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문학을 직업으로 하거나 소수의 독자만을 위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 읽고 나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등의 불평을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약한 강박관념이 든다. 근데 <이날을 위한 우산>은 내가 말한 ‘이런 책’들의 범위에 듦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가다가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제는 소위 지구촌 시대라서 비단 무대를 독일에 국한해 말할 것도 없이, 룸펜 인텔리겐치아 또는 루저들 집단의 디테일을 어찌도 이리 섬세하게 찾아낼 수 있었는지 감탄이 먼저 터져버렸다. 역자가 쓴 책의 해설을 보면 게나치노의 출세작이랄 수 있는 삼부작 <압샤펠>, <불안의 근절> 그리고 <거짓된 세월>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평범한 회사원의 고독한 내면세계를 다루어 70년대 독일 소시민 계층의 세계와 자기소외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 읽은 2001년 작 <이날을 위한 우산>의 주인공 마흔여섯 살의 ‘나’는 젊은 시절 삼부작의 주인공 압샤펠과 동료들, 196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니고 70년대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 80년대 중후반에 해고를 당하고,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인종들이 가끔 그러하듯이 이혼까지 당하거나 애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아 점점 인간 루저의 상태로 접어든 인물일 수 있겠다.
 ‘나’는 애인/연금생활자 리자와 몇 년간 동거하다 버림을 받았는데 리자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 비슷한 성품을 가져 헤어지면서 그녀가 받은 연금을 모아놓은 통장의 돈을 ‘나’가 사용할 수 있게 조치해놓고 떠나버렸다. ‘나’가 아껴 쓰기만 하면 한 2년 반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돈이라니 리자가 천사가 아니라면 적어도 성녀인 건 확실하다. 물론 ‘나’ 역시 직업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수제화를 만드는 회사에 계약직 비슷하게 다니는데, 업무는 구두를 신고 하염없이 ‘걸어서’ 돌아다니며 구두의 착용감, 내구성, 편의성 등에 관하여 다방면의 보고서를 써내는 것으로 한 켤레 당 200마르크의 수당을 받는다. 때는 1990년대. 세계는 바야흐로 미국 발發 신자유주의가 동서를 불문하고 불어 닥쳐 수제화 회사의 영업소장 하베당크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수당을 한 켤레, 즉 보고서 한 장 당 현재 200마르크에서 50마르크로 삭감을 하며 대신에 신고 걸어 다닌 중고 고급 수제화는 ‘나’의 소유로 하기로 일방적 통보를 해버렸다. 뒤에 가면 ‘나’는 중고품시장에 좌판을 벌여 수제화 한 켤레에 80마르크에 판매를 하니 사실 그가 얻을 수 있는 수당은 켤레 당 130마르크. 애초 맑은 하늘을 언감생심이고 그나마 이슬비 뿌리던 ‘나’와 ‘나’를 둘러싼 인생에 점점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무대가 독일의 작은 도시인 것 같다. 주인공 ‘나’는 이 소도시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생활도 하고, 해고당해 교사 출신 리자가 월마다 받는 연금으로 생활도 하다 버림을 받고, 거리에만 나갔다 하면 곳곳에서 아는 얼굴들이 줄지어 다닌다. 5층 건물 옥상에서 돌 던지면 ‘나’가 아는 사람이 맞을 정도다. ‘나’는 두 주일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걸 습관으로 하고 있는데, 작은 미용실의 주인이자 미용사인 마르고트가 ‘나’의 머리를 깎은 다음에 문을 닫고 ‘나’와 함께 내실로 들어가 뜨거운 한 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마흔여섯 살 먹은 남자는 마르고트가 원할 때마다 성공적으로 엑스터시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마르고트 역시 이를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연식이라 그저 무난한 섹슈얼 라이프를 이어간다. 정말? ‘나’와 마르고트 사이엔 아무런 애정관계가 없어, 또는 없는 것으로 착각해 마르고트가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도 질투는 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가 알고 있는 사진사 힘멜스바흐. 워낙 판이 좁은 도시라도 힘멜스바흐는 ‘나’가 마르고트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줄 모르고 신문사에 자기 사진을 팔 수 있도록 신문사 고위직에 있는 대학친구에게 말 좀 잘 해 달라 부탁을 한다. 마음이 약한 ‘나’는 또 밸도 없이 말 많은 대학친구를 찾아 신문사에 가서 힘멜스바흐에게 선처를 당부하는데, ‘나’의 글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친구는 난데없이 ‘나’의 채용을 권한다. 이런 얽히고설키는 자잘한 일화가 거미줄처럼 빼곡하게 차는 과정에서 독자는 독일의 소도시 사람들의 소외된 삶을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데, 그것도 수사법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건조한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그렇다. 물론 대화의 경우는 제외하고.
 다시 저 위로 올라가서, 분명한 스토리가 돌출되는 전형적 소설은 아니다. 특별한 주장이나 서사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소설인데 그게 어떤 매력이냐고 묻는다면 또 단번에 말하기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인생에 빗줄기가 거세진다는데 그럼 책의 제목에서‘우산’은 또 뭐냐고?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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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06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이 책 너무 지루해서 절반쯤 읽다가 포기하고 고이 모셔둔 지 몇 년 째인데, 조만간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19-09-06 10:33   좋아요 1 | URL
이게 그렇다니까요. 그래 첫 대가리에 제가 쓰길, 소수의 독자만을 위해... 운운했던 겁니다. 첫 부분이 힘들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어서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