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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와 화로 ㅣ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임화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평점 :
1908년 서울 낙산 근처에서 출생한 카프 시인. 엣다 모르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국전쟁 이후 북으로 간 시인, 작가들 가운데 빛나는 사람들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북쪽의 체제를 택함으로써 수십 년 간 베일에 싸인 작품들 덕에 신비의 안개를 두른 전설들도 있다. 나는 이 가운데 한 명으로 임화를 꼽겠다. 아놔. 시집 읽다가, 읽다가, 읽다가, 도중에 때려치우기는 또 처음이다. 내가 이래봬도 박상률의 시집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다. 근데도 도무지 못 읽겠다. 실로 카프 문학의 정점인 건 맞다. 그러니까 이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부지기수고, 연구한 결과물을 엮은 책들도 그리 많겠지. 근데, 고운 꽃노래도 삼세번 아냐? 투쟁과 혁명과 고난의 행군의 목소리를 그리 일관되게 부르짖으면, 나중엔 도대체 이게 시, 그니까 노래인지, 구호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인물이나, 심지어 삐라 아냐, 싶은 마음이 든다. 진짜다, 읽어보시라. 지금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를 읽는 사람 있어? 아니다, 다시 묻겠다.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를 읽는 사람 아직도 많이 계신겨?
같은 의미로 카프의 시는 고인에겐 아쉽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시집의 명패가 얼마나 예쁜가. <우리 오빠와 화로>라니. 그렇지? 좋다. 전문은 아니더라도 한 연만 소개한다. 어떤 오빠이고 어떤 화로인지.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 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 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부분)
감잡히지? 어떤 오빠라는 거. 임화 이이가 동경 유학생 출신으로 1935년 제2차 카프 검거 때 진영의 대표 자격으로 카프 해산계를 일경에 제출한 다음에, 이젠 더 이상 카프 문학을 할 수 없으니 변신할 필요가 있어 선택한 것이 난데없이 다다이즘, 내가 보기에 초현실주의다. 다다이즘하고 초현실주의의 공통점이 무척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카프문학이 극적으로 배격하는 사조라는 거.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 비슷할 듯. 임화의 신상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1차 카프 검거 당시엔 붙잡혀 들어가 몇 개월 살다가 불기소 의견으로 방면되어 나와, 적어도 유치장 짬밥 맛은 봐서 이 경험을 (위에서 인용한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처럼) 두고두고 울궈 먹는데, 2차 카프 검거 때는 그동안 걸린 폐결핵으로 검거 대상 리스트에서 지워지고, 대신 친일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을 해 평의원으로 활동해야 했다.
뭐 기분이야 이해가 간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투쟁하다가 난데없이 제국주의 일본에 보국報國, 나라의 은혜를 갚는 단체에 들어가야 했으니 오히려 더 심하게 반동의 형태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 그렇잖아, 안 그랴? 그때 이후 임화의 시에선 도무지 두 눈을 뜨고는 못 봐주는 “영탄의 해일”이 넘실거려, 나로 하여금 한 눈을 감고, 마치 스무 살 청춘인 듯 윙크를 하고(두 눈 뜨고는 못 읽어서) 시를 읽어야 했으니 어찌 시집을 끝까지 넘길 수 있었겠느냐고.
에잇. 내가 또 카프 시를 읽으면 성을 간다. 사 놓은 건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