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1 펭귄클래식 46
브램 스토커 지음, 박종윤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엔 역시 공포물.
 난 두 편의 <드라큘라> 영화를 보았다. 하나는 1975년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테렌스 피셔 감독, 크리스토퍼 리가 타이틀 롤을 한 것으로 짐작하는데,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큘라를 연기한 것이 몇 편 되는 모양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마차 바퀴살로 드라큘라의 심장을 찔러 죽이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당시엔 또 공포영화 유행이 시작되던 무렵이어서 이미 클래식 급으로 여겨지는 <엑소시스트>, 몇 년 후에 <오멘> 같은 영화가 줄줄이 개봉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진정한 클래식 공포영화는 도금봉 여사가 열연하는 <월하의 공동묘지>였지만.
 그 후 20세기 말에 드디어 내 기억 속에 남은 최고의 <드라큘라>가 세상에 나오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을 하고 게리 올드만이 타이틀 롤을 하는 영화로 이건 엉뚱하게도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모 극장에서 마누라 손잡고 봤다. 가히 최고의 <드라큘라>. 드라큘라를 넘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공포영화 안에서는 단연 명작 중의 명작이다.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루마니아와 헝가리 근처에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외진 성에 은거하던 드라큘라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하는 곳이 영국의 런던이란 설정이? 아, 당연하긴 하다. 원작자 브램 스토커가 고딕 문학의 탄생지이자 성지랄 수 있는 잉글랜드 출신이니 무대를 자기가 익숙한 곳으로 설정했겠지. 근데 드라큘라 백작 입장에서 보면 굳이 자신의 안식처인 관과 트란실바니아의 흙을 싣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거쳐 영국까지 보내는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육지를 따라 관과 흙을 곳곳에 보관하며 조금씩 밤의 제국을 확장해도 저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해 온 유럽을 관통한 다음, 다시 터키, 아라비아, 인도, 중국을 거쳐 캄챠카 반도에다가 베링해협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 전부를 먹을 수 있거늘. 여기에 비하면 실로 코딱지만 하고 춥기만 한 영국 땅에 무슨 미련이 있어 거기까지 갔다가 오히려 수난을 당하느냐는 말이지.
 이런 의미에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가 진정한 승리자다. 영화에선 십자군 전쟁 중 열악한 통신에서 오해가 생겨 장군의 아내가 자살을 하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영원히 구천을 떠도는 원귀 또는 지옥을 헤매는 영혼에 머물러야 하는 아내의 운명을 저주해 칼로 십자가를 푹 찌른 대가로 드라큘라 백작은 천상의 하느님으로부터 ‘불멸’이란 진짜 저주를 받아, 죽지 못하는 형벌을 당하던 중,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영국에서 환생한 걸 알아낸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찌하여 영국행을 머뭇거릴 수 있었단 말이냐 이거지. 더군다나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는 소위 ‘피가름’이란 의식과 매력적인 에로티시즘이 뒤섞인 환상적인 화면이 섞여있어 지금도 내가 이리 상찬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불과 이틀에 걸쳐 한달음에 원전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1, 2권을 읽은 이유는, 지난 달이던가 두 달 전이던가, 어느 책을 읽다가, 작중 주인공이, 톰 울프가 쓴 <허영의 불꽃>에서 셔먼 아니면, 리처드 라이트가 쓴 <스포츠라이터>의 프랭크인 거 같긴 한데 손에 쥐고 시간 날 때마다 기웃거리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기는 하다. 근데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여태까지 설레발을 풀었던 드라큘라 백작의 영국 나들이.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폭풍우와 침몰의 위험부담을 안고 왜 섬나라까지 쳐들어갔는가 하는 정당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 거. 이것만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래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내가 독후감을 이리 막 써나가는 건, 여태까지 <드라큘라>와 비슷한 이야기나 영화, 드라마, 심지어 뮤지컬 같은 소스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스무 살 넘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거 같아서, 새삼스레 작품의 스토리나 등장인물 같은 걸 써 놓아야, 잘해야 본전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걸 읽을래,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를 볼래, 하면, 모르겠다, 나 같으면 영화를 본다. 그게 너무 재미있으면 영화가 원래 어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니까 저절로 책을 찾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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