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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야의 아파트.질주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6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1928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아흐마토바, 마야코프스키, 만델시탐, 불가코프 등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을 결성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지 않은 작품들을 배격하기로 결정을 한다. 시절은 바야흐로 1918년 혁명 이후 긴 내전을 겪고 이제 전 국토에서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정신에 입각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루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에이모 토울스가 쓴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상세하게 나와 있듯이 아흐마토바는 극소량의 작품만 생산하게 되고, 불가코프의 모든 작품은 공연 및 출판 금지의 금줄에 묶이게 되며,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관통시키는데 성공한다. 1922년에 벌써 소비에트 서기장의 자리에 올라선 스탈린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는 물론이고 예술적 가치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해버리기 시작하고, 자신의 뜻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인물, 집단에 대하여는 가차 없는 고문과 처형으로 답례한다. 카자크 백군의 저항을 주제로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을 쓴 미하일 숄로호프에겐 영광을 주면서도, 비슷한 불가코프의 희곡 <질주>는 백군과 부르주아 출신들의 비겁하고 매국적인 행위를 비꼰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코프 생전에 공연을 금지해버린다. 소비에트 연방이란 거대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그토록 넓은 대지를 자기 마음대로 통치했었다.
불행한 시대를 산 많은 작가들 가운데 불가코프가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1928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을 결성한 바로 다음 해인 1929년 봄부터 그의 작품은 절대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없었고, 출판할 수 없었다. 작가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건 가수의 성대를 절단하는 것과 유사하다. 불가코프는 자신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밝히면서 스탈린에게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했지만 그런 청탁을 받아줄 스탈린이 아니었다. 그래 그는 절대로 출판되어 책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을 고독 속에서 끊임없이 써가며 조금씩 죽어갔다.
<조야의 아파트>는 혁명과 내전의 과정에서 국토가 황폐해져 많은 수의 유민들이 대도시로 흘러들어와 도시마다 극도의 주택난이 벌어진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래부터 불가코프는 희극 작품을 청탁받아 자신의 데뷔작 비슷한 <백위군>에서 내용을 떼 내 희곡 <조야의 아파트>를 썼다고 한다. 직접 읽어보시면 즉각 알겠지만 혁명 후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거짓과 부패와 향락과 새로운 계급의 발생에 관해 신랄한 풍자를 던지고 있다. 초연 당시에 반혁명, 반 프롤레타리아 적인 작품이라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탈린 치하의 공인公人이었던 비평가들 또한 이것과 달리 어떻게 자신의 진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인민들은 다르다. 통치자와 통치권에 든 자들과 비평가들과는 달리 인민들은 직접 공연을 보고 그것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신랄한 풍자라는 걸 확인하고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하다가 입소문을 만들어내 장안의 인기 작품으로 격상시킨다. 이 현상에 불안을 느낀, 또는 불만을 가진 통치자들은 곧바로 모든 불가코프를 금지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낸다.
<조야의 아파트>나 <질주>나 지금 읽어보면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더구나 새롭지도 않고, 충격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고,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나는 불가코프가 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다음부터 불가코프의 작품이 눈에 띄면 빠짐없이 읽어치우는데, 아쉽게도 읽을 때마다 기대가 너무 컸나, 하는 심정을 숨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