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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존 맥스웰 쿳시. 몇 년 전 그가 쓴 <추락>을, 불편하게 읽기는 했지만 참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쿳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행했던 인종차별 정책과 폭력에 대하여 반대 입장에 서서 작품 활동을 했다는 건 알겠는데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을 불편하게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작가인 쿳시의 다른 작품엔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 예전 ‘들녘’에서 출간한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올해 2월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한 번 읽어볼까, 싶어 선택했다.
역시 J.M. 쿳시는 불편하다.
물론 그의 작품을 불편하게 느끼는 건 내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다. 나는 스릴러 영화 안 본다. 마음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해지는 거, 그런 거 싫다. 폭력에 반대하는 주장에 완전하게 동의하지만, 폭력에 반대하기 위해 극악한 폭력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건 견디지 못한다. 물론 타란티노 식의 허풍의 옷을 입힌다면 가볍게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저수지의 개들, 자토이치, 뭐 이런 것들) 폭력과 잔인한 장면을 진지하게 묘사하는 걸 돈 주고 보거나 읽는 건 정말 싫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읽기를 확 때려치울까, 갈등했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다닐로 키슈의 <보리스 다비도비치의 무덤>에 이어 이틀 연속 고문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읽게 됐다. 이것도 팔자다. 그나마 키슈의 책에 나오는 소비에트 연방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문은 쿳시에 비하면 매우 온건한 편이니 말씀이다.
화자 ‘나’는 제국의 변경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판사. 뚱뚱하고 나이 먹은 노인이다. 벌써 은퇴해 작은 농장을 사서 유유자적한 노년을 즐기려 했으나,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다 아직도 치안판사의 자리를 놓지 못해, 제국의 제3국(局), 저절로 나치의 게슈타포 정도를 떠올리게 되는 초법적 군사조직으로부터 갖은 험한 꼴을 당하는 인물이다. 근데 솔직히 말해 이 노인네, 변태다, 변태. 절대 이 영감처럼 늙지 않으리. 어느 날 문득 들이닥쳐, 야만인들이 힘을 합해 제국을 위협한다는 명목으로 야만인 몇 십 명을 잡아다, 짐승에게도 하면 안 될 잔인한 고문을 행하는 졸 대령. 이이가 한 여자 아이, (십대 중후반 정도의)소녀를 고문해 거의 실명 직전에 이르게 하고, 다리/발 뼈를 부러뜨려 정상적으로 걷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 고문이 끝난 후 자기들 무리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촌에서 구걸을 하며 사는 걸 치안판사가 보더니 자기 거처로 데리고 와서, 발을 씻겨주고, 기름을 발라주고, 목욕을 시키고, 전신 마사지를 하고, 그리고, 아이의 허벅지를 베고, 그냥 잔다. 욕구는 자기 전용 창녀를 찾아가 해결하고. 그러다가 난데없이 이 소녀를 자기 종족에게 데려다 줘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병사 약간을 데리고 한 겨울에, 소금기 많은 호숫가와 사막지역을 통과해 갖은 고생을 하며 데려다 주긴 하는데, 바로 이 뜬금없는 행위 때문에 제국의 적인 야만인과 내통을 한다는 혐의를 받아 갖은 역경을 치루게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얼마 읽지 않아 벌써, 문명세계가 야만인이라고 칭하는 종족과, 야만인이라면 절대로 행하지 않을 초超 야만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질러버리는 문명인 가운데 누가 더 야만인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게 쿳시가 처음부터 의도한 방향이리라. 고문은 예부터 그들 나름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이 행했던 수단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게 날로 향상, 발전, 진화해, 어느 순간이 오면, 고문하는 자들이 스스로의 즐거움과 과시행위를 찾는 방법으로 정착할 수 있다. 왜 이런 참담한 지경으로 처하는가 하면, 우리가 불행하게도 인간이기 때문에. 재미로 같은 종을 사냥하고, 괴롭히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개체가 인간 아냐?
이 책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는 알겠다. 그리고 그 주장에 동의한다. 제국주의 또는 파시즘, 독재 등의 모순과, 인간의 허위와, 폭력에 대한 비판 등등. 그러나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겨우 두 권을 읽었지만, 쿳시는 과하게 자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