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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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오후에 읽고, 집에 가서 독후감을 써야지, 했다가 술친구들한테 납치당해 각자 소주 두 병, 연태 고량주 500cc 짜리 한 병씩 마시고 좀비 됐다. 어제 오전엔 당일배송 시킨 쥐포 구워 맥주 500cc 마시면서 유료 TV로 <극한직업> 두 번 보고, 마누라 점심 약속 있다고 나간 사이 해장으로 또 소주 한 병 깠다. 암만해도 알코올 의존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다. 그거 아시는가,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 스스로도 술을 안 마시고 싶어 한다는 슬픈 진실. 근데 그게 안 된다. <극한직업> 두 번째 보니 처음 볼 때보다 디테일한 장면들을 더 잘 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코미디 우습게 아는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럽다. 난 코미디 좋아하는데, 진정한 코미디 속에는 진정한 슬픔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구치 가방에다 고액권을 채워 아내에게 건네준 마포서 마약반 고반장. 깜짝 놀란 아내 김지영이 갑자기 (짧은)머리를 휙 풀어헤치며, 나 씻고 올게, 라고 허리가 부러지게 웃기지만 세상에서 보답이라고 그거 하나밖에 없는 슬픈 대사를 하더라.
 근데 내가 지금 <관객모독>의 독후감을 쓰는 거야, 아니면 내 독후감을 구경하러 오신 분들을 모독하기 위해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거야.
 희곡 <관객모독>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대사로 되어 있다. 1978년에 우리나라 초연 당시 일종의 신드롬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 걸로 아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내 친구 가운데 (잘 생긴)하나가 좀 이상한 성격이라서 연극의 마지막에 관객들을 향해 확 물을 끼얹는 장면이 있다고 했던가, 욕을 한 바가지 했다고 하던가, 하여간 이런 변태 짓에 홀딱 빠져버렸던 기억이 있다. 내 친구가 미친놈이지, 물바가지 세례를 받고 욕을 얻어듣는 것이 좋아? 그것도 천금 같은 내 돈 내고 즐기려고 간 연극에서? 어쨌거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연극을 보지 않았다. (극)작가 페터 한트케도 20세기 중후반 독일 문학 판에서 실험적 소설, 희곡 등을 꾸준하게 발표한, 조금 골이 저린 인물이라 작품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아왔다. 즉, 찾아서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
 하여간 이제, 늦게라도 희곡 <관객모독>을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 관객을 향해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쏟아 붓는 건 원작 속에 없다. 그러니 우리의 대단한 연출가가 제대로 한국의 관객들을 모독하기 위한 방식을 생각해낸 것이다. 조금씩 도가 심해지다가 마지막 근처로 가면 아예 상스러운 욕설을 해댄다고 하는 것도, 원작에선 그것도 그리 험하지 않은 욕지거리로 되어 있다. 역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세상살이가 험해지는 모양이다. 1960년대 식 욕설은 이제 거의 겸양의 언사로 여길 수준이라서?
 희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로, 연극을 공연할 배우들에게 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만든,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니 함께 몇 가지만 읽어보자.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아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축구장에서 외쳐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데모하는 군중들의 구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안장이 땅을 향해 거꾸로 세워진 자전거에서 돌아가는 바퀴살이 조용해질 때까지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멈추어 설 때까지 바퀴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중략)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텔 미」란 노래를 귀 기울여 들을 것.
 기차들이 동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중략)
 비틀스 영화들을 자세히 관찰할 것.
 최초의 비틀스 영화에서 링고 스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한 후 드럼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미소를 자세히 관찰할 것.
 「서부에서 온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게리 쿠퍼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것.
 위의 영화에서 몸에 총을 맞고 폐허가 된 도시의 황량한 거리를 절뚝거리며 한참을 달려가다 쓰러지면서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는 벙어리의 죽음을 자세히 관찰할 것.
 (후략)

 

롤링 스톤스, <텔 미>


 그러니 이 드라마를 공연할 네 명의 배우는 몇날 며칠에 걸쳐 이런 모든 행위를 경험한 다음에야 대본을 외우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 뻔한, 배우들을 위한 규칙이다. 무대에는 딱딱한 나무 의자 네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하다못해 조명도 무대와 객석이 같은 조도로 되어 있다. 무대 위의 네 명의 배우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지시사항도 없이 길고 긴 대사를 각기 적당히 나누어 얘기하라고 할 뿐. 근데 대사에 무슨 특별한 내용이 있을까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읽어봐도 뭐 그저 그런 이야기를 심각하게, 연출에 따라서는 그냥 지나가는 듯이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즐겁게 흥얼거리게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적혀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배우들을 위한 규칙이 팍 떠오르더라. 세상의 모든 소리와 모습 그대로, 배우와 관객의 경계도 없이 그냥 떠들어대는 거다.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의 장르가 해체되는 순간.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연극은 이렇게 끝난다. 관객은 정말 끝났는지 아닌지 멍해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우레와 같은 갈채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 연극이 끝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연극의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로 보면 될 일. 무슨 큰 일, 기가 막힌 전기 등으로 꾸밀 필요도, 찬양할 이유도 없다. 관객들은 연극 <관객모독>을 보고 즐기거나, 재미있다고 말하거나, 충격적인데, 라고 놀라는 척하거나, 연극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구변극을 개척하는 작품이라고 아는 척을 하면 되는 거다. 심지어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나서 거 참 시원하다, 감탄을 해도 무방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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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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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니것을 보니것으로 만든 건 그의 나이 스물두 살 삼 개월 때 겪었던 드레스덴 폭격이었을 것. 코넬 대학 생화학과에 다니던 보니것이 참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의 대표작 <제5 도살장>에서 보면 대략 1944년에 독일군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 수용소에 머물던 중, 미국과 영국 양군에 의하여 1945년 초에 네 번에 걸친 폭격으로 2만5천 명의 사망자가 생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사상자의 수는 각종 통계에 따라 다른 바, 출판사 책 소개에는 15만 명의 시민이 몰살당했다고 하지만 여기저기 검색해본 결과, 15만 명은 나치의 선전 내용과 유사하고 실제로 2만에서 3만 사이로 보인다. 3만, 하니까 우습게 보이시지? 평균 신장이 160cm라고 가정할 때 드레스덴 폭격 때 죽은 이들 3만 명을 똑바로 뉘어놓으면 무려 48킬로미터. 남산 둘레길을 여섯 번 돌고도 10리 더 간다. 평균 몸무게가 50kg이면 1,500톤에 이르고.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모아 땅에 묻을 수 없었을 터라, 쥐와 새와 개의 식욕도 부패의 속도를 견디지 못해 숱한 선량한 민간인들이 악취를 풍기며 절지동물문 곤충강의 한 종인 파리와 박테리아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제5 도살장>.
 이제 보니것은 이 책 <고양이 요람>에서 코넬 대학의 델타 입실론 회원이자 자유기고가로 먹고사는 ‘존’이란 흔한 이름의 화자 ‘나’를 등장시켜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일찍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필릭스 호니커 박사의 주변에 접근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허구 인물인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네덜란드 이민자로, 최초의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에 한 명이다.
 아시다시피 미국과 영국은 승전이 거의 확정된 상태인 1945년 2월, 독일 고전문화의 보석이었던 드레스덴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찬란한 문화유적을 완전히 황폐화시켰으며, 태평양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월 6일에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꼬마Little Boy’를 터뜨림으로 해서 한 방에 대량 살상을 감행해버렸다. 그래 독일에선 3만 명이, 히로시마에선 초기 폭발 때 7만 5천, 후유증으로 또 7만 5천, 합해서 모두 15만 명의 사망자가 생기기에 이른다. 드레스덴 현지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경험하여 체험적 반전주의자가 됐음직한 커트 보니것은 이번엔 한 방에 15만을 죽일 수 있는 원자폭탄, 그걸 개발한 과학자를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책 뒤의 해설에 따르면 전쟁 후 보니것이 먹고살기 위해 형의 권유로 제너럴 일렉트릭(내 전 직장이기도 해서 회사 이름을 거론하는 게 좀 켕기기는 하지만)의 홍보 담당자로 일할 때,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여야 하지만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중략) 과학기술이 진보할수록 이류 절멸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GE에서 만났던 과학자의 다수가 진실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 가득했을 뿐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신경”(344쪽) 하다는 것을 알고, 과학자들의 연구심, 때론 전지구의 절멸까지 결과할 수 있는 진실의 발견에 관해 책을 쓰기에 이르렀던 거다.
 연구에 전념할 때는 누구의 전화나 면회도 사절하고 오직 맡은 프로젝트에 전념을 다 하는 필릭스 호니커 박사한테 무대포로 쳐들어왔던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미 해병대 장군. 해병대원들은 독립전쟁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징글징글하게 징글징글한 것이 있었으니 상륙전 당시의 개펄 위에서 뛰어가거나 기어가는 것. 그것도 엄청나게 무거운 장비를 밀고, 끌고 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호니커 박사더러 진흙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한 번 연구해봐라, 라고 바득바득 우겨댔다. <고양이 요람>의 가장 큰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외래어 좀 써보자. 이 시니컬하고 니힐한 작가 보니것의 머릿속에서 드디어 과학적 해법이 떠올랐다. 그의 아이디어는 호니커 박사의 행동으로 체화되어 ‘아이스 나인’이란 물체를 발명하는데, 이 아이스 나인이 뭔가 하면 물의 녹는점을 45도까지 올리는 촉매 비슷한 것. 그래 손톱 밑에 끼워둘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인천 앞바다에 뿌리면 한반도에선 개펄 전체가 계절에 관계없이 꽝꽝 얼어버려 탱크를 타고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단다. 그걸 발명한 호니커 박사는 어느 날 흰색 고리버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아주 극미량을 자기 입술에 발라 순식간에 꽝꽝 얼어버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다. 호니커 박사에겐 2남 1녀가 있는데, 많은 양을 만들어놓은 ‘아이스 나인’을 삼등분해 서로 보관하고 있던 것. 맏이로 키 크고 못생긴 딸 앤절라는 미남에다가 매력적이기까지 한 남편과 결혼하기 위한 예물로 이것의 일부를 제공했고, 아버지를 닮긴 했지만 인류공헌을 위한 과학 대신 축소모형을 천재적으로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첫째 아들 프랭크는 오해를 받아 범죄자로 몰려 서인도 제도의 작은 나라에 망명해서 독재자 대통령의 과학부 장관이 되면서 일부를 그에게 양도했으며, 난쟁이 막내 뉴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쟁이 창녀이자 소련의 스파이인 진카와 몇 밤을 지내기 위해 아이스 나인을 나누어 주어버렸던 것. 문제는 아이스 나인을 살포하게 되면 섭씨 45도가 넘는 곳에서만 물을 구경할 수 있는 점. 그것 뿐 아니라 액체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섭취하게 되면 몸속으로 들어간 아이스 나인의 소립자들이 작동을 해서 인간, 짐승, 곤충, 식물, 하여간 모든 생명체의 몸을 꽝꽝 얼려버린다는 것. 인류 절멸이 문제가 아니라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를 제외한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되는 순간이 올 수 있는 일이다. 그걸 미국과 소련, 그리고 서인도제도 적도 부근의 지질히 가난한 한 섬나라가 세계 최강의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때, 으스스하시지?
 그러나 보니것의 작품을 읽는 진짜 재미는 그의 니힐한 세계관을 구경하는 동시에 인류사적 위기 시점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특유의 익살과 유머에 있다. 근데 ‘고양이 요람’이 뭐냐고? 해보셨을 것. 우리나라 말로 ‘실뜨기’다. 두 명이 마주 앉아 긴 실로 원을 만들어 두 손을 사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 그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도 무척 길단다. 이렇게 제목을 지은 건, 1945년 8월 6일,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에서 리틀 보이를 투하할 바로 그 시간에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집에서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필릭스 호니커가 그의 막내아들이자 난쟁이인 뉴트와 실뜨기, 즉 고양이 요람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니커의 당시 상대가 ’난쟁이‘ 막내 뉴트인 것과 히로시마 상공 580 미터에서 터진 원자폭탄의 이름이 ’리틀 보이‘인 것이 서로 좀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이건 직접 확인하시라. 내가 여태 이야기한 것들은 다 모아봐야 스토리 전체와 재미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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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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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우리나이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우루과이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으로 언론인 겸 시인, 소설가라고 한다. 책 뒤에 실린 역자의 작품해설을 보면, “베네데띠는 가르시아 마르께스나 바르가스 요사, 까를로스 푸엔떼스 같은 붐 소설가들에 대해 ‘그들은 보편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계급을 대변하며,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보통 사람들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단다. 여러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 마르케스, 요사, 푸엔테스로 대표하는 아몰랑주의 문학, 즉 ‘붐 소설’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보편계급이 향유하는 문화에 접근하긴 하는데, 성분이 ‘특권계급’이라서 진정한 보통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뜻. 실제로 요사의 경우엔 정도가 좀 약하기는 하지만, 마르케스나 푸엔테스, 심지어 이들의 15년 정도 후배인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소위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적인 요소가 베네데띠의 <휴전>에선 완전히 제거됐다. 비록 보통사람들의 문학을 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이들의 계급이 상류, 적어도 인텔리 계급이라 “진정한 보통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는 한다.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는 집안이 어려워져 14세 때부터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며 문학청년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책의 앞날개에 적혀 있는 바와 같이 이 책 <휴전>을 발표한 1959년까지는 경제적으로 “진정한 보통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 산 것 같다.
 이 책 초간본이 나온 것이 1960년,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 1959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였다. 1877년생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인가에서 보면 나이 서른에 달하니 이제 자신에게서 청춘이 물러갔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서양인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아직 젊은 나이의 마리오 베네데띠는 책상 위 원고에서 스스로 나이를 스무 살이나 위로 올려버린다. 자신이 젊어서 일을 해봤던 자동차 부품회사의 회계사무실의 한 고참 부장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스스로 나이를 올렸건 나이 많은 고참 직원을 모델로 했건 그건 작가의 자유니까 좋은데, 이 놀라운 스물아홉 살 청년 베네데띠는 정년퇴직을 6개월 28일 남긴 늙은 직원의 심리상태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해놓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낼 모레가 정년이니까 알지.
 1950년대 말의 우루과이. 당시엔 법정 정년이 만 50세였다고 책의 주석에 적혀있다. 그러니 주인공이자 마흔아홉 살의 홀아비 마르띤 산또메가 이제 ‘겨우’ 마흔아홉의 나이로 죽는 시늉을 하고 있다고 흉볼 건 없다. 당시 세계의 평균수명을 보면 상당한 노년이었음 직하니까. 책은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작은 규모의 팀장 정도를 수행하는 마르띤 산또메의 일기로 이루어졌다. 20년 전에 먼저 간 아내 이사벨과의 사이에 맏아들 에스떼반이 있고, 가운덴 딸 블랑까. 그 아래로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하이메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에스떼반은 줄을 탔는지 뇌물을 줬는지 하여간 낙하산을 타고 보통의 우루과이 사람들이 보기엔 높은 자리의 공무원으로 있다. 머리통이 다 굵은 두 아들과 딸 하나와 삐걱거리는 가정생활. 산또메 씨가 잘못 생각한 거다. 딸은 당시 규범으로 집에서 함께 살 수는 있어도 제 밥벌이 하는 아들 둘은 잽싸게 내쳐 독립을 시켰어야지. 새도 새끼들이 웬만큼 자라면 서둘러 날갯짓을 가르쳐주고 세상을 향해 처녀비행을 시키지 않던가. 이를 ‘삭비數飛’라 하지 아마.
 산또메 씨의 일기에 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동차 부품회사 경리부라는 보통사람들의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화들. 사장 딸과 연애하며 승승장구하는 직원 수아레스. “몇몇 사업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직원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사회 최고참 임원, 수아레스에게 승진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며 틈날 때마다 그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는 고참 직원 등등. 이들이 벌이는 나름대로 귀여운 계교와 수작들 역시 일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또메 씨의 학창 시절 친교를 나누었던 동창들 역시 작지 않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일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스물네 살의 신입사원 라우라 아베야네다 양과의 연애 이야기다. 나이 차이가 무려 스물다섯. 입사하고 한 보름쯤 일기엔 “날 부를 때면 언제나 눈을 깜박거린다. 미인은 아니다. 뭐, 웃는 모습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게 어딘가.”하며 좀 시니컬하게 적어놓았다. 그 후 약 한 달이 지난 4월 10일에는 “아베야네다에겐 어딘가 끌리는 데가 있다. 확실하다. 대체 그게 뭘까?”로 한 계단 올라서더니 또 한 달쯤 뒤엔 한 카페에서 라우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거 같아요.”라고 고백을 해버리는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라우라가 화답하기를,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스물네 살의 처녀virgin가 자기보다 스물다섯 살 위의 아버지뻘 남자에게 연정을 느끼는데, 늙은 ‘나’ 산또메 씨는 그녀에게 청혼하기를 계속 주저하는 이유가 뭘까? 불확실한 미래? 10년 후가 되면 자신은 60, 라우라는 여자로서 최전성기인 30대 중반을 맞아야 하는 불균형? 혹시 미래의 어느 날 라우라가 늙은 자신을 버리고 젊은 남자를 찾아 떠나갈 것이라는 두려움 또는 불안? 이들은 과연 나이 차이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세 자식들의 축복 아래 행복하거나 아니면 행복 비슷한 결혼의 문으로 입장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뻔뻔해도 이건 가르쳐드릴 수 없다.
 반듯하지만 우울하고 기본적으로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은퇴예정자의 삶을 추적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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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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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콜드 블러드>와 <차가운 벽>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커포티. 짧은 장편으로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지만 마음을 적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따뜻함과 애틋함과 오래되어 남루한 시절들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내 기준으로 수작. 커포티가 스물여섯 살이었던 1951년 작품. 청년시절에 쓴 성장소설이어서 당연히 자신과 비슷한 등장인물을 내세운다. 커포티는 부모의 이혼으로 사촌의 집에서 자라게 되는데 그곳에 60대 노처녀 숙 포크 양이 있었고, 늙었으되 소녀의 감수성과 순수함과 소심함과 뜻하지 않은 지혜를 지닌 숙 누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 커포티는 이 책을 “깊고 진실한 애정을 추억하며 / 숙 포크 양에게” 헌정한다. 책의 화자 콜린 펜윅은, 엄마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엄마의 장례식 다음날 사촌인 베레나와 돌리 탈보의 집으로 보내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아버지 역시 자동차 사고로 죽는데, 독자로 하여금 아내의 사망으로 인한 우울증이 도져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이 들지만 꼭 그렇다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 ‘나’ 콜린은 아버지의 사촌, 즉 당숙堂叔 아주머니들과 함께 살게 되고, 큰 당숙아주머니 돌리가 나중에 책을 헌정하게 되는 숙 포크 양과 비슷한 모습을 지닌다.
 화자 ‘나’ 콜린은 천애 고아. 고아를 돌보는 두 아주머니는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노처녀. 이들과 함께 사는 늙은 흑인 하녀 캐서린.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인 책에서 작은 아주머니 베레나는 혼자 사는 늙은 여인이 자주 그렇듯 알부자로 소문이 났고, 실제로도 대형 잡화상인 드러그스토어와 포목점, 주유소, 식품점, 사무실 건물 등의 실소유주답게 위풍당당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는 한편, 집 안에서는 당연하게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한 독재자에 의하여 압제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머지 세 사람은 서로 감정의 연대를 이루고 있는 상태.
 여기에 중요한 남자 등장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한 명은 동네 치안판사였으나 지금은 은퇴하고, 아들 둘에게마저 부담감만을 줄 뿐인 찰리 쿨 판사. 또 한 명은 정신이 이상한 어머니로부터 심한 대우를 받아오다가 어머니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간 다음부터 여동생 둘의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해온 젊은이 라일리.
 위에 이야기한 등장인물들이 한 패거리로 뭉치게 된 이유는, 돌리가 인디언으로부터 전수받은 ‘민간약초를 달인 약’을 통신 판매하는 것을 관찰하던 베레나가 이게 사업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유대인 사기꾼을 데려와 약의 레시피를 돌리로부터 알아내려하자, 돌리가 캐서린, ‘나’ 콜린과 함께 가출을 감행해 이웃의 숲, 나무 위에 지은 은신처에 터를 잡으면서부터이다. 베레나가 보안관에게 이들을 찾아줄 것을 의뢰했고, 쿨 판사를 포함한 한 무리가 은신처에 접근해 이들을 완력으로 끌어 내리려 하면서 이들은 같은 편이 된다. 우연히 이 동아리를 구성하는 성원들은 하나같이 결손 가정 출신이란 신분을 가졌으면서도 선량한 약자가 되고, 베레나와 보안관과 목사로 대표하는 집단은 완고하고, 형식적이며 변하지 않는 율법에 옭매인 규격화된 권력형 인물로 양분화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이리 선량한 약자와 규격화된 권력자의 대립으로 읽히지 않는 것. 이게 <풀잎 하프>의 매력이다. 일상적이면서도 잔잔한 웃음을 물게 하는 문장으로 한 의지가지없는 소년이 선량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는 일이 책의 중심이다. ‘풀잎 하프’가 무엇인가. 책의 문장들을 내용이 손상되지 않는 한에서 약간 변형해 설명하면, 늦은 9월쯤, 하프 같은 목소리를 한숨짓게 하는 계절에 인디언그래스 풀밭에 들판이 석양처럼 붉게 물들고, 불빛 같은 진홍색 그림자가 그 위로 산들거리며 가을바람이 마른 잎사귀를 튕겨 인간의 음악 소리를 내는 것. 풀잎 하프에 대한 것은 책 앞머리에 이렇게 설명하고, 또한 제일 마지막에 한 번 더 말한다. 마른 소리를 튕기는 이파리 사이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빛) 빛깔이 흘렀는데 저렇게 한데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바로 풀잎 하프라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목소리들의 하프라고. 추억. 저 남루한 기억 속의 일화와 장면과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서로 기억하는 목소리. 그걸 통해 한 소년은 성장을 하고, 반추하여 책을 썼다. <풀잎 하프>라는 제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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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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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책이라도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내겐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도 그 속에 든다. 이 책이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무척 오래 전이었으며,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의 꼭대기에 상당기간 앉아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경우를 궁합이라고 하면, <삶의 한가운데>와 나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택하지 않게 되더란 것. 근데 왜 갑자기 이 책을 골랐느냐 하면, 소설가라고 한 때 칭했던 신영숙이가 자기가 썼다고 주장한 <엄마를 당부해>란 작품 속에서 이 유명한 작품 <삶의 한가운데>의, 다른 부분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첫 문장을 과감하게 조금 바꿔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때부터 호기심이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삶의 한가운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이 정도면 ‘인상적인 첫 문장’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있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문장 자체가 한 문단 속에 다른 문장들과 섞여 있을 만하지 않고, 오직 문단의 가장 앞부분에만 어울린다(고 나는 주장한다). 영숙이는 이 문장을 절대 복사하지 않았다. 걔도 뇌가 있으니까. <엄마를 당부해> 25쪽의 마지막 줄에 있으며 역시 한 문단을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렇게 써놓았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책을 사서 봤느냐고? 천만의 말씀.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이 이럴 때 좋다. 만일 영숙이가 한 문단을 “긴 터널을 지나니 거긴 눈의 나라였다.”라고 시작했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을 거다. 누구나 다 어느 소설에서 따 왔는지 아니까. 근데 모녀 관계 어쩌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는 영숙이도 이게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문장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영숙이가 습작시대에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밥 먹듯 해온 것이 필사였는데, 필사도 한 두 편이지, 언젠가 부터는 완전필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좋은 문장이 나오면 아무 생각 없이 공책에 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이게 사달이 아니었겠나. 공책 한 페이지 넘기면 좋은 문장이 쌔고 쌨는데 그걸 안 써먹어? 한 번 썼는데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그럼 두 번 써먹고, 또 시비가 없으면 다음부터는 상습적 도둑질을 하게 되는 거겠지. 그냥 베낀다는 게 아니라, ‘자매’가 ‘모녀’로 바뀐 것처럼 약간씩의 변형을 거쳐서.
 하여간 이런 이유로 <삶의 한가운데>를 읽기 시작했다. 루이제 린저가 1911년생. 책을 발간한 것이 1950년. 린저 본인이 반나치즘 운동으로 1944년에 투옥되어 종전 후 풀려난 전력이 있다. 이런 경험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 부슈만에 어느 정도는 그대로 투영된다. 니나 역시 1911년생이며, 1944년부터 종전 때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로 설정했다. 성격이 아주 독특한데, 예를 들면 열두 살 위의 언니의 “결혼식 때 부모님이 니나에게 마치 시동처럼 내(니나의 언니이자 화자) 면사포를 들고 가도록 시키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지고는 나의 면사포에 침을 뱉었다.” (7쪽)
 니나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요새 말로 하면 극도의 까칠함이랄까. 누가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도 싫고, 말 한마디를 해도 좋은 어투는 초장부터 출장 가버리는 성격.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실, 즉 현재의 삶에 적극적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상처를 입고, 절망하는 인물이다. 니나의 이런 일련의 행위가 간혹 자신을 위해서, 자주는 타인을 위해서이기는 한데 타인의 눈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비치는, 끔찍한 젊음의 고통 속에서 활활 타버리는 여인.
 바뎀바일러에 있는 뢰머바트 호텔의 바에서 니나의 언니인 화자 ‘나’가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동생 니나를 우연히 발견한다. 위스키를 거푸 마셔대는 야성적인 여성. 결코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 있는 모습의 니나. 결혼 후 동생에 관해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 완전히 잊고 있던 니나를 마흔아홉 살이 되어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호텔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니나를 우연히 만나고, 몇 주 후 전화가 와서 자신이 있는 뮌헨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아 애꿎은 남편이 피곤해 하건 말건 자동차 운전을 시켜 밤새 달려와서 작품의 첫 문장, ‘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자매들 간의 대화를 시작한다. 니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의사 슈타인 씨가 죽기 전에 니나 앞으로 남겨놓은 일기를 매개로 해서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동생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
 그러나 루이제 린저는 니나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래 맞아, 라고 니나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이 이야기는 긴장을 시켜. 왜냐고? 전적으로 스토리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야. 나는 이것을 참을 수 없어. 모두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는 내 머리에 한 다스나 들어 있어. 그러나 아무런 가치도 없어. 소재는 중요하지 않아.” (149쪽)
 린저는 스스로의 작품에서 소설엔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럼 뭐가 중헌디? 심리상태다. 불안하고, 좌절하고, 곤경에 처하고, 실패하고, 도와주려다 오히려 면박을 당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을 할까. 슈타인 박사가 묘사하는 니나와, 니나가 설명하는 당시 상황의 차이점. 이런 것들이 린저가 천착했던 진짜 모습은 아니었을까, 린저가 진짜로 쓰고 싶었던 작품은 철저한 심리소설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일의 47그룹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루이제 린저는 결국 책의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결론을 맺고, 심지어 에필로그 비슷한 광경을 그려내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소설책. 등장인물의 대사 부분에 따옴표나 기타 부호들을 붙이지 않아 더 감성에 호소하는 것처럼 읽히는데, 이것도 영숙이 분위기하고 유사....하다. 그러니 세상살이 조심해야 하는 거다. 한 번 수상하게 보니까 이것저것 다 이상한 거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앞으로도 집요하게 글 도둑질에 관해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작품의 소비자를 이것보다 더 우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은 결국 기, 승, 전, 글 도둑질. 이렇게 된 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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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4-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매를 모녀로 바꿔치기한 거 보고 당시에 정말 경악을 했습니다.근데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은 일부러 바꿔쓰신거죠?

Falstaff 2019-04-02 22:32   좋아요 0 | URL
작가...라기보다, 한때 작가라고 불렸던 인간의 이름과 책 제목은 ^^;; 조금 바꿨습니다. 아직 표절과비평사에서 공식 논평이 표절이 아니고 문자적 유사성이란 주장을 거두지 않는 관계로 괜히 소송에라도 걸리면 그거 정말 귀찮거든요. 물론 쪽팔려서라도 소송이야 하겠습니까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