor of Casterbridge>를 연재한 시기가 1886년. 그러니 이런 유쾌하지 못한 관습이 거의 끝나가는 말기라서, 잉글랜드 사람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은 정말로 아내를 팔아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을 것인데. 그런데 소설의 시간적 공간은 19세기가 아직 3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은 해의 늦은 여름부터 시작하니 대략 1830년대 초. 1886년의 영국 독자들은 책의 주인공이자 뜨내기 건초 묶기 일꾼인 마이클 헨처드가, 50년 전에, 근방에서 가장 큰 가축시장이 열리는 웨이든-프라이어즈에 도착해 술이 잔뜩 취해 자기 아내 수전과 딸 엘리자베스-제인을 5기니, 즉 5파운드 5실링에 팔아넘길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마이클 핸처드가 진심으로 아내와 딸을 팔아넘길 작정을 한 것이 아니라, 술김에 헛소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여태까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선원 한 명이 등장해 빳빳한 5파운드짜리 잉글랜드 은행권 한 장과 1실링짜리 동전 다섯 개를 식탁보 위에 올려놓는다. 모두가 식탁보 위에 놓인 돈을 바라봄으로써 상황이 완전히 무르익은 것을 알게 된, 전통적인 계약과 상인의 나라인 잉글랜드 국민인 수전 핸처드, 마이클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마디 하기를, “이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마이클,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 만일 당신이 그 돈에 손을 대면, 나와 아이는 저 남자와 함께 떠나. 명심해. 나는 농담하는 게 아냐.” 그러나 스물한 살의 젊은, 그리고 술에 취한 남편 마이클은 이것조차 아내가 감히 남편에게 훈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불쾌해진 마음에 아내를 떠나보내고 만다.
 완전히 술에 취한 마이클은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 밥집의 탁자에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린다. 이튿날 새벽에 홀로 잠에서 깬 마이클은 아직 아무도 집밖에 나오지 않을 시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교회로 들어가 지성소에까지 다가가 성경책 위에 고개를 숙이고는 큰 소리로 외친다.
 “저, 마이클 핸처드는, 9월 16일 아침, 이 신성한 장소에서 하느님 앞에 서약합니다. 저는 제가 이제껏 살아온 햇수만큼 그러니까 앞으로 21년 동안 어떠한 독한 술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결심을 제 앞의 이 성경책에 대고 서약합니다. 제가 이 서약을 어기면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좋습니다.”
 성경책에 대고 맹세를 한 마이클은 뉴슨이란 이름의 선원이 준 5기니를 포함해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이 떨어질 때까지 몇 달을 아내와 딸을 찾아 헤매다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풍문을 듣고는 잉글랜드의 남서부에 위치한 웨섹스 지역의 자치도시 캐스터브리지로 발길을 돌린다.
 세월은 언제나처럼 말도 없이 18년을 흘려보낸다. 18년 전에 타당하지 못한 관습으로 뉴슨에게 팔린 아내 수전과 딸 엘리자베스-제인이 다시 자신이 팔린 웨이든-프라이어즈로 돌아온다. 천막을 치고 밥집을 하며 불법으로 럼주를 판매했던 노파가, 이제 쇠락한 가축시장보다 더 초라하고 더러운 좌판을 깔고 우유밀죽을 팔고 있었으며, 노파를 통해 남편이었던 마이클 핸처드가 캐스터브리지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모녀는 당연히 캐스터브리지로 향하게 되는데, 아 글쎄, 술꾼 마이클 핸처드가 아니고, 술을 딱 끊은 핸처드 씨가 자치도시 캐스터브리지의 홀아비 시장 겸 건초와 곡물 중개상인의 사장으로 부귀를 누리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헤어진 가족이 만나느냐고? 만난다. 그게 끝이냐고? 아니, 소설의 시작이다. 당연히 캐스터브리지 시장의 가족이 재결합은 하는지, 만일 한다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그 오랜 세월동안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로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시장이 새벽마다 불끈 치솟는 정념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는지, 건초 묶는 일을 하던 잡부 출신이 홀로 건초, 곡물 중개상을 잘 해나갈 수 있는지, 오래 떨어져 살던 딸과 화목하게 될지, 기타 등등은 안 알려줌.
 작품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거의 첫 장면부터 앞으로 어떤 배역을 하게 될지 눈에 보일 정도인데 거기다가 새롭게 줄거리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짓은 하지 못하겠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품이라고 해서 구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동시에 고전이다. 아직도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디킨스와 하디를 읽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 본성과 심리는 여전하기 때문이고, 이들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심리소설이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낸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에서 충청도 사투리가 만발하는 장면을 별로 어색함 없이 읽으신 분들은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서 캐스터브리지가 잉글랜드의 남서부 지역이라 그들의 사투리를 한반도의 남서부 지역인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한 것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원래부터 하디가 잉글랜드 판 지역주의 소설가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등장한단다. (그래봐야 내가 읽은 하디는 <…… 테스>, <이름 없는 주드>, 그리고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 불과하지만) 이 책에서도 진짜 끝내주는 건 또 다른 주인공 혹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똑똑한 도널드 파프레이의 스코틀랜드 사투리라는데, 파프레이의 대사는 표준말로 번역을 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다른 사투리로 번역을 하다보니 맛이 나지 않아 할 수 없이 표준어로 만들었다는데, 번역본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이해를 해야 할 듯하다.
 <…… 테스>, <이름 없는 주드> 두 편으로 하디는 그만 읽으려 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또 읽게 됐는데, 하디의 책이 재미는 있다. 근데 바로 이 ‘재미’라는 것이 소위 소설문학을 읽는데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달리 말을 하지 못하겠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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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0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요즘 이거 출퇴근길에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막 내릴 역에서 허둥지둥 내리고 그럽니다. 역시 이야기꾼 하디. 전 이제 그 아내 팔아버린 놈이 높은 자리에 떡하니 올라간 부분까지 읽었어요(폴스타프 님이 딱 포스팅에 언급한 부분까지. 근데 이건 정말 초반아닙니까! 그 뒤에 펼쳐질 내용은 과연 두둥~). 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올라갔을지 궁금.... ㅋㅋㅋㅋ

Falstaff 2019-08-08 09:53   좋아요 1 | URL
크... 그러시군요.
이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그걸 미리 알려드리면 정말 민폐 같아요. 하여튼 온갖 난장판이 벌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오해와 갈등과 거짓과 흥망성쇠와 ㅎㅎㅎ 기타 등등.
재미있게 읽으셔요. 그저 재미가 장땡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