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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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이쯤에서 이이의 작품과는 연을 끊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소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또 아서 왕의 궁전은 뭐야? 아서 왕, 명검 엑스칼리버, 귀네비어, 란슬롯을 비롯한 원탁의 기사, 성배 등등하고 무슨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마크 트웨인’이란 이름값에 눌려 그의 책을 한 권 더 읽기로 하고 구입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서 무협지다.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난 미국인인 화자 ‘나’는 실용주의 정신이 매우 투철한 양키 중의 양키이며, 대장장이 아버지와 말을 다루는 수의사 삼촌 덕에 어려서부터 쇠붙이 일과 말을 다루는 법을 비롯한 말 관계의 지식이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며, 머리가 굵어지자 무기 만드는 공장에 입사해 온갖 물건, 예컨대 엽총, 권총, 대포, 보일러, 엔진, 그리고 기타 온갖 기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된 수석반장으로 직원을 2~3천 명 거느린 경험이 있다. 소위 ‘기름밥’을 먹는 거친 남자 2~3천 명과 함께 일을 하면 때로는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 법. 하루는 헤라클레스라는 별호로 불리던 덩치 큰 직원하고 시비가 붙어 급기야 싸움이 벌어졌는데 애초부터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여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져 머리통을 기계에 부딪는 바람에 정신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인간의 윤회 아시지? 영혼의 윤회는? 뭐 그게 그건지 아닌지 아리송하지만 대강 짐작은 간다. 그러면 시대의 전위轉位transposition는? 시대가 전위될 수 있다면 육체, 즉 인간의 몸도 전위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책은, 시대건 인간의 몸이건 전위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 씌었다. 더 쉽게 말하면 시간 여행. 그래 ‘나’는 19세기에서 졸지에 6세기 초, 서기 528년으로 무려 13세기 이상 앞선 시대의 잉글랜드, 그 가운데 캐멀롯에 떨어지고 만다. 어디서 본 거 같지? 저항군 대장의 엄마를 죽여 영웅적인 존 코너의 탄생 자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도착한 기계인간. 그가 시대의 전위를 통해 45년 전의 LA에 떨어졌을 때, 터미네이터와 존 코너의 아버지는 맨몸 상태였다. 이게 정상인 거 같다. 그러나 이 책은 1889년에 출간했으니 지금 눈높이에 맞춰 야박하게 굴지는 말자. 하여간 코네티컷 양키 기술자 ‘나’는 체크무늬 양복에 모자를 쓴 상태에서 13세기 전의 영국에 떨어져 일찍이 하버드 졸업생 토마스 불핀치가 <아서왕 이야기>에서 기술한 대충의 장면을 따라간다.
 근데 이게 왜 무협지냐고? 6세기 영국을 생각해보시라. 아서 왕 본인도 아직 브리타니아에 남은 로마 잔당과 숙명의 전투를 벌인 적이 있던 고대인.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지 215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아서 왕, 기사, 성직자들은 백성과 노예들의 등골을 빼 호의호식하고 있음에도, 백성과 노예들은 이런 불합리한 체제가 당연한 진리라고 여겨 숙명적으로 따르고 있는 야만의 상태. 불을 뿜는 용과, 약 4미터에 육박하는 거인족, 마법사, 마녀가 횡행하는 전설의 시대이면서도 아직 로마 가톨릭조차 이런 미신과 마법을 용인하던 시대. 여기에 19세기 최고의 기계공학을 섭렵하고 실제로 기계를 만들 줄 아는 미국인이 등장한다. 무협지에 거의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 부당하게 가족과 집을 잃은 주인공이 산에 올라 도사를 만나 혹독한 단련을 마친 후, 도사가 그를 불러, 이제 하산 하거라, 한 마디 하면서 내려주는 보검. 미국 뉴잉글랜드 코네티컷 출신의 양키 ‘나’는 보검 대신 현대과학이란 초절정의 무기를 갖게 된다.
 비슷한 소설이 한국에도 있다.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 복 씨 책에선 2582년의 인류가 타임머신 “가마우지 호”를 발명해 과거로 쏘았는데, 500년 단위로 이상을 일으켜 2082년에 불시착을 했고, 이 기계를 수리해 2082년에 주인공이자 과학자이자 전직 해군장교이자 다리 한 쪽을 저는 상이군인을 태우고 다시 과거를 향해 발사했지만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 158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0년 전에 불시착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연히 복거일의 작품(총 6권 가운데 20세기에 쓴 1~3권까지)이 훨씬 더 재미있고, 근거도 있고 그렇지만, 트웨인과 복 씨의 사이에 100년의 터울이 있으니 그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복거일은 <역사 속의 나그네>를 스스로 “무협소설”이라 정의하고 나도 동의해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역시 무협소설이라 단정하고 있는 거다. 트웨인은 6세기 영국을 무대로 공화정을 옹호하고 왕정을 부정하며, 가톨릭교회에 대한 불만을 여과하지 않고 내비친다. 근데 꼭 그래야 했을까? 이미 19세기 말, 진정한 왕정을 펼치는 나라도 극소수였고, 노예제도도 없어졌으며,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가톨릭교도의 수보다 훨씬 많아진 세상이었음에도. 트웨인의 전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면, 허클베리와 톰이 벌이는 장난이 도무지 아이의 짓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도 아이들의 본성이 선하지 않다는데 동의하지만, 실제로 어른을 상대로 잔혹한 행위를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건 마크 트웨인 본인의 머릿속에서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 것으로 읽은 적이 있다. 이제 <…… 양키>의 등장인물은 마흔에 육박하는 화자 ‘나’일 바에 조금 더 잔혹해도 그리 무리가 없을 것. 그래서 ‘나’는 19세기 말의 과학이 제공하는 무지막지한 과학기술을 무기로 해 수만 명의 귀족, 왕족, 성직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다시 읽어도 마크 트웨인은 내 체질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의 그림이 내 취향이 아니다. 과한 과장과 전형적인 양키 스타일의 유머 코드가, 미국에서는 마크 트웨인을 세르반테스나 셰익스피어와 견줄 만한 대 문호로 자랑할 수 있을지언정, 솔직히 말할까?, 내가 읽은 마크 트웨인은 철 안 난 어른 비슷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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