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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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가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를 잇는 아일랜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존 벤빌의 대표작이자 맨부커상 수상작.” 좋다.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를 엮는 건. 하마터면 베케트가 조이스의 사위가 될 뻔했으나, 정작 베케트는 조이스의 정신 나간 딸 루이스가 그렇게 기다리던 고도에 불과했을 뿐이지만. 그러나 이 라인에다가 밴빌까지 엮는 건 전적으로 상술일 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아일랜드가 물이 좋아 유독이 글 맛나게 쓰는 작가들이 우글거리는데, 밴빌을 꼭 다른 빨강머리 아일랜드인하고 비비자면(사실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긴 하지만) 조이스나 베케트 대신 윌리엄 트레버하고 엮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왜냐고? 존 밴빌을 읽으면서 윌리엄 트레버에서 자주 발견하고는 했던 상실, 추억, 감상 같은 것들이 자주 눈에 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내가 아는 게 있나.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주인공 맥스 선생께서 암종으로 마나님을 보낸 다음에 저 50년 전 자신의 소년시대 한 시절을 보낸 바닷가 휴양지의 여름별장 시더스를 방문하는 이야기다. 그의 기억 속에 휴양지에도 계급이 있어 가장 높은 곳에는 별장을 짓고 여름마다 방문해 계절을 즐기는 족속, 2번이 여름별장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사용하는 집단, 3번이 호텔에 숙박하며 여름을 나는 부자들인데 골프 호텔에 머무는 인간들이 다른 호텔보다 좀 더 우세하단다. 4번이 저 50년 전 소년시대의 맥스 소년 가족처럼 우리말로 하자면 민박, 좋게 봐도 펜션 정도의 시설에서 며칠이나 몇 주 머물다 가는 서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지 주민. 이렇게 다섯 계급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책은 늙은 맥스가 현재와 유년시절이라는 먼 과거, 아내 애나가 자궁암으로 짐작되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가까운 과거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된다. 이런 작품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에서도 보듯) 거의 공통적으로 매우 섬세하고, 감정표현에 충실하며, 대화가 별로 없는데, <바다>에선 그래도 대화가 적지 않은 편이다. 대화가 있더라도 따옴표 같은 기호를 붙이지 않음으로 독자로 하여금 더 침잠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벤빌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저 먼 먼 소년시대. 소년 맥스는 휴양시설 시더스에 머무는 그레이스 집안의 안주인이자 넉넉한 몸매의 소유자 코니 그레이스 여사한테, 한 눈에 반해버린다. 그래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쌍둥이 남매 클로이와 말 못하는 마일스에게 접근해 소년다운 친밀감으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 모래밭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수영을 잘하는 쌍둥이 남매는 물에 뛰어든 사이, 포도주를 몇 잔 마신 코니 그레이스 여사가 낮잠에 빠져들면서, 맥스의 눈앞에서 무릎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허벅지와 교차점, 흰 내의를 입었지만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지역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죽음의 이미지. 이 죽음의 이미지에 관해서 더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의 결말 부분까지 다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즉, 이 책은 상실, 죽음이라는 상실, 남았다는 상실에 관한 쓸쓸한 이야기라는 뜻.
 그런데, 정직하게 이야기해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이게 원작의 문장이 매우 섬세해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게, 소수를 제외하고 문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지겹게 느끼도록 썼기 때문인지, 한국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리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짧은 영어로 원서까지 뒤져보는 망측한 일에도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차 안에서도 우리는 호텔 앞 잔디밭의 야자나무들이 꿈을 꾸듯 마른 잎을 비벼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래전 자줏빛 여름밤이면 아라비아의 모든 것을 약속하는 듯하던 소리였다.”  50~51p.


 '자줏빛 여름밤이면 아라비아의 모든 것을 약속하는 듯하던 소리'가 어떤 소리일까? 이건 앞 문장을 읽어도 어떤 소리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묘사가 책읽기의 진도를 빼는 걸 적극적으로 방해를 한다. 근사하기는 하지만 어째 아무 내용이 없다. 지금 모더니즘 시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예를 들 문장들은 더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하자. 트레버의 <루시 골트 이야기>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째 나는 정영목 씨의 문장과 궁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그의 번역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함부로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불행한 경우 뼈도 못 추릴 정도의 명성을 누리는 역자에게 이렇게 얘기하기가 심히 불안하고, 건방져 보이는 것 같고, 혹시 고소당하지는 않나 겁도 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불만의 약간만 운을 떼보자면, 정영목 씨가 영어를 영어로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국가대표일지는 모르나, 그의 한국어 문장 만드는 솜씨는 모든 한국인의 평균 수준 이상인 것 같지는 않다. 어렵고 근사한 단어만 쏟아낸다고 고객인 독자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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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18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새로 재개정판이 나온다는 뉴스를
듣고 새로운 역자를 기대했으나 역시나
였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을 맡았
던 역자에게 고대로 번역을 맡기다니.
과연 얼마나 구간하고 다를 지 궁금했
습니다. 물론 비교 검토해볼 열의는 없었
구요.

처음에 읽을 적에는 정말 버거웠던 기억
입니다. 그래도 두 번 읽을 때는 익숙해
져서 그런지 좀 낫더군요.

Falstaff 2019-09-18 11:01   좋아요 0 | URL
거의 바꾸지 않았다고, 재개정판이 아니라 그냥 복사판이라는 데 만원 겁니다.
이런 책들 무지 많습니다. 같은 역자가 계약 기간 끝나 다른 출판사로 옮겨 전에 번역한 거 그대로 써먹는 거요. 유명 역자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제가 말씀드리는 ‘유명역자‘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들어있지 않습니다만.
제가 따온 첫 문장에서 ‘문둥이‘가 나오잖아요? 문둥이가 문학동네의 줄임말이라네요. ㅋㅋㅋㅋ
 
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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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 비치’라는 자그마한 해변 휴양도시의 모나크가街, 어느 추운 날 장갑도 끼지 않은 맨 손에 신문지를 찢은 구인광고를 든 짧은 치마의 아가씨가 등장해 늙은 샌들러 기본즈에게 모나크가 1번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부츠를 신고 짤막한 가죽 상의만 걸친 모습을 본 샌들러 노인의 머릿속에 아가씨의 반질반질한 무릎과 허벅지가 그리 오래 자리 잡고 있게 될 지는 두 명 다 몰랐다. 아가씨의 이름은 주니어. 신문 쪼가리의 구인광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우미, 성숙한 전문직 여성의 비서 구함. 강도는 약하지만 극비 업무. H. 코지 부인에게 지원할 것. 실크, 모나크가 1번지.”
 그리하여 주니어,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양이 히드 코지 부인의 말벗이 되기에 이른다. ‘히드 투 나이트’가 본명. 그럼 어떤 운명의 여인인지 대충 짐작은 하시겠지? ‘밤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사실 그리 복잡한 사생활을 가진 여인은 아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런 ‘이야기 취향의 이름’을 가진 아이는 주로 흑인 하층계급 출신이었다고 미국인들은 즉각 반응을 한단다.
 히드 부인이 열한 살일 때 지금은 쇠락해 문을 닫은 코지 리조트 근처에 살며 호텔 주인 코지 씨의 열두 살짜리 손녀딸 크리스틴과 어울려 유년의 시간을 지내고는 했었나보다. 크리스틴의 엄마 메이는 천민 출신(으로 보이는) 히드와 자기 딸이 어울리는 걸 보는 일이 절대로 마땅하지 않아 될 수 있으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앞 바닷가에 뒤집혀 있는 보트 ‘실레스티얼’에서 놀려 했는데 호텔 안에 공깃돌을 두고 온 걸 늦게 알게 됐다. 그래 히드가 냅다 호텔로 달려가 공깃돌을 찾다가 긴 복도의 어둠 속에 서 있는 거한의 빌 코지 사장의 눈에 들어갔다. 빌 코지가 히드 앞에 서서 커다란 손으로 얼굴과 아이의 턱과 아직 전혀 부풀지 않은 젖꼭지 주변의 납작한 가슴을 슬쩍 쓰다듬으며 쾌활하게 웃었는데 바로 그 순간 히드는 아직 뭔지는 모르지만 사장님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스친 사실이 조금은 전율스러우면서도 간질거리기도 하고 좀 아픈 것도 같은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가장 친한 친구 크리스틴에게조차 비밀로 해야 함을 즉각적으로 깨닫는다. 그러나 바로 직전, 공깃돌을 찾으러 가는 히드를 뒤쫓아 호텔의 한 창문을 넘겨보던 크리스틴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코지 사장이 허리춤을 풀고 여자 종업원으로부터 유사 성행위 서비스를 받는 장면을 목격해버렸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광경을 역시 히드에게조차 비밀로 해야 한다는 걸 직감처럼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둘의 우정이 언젠가는 금이 갈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나중 일이고, 당시 홀아비 신세였던 코지 리조트의 사장 빌 코지 씨는 무수한 여인들과의 연애에도 불구하고 불과 열한 살의 아이, 아직 초경도 하지 않은 히드에게 청혼을 하고, 기어이 결혼해버린다. 당시 미국 흑인사회에서 조혼이 일반적인 일이었다지만 불과 열한 살짜리 아이와 결혼하는 쉰한 살 노인은 당시에도 다분히 유아성도착증세로 의심받은 수준 아니었을까. 그러나 업 비치 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부유해 백인 톱클래스들과도 교분이 깊었던 코지 씨는 결혼 후에도 히드가 초경을 할 때까지 함께 침상에 들지 않았으며, 초경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신혼여행에 올랐다고 하니 변태성욕이라고까지는 하지 못할 수준이었겠다.
 그런데 이 일로 난리가 난 사람이 있었으니 빌 코지 씨의 아들 빌리보이의 아내이자 코지 씨의 과부 며느리인 메이 여사로, 코지 호텔과 저택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자기 딸 크리스틴이 상속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졸지에 크리스틴 대신 히드가 상속인으로 정해졌기 때문. 이런 상태로 4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다. 그 동안 당연히 빌 코지씨와 메이,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으며, 호텔도 문을 닫아 빈 건물이 세월의 풍화작용 앞에 나날이 쇠락해가는 가운데, 코지 저택엔 예전의 소꿉동무이자 할머니-손녀 사이인 히드와 크리스틴이 서로 반목하는 중에도 묵인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이름은 주니어인데 준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부츠 신은 짧은 치마의 아가씨가 등장해 코지 저택에 입주하면서 온갖 사건과 과거의 기억이 다자간의 시선으로 서술하기 시작한다.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으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내가 읽은 모리슨으로 <빌러비드>와 <재즈>가 있다. 두 작품 다 흑인의 정체성을 밑에 깔고 노예상태에서 탈출해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거나(빌러비드), 백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혼혈아가 자신이 흑인이 아닌 백인이라 생각하여 흑인 아버지를 살해한다는(재즈) 내용이어서 <러브> 역시 흑백 문제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것도, 당연히) 생각했지만, 아니다. 미국 내의 흑인이 쓴 문학 역시 인종문제가 아닌 ‘인간문제’인 사랑, 그것도 독하고 질긴 사랑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모리슨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어떤, 누구의 사랑인지는 일러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 되어야 알 수 있어, 완벽한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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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몫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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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여성이 쓴 한 이란 여성의 일대기. 주인공이자 화자 ‘마수메’는 테헤란 남쪽 120km에 위치한 시아파 교도의 성지 콤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완고한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가족 전체가 테헤란으로 이사하는데 묻어왔다. ‘묻어왔다’고? 그렇다. 전통과 종교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두 오빠가 다 큰 여자아이가 큰 도시 테헤란에 간다면 타락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삼촌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동생 파티와 단 둘이 콤의 친척집에 맡겨져 평생 차도르를 걸치고 다녀야 했을 뻔했다. 때는 이란의 팔레비 황제 즉위시절. 놀랍게도 이 때가 이란 역사상 가장 개방되었던 시절로 수도 테헤란에서는 여성들도 차도르와 히잡은커녕 맨머리에 반팔 티셔츠, 야한 색 판탈롱 바지를 입은 채 뚜껑 없는 승용차를 운전해 다닐 수 있었다. 이 시절에 한국과 이란은 각별한 관계를 맺어 테헤란에는 서울 로(路)가, 서울엔 테헤란 로가 뚫리게 된다. 기억나시지? 이런 때 시아파 성지에서 낳고 자란 10대 수구골통 이슬람 남자가 동생과 함께 테헤란에 간다는 건 말 그대로 자기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여동생을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던져버리는 것하고 비슷했을 수도 있다, 라고 일단 이해하자. 어쨌거나 테헤란에 도착한 마수메는 아버지의 은덕으로 학교를 다니게 됐고, 역시 아버지의 허락으로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가리는 것으로 차도르와 히잡을 대신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열여섯 살이 된다.
 여자가 여태 감추어두었던 얼굴을 드러내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드러낸 얼굴을 보고 엉뚱하게 자기 심장에 불을 붙이는 남자가 생기기 마련. 종교적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나는, 이슬람 여성은 어려서부터 하도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 아예 연애감정이 없거나, 능히 자기감정을 자제할 줄 알게 되는 거 아닌가, 궁금했었다. 근데 아니더라. 열여섯, 춘향이 광한루 옆에서 그네 타던 시절이 된 마수메의 가슴에도 아지랑이 속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와 테헤란 국립대학 약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며, 틈이 날 때마다 여학교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잘 생긴 사이드를 발견한 순간, 그만 마수메의 오금이 탁 풀리며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는 거였다. 근데 알고 보니 여학생 거의 모두가 이 잘생긴 사이드한테 넋이 빠져 있었던 반면, 사이드의 눈엔 오직 콤에서 온 촌년 마수메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단계로 접어든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개방된 팔레비 정권이라 하더라도 미혼 남녀가 남의 눈을 무시하고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 여차하면 수십 명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래 기껏 생각해낸다는 것이 연애편지. 나도 한 때 연애편지 대필해주고 자장면깨나 얻어먹었는데(물론 짬뽕하고 군만두도 좀 먹었다), 이들 사이의 연애편지라는 것이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안 됐다.
 “그대의 몸에 의사의 손길이 필요 없길,
  그대의 섬세한 영혼이 다치지 않길.“
 물론 첫 번째 편지가 이런 수준이었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좀 더 진지해지긴 하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는 이슬람의 신을 믿는 신앙인이라 내 눈엔 건전하기가 짝이 없다. 이건 뭐 부처님들도 아니고 말이야.
 세상에 비밀이 있어? 이들 사이의 편지질은 남동생 알리의 염탐질과 큰오빠 마흐메드의 눈치로 드디어 편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여동생을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는 오빠들과 아빠는 아예 꼭지가 돌아버린다. 그 길로 (나중에 부랑자가 되어 길거리에서 객사할 운명에 처하는) 작은 오빠 아흐매드가 단도를 부여잡고 여학교 앞 약방에 쳐들어가 고향 콤에서라면 늘씬하게 초승달 모양으로 휜 단검을 사이드의 심장에 박아 넣었겠지만, 수도 테헤란에선 그랬다 하면 자신도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하는 걸 충분히 이해해서, 그냥 팔뚝에 자상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거기까지? 천만의 말씀. 피가 흐르는 단도를 거머쥔 채 집에 돌아와서 이제 본격적인 폭력이 마수메의 몸에 가해지기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자리를 뜬 후다. 즉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버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슬람식 의미란다. 아, 사이드. 이 남자는 우리의 마수메 가슴, 그 중에서도 심장에 먹줄로 그은 초상으로 자리해, 마수메의 남은 시간 동안 절대 지워지지 않는 재 속의 잉걸불로 타오를 줄, 그녀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탁월하게 공부를 잘 해 집안의 자랑이었던 마수메가 이제 집안의 수치로 전락해버려 하루빨리 결혼을 통해 자신들의 호적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근데 어디 쉽게 자리가 나나? 이슬람 여자인데 학교를 다녔고, 거기다가 공부로 잘했다네? 에이, 그럼 못쓰겠네. 불과 60년 전 한국에서도 여자가 똑똑하면 시집가기 쉽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 하나 같이 걸려드는 것이 큰오빠처럼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눈 하나 끔벅이지 않고도 여자를 두드려 패는 습관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건달들만 꼬이는 상황. 마수메는 만사 포기하고 결혼과 동시에 목숨을 끊으려 결심을 해 나날이 초췌해지는데, 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한 이웃 여자가 있었으니, 잔인한 작은 오빠의 정부 파르빈. 일찍이 자기보다 한 마흔 살 많은 불임의 부자 남자에게 시집을 와 한 많은 세월을 살며 외로움을 동네 깡패 아흐매드에다 대고 풀면서 살던 정 많은 여자로, 이 파르빈은 책이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마수메에게 호의적인 도움을 무한정으로 베풀어준다. 이 여자가 어디서 골랐는지 좋은 집안의 잘 배운 남자 하미드를 소개해 얼굴 한 번 못 본 채 결혼, 이후 아들 둘을 두고 갖은 고생을 하며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혁명을 거쳐 꼬부랑 할매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
 이 책의 독후감으로는 책의 줄거리밖에 쓸 수 없었는 바, 그건 내가 이슬람과 이슬람 국가에 대해,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줄거리가 진짜로 책의 내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모두 10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소설의 1장만 대충 요약했을 뿐이다. 좋다, 인심 써서 책 앞, 뒤표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 하나를 더 말씀드리지. 우리의 마수메, 그녀가 결코 사랑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아내의 도리를 다해 평생 섬기고 산 남편 하미드는, 공산주의자였으며, 그가 꿈꾸는 혁명 후 이란은 당연히 무신론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였다. 어째 좀 팔자가 드셀 거 같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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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금련 중국전통희곡총서 3
웨이밍룬 지음, 김순희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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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금련과 무대, 무송 형제. 그리고 돈 많고 힘 센 매력남 서문경. 이들은 시내암의 <수호지>와 소소생의 <금병매>에 동시 출연한다. 시기별로 보면 진하, 설리, 남궁준광이 전성기를 누리던(이들이 어디서 등장하는지는 오늘의 퀴즈!) 원말명초에 쓰인 <수호지>에서 먼저 나왔고, 여기서 반금련과 서문경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다가 살을 붙여 명나라 때 쓴 작품이 <금병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수호지>를 지금 팔고 있는 책 껍데기와 다른 표지를 한 이문열의 민음사 초판으로 읽었는데, 세상에나, 당대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송나라 호걸영웅들이, 하다못해 최고의 인격과 학식과 덕을 지닌 주인공 송강조차, 얼마나 야만스런 행위를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해내는지 깜짝 놀랐다. 그게 뭔줄 아시나? 인육, 즉 사람 고기를 포식하는 것.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리 상태’의 중국 버전은 ‘인간은 인간에 대한 포식자predator’일 정도다. 영양가 높은 인육을 섭취하는 방법에도 계급이 있어서, 하층민들은 사람 고기를 다져 주로 만두소로 만들어 요리를 해 먹고, 상류층은 소장과 대장을 제외한 내장기관, 즉 간, 허파, 심장 등을 후춧가루 뿌린 소금 기름에 찍어 날로, 즉, 육회로 섭생한다. 어떠셔? 군침 도셔? 아 진짜라니까. 군자에다 영웅으로 이름난 송강 선생도 원수를 잡아 죽여 생간을 소금, 참기름, 후춧가루 소스에 찍어 자셨다니까.
 살인을 저지른 친구 뇌횡을 호송하던 중 범인을 놓아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맞고 창주로 유배된 영웅 ‘주동’이란 자가 있었다. 양산박에선 그의 행적과 의리와 인품을 높이 숭앙해 기꺼이 양산박으로 모시기 위해 꾀를 낸다. 주동이 원래 사람됨이 근사한데다가 학식도 높아 창주 성주가 어린 아들의 가정교사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는데, 글쎄 창주에 누가 오느냐 하면 뇌횡과 높은 이름을 떨치던 지다성 오용 선생이 떴던 거다. 그러나 나라에 대한 의리가 깊은 주동이 어찌하여 도둑의 무리인 양산박에를 들어가겠는가. 그래 거절했더니, 글쎄 자기가 가르치던 성주의 아들이 사라져버린다. 주동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데 뇌횡이 은근히 한 마디 하기를, ‘쌍도끼 이규도 함께 왔거늘 어찌 보이지 않나.’ 워낙 험악하고 잔인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은 이규가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냅다 달려갔는데, 이규는 벌써 성주 아들의 간을 꺼내 소금 기름을 묻혀 육회로 먹고 있었으며, 시체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거였다. 일이 워낙 커져 주동은 결국 양산박 패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런 일화가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앗, 너무 <수호지>에 관한 사설이 길어졌다.
 <금병매>를 읽어보지 않아 (솔출판사 어떻게 된 거야? 망했나?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계속 <수호지>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거기에 ‘무송’이란 이름의 영웅이 양산박으로 들어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양산박에 들어갔다 하면, 그이는 누가 됐건 간에 송나라의 메인 플로우에서 탈락한 아웃사이더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잘 나가던 무인 무송이 하루는 업무 차 고향 도시에 들렀는데, 벌써 마흔다섯 살이 된 큰형 무대가 그 새 반금련이란 젊고 아름다운 여인한테 장가를 든 거다. 지금이야 마흔다섯이면 한창 때지만 송나라 시절에 사십오 세면 이미 발기부전 증상이 상당히 진전된 할배였다. 물론 이도 거의 다 빠져버렸을 거다.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를 봐도 무대를 앞니 두 개로 특징하지 않았는가 말이지. 그래 둘 사이에, 금련이 입장에서 보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거늘 도무지 하늘을 볼 기회가 없어 아이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해 히스테리만 늘어나던 찰나,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은 무송이 눈앞에 있으니 온몸이 근질거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이거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의 영웅 무송이 또 어찌 형수를 꾸짖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어느덧 몇 날이 흘러 무송이 떠나고 이젠 생과부 신세를 한탄만 하던 금련 앞에 돈 많고, 힘 좋고, 덩치 크고, 활수한 서문경이 등장하니 이들의 로맨스(라고 해주자)는 필수 코스였던 것. 둘 사이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는 떡장수 무대. 어느 날 무대는 독을 먹고 픽 쓰러지더니 그 길로 횡사를 하고, 형의 부고를 들은 무송이 다시 돌아와 사태를 파악해 서문경을 때려죽이고, 금련을 칼로 쪼개 죽이고 자신은 스스로 잡혀 귀양을 가던 중 어찌어찌 해서 양산박 도둑떼에 들게 된다.
 너무 내용을 자세하게 얘기한다고? 천만의 말씀.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 중국 전통 가극인 천극川劇과 월극越劇, 80년대 디스코, 서양의 오페라 등이 마구 섞이고, 등장인물도 송나라 시절 무대, 무송, 반금련, 서문경, 80년대 중국 소설의 주인공인 ‘여사사’, 배나온 대머리 브론스키 백작을 죽자고 사랑해 공작duke 남편과 새끼까지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안나 카레니나마저 등장하는 신 전통희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여사사가 사실상 희곡을 교통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읽었는데, 반금련의 행위가 현대의 관점에서 정말로 죽을죄인지, 아니, 죄이기나 한 것인지 새로이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망라한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자소서를 읽고 자기 방식대로 노래하고 춤도 추고, 반금련의 행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근데 내 생각엔, 옛날 것은 옛날 것으로 그냥 좀 내비두면 안 될까, 했다. 꼭 지금의 규범으로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긴, 그건 극작가 마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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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딱 하나, ‘열린책들’ 창사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로 무려 912쪽에 달하는 책을 정가 만 원, 10% 할인가격 9천원, 이것도 아니고 6천5백 원짜리 새 책 같은 중고 책으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부를 읽어나가다가 어어, 이거 분명히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하고 내용이 비슷한 거다. 물론 해가지지 않는 땅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에서 남의 집 귀한 개새끼들을 몰래 잡아 고기는 토끼고기라고 속여 팔고 가죽으로 외투 만들어 입고 다닌다든지, 삶은 돼지 대가리를 상 위에다 놓고 서열 높은 어른들은 귀, 중간 서열은 코, 어린 것들은 뺨따귀 살을 먹는다든지 하는 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2부와 3부의 내용은 영화하고 거의 완전하게 다른 수준이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본 텍스트가 전적으로 <핑거스미스>를 따랐다고 단정하긴 좀 그렇고, 하여간 이 소설에서 사기와 사기에 대한 또 한 번의 사기, 그리고 사기와 또 한 번의 사기 위에 또 한 번의 사기 같은 연쇄 사기, 또 여성 간의 동성애라는 모티프를 얻어 <아가씨>를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다. 언젠가 말했다시피 나는 <아가씨>를 집에서 유선 Pay TV로 아내와 다 큰 둘째 아들하고 셋이서 봤다. 부모형제가 함께 보기엔 참 바람직하던데, 그건 차치하고, 나처럼 해당 영화와 소설의 관계를 모르고 각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읽기는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럼 됐지 뭘 더 얘기하려느냐고? 그거야 독후감 쓰는 사람 마음이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로 상정한 21세기 작품이라는 것. 2002년에 시치미 뚝 떼고, 쓰레기와 진흙탕, 콜레라가 만연한 19세기 런던에서 공개적인, 차라리 공연이라고 칭할 만한 처형장면과, 온갖 창궐하는 좀도둑과 장물아비, 사기꾼들, 거기다 19세기 중반이었다면 중죄로 다스림을 당해야 마땅했을 동성애까지 다분히 현대적 감각에 의거해 빅토리아 시대에나 썼음직한 문법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청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을까. 세라 워터스는 이렇게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세 편을 썼으며, 이 작품들로 큰 인기도 얻고 당연히 돈도 무척 많이 벌었단다.
 근데 문제는, 물론 독후감을 쓰는 데 있어 생기는 문제를 말하는데, 이미 박찬욱의 영화 속에 공개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은 다 알려져 있어서, 거기다가 더 보탤 말이 없다는 것. 당연히 영화와 다른 2부와 3부에 대하여 쓸 수는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의 2부와 3부가 (소설하고는 다른 내용이지만) 소설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에 별로 쓰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특색 있다고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소설 끝나고 부록처럼 붙은 작가 세라 워터스의 인터뷰이며, 그중에서도 “마지막(질문)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에 대한 답변이다. 워터스는 네 가지를 주문하는데 다 잘라버리고 요점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1. 미친 듯 읽어라.
 2. 되도록 날마다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라.
 3. ‘다시’ 써라! 잘라 내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4. 계속 노력하라.
 좀 웃었다. 중국에서도 당송팔대가의 한 명인 구양수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즉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고 훈수를 둔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한 천 년 지나니까 ‘듣고 생각하는’ 항목은 빠지고 글을 쓰고 또 다시 쓰라는 조언이 추가됐다. 근데, 위의 네 가지를 열씨미 한다고 정말 작가가 되나? 이렇게 해서 작가가 될, 아니, 그냥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 건지는 거 말고, 직업으로 글을 써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작가가 될 확률은 얼마 정도일까. 이게 의심스럽다. 천 명 가운데 하나? 오천 명 가운데 하나? 아휴. 나머지 999명 또는 4999명은 어떻게 하라고 글 쓰는 직업을 갖으라, 권하고 있는지. 팔자에 글 쓰는 살煞이 붙은 불행한 천재 몇 명께서만 한 번 그렇게 해보시면 좋을 듯한데 말입니다.
 알라딘 보관함에 좀 오래 담긴 채 있는 작품 가운데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다. 그런데, 현대적 시각을 장착하고 19세기 잉글랜드의 런던을 무대로 한 세라 워터스를 읽고 나서 과연 찰스 디킨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지금 이 고민하고 있다. 보관함에서 빼버릴까? 말까? (결국 독후감을 쓴 며칠 후, 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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