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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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가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를 잇는 아일랜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존 벤빌의 대표작이자 맨부커상 수상작.” 좋다.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를 엮는 건. 하마터면 베케트가 조이스의 사위가 될 뻔했으나, 정작 베케트는 조이스의 정신 나간 딸 루이스가 그렇게 기다리던 고도에 불과했을 뿐이지만. 그러나 이 라인에다가 밴빌까지 엮는 건 전적으로 상술일 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아일랜드가 물이 좋아 유독이 글 맛나게 쓰는 작가들이 우글거리는데, 밴빌을 꼭 다른 빨강머리 아일랜드인하고 비비자면(사실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긴 하지만) 조이스나 베케트 대신 윌리엄 트레버하고 엮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왜냐고? 존 밴빌을 읽으면서 윌리엄 트레버에서 자주 발견하고는 했던 상실, 추억, 감상 같은 것들이 자주 눈에 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내가 아는 게 있나.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주인공 맥스 선생께서 암종으로 마나님을 보낸 다음에 저 50년 전 자신의 소년시대 한 시절을 보낸 바닷가 휴양지의 여름별장 시더스를 방문하는 이야기다. 그의 기억 속에 휴양지에도 계급이 있어 가장 높은 곳에는 별장을 짓고 여름마다 방문해 계절을 즐기는 족속, 2번이 여름별장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사용하는 집단, 3번이 호텔에 숙박하며 여름을 나는 부자들인데 골프 호텔에 머무는 인간들이 다른 호텔보다 좀 더 우세하단다. 4번이 저 50년 전 소년시대의 맥스 소년 가족처럼 우리말로 하자면 민박, 좋게 봐도 펜션 정도의 시설에서 며칠이나 몇 주 머물다 가는 서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지 주민. 이렇게 다섯 계급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책은 늙은 맥스가 현재와 유년시절이라는 먼 과거, 아내 애나가 자궁암으로 짐작되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가까운 과거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된다. 이런 작품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에서도 보듯) 거의 공통적으로 매우 섬세하고, 감정표현에 충실하며, 대화가 별로 없는데, <바다>에선 그래도 대화가 적지 않은 편이다. 대화가 있더라도 따옴표 같은 기호를 붙이지 않음으로 독자로 하여금 더 침잠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벤빌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저 먼 먼 소년시대. 소년 맥스는 휴양시설 시더스에 머무는 그레이스 집안의 안주인이자 넉넉한 몸매의 소유자 코니 그레이스 여사한테, 한 눈에 반해버린다. 그래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쌍둥이 남매 클로이와 말 못하는 마일스에게 접근해 소년다운 친밀감으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 모래밭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수영을 잘하는 쌍둥이 남매는 물에 뛰어든 사이, 포도주를 몇 잔 마신 코니 그레이스 여사가 낮잠에 빠져들면서, 맥스의 눈앞에서 무릎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허벅지와 교차점, 흰 내의를 입었지만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지역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죽음의 이미지. 이 죽음의 이미지에 관해서 더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의 결말 부분까지 다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즉, 이 책은 상실, 죽음이라는 상실, 남았다는 상실에 관한 쓸쓸한 이야기라는 뜻.
 그런데, 정직하게 이야기해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이게 원작의 문장이 매우 섬세해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게, 소수를 제외하고 문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지겹게 느끼도록 썼기 때문인지, 한국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리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짧은 영어로 원서까지 뒤져보는 망측한 일에도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차 안에서도 우리는 호텔 앞 잔디밭의 야자나무들이 꿈을 꾸듯 마른 잎을 비벼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래전 자줏빛 여름밤이면 아라비아의 모든 것을 약속하는 듯하던 소리였다.”  50~51p.


 '자줏빛 여름밤이면 아라비아의 모든 것을 약속하는 듯하던 소리'가 어떤 소리일까? 이건 앞 문장을 읽어도 어떤 소리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묘사가 책읽기의 진도를 빼는 걸 적극적으로 방해를 한다. 근사하기는 하지만 어째 아무 내용이 없다. 지금 모더니즘 시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예를 들 문장들은 더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하자. 트레버의 <루시 골트 이야기>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째 나는 정영목 씨의 문장과 궁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그의 번역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함부로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불행한 경우 뼈도 못 추릴 정도의 명성을 누리는 역자에게 이렇게 얘기하기가 심히 불안하고, 건방져 보이는 것 같고, 혹시 고소당하지는 않나 겁도 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불만의 약간만 운을 떼보자면, 정영목 씨가 영어를 영어로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국가대표일지는 모르나, 그의 한국어 문장 만드는 솜씨는 모든 한국인의 평균 수준 이상인 것 같지는 않다. 어렵고 근사한 단어만 쏟아낸다고 고객인 독자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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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18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새로 재개정판이 나온다는 뉴스를
듣고 새로운 역자를 기대했으나 역시나
였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을 맡았
던 역자에게 고대로 번역을 맡기다니.
과연 얼마나 구간하고 다를 지 궁금했
습니다. 물론 비교 검토해볼 열의는 없었
구요.

처음에 읽을 적에는 정말 버거웠던 기억
입니다. 그래도 두 번 읽을 때는 익숙해
져서 그런지 좀 낫더군요.

Falstaff 2019-09-18 11:01   좋아요 0 | URL
거의 바꾸지 않았다고, 재개정판이 아니라 그냥 복사판이라는 데 만원 겁니다.
이런 책들 무지 많습니다. 같은 역자가 계약 기간 끝나 다른 출판사로 옮겨 전에 번역한 거 그대로 써먹는 거요. 유명 역자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제가 말씀드리는 ‘유명역자‘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들어있지 않습니다만.
제가 따온 첫 문장에서 ‘문둥이‘가 나오잖아요? 문둥이가 문학동네의 줄임말이라네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