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몫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란 여성이 쓴 한 이란 여성의 일대기. 주인공이자 화자 ‘마수메’는 테헤란 남쪽 120km에 위치한 시아파 교도의 성지 콤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완고한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가족 전체가 테헤란으로 이사하는데 묻어왔다. ‘묻어왔다’고? 그렇다. 전통과 종교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두 오빠가 다 큰 여자아이가 큰 도시 테헤란에 간다면 타락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삼촌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동생 파티와 단 둘이 콤의 친척집에 맡겨져 평생 차도르를 걸치고 다녀야 했을 뻔했다. 때는 이란의 팔레비 황제 즉위시절. 놀랍게도 이 때가 이란 역사상 가장 개방되었던 시절로 수도 테헤란에서는 여성들도 차도르와 히잡은커녕 맨머리에 반팔 티셔츠, 야한 색 판탈롱 바지를 입은 채 뚜껑 없는 승용차를 운전해 다닐 수 있었다. 이 시절에 한국과 이란은 각별한 관계를 맺어 테헤란에는 서울 로(路)가, 서울엔 테헤란 로가 뚫리게 된다. 기억나시지? 이런 때 시아파 성지에서 낳고 자란 10대 수구골통 이슬람 남자가 동생과 함께 테헤란에 간다는 건 말 그대로 자기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여동생을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던져버리는 것하고 비슷했을 수도 있다, 라고 일단 이해하자. 어쨌거나 테헤란에 도착한 마수메는 아버지의 은덕으로 학교를 다니게 됐고, 역시 아버지의 허락으로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가리는 것으로 차도르와 히잡을 대신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열여섯 살이 된다.
 여자가 여태 감추어두었던 얼굴을 드러내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드러낸 얼굴을 보고 엉뚱하게 자기 심장에 불을 붙이는 남자가 생기기 마련. 종교적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나는, 이슬람 여성은 어려서부터 하도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 아예 연애감정이 없거나, 능히 자기감정을 자제할 줄 알게 되는 거 아닌가, 궁금했었다. 근데 아니더라. 열여섯, 춘향이 광한루 옆에서 그네 타던 시절이 된 마수메의 가슴에도 아지랑이 속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와 테헤란 국립대학 약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며, 틈이 날 때마다 여학교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잘 생긴 사이드를 발견한 순간, 그만 마수메의 오금이 탁 풀리며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는 거였다. 근데 알고 보니 여학생 거의 모두가 이 잘생긴 사이드한테 넋이 빠져 있었던 반면, 사이드의 눈엔 오직 콤에서 온 촌년 마수메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단계로 접어든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개방된 팔레비 정권이라 하더라도 미혼 남녀가 남의 눈을 무시하고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 여차하면 수십 명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래 기껏 생각해낸다는 것이 연애편지. 나도 한 때 연애편지 대필해주고 자장면깨나 얻어먹었는데(물론 짬뽕하고 군만두도 좀 먹었다), 이들 사이의 연애편지라는 것이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안 됐다.
 “그대의 몸에 의사의 손길이 필요 없길,
  그대의 섬세한 영혼이 다치지 않길.“
 물론 첫 번째 편지가 이런 수준이었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좀 더 진지해지긴 하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는 이슬람의 신을 믿는 신앙인이라 내 눈엔 건전하기가 짝이 없다. 이건 뭐 부처님들도 아니고 말이야.
 세상에 비밀이 있어? 이들 사이의 편지질은 남동생 알리의 염탐질과 큰오빠 마흐메드의 눈치로 드디어 편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여동생을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는 오빠들과 아빠는 아예 꼭지가 돌아버린다. 그 길로 (나중에 부랑자가 되어 길거리에서 객사할 운명에 처하는) 작은 오빠 아흐매드가 단도를 부여잡고 여학교 앞 약방에 쳐들어가 고향 콤에서라면 늘씬하게 초승달 모양으로 휜 단검을 사이드의 심장에 박아 넣었겠지만, 수도 테헤란에선 그랬다 하면 자신도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하는 걸 충분히 이해해서, 그냥 팔뚝에 자상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거기까지? 천만의 말씀. 피가 흐르는 단도를 거머쥔 채 집에 돌아와서 이제 본격적인 폭력이 마수메의 몸에 가해지기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자리를 뜬 후다. 즉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버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슬람식 의미란다. 아, 사이드. 이 남자는 우리의 마수메 가슴, 그 중에서도 심장에 먹줄로 그은 초상으로 자리해, 마수메의 남은 시간 동안 절대 지워지지 않는 재 속의 잉걸불로 타오를 줄, 그녀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탁월하게 공부를 잘 해 집안의 자랑이었던 마수메가 이제 집안의 수치로 전락해버려 하루빨리 결혼을 통해 자신들의 호적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근데 어디 쉽게 자리가 나나? 이슬람 여자인데 학교를 다녔고, 거기다가 공부로 잘했다네? 에이, 그럼 못쓰겠네. 불과 60년 전 한국에서도 여자가 똑똑하면 시집가기 쉽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 하나 같이 걸려드는 것이 큰오빠처럼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눈 하나 끔벅이지 않고도 여자를 두드려 패는 습관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건달들만 꼬이는 상황. 마수메는 만사 포기하고 결혼과 동시에 목숨을 끊으려 결심을 해 나날이 초췌해지는데, 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한 이웃 여자가 있었으니, 잔인한 작은 오빠의 정부 파르빈. 일찍이 자기보다 한 마흔 살 많은 불임의 부자 남자에게 시집을 와 한 많은 세월을 살며 외로움을 동네 깡패 아흐매드에다 대고 풀면서 살던 정 많은 여자로, 이 파르빈은 책이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마수메에게 호의적인 도움을 무한정으로 베풀어준다. 이 여자가 어디서 골랐는지 좋은 집안의 잘 배운 남자 하미드를 소개해 얼굴 한 번 못 본 채 결혼, 이후 아들 둘을 두고 갖은 고생을 하며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혁명을 거쳐 꼬부랑 할매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
 이 책의 독후감으로는 책의 줄거리밖에 쓸 수 없었는 바, 그건 내가 이슬람과 이슬람 국가에 대해,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줄거리가 진짜로 책의 내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모두 10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소설의 1장만 대충 요약했을 뿐이다. 좋다, 인심 써서 책 앞, 뒤표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 하나를 더 말씀드리지. 우리의 마수메, 그녀가 결코 사랑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아내의 도리를 다해 평생 섬기고 산 남편 하미드는, 공산주의자였으며, 그가 꿈꾸는 혁명 후 이란은 당연히 무신론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였다. 어째 좀 팔자가 드셀 거 같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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