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금련 중국전통희곡총서 3
웨이밍룬 지음, 김순희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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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금련과 무대, 무송 형제. 그리고 돈 많고 힘 센 매력남 서문경. 이들은 시내암의 <수호지>와 소소생의 <금병매>에 동시 출연한다. 시기별로 보면 진하, 설리, 남궁준광이 전성기를 누리던(이들이 어디서 등장하는지는 오늘의 퀴즈!) 원말명초에 쓰인 <수호지>에서 먼저 나왔고, 여기서 반금련과 서문경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다가 살을 붙여 명나라 때 쓴 작품이 <금병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수호지>를 지금 팔고 있는 책 껍데기와 다른 표지를 한 이문열의 민음사 초판으로 읽었는데, 세상에나, 당대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송나라 호걸영웅들이, 하다못해 최고의 인격과 학식과 덕을 지닌 주인공 송강조차, 얼마나 야만스런 행위를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해내는지 깜짝 놀랐다. 그게 뭔줄 아시나? 인육, 즉 사람 고기를 포식하는 것.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리 상태’의 중국 버전은 ‘인간은 인간에 대한 포식자predator’일 정도다. 영양가 높은 인육을 섭취하는 방법에도 계급이 있어서, 하층민들은 사람 고기를 다져 주로 만두소로 만들어 요리를 해 먹고, 상류층은 소장과 대장을 제외한 내장기관, 즉 간, 허파, 심장 등을 후춧가루 뿌린 소금 기름에 찍어 날로, 즉, 육회로 섭생한다. 어떠셔? 군침 도셔? 아 진짜라니까. 군자에다 영웅으로 이름난 송강 선생도 원수를 잡아 죽여 생간을 소금, 참기름, 후춧가루 소스에 찍어 자셨다니까.
 살인을 저지른 친구 뇌횡을 호송하던 중 범인을 놓아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맞고 창주로 유배된 영웅 ‘주동’이란 자가 있었다. 양산박에선 그의 행적과 의리와 인품을 높이 숭앙해 기꺼이 양산박으로 모시기 위해 꾀를 낸다. 주동이 원래 사람됨이 근사한데다가 학식도 높아 창주 성주가 어린 아들의 가정교사로 임명하기에 이르렀는데, 글쎄 창주에 누가 오느냐 하면 뇌횡과 높은 이름을 떨치던 지다성 오용 선생이 떴던 거다. 그러나 나라에 대한 의리가 깊은 주동이 어찌하여 도둑의 무리인 양산박에를 들어가겠는가. 그래 거절했더니, 글쎄 자기가 가르치던 성주의 아들이 사라져버린다. 주동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데 뇌횡이 은근히 한 마디 하기를, ‘쌍도끼 이규도 함께 왔거늘 어찌 보이지 않나.’ 워낙 험악하고 잔인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은 이규가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냅다 달려갔는데, 이규는 벌써 성주 아들의 간을 꺼내 소금 기름을 묻혀 육회로 먹고 있었으며, 시체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거였다. 일이 워낙 커져 주동은 결국 양산박 패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런 일화가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앗, 너무 <수호지>에 관한 사설이 길어졌다.
 <금병매>를 읽어보지 않아 (솔출판사 어떻게 된 거야? 망했나?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계속 <수호지>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거기에 ‘무송’이란 이름의 영웅이 양산박으로 들어가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양산박에 들어갔다 하면, 그이는 누가 됐건 간에 송나라의 메인 플로우에서 탈락한 아웃사이더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잘 나가던 무인 무송이 하루는 업무 차 고향 도시에 들렀는데, 벌써 마흔다섯 살이 된 큰형 무대가 그 새 반금련이란 젊고 아름다운 여인한테 장가를 든 거다. 지금이야 마흔다섯이면 한창 때지만 송나라 시절에 사십오 세면 이미 발기부전 증상이 상당히 진전된 할배였다. 물론 이도 거의 다 빠져버렸을 거다.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를 봐도 무대를 앞니 두 개로 특징하지 않았는가 말이지. 그래 둘 사이에, 금련이 입장에서 보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거늘 도무지 하늘을 볼 기회가 없어 아이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해 히스테리만 늘어나던 찰나,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은 무송이 눈앞에 있으니 온몸이 근질거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이거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의 영웅 무송이 또 어찌 형수를 꾸짖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어느덧 몇 날이 흘러 무송이 떠나고 이젠 생과부 신세를 한탄만 하던 금련 앞에 돈 많고, 힘 좋고, 덩치 크고, 활수한 서문경이 등장하니 이들의 로맨스(라고 해주자)는 필수 코스였던 것. 둘 사이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는 떡장수 무대. 어느 날 무대는 독을 먹고 픽 쓰러지더니 그 길로 횡사를 하고, 형의 부고를 들은 무송이 다시 돌아와 사태를 파악해 서문경을 때려죽이고, 금련을 칼로 쪼개 죽이고 자신은 스스로 잡혀 귀양을 가던 중 어찌어찌 해서 양산박 도둑떼에 들게 된다.
 너무 내용을 자세하게 얘기한다고? 천만의 말씀.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 중국 전통 가극인 천극川劇과 월극越劇, 80년대 디스코, 서양의 오페라 등이 마구 섞이고, 등장인물도 송나라 시절 무대, 무송, 반금련, 서문경, 80년대 중국 소설의 주인공인 ‘여사사’, 배나온 대머리 브론스키 백작을 죽자고 사랑해 공작duke 남편과 새끼까지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안나 카레니나마저 등장하는 신 전통희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여사사가 사실상 희곡을 교통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읽었는데, 반금련의 행위가 현대의 관점에서 정말로 죽을죄인지, 아니, 죄이기나 한 것인지 새로이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망라한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자소서를 읽고 자기 방식대로 노래하고 춤도 추고, 반금련의 행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근데 내 생각엔, 옛날 것은 옛날 것으로 그냥 좀 내비두면 안 될까, 했다. 꼭 지금의 규범으로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긴, 그건 극작가 마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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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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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딱 하나, ‘열린책들’ 창사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로 무려 912쪽에 달하는 책을 정가 만 원, 10% 할인가격 9천원, 이것도 아니고 6천5백 원짜리 새 책 같은 중고 책으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부를 읽어나가다가 어어, 이거 분명히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하고 내용이 비슷한 거다. 물론 해가지지 않는 땅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에서 남의 집 귀한 개새끼들을 몰래 잡아 고기는 토끼고기라고 속여 팔고 가죽으로 외투 만들어 입고 다닌다든지, 삶은 돼지 대가리를 상 위에다 놓고 서열 높은 어른들은 귀, 중간 서열은 코, 어린 것들은 뺨따귀 살을 먹는다든지 하는 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2부와 3부의 내용은 영화하고 거의 완전하게 다른 수준이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본 텍스트가 전적으로 <핑거스미스>를 따랐다고 단정하긴 좀 그렇고, 하여간 이 소설에서 사기와 사기에 대한 또 한 번의 사기, 그리고 사기와 또 한 번의 사기 위에 또 한 번의 사기 같은 연쇄 사기, 또 여성 간의 동성애라는 모티프를 얻어 <아가씨>를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다. 언젠가 말했다시피 나는 <아가씨>를 집에서 유선 Pay TV로 아내와 다 큰 둘째 아들하고 셋이서 봤다. 부모형제가 함께 보기엔 참 바람직하던데, 그건 차치하고, 나처럼 해당 영화와 소설의 관계를 모르고 각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읽기는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럼 됐지 뭘 더 얘기하려느냐고? 그거야 독후감 쓰는 사람 마음이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로 상정한 21세기 작품이라는 것. 2002년에 시치미 뚝 떼고, 쓰레기와 진흙탕, 콜레라가 만연한 19세기 런던에서 공개적인, 차라리 공연이라고 칭할 만한 처형장면과, 온갖 창궐하는 좀도둑과 장물아비, 사기꾼들, 거기다 19세기 중반이었다면 중죄로 다스림을 당해야 마땅했을 동성애까지 다분히 현대적 감각에 의거해 빅토리아 시대에나 썼음직한 문법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청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을까. 세라 워터스는 이렇게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세 편을 썼으며, 이 작품들로 큰 인기도 얻고 당연히 돈도 무척 많이 벌었단다.
 근데 문제는, 물론 독후감을 쓰는 데 있어 생기는 문제를 말하는데, 이미 박찬욱의 영화 속에 공개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은 다 알려져 있어서, 거기다가 더 보탤 말이 없다는 것. 당연히 영화와 다른 2부와 3부에 대하여 쓸 수는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의 2부와 3부가 (소설하고는 다른 내용이지만) 소설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에 별로 쓰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특색 있다고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소설 끝나고 부록처럼 붙은 작가 세라 워터스의 인터뷰이며, 그중에서도 “마지막(질문)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에 대한 답변이다. 워터스는 네 가지를 주문하는데 다 잘라버리고 요점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1. 미친 듯 읽어라.
 2. 되도록 날마다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라.
 3. ‘다시’ 써라! 잘라 내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4. 계속 노력하라.
 좀 웃었다. 중국에서도 당송팔대가의 한 명인 구양수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즉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고 훈수를 둔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한 천 년 지나니까 ‘듣고 생각하는’ 항목은 빠지고 글을 쓰고 또 다시 쓰라는 조언이 추가됐다. 근데, 위의 네 가지를 열씨미 한다고 정말 작가가 되나? 이렇게 해서 작가가 될, 아니, 그냥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 건지는 거 말고, 직업으로 글을 써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작가가 될 확률은 얼마 정도일까. 이게 의심스럽다. 천 명 가운데 하나? 오천 명 가운데 하나? 아휴. 나머지 999명 또는 4999명은 어떻게 하라고 글 쓰는 직업을 갖으라, 권하고 있는지. 팔자에 글 쓰는 살煞이 붙은 불행한 천재 몇 명께서만 한 번 그렇게 해보시면 좋을 듯한데 말입니다.
 알라딘 보관함에 좀 오래 담긴 채 있는 작품 가운데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다. 그런데, 현대적 시각을 장착하고 19세기 잉글랜드의 런던을 무대로 한 세라 워터스를 읽고 나서 과연 찰스 디킨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지금 이 고민하고 있다. 보관함에서 빼버릴까? 말까? (결국 독후감을 쓴 며칠 후, 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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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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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을 직업으로 하거나 소수의 독자만을 위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 읽고 나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등의 불평을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약한 강박관념이 든다. 근데 <이날을 위한 우산>은 내가 말한 ‘이런 책’들의 범위에 듦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가다가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제는 소위 지구촌 시대라서 비단 무대를 독일에 국한해 말할 것도 없이, 룸펜 인텔리겐치아 또는 루저들 집단의 디테일을 어찌도 이리 섬세하게 찾아낼 수 있었는지 감탄이 먼저 터져버렸다. 역자가 쓴 책의 해설을 보면 게나치노의 출세작이랄 수 있는 삼부작 <압샤펠>, <불안의 근절> 그리고 <거짓된 세월>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평범한 회사원의 고독한 내면세계를 다루어 70년대 독일 소시민 계층의 세계와 자기소외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 읽은 2001년 작 <이날을 위한 우산>의 주인공 마흔여섯 살의 ‘나’는 젊은 시절 삼부작의 주인공 압샤펠과 동료들, 196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니고 70년대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 80년대 중후반에 해고를 당하고,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인종들이 가끔 그러하듯이 이혼까지 당하거나 애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아 점점 인간 루저의 상태로 접어든 인물일 수 있겠다.
 ‘나’는 애인/연금생활자 리자와 몇 년간 동거하다 버림을 받았는데 리자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 비슷한 성품을 가져 헤어지면서 그녀가 받은 연금을 모아놓은 통장의 돈을 ‘나’가 사용할 수 있게 조치해놓고 떠나버렸다. ‘나’가 아껴 쓰기만 하면 한 2년 반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돈이라니 리자가 천사가 아니라면 적어도 성녀인 건 확실하다. 물론 ‘나’ 역시 직업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수제화를 만드는 회사에 계약직 비슷하게 다니는데, 업무는 구두를 신고 하염없이 ‘걸어서’ 돌아다니며 구두의 착용감, 내구성, 편의성 등에 관하여 다방면의 보고서를 써내는 것으로 한 켤레 당 200마르크의 수당을 받는다. 때는 1990년대. 세계는 바야흐로 미국 발發 신자유주의가 동서를 불문하고 불어 닥쳐 수제화 회사의 영업소장 하베당크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수당을 한 켤레, 즉 보고서 한 장 당 현재 200마르크에서 50마르크로 삭감을 하며 대신에 신고 걸어 다닌 중고 고급 수제화는 ‘나’의 소유로 하기로 일방적 통보를 해버렸다. 뒤에 가면 ‘나’는 중고품시장에 좌판을 벌여 수제화 한 켤레에 80마르크에 판매를 하니 사실 그가 얻을 수 있는 수당은 켤레 당 130마르크. 애초 맑은 하늘을 언감생심이고 그나마 이슬비 뿌리던 ‘나’와 ‘나’를 둘러싼 인생에 점점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무대가 독일의 작은 도시인 것 같다. 주인공 ‘나’는 이 소도시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생활도 하고, 해고당해 교사 출신 리자가 월마다 받는 연금으로 생활도 하다 버림을 받고, 거리에만 나갔다 하면 곳곳에서 아는 얼굴들이 줄지어 다닌다. 5층 건물 옥상에서 돌 던지면 ‘나’가 아는 사람이 맞을 정도다. ‘나’는 두 주일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걸 습관으로 하고 있는데, 작은 미용실의 주인이자 미용사인 마르고트가 ‘나’의 머리를 깎은 다음에 문을 닫고 ‘나’와 함께 내실로 들어가 뜨거운 한 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마흔여섯 살 먹은 남자는 마르고트가 원할 때마다 성공적으로 엑스터시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마르고트 역시 이를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연식이라 그저 무난한 섹슈얼 라이프를 이어간다. 정말? ‘나’와 마르고트 사이엔 아무런 애정관계가 없어, 또는 없는 것으로 착각해 마르고트가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도 질투는 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가 알고 있는 사진사 힘멜스바흐. 워낙 판이 좁은 도시라도 힘멜스바흐는 ‘나’가 마르고트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줄 모르고 신문사에 자기 사진을 팔 수 있도록 신문사 고위직에 있는 대학친구에게 말 좀 잘 해 달라 부탁을 한다. 마음이 약한 ‘나’는 또 밸도 없이 말 많은 대학친구를 찾아 신문사에 가서 힘멜스바흐에게 선처를 당부하는데, ‘나’의 글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친구는 난데없이 ‘나’의 채용을 권한다. 이런 얽히고설키는 자잘한 일화가 거미줄처럼 빼곡하게 차는 과정에서 독자는 독일의 소도시 사람들의 소외된 삶을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데, 그것도 수사법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건조한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그렇다. 물론 대화의 경우는 제외하고.
 다시 저 위로 올라가서, 분명한 스토리가 돌출되는 전형적 소설은 아니다. 특별한 주장이나 서사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소설인데 그게 어떤 매력이냐고 묻는다면 또 단번에 말하기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인생에 빗줄기가 거세진다는데 그럼 책의 제목에서‘우산’은 또 뭐냐고?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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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06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이 책 너무 지루해서 절반쯤 읽다가 포기하고 고이 모셔둔 지 몇 년 째인데, 조만간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19-09-06 10:33   좋아요 1 | URL
이게 그렇다니까요. 그래 첫 대가리에 제가 쓰길, 소수의 독자만을 위해... 운운했던 겁니다. 첫 부분이 힘들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어서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
 
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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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작으로 소위 아옌데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삼부작을 간행한 시기별로 보면 <영혼의 집>, <운명의 딸>, <세피아 빛 초상>이 각각 1982년, 1999년, 2000년이지만, 내용으로 순서를 매기자면 <운명의 딸>, <세피아 빛 초상>, 그리고 <영혼의 집>이 된다. 그러니 만일 이 매력적인 아옌데 삼부작을 아직 읽지 않으셨으면 발표 시기 말고 내용상 순서에 입각해 감상하시는 편이 훨씬 좋을 듯하다.
 이 책의 독후감을 쓰면서 <운명의 딸>에 관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의 딸>에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칠레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가 초감각적인 사업능력을 발휘해 거대도시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부유한 거부 집단의 우두머리로 성장하는 여인 ‘파울리나 델 바예’와 비누상자에 담겨 자기가 싸 놓은 똥에 범벅이 된 갓 낳은 흑백 혼혈 아이 ‘엘리사 소머즈’. 자식이 셋이나 달린 이탈리아 출신 유부남 테너와 바람이 난 것이 소문이 나서 도망치듯 칠레로 이민 온 로즈 소머즈 집안에 개구멍받이로 들어왔는데, 사실 알고 보면 (<세피아빛 초상>에서) 소머즈 가문의 가장이자 로즈의 친오빠 존 소머즈 선장의 사생아로 밝혀진다.
 파울리나 여사는 샌프란시스코가 겨울일 때 칠레는 여름이라는 점을 착안해 복숭아 등의 열대 과일을 남극 빙하 위에 올려놓고 적도를 통과해 수입해옴으로써 하늘에서 쏟아지는 현금다발에 눌려 숨을 못 쉴 정도가 되는 천재적 발상을 보여주었고, 엘리사 양은 찌질한 총각 하나와 불같은 연애를 해 덜컥 임신을 해버리지만 황금의 꿈을 안고 엘도라도의 땅 캘리포니아로 훌쩍 떠나버린 애인을 잊지 못해 아이를 사산한 다음에 나무 물통에 몸을 숨기고 세계의 반을 돌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현명한 중국인 타오 치엔을 만난다. <세피아 빛 초상>에서는 기름지고 단 음식의 유혹에 굴복해버려 거대한 몸집으로 변한 파울리나와, 중국 의원 타오 치엔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현명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는 엘리사가 다시 등장해 훌륭하고도 중요한 조연을 맡는다.
 이 두 여자 사이엔 뭐가 그리 질긴 인연이 있는지 파울리나의 잘생긴 맏아들 마티아스 로드리게스 데 산타 크루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이자 엘리사의 딸인 린 소머즈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사생아이자, 주인공이자, 작품의 화자 ‘나’인 아우로라 델 바예가 태어난다. 자기 혼자 사랑해 결국 아우로라의 탄생의 침상에서 과다출혈로 생을 마감하는 린과, 애초부터 결혼은 꿈에도 꾸지 않아 도피하듯 유럽으로 날아버리는 퇴폐주의자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처음부터 린 소머즈가 천사처럼 아름답지만 머릿속은 거의 공백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애초에 일회성 유희 목적으로 유혹을 했던 것. 그런데 졸지에 사생아를 임신한 린, 그녀의 부모 타오 치엔. 이때 엘리사 앞에 나타난 남자가 있었으니 파울리나의 조카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수련 중이던 세베로 델 바예. 엉뚱하게도 세베로 델 바예가 임신 중인 린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해서 <세피아 빛 초상>의 주인공 아우로라가 졸지에 사생아란 딱지를 떼고 아우로라 델 바예가 되지만, 세베로는 말 그대로 숫총각 상태에서 곧바로 홀아비로 신분이 바뀌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담. 이 때가 1880년. 책은 1862년부터 아우로라, 한문으로 쓰면 여명黎明, 즉 새벽, 중국발음으로는 ‘리밍’이 서른 살이 되는 1910년까지를 시간적 무대로 하고 있다.
 너무 복잡해서 뭔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시지? 원래 대하소설이 그런 법이다. 이 책은 대하소설까지는 아니어도 세 편 다섯 권을 서로 엮어 놓으면 대하소설 비슷해지니 이해해주시라.
 하이고, 좀 쉬었다 하자. 손목이 욱씬거린다.
 책의 스토리를 이리 줄줄 내리 엮어도 이제 겨우 주인공 아우로라 또는 리밍이 온통 양수에 불고 주름진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뿐이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불쌍한 새신랑이자 갑작스런 홀아비이자 진짜 착한 남자 세베로 델 바예는 애초에 약혼 비슷하게 했던 여성참정권자이자 사촌이자 천생 다산성의 여신인 니베아 델 바예와 결혼을 해 자식 열다섯 명을 낳고 이중에 여덟이 성인으로 자라는데, 여덟 가운데 클라라라는 이름의 딸도 있어서, 이 아이가 점점 자라 놀라운 심령의 능력을 가지게 되며 심지어는 18년 전에 출간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던 <영혼의 집>에서 주인공을 먹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아옌데 삼부작이라고 하지만 <세피아 빛 초상>과 <운명의 딸>은 상당한 수준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영혼의 집>과는 연결고리가 그리 크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세피아 빛 초상>에서는 볼리비아와 페루가 한 편을 먹고 칠레와 벌였던 태평양 전쟁과 칠레 내부의 혁명과 군부들 간의 투쟁이란 점에서는 또 <영혼의 집>에서 작가의 실제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의 선거혁명과 쿠데타 등의 내전을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세피아sepia가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네이버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보니 오징어 먹물 색, 짙은 암갈색이란다. 1862년에 시작해 1910년까지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우로라 델 바예 또는 리밍의 복잡한 가족사를, 아우로라가 서른 살이 되어 가족과 자신의 기억, 그리고 자신의 밥벌이인 사진을 통한 기록에 대해 작가가 하는 얘기다. 기억은 좋았거나 슬펐거나 어쨌건 강렬했던 것들이 상당한 형태로 변형되어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린 서른 살의 인생 이야기는 결국 짙은 암갈색에서 특정한 모습들을 그렸다는 의미다.
 아옌데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어찌 그리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지. 진작 이 책을 읽지 않고 뭐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왕 아옌데 삼부작을 시작하시려면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운명의 딸>, <세피아 빛 초상> 그리고 <영혼의 집>을 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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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냐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101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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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작가 마이크 레즈닉에 대해. 원래 이름은 마이클 다이아몬드 레즈닉 Michael Diamond Resnick. 1942년생. 아래 첨부사진은 2005년에 찍은 것으로 보시다시피 놀랍게도 백인이다. 표지를 벗긴 하드커버만 들고 다니며 읽어서, 작가가 흑인이겠지만 혹시 백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시카고 토박이. 시카고 대학을 다니다 아직까지는 유일한 아내 캐롤을 만나 학교를 때려치우고 곧바로 단편소설 작업에 착수하는데 무려 10년 동안 200~300편을 썼다. 소설 쓰는 기계냐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소설은 야설뿐 아닐까? 맞다. 10년간 야설작가로 필명을 날리던 레즈닉은 그후 13년 동안 아주 훌륭한 개 사육인으로도 살았다. 얼마나 훌륭했느냐 하면, 13년 동안 스물일곱 번이나 최우수 콜리 종을 키워냈을 정도. 최우수 콜리. 흠. 그 ‘최우수’ 자리에 스물일곱 마리의 개가 오르기까지 개 몇 백 마리가 얼마나 특별한 운동과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는지는 물론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터. 그러다가 개 냄새가 지긋지긋해졌는지 1981년의 어느 날 문득 레즈닉은 다시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 이번엔 SF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다작하는 성향을 가진 레즈닉은 그 후 2000년 현재까지 20년 동안 백 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했다고 하며, 오늘 독후감을 쓰는 <키리냐가>도 처음엔 단편으로 썼으나 줄거리가 이어지는 후속 작을 연달아 발표하여 결국엔 열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연작장편이 된다.
 작가가 백인이라서 놀란 이유는,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무대가 아프리카 케냐. 본문 여덟 편은 유럽인들이 관리하는 지구형 행성 속 아프리카의 토속신 ‘응가이’가 거처했던 신령스러운 산 ‘키리냐가’의 이름을 딴 사바나 지역이며, 작품 속에 무수한 흑인 사이에서 등장하는 백인은 모두 세 명으로, 우주선 폭발로 인해 중상을 당한 금발의 남자 우주선 조종사, 이 사람을 응급처치하고 후송하기 위해 도착한 여자 의사, 주인공인 주술사 코리바가 악마가 조종해 발부터 세상에 나온 신생아를 목 졸라 죽여 이에 항의하러 키리냐가에 온 금발의 여자 관리인뿐이라서 이다.
 주인공인 늙은 코리바는 케냐 지역 일대에 거주하던 세 부족, 마사이, 캄바, 키쿠유족이 유럽 문명의 침입으로 부족의 순결함을 잃고 검은 유럽인으로 변모한 채 케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 우주선을 타고 키리냐가에 가 주술사 ‘문두무구’의 자리에 오른다. 그곳에서 코리바는 진정한 키쿠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훌륭하게 주술사의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인 비를 부르는 일은 행성을 관리하는 유럽인들과의 컴퓨터를 이용한 교신으로 해결한다. 주술사로서 코리바가 가진 능력은 일찍이 케임브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예일에서 두 개의 학위를 가진 지식과 우화를 만들어내는 문학적 소양이다. 그러나 그는 키리냐가의 문두무구, 키쿠유족의 정신적 아버지라는 자리에 앉아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종족의 순결을 지켜나가기로 결심을 한다. 유럽의 문명 일체를 거부하는 것. 예를 들어 아픈 아이가 있다고 하자. 코리바는 아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만든 약과 고약으로 병을 다스리려 하지 유럽인주술사로 하여금 금속침으로 아픈 아이의 살갗을 뚫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열병을 고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유럽의 의술을 받아들이면 다음엔 그들이 만든 편리한 기계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이어서 옷, 음식, 집, 농업 등 일체의 고유한 문화가 절멸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역사나 정치, 경제 역시 다 마찬가지다.
 이 행성의 이름이 유토피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일찍이 토머스 모어 경이 자기 대가리가 잘리기 전에 발명해놓은 Utopia가 아니라 Eutopia, 유럽인들이 만든 유토피아. 행성의 이름에서 벌써 눈치 빠른 독자는 코리바의 원대한 구상이 개꿈으로 끝날 것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그가 만들어놓은 유토피아로서의 키리냐가는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고, 처음엔 그 균열을 손가락 한 개로 막을 수 있었지만 차츰차츰 더 많은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코리바는 착각을 했던 것.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는, 빠르거나 늦거나의 문제지 결국은 어떤 형태로라도 운동하는 건 진리다. 부족장과 주술사가 합심해 만든 유토피아 사회는 어느새 푹 고인 물이 돼버려, 젊은이들은 권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또 당연하다. 이웃부족의 침략도 없고, 이웃부족을 침략하지도 않고, 아무런 긴장tension 없이 그냥 번식해서 사는 것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을까. 인간이건 사회건 기본적으로 바라는 건, 때로는 과격할 수도 있지만 주로 과격하지 않은 변화와 파동. 코리바와 키쿠유족의 유토피아는 애초부터 생물학적 진보에 너무 무식했다는 결함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힘겹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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