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금련 중국전통희곡총서 3
웨이밍룬 지음, 김순희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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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금련과 무대, 무송 형제. 그리고 돈 많고 힘 센 매력남 서문경. 이들은 시내암의 <수호지>와 소소생의 <금병매>에 동시 출연한다. 시기별로 보면 진하, 설리, 남궁준광이 전성기를 누리던(이들이 어디서 등장하는지는 오늘의 퀴즈!) 원말명초에 쓰인 <수호지>에서 먼저 나왔고, 여기서 반금련과 서문경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다가 살을 붙여 명나라 때 쓴 작품이 <금병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수호지>를 지금 팔고 있는 책 껍데기와 다른 표지를 한 이문열의 민음사 초판으로 읽었는데, 세상에나, 당대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송나라 호걸영웅들이, 하다못해 최고의 인격과 학식과 덕을 지닌 주인공 송강조차, 얼마나 야만스런 행위를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해내는지 깜짝 놀랐다. 그게 뭔줄 아시나? 인육, 즉 사람 고기를 포식하는 것.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리 상태’의 중국 버전은 ‘인간은 인간에 대한 포식자predator’일 정도다. 영양가 높은 인육을 섭취하는 방법에도 계급이 있어서, 하층민들은 사람 고기를 다져 주로 만두소로 만들어 요리를 해 먹고, 상류층은 소장과 대장을 제외한 내장기관, 즉 간, 허파, 심장 등을 후춧가루 뿌린 소금 기름에 찍어 날로, 즉, 육회로 섭생한다. 어떠셔? 군침 도셔? 아 진짜라니까. 군자에다 영웅으로 이름난 송강 선생도 원수를 잡아 죽여 생간을 소금, 참기름, 후춧가루 소스에 찍어 자셨다니까.
 살인을 저지른 친구 뇌횡을 호송하던 중 범인을 놓아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맞고 창주로 유배된 영웅 ‘주동’이란 자가 있었다. 양산박에선 그의 행적과 의리와 인품을 높이 숭앙해 기꺼이 양산박으로 모시기 위해 꾀를 낸다. 주동이 원래 사람됨이 근사한데다가 학식도 높아 창주 성주가 어린 아들의 가정교사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는데, 글쎄 창주에 누가 오느냐 하면 뇌횡과 높은 이름을 떨치던 지다성 오용 선생이 떴던 거다. 그러나 나라에 대한 의리가 깊은 주동이 어찌하여 도둑의 무리인 양산박에를 들어가겠는가. 그래 거절했더니, 글쎄 자기가 가르치던 성주의 아들이 사라져버린다. 주동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데 뇌횡이 은근히 한 마디 하기를, ‘쌍도끼 이규도 함께 왔거늘 어찌 보이지 않나.’ 워낙 험악하고 잔인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은 이규가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냅다 달려갔는데, 이규는 벌써 성주 아들의 간을 꺼내 소금 기름을 묻혀 육회로 먹고 있었으며, 시체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거였다. 일이 워낙 커져 주동은 결국 양산박 패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런 일화가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앗, 너무 <수호지>에 관한 사설이 길어졌다.
 <금병매>를 읽어보지 않아 (솔출판사 어떻게 된 거야? 망했나?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계속 <수호지>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거기에 ‘무송’이란 이름의 영웅이 양산박으로 들어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양산박에 들어갔다 하면, 그이는 누가 됐건 간에 송나라의 메인 플로우에서 탈락한 아웃사이더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잘 나가던 무인 무송이 하루는 업무 차 고향 도시에 들렀는데, 벌써 마흔다섯 살이 된 큰형 무대가 그 새 반금련이란 젊고 아름다운 여인한테 장가를 든 거다. 지금이야 마흔다섯이면 한창 때지만 송나라 시절에 사십오 세면 이미 발기부전 증상이 상당히 진전된 할배였다. 물론 이도 거의 다 빠져버렸을 거다.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를 봐도 무대를 앞니 두 개로 특징하지 않았는가 말이지. 그래 둘 사이에, 금련이 입장에서 보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거늘 도무지 하늘을 볼 기회가 없어 아이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해 히스테리만 늘어나던 찰나,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은 무송이 눈앞에 있으니 온몸이 근질거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이거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의 영웅 무송이 또 어찌 형수를 꾸짖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어느덧 몇 날이 흘러 무송이 떠나고 이젠 생과부 신세를 한탄만 하던 금련 앞에 돈 많고, 힘 좋고, 덩치 크고, 활수한 서문경이 등장하니 이들의 로맨스(라고 해주자)는 필수 코스였던 것. 둘 사이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는 떡장수 무대. 어느 날 무대는 독을 먹고 픽 쓰러지더니 그 길로 횡사를 하고, 형의 부고를 들은 무송이 다시 돌아와 사태를 파악해 서문경을 때려죽이고, 금련을 칼로 쪼개 죽이고 자신은 스스로 잡혀 귀양을 가던 중 어찌어찌 해서 양산박 도둑떼에 들게 된다.
 너무 내용을 자세하게 얘기한다고? 천만의 말씀.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 중국 전통 가극인 천극川劇과 월극越劇, 80년대 디스코, 서양의 오페라 등이 마구 섞이고, 등장인물도 송나라 시절 무대, 무송, 반금련, 서문경, 80년대 중국 소설의 주인공인 ‘여사사’, 배나온 대머리 브론스키 백작을 죽자고 사랑해 공작duke 남편과 새끼까지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안나 카레니나마저 등장하는 신 전통희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여사사가 사실상 희곡을 교통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읽었는데, 반금련의 행위가 현대의 관점에서 정말로 죽을죄인지, 아니, 죄이기나 한 것인지 새로이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망라한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자소서를 읽고 자기 방식대로 노래하고 춤도 추고, 반금련의 행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근데 내 생각엔, 옛날 것은 옛날 것으로 그냥 좀 내비두면 안 될까, 했다. 꼭 지금의 규범으로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긴, 그건 극작가 마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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