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사람
토마스 만 지음, 김현진 옮김 / 나남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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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만의 후기 작품으로 대개 <파우스트 박사>, <요셉과 그 형제들>, <선택받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 미완성 유고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이렇게 네 작품을 꼽는다. 모두 좋은 품질로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다행히 읽어볼 행운을 얻은 바, <파우스트 박사>에서는 예술가의 본질을 밝히려 애썼고, <요셉과 그 형제들>과 <선택받은 사람>에선 야곱, 요셉의 이야기와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추출한 내용의 기독교 내외적 해석을 꾀했으며,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미완성으로 끝나 딱히 특정할 수 없지만 근엄하게만 생각해왔던 토마스 만이 이런 코미디도 썼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던 적이 있다. 사실 만의 후기 세 작품은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와 더불어 작품 속에 은근하게 배어 있는 토마스 만 특유의 ‘점잖은 유머’가 의미심장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즐거움인지는 직접 읽어보셔야 알겠지만.

  이 책 <선택받은 사람>을 열면, “종소리, 도시의 하늘에, 온 도시 위에 여운에 가득 찬 공중에 울려 퍼지는 노도와 같은 종소리!”라는 영탄문으로 시작하는데, 이 거대한 종소리는 이제 아일랜드 출신의 베네딕트회 사제 신분인 클레멘스가 성 갈렌 수도원에서 카롤링거 왕조 때의 학자이자 시인인 노트커의 책상에 앞에 앉아 이야기의 정령이 자신의 입과 글을 통해 소설을 시작함을 알리는 일종의 경종 소리이다. 그리고 클레멘스는 아래와 같은 짧은 시를 소개하면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어느 군주가 있었다네. 이름은 그리말트

  실신하여 쓰러졌도다.

  분명 두 아이를 남겼으나

  아, 그들은 한 쌍의 죄인이 되었도다!


  플랑드르와 아르투아, 그러니까 지금 지명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 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공국에 군주인 ‘그리말트’가 있었으니, 카스타리엔 산의 구름 같은 말 구베요르스 위에서 장검 에케작스를 들고 벨라페르 성 위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위풍당당하고 어진 심성으로 이름을 떨친 바가 작지 않았으나 세상에 모든 것이 행복한 사람은 애초에 없는 법. 이 군주에게는 자신의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것이 단 한 가지 근심거리였다. 대공부인 바두헤나가 벌써 마흔이 넘어 이제 희망을 포기해야 할 처지였던 터이지만, 저 동방에 사는 심학규의 처 곽씨부인도 마흔이 넘어 치성을 드린 끝에 심청을 나은 본보기가 있어서, 쾰른, 우트레히트, 마스트리히트, 휘티히 등의 대주교들로 하여금 대미사를 집전하게 했더니 그 효험이 있었던지 아홉 달 만에 아들 빌리기스와 딸 지빌라를 한꺼번에 얻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신이 벤치마킹한 곽씨부인처럼 바두헤나 대공부인 역시 아들 딸 쌍둥이를 낳고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이들은 당연히 매우 귀하게 자랐지만 일곱 살에 똑같이 마마에 걸려 며칠을 괴로워하다가 너무 심하게 긁는 바람에 이마 한가운데, 딱 같은 자리에 초승달 모양의 옴폭한 구멍 같은 흉터를 지니게 되었다. 이들은 여덟 살, 열 살이 되도록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다녔고 침실을 함께 사용하며 언제나 어린 상태로 남고 싶어 했으니 그래야 평생 자신들이 같은 방을 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들도 점점 자라, 이제 빌리기스는 호리호리한 상앗빛 몸에 비해 너무도 커서 야만인 같은 하체를 가지게 된 것을 유모들과 하녀들이 감탄하며 수군대기 시작했고, 이때마다 여동생 지빌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갖고 싶어. 이 소꿉친구는 내 거야. 그에게 수작 부리는 여자들은 눈을 뽑아버릴 거야. 낸 대공의 딸이니까 그래도 벌을 받지 않을 거야.”

  이들의 아버지이자 홀아비인 그리말트 대공은 아들보다 딸을 더 사랑했다. 자연스레 될 수 있는 한 오래 딸을 곁에 두고자 하는 욕심은, 에스카발론의 왕이 정중한 편지를 통해 지빌라에게 청혼한 것을 거절하는 것으로 시작해, 안쇼우베의 늙은 왕이 아들 샤피오르를 위한 청혼을 비롯, 이포탕트의 쉬오라르스 백작, 가스코뉴의 공작 오발로, 발라이스 군주 플리호플리헤리, 헤네가우와 하스펜가우의 지배자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청혼을 모두 물리쳐, 결과적으로 구혼자들로 하여금 불쾌한 증오심의 필터를 통해 플랑드르와 아르투아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들이 열일곱 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위풍당당하지만 인자한 군주 그리말트 대공이 정수리에 중풍을 맞아, 어의들로 하여금 며칠 남지 않았으니 이제 유언을 준비하라는 진단을 내리게 한다. 군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신들과 친척들을 모두 모아놓은 그리말트 대공은 왼쪽 입술 한쪽만으로 아들 빌리기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고, 빌리기스에게는 자신이 지빌라의 혼인을 과하게 미루어 지빌라의 장래를 망치기도 했고, 여러 나라 궁정으로 하여금 그리말트 가문에 앙심을 품게 했으니 빠른 시일 안으로 알맞은 배필을 찾아주라고 당부하고, 며칠 후 어의들의 진단대로 두 번째 중풍에 강타당하여 숨을 거두고 만다.

  이제 그리말트 대공은 이퍼른 사원의, 17년 전에 아내가 안장된 아내 곁에서 영원한 잠에 들게 된 날. 여전히 남매는 같은 방을 썼으나 이젠 둘 사이에 궁에서 키우는 덩치 큰 개 하네기프가 그들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인 듯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악마 발란테가 사악한 권고에 따라, 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괜히 악마 탓을 하는지는 몰라도, 빌리기스는 소름끼치는 악한 쾌락의 도구가 되어 쾌락을 자신들의 것으로 오인한 채 개 하네기프를 넘어 지빌라의 침상에 오른다. 그리하여 이제 남매가 아니라 여자와 남자로서 동침하려 할 때, 충실한 개 하네기프가 달을 올려다보며 비탄의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고, 이에 이미 검술을 익힌 빌리기스는 침상에서 내려와 단검으로 하네기프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피 묻은 손으로 동생의 침대를 다시 올라 남매의 첫 번째 쾌락을 몰고 온다. 쾌락, 그리고 잠깐 후, 남매이자 지아비, 지어미가 된 이들의 귓가에 악마 발란테의 속삭임은 계속 이어진다. ‘이제 일은 저질러졌다. 너희들은 그 짓을 한 번 더 해도 좋고, 몇 번이고 해도 좋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이, 언제나 쾌락을 동반하지만 그 끝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니 이들 앞에도 치명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점은 누구든지 짐작할 수 있을 터. 과연 어떻게 이야기가 풀려갈까.

  여기까지 써 놓으면 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은 대개 이런 스토리려니,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정확하게 이제 도입부가 끝났을 뿐. 지금부터 <선택받은 사람>의 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직 ‘선택받은 사람’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토마스 만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 소설 역시 금지된 영역의 해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란 보다 기독교적 고민의 결과물이란 귀띔 내지 힌트만 드리겠다. 지금 소개한 내용이 A4 용지, 폰트 10으로 한 장하고 열다섯 줄가량 되지만, 마음먹고 늘려 쓰면 열 장도 가능하다. 이야깃거리도 그만큼 충분하다. 이게 다 토마스 만의 무시무시한 입담 때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독후감에서도 같은 말을 했듯이 어떤 디테일 하나도 그대로 지나가지 못하는 전형적 독일 작가의 꼼꼼함이 가히 놀랄 만한데, 이 책에선, 비록 위의 요약 스토리에선 그걸 살리지 못했으나, 곳곳에서 ‘점잖은’ 웃음거리를 포함하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꼼꼼한 독서와 집중을 원하고 있다.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것, 그걸 한자어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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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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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랫동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최인훈의 연작소설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박태원이 갑술해인 1934년에 쓴 중편소설이며, 최인훈이 이를 1969년부터 72년까지의 서울을 무대로 리메이크 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함을 했다. 지나보면 슬픈 추억이다. 어찌 박태원이란 소설가가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에 있었다는 걸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배우질 못했을까. 그 많은 선생들은 가르쳐주질 못했을까. 물론 박태원이란 소설가가 있다는 얘길 들을 다음에도 수십 년이 흐른 올해 초여름에야 겨우 <천변풍경>을 읽게 됐고, 그만 박태원 만의 작풍이 마음에 들어 중단편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꼭 읽고야 말겠다고 작심을 해 드디어 읽었다. 중단편집 한 권을 읽고 별 다섯 개로 평점을 준다면, 책 속의 거의 모든 작품이 내 마음에 들어야 다섯 개가 나오는 법이니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거의 만점과 다름없는 네 개를 주고자 한다. 이중에 가히 백미는 역시, 표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다른 작품에 관해서도 할 얘기는 많은데, 워낙 <소설가 구보....>가 눈에 띄어 이 중편 한 작품에 대하여만 독후감을 쓰려 한다. 구보 씨의 가족은 늙은 어머니와 형수, 구보 이렇게 세 명, 그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조카. 구보는 귀에 중이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병을 앓은 이후 눈eyes에 확실히 문제가 있는 소설가. 소설을 써서 팔아 생계에 보태야 하는 소위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원고도 잘 써지지가 않고, 써봤자 흔쾌히 글을 사려는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도 별로 없다. 하는 일은 오전 열한 시나 일어나 오정 때쯤에 외출을 해 밤늦게 귀가해 해가 밝아오도록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 이런 가족이 <소설가 구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 출현한다. 다만 시간이 변함에 따라 가족의 형편이 나빴다가 조금씩 좋아져 제일 마지막 작품 <재운>에 이르면 월 3백 원 이상의 원고료 수입으로 행랑채에 군식구까지 거닐고 살 정도가 된다.
  이 작품에선 구보가 어머니의 “일쯔거니 들어오거라.”는 당부의 말씀에 크게 대답하지 않고 오정에 집을 나서 다음날 새로 두 시까지의 약 열네 시간에 걸친 구보 씨의 하루 행적을 쫓고 있다. 구보 씨의 집은 <천변풍경>의 무대인 광교 부근. 종로로 나가 일단 동대문 방향의 전차에 탑승을 하고, 행복이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잡생각을 하다 문득 낯익은 여성을 발견한다. 작년 여름에 선을 본 여성으로 마음에 있었지만 저쪽에서 자신을 과연 합당하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고심하다가 그만 하릴없이 시간만 흘려 혼담을 놓친 아까운 상대였다. 여성은 동대문에서 내리고 구보는 다시 종로 네거리로 돌아와 이때부터 새벽 두 시까지 종로통과 광교까지를 무대로 온갖 벗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당연히 전편에 걸쳐 일관된 주제의 스토리도 없고 그저 벗들, 그들과의 친밀함과는 상관없이 인연이 있어 길거리에서 우연히 또는 미리 전화를 해 약속을 하고, 아니면 불문곡직 직접 찾아가 만나는 벗들과 얽힌 이야기, 단편fragment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구보가 스쳐지나가거나 거리를 특정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들을 보면, (경성제국)대학병원, 조선은행, 경성역 대합실, 종로경찰서, 도청, 체신국, 광화문통, 조선호텔, 경성우편국, 종각, 낙원정, 광교 등이니 비록 열네 시간 동안에 걸치긴 했지만 여러 곳을 주로 걸어서 다녔다면 가뜩이나 체력이 좋지 않은 구보 씨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하루 일과 가운데 퇴근 시간 가까울 때니까 오후 여섯 시 가량해서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일하는 관계로 하루에도 세 번씩 경찰서, 도청 등을 들락거리며 살인강도와 방화범들에 관한 기사를 써야 하는 시인 동무를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인 동무가 열심히 구보 씨에게 <율리시즈>를 논하는 동안 구보 씨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진즉에 이 작품이 <율리시즈>를 축약해놓은 것처럼 비슷한 분위기인 것이 박태원이 <율리시즈>를 읽고, 그것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소설가 구보....>를 썼을지도 모른다 싶은 생각이 이미 꽉 박혀 있는 상태에서, 시인 동무가 <율리시즈>를 논하기에 이른다. 디덜러스가 하루 온 종일, 다음날 아침까지 헤매고 다닌 더블린 시내를 축약하면 구보 씨가 쏘다닌 종로-경성역-광교 부근일 수도 있겠다는 거. 구보 씨도 이 도심벨트를 따라 온갖 종류의 벗들과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 자신의 연애 이야기부터 사랑, 행복, 돈, 문학, 불평등 등에 관해 다방면으로 비연관적인 사색을 하게 된다.
  소설 좋아하는 이들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박태원의 대표적인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한 번 읽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 다른 이도 아니고 우리 현대문학사의 큰 별인 최인훈마저 이 작품을 패러디했을 정도였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쓴 모더니스트가 코뮤니즘을 선택해 북쪽으로 갔을까, 내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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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와 화로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임화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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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서울 낙산 근처에서 출생한 카프 시인. 엣다 모르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국전쟁 이후 북으로 간 시인, 작가들 가운데 빛나는 사람들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북쪽의 체제를 택함으로써 수십 년 간 베일에 싸인 작품들 덕에 신비의 안개를 두른 전설들도 있다. 나는 이 가운데 한 명으로 임화를 꼽겠다. 아놔. 시집 읽다가, 읽다가, 읽다가, 도중에 때려치우기는 또 처음이다. 내가 이래봬도 박상률의 시집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다. 근데도 도무지 못 읽겠다. 실로 카프 문학의 정점인 건 맞다. 그러니까 이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부지기수고, 연구한 결과물을 엮은 책들도 그리 많겠지. 근데, 고운 꽃노래도 삼세번 아냐? 투쟁과 혁명과 고난의 행군의 목소리를 그리 일관되게 부르짖으면, 나중엔 도대체 이게 시, 그니까 노래인지, 구호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인물이나, 심지어 삐라 아냐, 싶은 마음이 든다. 진짜다, 읽어보시라. 지금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를 읽는 사람 있어? 아니다, 다시 묻겠다.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를 읽는 사람 아직도 많이 계신겨?
  같은 의미로 카프의 시는 고인에겐 아쉽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시집의 명패가 얼마나 예쁜가. <우리 오빠와 화로>라니. 그렇지? 좋다. 전문은 아니더라도 한 연만 소개한다. 어떤 오빠이고 어떤 화로인지.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 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 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부분)


  감잡히지? 어떤 오빠라는 거. 임화 이이가 동경 유학생 출신으로 1935년 제2차 카프 검거 때 진영의 대표 자격으로 카프 해산계를 일경에 제출한 다음에, 이젠 더 이상 카프 문학을 할 수 없으니 변신할 필요가 있어 선택한 것이 난데없이 다다이즘, 내가 보기에 초현실주의다. 다다이즘하고 초현실주의의 공통점이 무척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카프문학이 극적으로 배격하는 사조라는 거.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 비슷할 듯. 임화의 신상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1차 카프 검거 당시엔 붙잡혀 들어가 몇 개월 살다가 불기소 의견으로 방면되어 나와, 적어도 유치장 짬밥 맛은 봐서 이 경험을 (위에서 인용한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처럼) 두고두고 울궈 먹는데, 2차 카프 검거 때는 그동안 걸린 폐결핵으로 검거 대상 리스트에서 지워지고, 대신 친일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을 해 평의원으로 활동해야 했다.
  뭐 기분이야 이해가 간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투쟁하다가 난데없이 제국주의 일본에 보국報國, 나라의 은혜를 갚는 단체에 들어가야 했으니 오히려 더 심하게 반동의 형태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 그렇잖아, 안 그랴? 그때 이후 임화의 시에선 도무지 두 눈을 뜨고는 못 봐주는 “영탄의 해일”이 넘실거려, 나로 하여금 한 눈을 감고, 마치 스무 살 청춘인 듯 윙크를 하고(두 눈 뜨고는 못 읽어서) 시를 읽어야 했으니 어찌 시집을 끝까지 넘길 수 있었겠느냐고.
  에잇. 내가 또 카프 시를 읽으면 성을 간다. 사 놓은 건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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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1-12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임화 (저 표지의) 늙은 얼굴은 별로 안 잘생겼네요... ‘우리 오빠‘도 어쩔 수 없군요ㅋㅋㅋㅋ

Falstaff 2020-11-12 15: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세월 이기는 장사가 어딨어요. 저도 이렇게 변했는데.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1-12 15:44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하하라 “그 옛날 그 궁둥이 어디로 가고 뉘신고 하노라”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1-16 09:38   좋아요 0 | URL
제 왕년의 사진 업로드 했습니다. 토요일에 삭제 예정. ㅋㅋㅋㅋㅋㅋ
드뎌 토요일, 삭제 했습니다. 2박3일 동안 쪽팔림이 무한이었습니다.

잠자냥 2020-11-12 16: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나만 보기 아까운데 다들 어디 갔셨어욬ㅋㅋㅋㅋㅋ 다락방 님!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0-11-1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잠자냥 2020-11-12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 청년 임화와 폴스타프 무엇이 같고 다른가.
임화 http://artichokehouse.com/team/im-hwa

폴스타프 오늘 낮술 거하게 한잔한 것으로 밝혀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1-12 16:19   좋아요 0 | URL
아티초크 사진은 랭보 뽀샵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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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춘원 이광수에게 사사를 받았으며˝랍니다. 골 때려요. 이게 사실이면 이광수가 구보 박태원의 학생이었다는 건데, 춘원이 구보보다 16세 많거든요, 당시에 열여섯 살 차이면, 이광수가 박태원의 아빠 뻘입지요. 뭐 배움에 나이 차이가 있겠습니까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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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1-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했다‘, ‘사사받았다‘. 굉장히 많이 틀리는 표현 같습니다. ㅎㅎㅎ 걍 가르침을 받았다고 쓰면 쉬운 것을-

Falstaff 2020-11-12 16:07   좋아요 0 | URL
책 앞날개엔 ˝개인적으로 문학적인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라고 씌어 있어요. 을매나 좋아요, 이해하기도 쉽고. 괜히 잘난 척들을 하려고 참나. ㅎㅎㅎ

알라딘고객센터 2020-11-1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용에 불편을 끼쳐 송구합니다. 저자파일 수정하였고 반영에 평일1-2일 소요 예상됩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11-12 19:45   좋아요 0 | URL
윽! 서재에 올라오는 글을 전부 모니터 하시는 거예요? @@ 와.......!!!!!!!

Falstaff 2020-11-14 07:59   좋아요 0 | URL
고치긴 하셨는데, ˝이광수에게 사사하였다˝는 어색하고요, 이왕 수정하시려면 ˝이광수를 사사하였다˝가 훨씬 낫습니다. ^^;;
 
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딜런 토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아도니스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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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찌 고르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글쓴이가 딜런 토머스이잖은가 말이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미국의 유명 가수 밥 짐머만이 딜런 토머스를 숭배한 나머지 이름을 밥 딜런으로 고쳤다니. 이름까지 고친 그는 몇 십 년 후에 가사lyrics가 예술이라고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어 버렸단다, 으악.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딜런 토마스의 시는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번역시는 읽지 않는다, 라고 작정을 하기도 했고 영시를 즐길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딜런 토마스라는 웨일스 출신의 시인. 이이가 쓴 소설집이, 외국 작가가 쓴 단편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별 부담 없이 읽는 연작 형태의 성장소설이라니. 그리고 단편집의 저 도발적인 제목을 보시라. ‘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생각나게 하는 제목인데 거기다가 젊은이의 삐딱한 시선까지 곁들여 그냥 예술가가 아니라 ‘개예술가artist as a young dog'라고 했다. 제목으로 진짜 개쩐다.
  그러나 모두 열 편이 실린 이 단편집이 쩌는 작품들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작가 자신이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스완지의 농촌과 작은 도시와 해변에서 자라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파노라마라기보다는 시간별로 열 점의 수채화를 전시해놓은 것 같다. 자신의 리얼한 체험이라고 믿는 독자는 없겠지? 소년이었을 때, 사춘기 시절,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각 단계에서 작가가 상상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묘사했는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정당한 변주 기법이 들어갔을 터. 변주를 하지 않았다면 ‘개예술가의 회고록’ 쯤으로 제목을 달았겠지.
  그래. 수채화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극단적 은유의 나열로 골이 지끈지끈한 바로 다음에 담백한 수채화 구경을 하니 좀 개운해지는 것 같기는 한데, 다분히 도회적 취향인 나하고는 찰떡궁합까지 가지는 못해, 뒤로 갈수록 점점 곤란한 지경 근처까지 가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선 책의 편집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각주와 더불어 후주를 단 것까지는 좋다. 근데 후주가 무려 서른아홉 페이지에 달한다. 주석註釋 특유의 작은 활자로. 이미 서른세 페이지에 달하는 연표를 달고도 시시콜콜 작가가 왜 이런 ‘주석이 달릴 만한 단어나 문장’을 사용했는지 극히 세밀한 설명을 일반 독자에게 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봤자 내 인생에 더 이상 수능시험을 치를 일은 없을 텐데. 주석이 있는 페이지로 건너가서 주석을 해독하는 일이 정작 본문을 읽는 것보다 더 까다로우면 어떻게 하냐고.
  이런 수준의 단편을 모아놓았으면, 그것이 불과 240쪽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적당한 분량의 해설, 연표, 주석을 붙여 좀 얇은 책으로 해도 충분히 좋을 것을. 암만 생각해도 편집자의 의욕이 과했다. 솔직히 말해, “친절한 의도는 고맙다.” 근데 과했다.
  수채화 같은 단편들. 그건 보장. 수채화 좋아하시는 독자들에겐 후회 없는 선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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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1-1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특별히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죠?
소설을 수채화처럼 쓰는거 저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팔스타프님 이 리뷰 읽으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진단 말이죠.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Falstaff 2020-11-11 14:02   좋아요 0 | URL
옙. 제임스 조이스 작품들하고 유사점은 특별하게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읽고 있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완전 조이스인 걸요. 지금 연속해서 깜짝 놀라는 중입니다.
아이구, 전 완전 아마추업니다. 읽으신 다음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

em 2021-09-0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기하게 위 댓글처럼 저도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딜런 토마스 작품은 시 몇 편과 편지 몇 통, 희곡 등 영어로만 접한 바 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번역본 중 재미있는 작품이 있을지 찾아보다가 리뷰 잘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Falstaff 2021-09-07 19:25   좋아요 0 | URL
더블린 사람들을 생각하시게 제가 독후감을 쓴 모양입니다. 하하하.... 하긴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영국 땅이 웨일스이군요!
영어권 독자들은 이 딜런 토마스한테 껌뻑 넘어가는 모양이더라고요. 저야 뭐 극동의 변방 독자로 그것까지는 알지 못해도, 그래도 뭔가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