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김기림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8년 함경북도 성진 생. 본명은 인손仁孫, 아명은 범의 손자 인손寅孫, 필명이 기림起林이니 필명 ‘기림’은 양반 계급이자 지역 부르주아에다가 한학자였던 큰아버지께서 어느 한시의 구절을 따 친히 지어준 이름이란다. 심지어 아호까지 멋있게 편석촌片石村이라 지어주었다 하니 그 양반 퍽이나 낭만적이다.

  김기림의 경우엔 나중에 월북이 아니라 납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이 역시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그저 김O림, 또는 김X림, 이렇게 배운 시인이어서 이이의 평가에 ‘베일에 가려진 시인’으로 약간의 프리미엄이 보태진 것 같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씀. 나중에야 김기림이 우리나라 주지주의 문학을 주창한 모더니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자의나 타의에 의해 북으로 가서 1988년에야 정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시인들의 경우에 유독 전집全集이 아니면 작품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이 시집 《바다와 나비》는 모두 다섯 부part로 나누어져 있는 바, 2부 “추억”과 3부 “아스팔트”에 그를 특징 지워주는 주지주의나 모더니즘 시가 스물다섯 편 실려 있고, 1, 4, 5부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제물포와 관북지역 기행의 시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기림하면 떠오르는 주지주의 시, 이성, 도시성, 회화성의 시들은 뭐 별로 다가오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꼬. 오히려 주정주의적인 시들이 더 좋았던 아이러니. 예를 들어 첫 번째로 실린 <길>이란 시의 전문을 먼저 읽어보자.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전문)



  이 시를 읽을 때 곤란한 건 셋째 연에 나오는 ‘호지다’라는 뜻을 모르겠다는 것 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호되다’ ‘오달지다’의 경기도, 충청도 방언이라고만 나와 있는데 시의 행간을 감안해 ‘취醉하다’, '홀리다' 또는 ‘넋을 잃다’ 로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하늘빛, 노을에 함북 젖을 수 있을 테니. 실제로 김기림의 모친은 딸만 여섯 내리 낳고 마지막에 낳은 맏아들이 만 여섯 살이 된 1914년에 운명해버리고 만다. 그래 김기림은 어머니의 상여가 나갔고, 더 세월이 지나 이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소녀도 죽었거나 시집을 가버린 강가 길, 버드나무 고목 아래 해가 지도록 섰다가 기어이 감기를 얻어 돌아오고는 했나 보다. 뭐 인생이 그렇지. 양반집 도련님에 큰 과수원집 외아들로 일본에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무려 두 번이나 (일본대학 문화예술과, 동북제대 영문과) 졸업한 유복한 자제라고 뭐든지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

  반면에 모더니즘 시들에 관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여기서 ‘별로’라는 부사를 빼고 그냥 “매력적이지 않다.”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예를 들어보자.



  아스팔트



  아스팔트 우에는

  사월의 석양이 졸리고


  잎사귀를 붙이지 아니한 가로수 밑에서는

  오후가 손질한다.


  소리 없는 고무바퀴를 신은 자동차의 아기들이

  분주히 지나간 뒤


  너의 마음은

  우울한 해저


  너의 가슴은

  구름들의 피곤한 그림자들이 때때로 쉬려오는 회색의 잔디밭


  바다를 꿈꾸는 바람의 탄식을 들으려 나오는 침묵한 행인들을

  위하여

  작은 아스팔트의 거리는

  지평선의 숭내를 낸다.  (전문)



  아직 잎이 붙지 않은 가로수 아스팔트 길을 그렸다. 당연히 당시 시각으로 도시적인 작품일 터이지만 솔직히 너무 구태 아닌가. 그래서 뭐 어땠는데? ‘햇살이 지붕에서 굴러내리고’, 뭐 이런 시들하고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것처럼 읽힌다. 아, 여기서 분명하게 한마디 하자. 나는 시를 즐길 뿐이지 무슨 일가견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 공부해본 적도 없다. 충실한 아마추어일 뿐. 그러니 이 비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기를.

  나는 청소년기부터 지평선에 대한 로망을 가져왔다. 저 벌판. 아득하게 멀고 먼, 멀고 먼 저 땅의 끝까지 가더라도 또다시 멀고 먼 지평선이 보이는 곳. 그리하여 몽골, 고비사막을 거쳐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꿈을 꾸고는 했는데,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바로 국경이었다. 그래 내게는 국경에 대한 아득한 동경이 있었다. 사정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쪽 나라의 국경. 그런 시가 이 시집에 한 편 실려 있다. 어찌 소개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경



  1

  저렇게 털모자를 쓰고 나서면

  단포쯤 옆구리에 차고 싶을 걸

  저렇게 다리 굵은 아기네가 목도리를 감아주면

  이만쯤 눈포래엔 황마찬들 못 달리랴


  2

  차에서 나리자마나

  어느새 한대寒帶가 코를 깨문다


  3

  살찐 화교가 나무상에 기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조국의 소란을 걱정스레 엿듣는 거리―


  4

  지도를 펴자

  꿈의 거리距離가 갑자기 멀어지네  (전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산 대산세계문학총서 160
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마카닌 지음, 안지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라디미르 마카닌이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 보았다.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는 작가 약력, 위키피디아 내용, 책 뒤편에 달린 연표 등으로 이이의 한 살이를 유추해보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들의 전형적인 생을 보는 듯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남서쪽에 위치한 오렌부르크의 작은 도시 오르스크에서 1937년에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수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한 후 군사학교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출판사에 다니며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비에트가 조종을 울린 것을 목도한 후 이른바 포스트 소비에티즘 문학의 기수로 이름을 높일 작품들을 여럿 쓰고, 고향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한 로스토프의 크라스니에서 노년 대부분을 지내다, 2017년 그곳에 묻힌 작가. 이렇게 간단하게 평생을 요약하는 건 사실 고인 입장에선 좀 섭섭하리라. 노년에는 매년 올해의 노벨 문학상이 내게 떨어지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다가 번번이 미역국을 마셨으나, <아산>을 읽어보시면 단박에 아시겠지만, 아후, 내공이 보통 아니다. 앞으로도 이 사람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읽어보기 위해 서슴지 않고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
  먼저 ‘아산’에 대하여.
  무대는 21세기 2차 체첸분쟁이 아직 덜 끝난 시점이다. 아직도 완전히 끝난 상태라고 보기 힘든 분쟁지역이긴 하지만. 물론 주인공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치 질린 소령이 캅카스 지역으로 파견을 온 것은 1994년 12월에 시작한 1차 체첸분쟁 중이었으며, 주인공의 회상에 의하여 독자는 1996년에 휴대전화 위치정보 서비스를 통해 존재가 발각이 난 초대 체첸공화국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가 미사일의 정밀타격에 당해 아예 존재도 없이 사라지기 전, 두다예프와 만난 기억까지 호출하니 체첸분쟁 전반을 거의 아우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캅카스의 수도 그로즈니에는 러시아 연방국의 사령부가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 일찍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엔 용맹을 떨쳤으나 이후 급격하게 전투력을 상실해 이제 사령부 내부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장군’이란 호칭으로 근사한 집무실에 아무 방문객도 없이 노상 책만 읽는 바자노프 장군이라고 있었다. 그래도 장군의 봉급을 받으려면 타이틀이 하나 있어야 하는 법, 이이는 ‘현지인과의 교류 담당관’이란 모호한 직책을 부여받은 바, 이게 딱 장군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이가 이젠 거의 잊혀버린 체첸 역사와 민속에 관해 누구보다 깊게 공부를 했고, 구전으로 전해온 민족의 우상 가운데 최고의 우상인 ‘아산Asan'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장군은 작품 후반에 잘못 계산된 다량의 폭탄테러를 당해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리스를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파죽지세로 동진을 할 당시 흑해 북쪽 역시 대왕의 검정 말 부케팔로스의 발굽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 속에 체첸의 선조들도 갖은 곤욕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 또는 그리스 군대를 피하여 체첸 사람들은 산 속으로 도망해 현재까지 삶을 이어왔으며,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은 이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이런 공포는 세대를 거치면서 막강한 힘, 패배를 모르고 오직 파괴만을 위한 절대적 힘의 상징으로 뇌성벽력과 천둥을 다스리는 신 비슷한 우상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 ‘알렉산드로스’가 수 십 대를 거친 체첸 사람들의 발성기관을 통해 ‘아산’으로 된 것이라고 바자노프 장군은 추론한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강력했던 우상으로 두 팔이 달린 거대하고 웅장한 새의 모습을 지녔으며, 이슬람과 달리 혈연에 근거한 복수, 즉 죽은 아비에 대한 복수를 아들에게 하는 것도 용인하던 우상, 신으로, 아직도 체첸 산山 사람의 영혼에 모태에서부터 간직된 불분명하고 희미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체첸 산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치 질린 소령을 ‘아산 질린 소령’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알렉산드르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비록 소령이 전투부대 지휘관이 아니라 유류품, 그러니까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윤활유 등, 하여간 병참 3종을 다루는 부대장이 자신들에게 강력한 힘을 쓸 수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책의 중간 이후에 전투만 했다하면 후퇴할 줄 모르는 막강한 전투력의 알렉산드르 흐보로스티닌 소령이란 작자도 등장해 체첸 사람들이 ‘아산 흐보리 소령’이라 부르는 것도 질린 소령의 경우와 같다.
  그럼 한갓 3종 병참부대장 질린 소령의 파워를 소개한다.
  이이는 정식으로 체첸 반군이건 체첸 농민군이건 간에 전투를 해본 적이 없다. 수송용 장갑 수송차와 일반 트럭, 그리고 몇 대의 지프를 가지고 연료를 수송하는 일을 한다. 휘발유는 전쟁의 피와 같다. 현대전에서 휘발유는 저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가 먹던 건초와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 시대의 탈것은 왕이나 장군뿐만 아니라 사병들까지 모든 병력을 실어 나르니까. 화기, 불기와 유난히 친한 유류품을 체첸 반군이 득실거리는 산악지역과 관목지역을 통과해 정확하게 배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편 체첸 반군 입장에서도 휘발유가 전쟁의 피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비록 습격을 할지언정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을 실은 차는 결코 폭파하지 않는다. 자신이 탈취해 쓰기 위하여. 과거 체첸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기 전 두다예프와의 담백한 논전을 통해 질린 소령은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스스로 찾았으니, 체첸 반군과 거래를 하는 거였다. 그들의 약탈을 막으려면 죽는다. 반면에 총을 겨누고 휘발유를 내놓으라는 반군한테 2백 달러, 한 통에, 라고 조건을 제시하면 적어도 돈은 받을 수 있다. 물론 죽지도 않고. 게다가 이슬람을 믿는 용감한 민족 체첸 사람들은 신용이 확실하다. 한 번 빚진 건 반드시 갚는다. 그걸 명예로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래 질린 소령이 만일 무한대로 군대 기름을 팔아먹는다면 당연히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야 할 것. 소령에겐 변하지 않는 선이 있다. 내 몫은 십분의 일. 일단 이렇게 정해지자 소령은 캅카스의 어떤 병참부대보다 정확하게 보급에 성공하는 능력 있는 지휘관이 되었으며, 러시아 연방군은 물론이고 체첸 반군에게도 막강한 힘과 거래술을 지닌 유명인사로 등극한다. 물론 이런 소령의 모습을 눈꼴시게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인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번 돈으로 뭐 하냐고? 분명히 얘기할 것은, 처음엔 자신의 목숨을 도모하고자 유류품을 판매했던 거라는 점. 그러다보니까 저절로 돈이 생긴 것이지 처음부터 축재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니라는 것. 하여튼 부정한 돈이 모이고 또 모이자 그는 러시아의 큰 강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나지 않은 강가에 적당한 크기의 땅을 사고, 적당한 크기의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정숙한 아내와 딸과 함께 여유 있는 만년을 보내고 싶은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맞다. 냉철한 거래와 단칼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고 공적 비품의 불법 판매를 통한 사익을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소령은 한 편으로 센티멘탈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달이 뜨는 저녁이 되면 자기만의 장소인 앞이 탁 트인 벤치에 앉아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해 딸 이야기, 집 짓는 이야기 등 사소한 일상을 시시콜콜 짚어가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도 안다.
  작가 마카닌은 체첸 분쟁을 심할 정도로 비틀어 버린다. 부정과 뒷거래와 의사소통의 부재와 알력과 미치광이들의 싸움과 인질 등, 사실 알고 보면 역사 이래 모든 전쟁에서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부정, 즉 정의가 아닌 일들을, 매우 매우 매우 시니컬하게 보여준다. 그래 러시아에서는 특히 참전 용사들이 마카닌에게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하는데, 세상의 어느 전쟁이 정의로웠던 적이 있었나. 애초에 정의란 없다. 전쟁에서는.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책은 소위 ‘남성용’이라는 딱지가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이젠 역자마저 안지영, 여자다. 여자가 번역한 군인, 전쟁터 장면, 특히 욕설의 경우엔 남자 역자보다 아직은 맛이 찰지지 못하다. 하지만 상당히 고급한 욕설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긴 한다. 그래 특히 1장의 경우엔 자주 과도하게 욕설의 원 뜻을 노출시켜 오히려 독자를 좀 불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고비만 넘기면 누구든지 아주 재미있게 6백 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읽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다. 독후감을 읽는 당신, 한 번 도전해보심이 어떠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르한 파묵은 서사로 끝장을 보겠다고 작정을 한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달리,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작품 대부분(그래봐야 이게 겨우 열 번째 독후감일 뿐인데) 읽어가는 도중에도 매우 탄탄한 구성으로 견실한 탑을 세우는 작가라고 감탄을 하고나서 정작 다 읽고 나면 그리 큰 재미를 찾지 못했다는 걸, 늦게야 알아차리게 되는, 이를테면 브루크너의 교향곡 같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 범주에 들지 않아서 읽으면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던 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하얀 성>,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고 내가 부르짖는 <내 이름은 빨강>. 여기에 재미도 있고, 심지어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의 관을 쓸 수 있는 작품으로 나는 이 뛰어난 정치소설이기도 한 <눈>을 추가한다.
  지금이 2020년 말. <눈>을 쓰기 시작한지 21년이 됐고, 탈고한지는 만 20년에서 한 달이 빠진다. 이제 파묵은 더 이상 정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니 좀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 하긴 우리 나이로 내년이면 일흔 살, 굳이 노익장을 바라지는 않는다. 늙어 무리하면 쉽게 상하는 법이라. 그래도 쉬엄쉬엄 남은 생에 한 편이라도 좋은 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해주었으면 좋겠다.
  전형적인 3세계인 터키. 유럽 사람들은 터키를 유럽 연합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는 반면, 터키는 부득부득 유럽 국가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최대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나는 터키가 EU에 가입이 되었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검색을 해봐야 할 정도로 별 관심이 없기도 하다. 지금 검색해봤더니 1999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해에 EU 회원국에 신청할 자격은 부여하되 터키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법령 등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던 모양이다. 중요한 건 그 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럽 연합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것.
  위대한 오스만 제국의 후예들. 그러나 서구 열강과 전쟁만 했다하면 얻어터지기를 몇 세기. 유럽 문명과 극명하게 다른 이슬람 전통 문화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경전을 해석하는데 있어 극단까지 원칙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시대 변화와 충돌하는 경향이 있는 바, 유독 이슬람의 경우가 심한 것이 문제다. 거기에 터키는 빈부 격차가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며, 책의 무대가 되는 국경도시 카르스는 또 테레케미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쿠르드 인들이 각각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유구한 터키 정치의 부패와 끊임없이 계속되는 군부 쿠데타로 인한 불안이 상존하고 있다.
  1980년의 군부 쿠데타 당시에 자신이 쓰지도 않은 정치 논설 때문에 문제가 된 논설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형을 선고받고는 냅다 프랑크푸르트로 망명을 해버린 시인 ‘케림 알라쿠쉬 오울루’라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복잡한 이름 대신 간단하게 알파벳 ‘카Ka'로 불리기 원했고 스스로 서명도 그렇게 하는 걸 고집하며 무려 12년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살면서도 독일어를 익히지 못한 고집불통의 사내이기도 하다. 하긴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 이방의 언어를 쓰면서 모국어를 잃어버린 순간 더 이상 시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도 힘든 일인데, 그 어려운 걸 이 카는 해냈다. 그가 이스탄불에 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게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이고, 사실은 결혼할 터키 여자를 물색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리라.
  장례식이 끝나고 이스탄불에서 하릴없이 지내던 어느 날, 이스탄불의 줌후리엣 신문사 기자 친구 타네르가 난데없이 카르스에 가서 취재를 좀 해다 주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한 것이다. 카가 다닌 이스탄불 대학의 최고 미녀였던 이펙이 이혼하고 아버지, 여동생 카디페와 함께 카르스의 카르팔라스 호텔에서 살고 있다고 언질을 주면서. 카에게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짧았던 사랑의 순간을 단지 고통과 수치의 시간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직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죽도록 두려워하는 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는 카르스 취재 여행을 결정한다. 자신이 결혼할 여자가 바로 이펙이기 때문에. 힌트를 준다. 12년 이상 만나지 못했고, 12년 전에도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친구 무흐타르와 결혼했었던 이펙과 불과 며칠 만에 서로 사랑할 수 있으며 심지어 결혼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답변은, 가능하다, 이다. 터키에서, 카의 집에 있는 이스탄불 시의 상류층 거주지 니샨타쉬가 아니라 터키 영토에서 가장 가난한 국경 도시 카르스에 사는 사람에게 유럽의 한 가운데인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남자가 청혼을 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카는 이스탄불에서 에르주름을 거쳐 카르스까지, 오르한 파묵의 작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스를 타고 겨울여행을 떠난다. 무려 하루 반을 꼬박 달려서. 그것도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폭설을 뚫고. 근래 우리나라 소설에서 눈 내린 장관은 강릉 출신의 이순원이 독보적이다. 이순원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내는 한 길 이상 쌓인 눈이라니. 오르한 파묵의 눈 묘사는 이순원과 달리 감각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더 장려하다. 해발 1,600 미터 고지의 도시 카르스에서 북쪽 시베리아로부터 몰려오는 습기 찬 거대한 저기압으로 촘촘하다 못해 빽빽하게 공간을 채우는 눈으로 인해 차창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까마득한 산길을 운전해가는 버스를 타고, 우리의 카는 지방선거와 소녀들의 연쇄 자살 현상 취재라는 명목하게 장가들러 떠나간다.
  먼저 ‘눈의 궁전’이라는 뜻의 카르팔라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예실유르트(푸른 조국) 식당에 들어가니 큰 키의 잘 생긴 연극배우, 한 시절엔 국부 아타튀르크 역으로 영화를 찍는 영광을 누릴 뻔했으나 지금은 영락해 시골 변두리에 가설무대를 세우고 공연을 하는 늙은 배우와 그의 뚱뚱한 아내를 발견한다. 나는 이 책 <눈>이 정치소설이라는 걸 알고 책을 샀다. 그러나 사 놓고 두어 달 지난 후에 읽기 때문에 책에 대한 사전 정보는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참 괜찮은 습관이 있다. 그리하여 ‘수나이 자임’이란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덕분에 나중에 반전의 기쁨을 오롯하게 즐길 수 있었다. 중요한 인물이다.
  하여튼 지방선거에 시장으로 출마한 후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이는 이펙의 쿠르드 족 전남편 무흐타르이며, 소녀들은 주로 가난에서 비롯한 원치 않는 결혼 때문에 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을 접고 있는데, 특별하게 중요한 자살 건은, ‘테스리메’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테스리메는 히잡을 벗지 않겠다고 결정을 했고, 소녀가 다니는 교육연구원은 수도 앙카라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터키의 유럽화를 위하여 여성을 해방하는 측면에서 히잡을 벗지 않고는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퇴학처분을 하려는 와중에,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어느 밤에 바로 그 히잡으로 목을 매 자살해버렸다.
  산악지대이고 쿠르드 족들의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이 활발한 지역. 여기에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사실은 가난뱅이 독일 망명객이지만 보이기는)부르주아 기자. 며칠 계속되는 폭설 때문에 카르스로 통하는 모든 도로와 철도가 폐쇄된 와중에 카르스 거의 유일한 밀렛극장에서는 수나이 자임의 극단이 카르스 최초로 생방송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지역신문사 사장 세르다르 씨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공연 장면에 대한 예견 기사를 쓰는 이상한 곳에서, 하필이면 우리의 카가 도착한 다음날, 군사 쿠데타, 또는 반란이 발생해버리는 거다.
  그리하여 소설은 카와 이펙의 사랑과, 카가 아직도 모르는 이들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종족 갈등, 빈부 갈등, 이슬람 원리주의, 터키의 미래로서 유럽 화, 군부 폭력, 처형, 사찰, 불법녹음, 도청 등 온갖 난맥상으로 이어진다.
  책은 오르한 파묵이 여러 단서와 인터뷰, 쓰인 메모 등을 참고한 작가 관찰자 비슷한 시점으로 쓰여 있어서, 불과 3일 동안 작지만 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사건을 설명하기위해 불쌍한 우리의 카를 눈이 오는 그 추운 날, 방울 소리 나게 거리를 쏘다니게 만든다. 카는 짧은 시간에 안 가는 곳이 없다. 호텔, 식당, 몇 군데의 찻집, 극장, 극장 화장실, 자살 소녀 가족의 인터뷰를 위한 빈민가, 경찰서, 이슬람신학교, 온건한 이슬람 원리주의자 사혜띤 교주가 머무는 아파트,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 대표 라지베르트, 지방선거 사무실, 과자점 등을 걸어서, 군용트럭 또는 천막을 친 식재료 운반용 마차에 숨어서. 물론 후반으로 가면 파묵이 직접 등장해 마지막 정리를 해주긴 하지만. 그리 열심히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오해 받고, 나중엔 얻어터지면서까지, 카는 군사 쿠데타의 와중에 자신의 임무인 지방선거와 자살 소녀들을 취재 했을까? 아니면 이펙과 결혼에 성공해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갈 수 있었을까?
  재미있는 작품이니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12-1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브루크너 교향곡! ㅋㅋㅋ 아주 절묘한 비유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단 말씀이군요. 참고하겠습니다!

Falstaff 2020-12-10 16:40   좋아요 1 | URL
조금만 그렇다는 얘깁니다.
파묵인데 전혀 안 그럴 수 있나요, 어디. ㅋㅋㅋㅋㅋ

scott 2021-01-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님
친절한 파묵씨에 ‘눈‘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Falstaff 2021-01-09 22: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곡들에 써놓은 것이 파일에 있군요. 글과 유튜브 영상을 함께 조합해 보았습니다.




비어있는 가슴 속의 긴 공명



 H, 9월의 들판엔 아직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햇볕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여름은 이미 황혼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단풍이 들고 어느 새 낙엽이 지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지난 여름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의 세월은 바야흐로 지난 여름의 태양같이 여전히 뜨겁지만 오늘은 조금 마음을 추스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을 이야기해봅시다. 가을...... 생각만 해도 어쩔 수 없이 가슴 한 구석이 황량해지는 단어지요. 이 가을엔 또 어느 외로운, 그러나 장난끼 많은 요정이 있어 당신 가슴에 치명적인 사랑의 화살을 날릴까요. 그러나 그 화살을 피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사실 피할 수도 없지만.

 고백을 할까요? 당신이 지난 여름에 묻혔던 나른한 추억의 작은 한 구석에 내가 있었듯이 당신의 가슴을 향한 그 화살에 묻힌 치명적인 독이 바로 내 심장에서 비롯하는 갈증의 먹줄로 만들어진 것이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아주 먼 훗날 이젠 당신의 심장에도 나와 똑같이 그어져있을 먹줄을 서로 맞대고,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고.... 이 가을에마저도 당신이 그 화살을 사양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차마 난감한 일이지만 지난 해 가을에 그랬듯 그 비어있음을 더욱 비어있게 할 수밖엔 없겠군요. 그래서 그 비어있음, 또는 비움을 위해 아마 나는 불란서 노래들을 몇 개 들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흐르는 수 많은 음악 속에서 그 음악을 듣고난 다음,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곡이나 연주는 사실 그리 많지 않지요. 오늘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비어있음에 어울리는 얘기를 해볼까 해요.


 H. 먼저 이마에 몇 가닥 굵은 세월의 흔적이 지나간 모나코 태생의 레오 페레, 그가 노래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 : Avec le Temps>를 말하고 싶어요. 레오 페레. 이 백발의 노 가수에 대해서는 뭐라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노래야 얘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답니다. 얼핏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레오 페레는 초기에 경영학과 피아노를 공부해서 처음엔 클래식 영역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샹송으로 선회했지만 인기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지내다가 에디트 피아프의 도움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고, 71년에 이 <세월의 흐름 속에>를 발표해서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사실 그의 음반 <Avec le Temps>를 들어보면 첫 곡인 <예술가의 생애 : La Vie D'Artiste>에서 아주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어느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즈음 페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치 시를 읊듯 흘러나옵니다.

 그의 음악은 사람의 감성에 호소합니다. 나같은 보통사람이 아니더라도 샹송은 사실 곡의 내용을 알고 듣는다기보다는 샹송이라는 쟝르 특유의 어떤 서정성,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에서 비롯되는 신비감, 마치 흐느낌 같은 선율에 매혹되기 마련이겠지요. 그러나 페레의 노래는 그것들 외에도 참으로 귀한 것, 혹은 귀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답니다.

 역시 어깨 너머로 들은 것에 의하면 그가 노래를 만들때 보들레르나 아폴리네르 같은 프랑스의 대시인의 시를 자주 가사로 인용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노래, <세월의 흐름 속에> 안에는 아무 사변적인 덧붙힘 없이 들으려고 노력해도 기어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조, 젊은 시절의 모든 열정이 다 사위고 대신 담담하게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는 듯한 쓸쓸함, 여유로움, 아쉬움 같은 것이 배어나와 마치 인생의 만가를 듣는 듯하게 만들어냅니다.

 세월이 더 흐르고, 죽음이 내 앞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때, 나는, H, 당신의 손을 잡고 이 노래만큼의 회한과 아쉬움, 그리고 여유과 관조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되길 진정 바라고 있답니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은 가버리고
완전히 지친 말과 같이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겠지
우연의 침대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느낌
여위어 초췌해지고 고독해진 나를 생각해.
그리고 잃어버린 세월에 속은 듯한 느낌....
그래서 시간과 함께 사람은 이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가장 멋진 추억마저 다른 것과 같지
토요일 밤, 나는 미술관에서 죽의 이의 선반을 뒤적이고...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은 가버리고
매우 사소한 일로 믿었던 타인
그 사람을 위해 약간의 돈에 영혼을 판 적도 있는....
개를 끌고 갔던 것처럼, 그 앞에서 질질 끌려갔던 타인마저
시간과 함께 모두 가버리지
가버려. 정열을 잃어버린 낮은 목소리와.....



 H. 내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불란서 노래가 있어요. 당신도 너무 많이 들어 아마도 "또 이 노래야?"하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을만 되면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니까. 그래요, 지금 이태리 태생 샹소니에, 이브 몽탕의 <고엽 : Les Feuilles Mortes>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몽탕은 나이를 먹은 다음에도 그의 모습 자체에 깊숙한 우수가 서려있지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무수한 모습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파리의 정사>, <마농의 샘>에서 그의 단면들.... 이러한 것, 그 가운데 <밤의 문>에서는 바로 이 노래 <고엽>이 주제가로 나오기도 하는군요.

 세월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만듭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낡음일 거예요. 다미아, 쥴리엣 그레코, 에디트 피아프, 조르주 브라상스.... 이들과 마찬가지로 몽탕 또한 예전의 영화를 뒷전으로 하고 이젠 대지에 차분히 누워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만 살아 있군요.

 샹송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에디뜨 피아프 마저 그에게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몽탕은 피아프를 이용해 성공한 다음에 그녀를 배신한 전력도 있지요. 어렸을 적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불우한 소년시절의 각인이 그런 이력을 만들었겠지만,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이다지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고엽>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요.

 <고엽>은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곡을 붙힌 것이지요. 그러나 추억과 회환 또한 고엽과 같다는 가사를 몽탕 만큼 온유한 쓸쓸함으로 노래할 수 있는 가수는 없답니다.

 수많은 남성 샹송 가수들이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나 진정 자신있게 음유시인이라는 계관을 쓸 수 있는 샹소니에는 이브 몽탕과 그리스 출신의 조르쥬 무스타키 정도 아닐까요. 피아프마저도 자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던 깊숙한 곳의 매력을 이 몽탕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 가을에도 전 세계 무대와 방송에선 여전히 "난 잊을 수 없어..."가 울리겠지요.




난 잊을 수 없어.
추억과 회환 역시 고엽과 같은 것을....
인생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떼어 놓았고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 찍은
맺어지지 않은 연인들의 발자국마저
지워버려.....

 

 H. 내 가슴의 비어있는 곳에 이 가을날, 샹소니에의 부드러운 목소리들만이 들어와 메워지게 내버려두지 않기를 소망한답니다. 그들의 노래와 더불어 당신의 손끝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입김을 나는 기다릴테요. 이 서신을 읽은 한 달 후, 그래서 정말로 가을이 처들어왔을 때, 또다시 당신이 이 부끄러운 글을 찾아 읽어 내가 말한 음악을 듣고난 다음, 당신의 가슴 속에도 그때 까지 비어있는 곳이 있다면, 내가 그 속에서 울리는 공명이 되게 해주겠소?


*************


크하하하하....핰

몇 십 년만에 읽어보니 간질간질하고 오글거려서 도무지 못 읽어주겠습니다. ㅋ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코르타의 태양 - 제101회 공쿠르 상 수상작
로랑 고데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1890년 남부 이탈리아 몬테푸치오 마을로 가는 가르가노 고원의 오후 두 시. 땅은 태양에 의하여 화형에 처해지고 있었다. 한 조각의 그늘을 찾을 생각도 않고 당나귀 등에 앉아 묵묵하게 태양을 견디는 사십대 사내 루치아노 마스칼조네. 이미 노인처럼 홀쭉하게 팬 두 뺌. 완전히 예전과 딴 판이 된 얼굴로 쉽게 이이를 알아볼 사람이 설마 있겠는가만, 15년 전, 가르가노 고원을 중심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도둑이자 건달 불량배. 그가 시에스타 시간을 맞추어 잔잔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다닥다닥 하얀 집들이 붙어 있는 조그만 마을 몬테푸치오의 가리발디 거리에 들어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마스칼조네는 곧바로 비스코티 씨의 집으로 향했고, 당나귀에서 내려 문에 노크를 한다. 그의 앞에 등장하는 잠옷 차림의 여인. 사랑도 미움도 담지 않은 시선. 이미 그녀는 그의 것. 무엇이든 다 주리라고 다짐한 듯한 여인이 그를 집 안으로 들이고 긴 주랑을 걸어가다 남자를 향해 뒤돌아선다. 마스칼조네는 서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잠옷을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게 한 다음 깊게, 깊게 포옹하며 속삭인다. “필로메나!”
  15년의 감옥 생활 동안 마스칼조네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동경이 되었던 여자. 단 한 번의 바라봄을 통해 평생 한 여자의 노예가 되었으며 오직 그녀를 취할 일념으로 호흡도 했고, 심장도 뛰었던 악당 마스칼조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몬테푸치오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의 눈에 띄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감옥을 나오자마자 선택한 길이었고, 필생의 여인을 안았으며, 이제 평생소원이던 필생의 여인을 안아봤기 때문에, 차분하게 죽음의 길로 향한다. 다시 당나귀를 타고 마을 바깥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 마스칼조네를, 사람들은 드문드문 알아보았고 어느덧 큰 무리를 지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을 어귀에 당도하자 누군가가 마스칼조네에게 큼지막한 돌을 던져 관자놀이에 피가 흐르고, 피를 본 주민들은 더욱 흥분하여 또다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뛰어 도착한 성당의 돈 조르지오 신부가 루치아노의 머리를 가슴에 안은 채 주민들에게 호통을 치며 꾸짖었지만, 마스칼조네는 마지막 숨을 내쉬기 위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주민들 속에서 들려온 호통소리.
  “임마콜라타가 네가 능욕한 마지막 여자가 될 거다!”
  아, 자신이 품었던 여인은 꿈에도 잊지 못한 필로메나가 아니라 필로메나의 동생 임마콜라타였던 거다. 언니에게 추근대던 루치아노를 생각할 때마다 야릇한 쾌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던 동생. 차라리 죽음이 조금만 더 빨리 찾아와주었다면. 그리하여 필로메나를 안았었다고, 그렇게 알고 죽었더라면, 돌을 맞아 숨을 거두더라도 행복했을 것을. 루치아노 마스칼조네는, 이렇게 운명이 한 인간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니 뭐 어쩌겠어. 이게 인생이지. 루치아노는 그렇게 인생을 깨우치고 죽음 속으로 깊이깊이 파 들어간다.
  늦은 나이까지 처녀로 지내던 임마콜라타는 한 번의 떨리는 사랑으로 아들 로코를 낳고는, 노산의 충격으로 출산의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루치아노의 뒤를 따른다. 임마콜라타를 묻고 온 날, 동네의 나이 든 아낙이 신부에게 묻는다.
  “신부님이 해주실 거지요?”
  “자매님, 무엇을 말씀입니까?”
  “루치아노 마스칼조네의 악의 씨를 없애는 일 말입니다.”
  격노한 돈 조르지오 신부는 그길로 성당 문을 닫아걸고 주민들을 꾸짖은 다음, 로코를 몬테푸치오에게 적대적인 마을인 산 지오콘도의 스코르타 씨에게 위탁해 키운다. 이후 로코의 이름이 로코 스코르타 마스칼조네가 되는 것.
  루치아노 마스칼조네가 그냥 일개의 도둑이자 건달이라고 한다면, 로코는 남부 이탈리아를 벌벌 떨게 만드는 진정한 악당, 강도, 강간범, 살인마, 방화범의 반열에 오른다. 세상의 모든 악을 집대성한 로코가 어느 날, 귀머거리 여인과 함께 몬테푸치오 성당의 돈 조르지오 신부 앞에 서서 혼인미사를 올린다. 이날 이후 몬테푸치오 사람들은 적어도 로코로부터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고, 로코는 미친 듯이 돈과 귀금속과 보물을 자루로 실어 오면서 두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른다. 돈, 재물에 경배한 주민들. 어느새 주민들은 로코를 경외하기 시작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아이들이 로코의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라파엘이라는 사내아이는 유달리 이들을 좋아해 해가 질 때까지 함께 어울려 놀다가 해가 지면 집에 가서 부모한테 두드려 맞는다. 나중엔 부모가 포기할 때까지. 로코의 아이들은 순서대로 ‘미미’ 도메니코, ‘페페’ 주세페, ‘미우치아’ 카르멜라.
  어느 날, 로코가 다시 돈 조르지오 신부에게 들러 밤새도록 자신이 살면서 저지른 죄악을 고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기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한다. 로코는 말한다.
  “로코가 몬테푸치오 주민에게 재산을 나눠주면 더러운 돈을 주는 겁니다. 성당과 돈 조르지오 신부의 손을 거치면 선한 돈이 되는 겁니다.”
  돈 조르지오 신부는 거절할 방법이 없다. 로코는 조건을 건다. 대신 스코르다들이 죽을 때는 가장 성대한 장례식을 지내주기로. 승낙한 돈 조르지오 신부, 문서 두 부를 만들어 서명을 하고 한 부를 로코에게 전한다. 새벽에 집에 도착한 로코는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막내 카르멜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날 밤에 자연사한다. 이제 남은 건 가난한 유가족, 벙어리 여인과 도메니코, 주세페, 그리고 카르멜라.
  로코가 전 재산을 헌납한 행위. 이건 주민들로 하여금 로코의 피붙이에 내려진 저주, 미치광이 사생아의 피를 타고 물려받아야 하는 저주를 전 재산으로 해소하는 의식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제 가난뱅이, 그것도 최악의 가난뱅이가 된 유가족을 위해 돈 조르지오 신부는 시내 오래된 골목길에 작은 집을 한 채 구해 벙어리 여인을 살게 하고, 남매를 위해서는 나폴리를 출발해 뉴욕으로 가는 정기선 배표 석 장을 건네준다. 몬테푸치오 마을에서 최초로 배를 타고 이국의 땅으로 향하게 된 삼 남매.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정열, 우애, 극진한 대접, 복수. 태양을 닮은 기질을 물려받은 남매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카르멜라는 엘리아와 도나토를 낳고, 엘리아는 또 안나를 낳아, 안나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건조하게 스토리를 이야기하니까, 한 거친 집안 내력에 관한 소설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빠른 이야기 전개와 달리, 독자로 하여금 괜스레 가슴이 찡하게 공감하게끔 만드는 것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문장. 원래 로랑 고데의 문장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로 바꾼 김민정이 남부 이탈리아 지방의 태양처럼 뜨거운 이야기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바꾸어 쓴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단 한 번의 마음 저림도 없이 읽어치울 수 있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인간일 수도 있다. 공쿠르 상이 아무 작품에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101회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어 그냥 ‘읽어본 것’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많은 좋은 작품들이 이 책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흘러가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