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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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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 두 편, <결혼 계약>과 <금치산>이 들어 있다. 제목을 “결혼 계약”이라고 했고, 분량도 많아 나도 애초에 이 작품에 초점을 맞춰 독후감을 쓰겠노라 작심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기도 전에 아이쿠, <금치산>이 더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가 있고 없고는 독자의 기호에 따른 것이라 내 말이나 의견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하여간 그랬다는데 뭐. 두 작품 다 발자크 특유의 세밀 묘사에 독자는 턱이 툭, 떨어질 지경까지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금치산>에서는 간혹 지겹디 지겹게 겪어야 하는 세밀묘사가 사람 본성의 내밀한 음험함이랄까, 반감 같은 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기는 좀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발자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고 마는 데, 비록 그의 왕정주의적 시각이 거슬리는, 거슬려도 많이, 많이 거슬리는 진짜 골통 보수적 시각이긴 하지만서도, 이 촌철의 무심한 내던짐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발자크의 진짜 면모는 작품을 다 만들어 놓은 듯, 모든 일은 정의롭게 흘러가게 만들어놓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여태 쌓아 온 공든 탑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절묘한 결말로 독자의 눈이 홱, 돌아가게 만드는 솜씨이지만, 나는 자칫 지루한 장광설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 사람의 감정(이랄까, 심리)를 포착하는 솜씨에 눈이 갔다. 그게 어떤 장면인지 밝히지 않겠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더 경원하고 미워하는 심리 같은 거. 이렇게 힌트를 드리면 <금치산>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니 직접 읽으면서 어떤 장면 가지고 이리 유난을 떠는지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듯.
그럼에도 오늘 독후감은 예정대로 표제작인 <결혼 계약>에 관해 쓰겠다. <결혼 계약>을 읽으면서 열라 메모를 해둔 것이 아까워 어쩔 수 없지 뭐.
‘결혼 계약’이 무엇이냐고? 나나 당신같이 그냥 보통의 사람들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대목이다. 신문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결혼할 때 특히 현금을 포함한 자산의 유지, 관리, 축적에 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 정도로 뭘 가져본 적이 있어야 알지.
유럽의 부르주아나 귀족들은 계약서를 써서 공증까지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무슨 계약? 혼인하고 신부와 신랑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동침을 해야 하며, 자녀는 열 명을 두고 이후엔 생산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금함. 삼시 세끼 가운데 아침은 공무에 의한 출장이 아닌 모든 경우에 집의 식당에서 해야 하며,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이 있는 경우 부부의 사전 합의에 의함.
이런 거, 결혼 계약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 금액과 방식. 방식이란 현금, 기타 동산의 형태, 부동산을 말하며, 간혹 환어음 형태라면 지급 기일까지. 이번에 알았는데 결혼 후 재산의 활용까지. 예를 들어 19세기 프랑스에 ‘마조라’라는 형태의 재산 형태가 있었는데, 일종의 귀족 집안이 영속해갈 수 있게 만드는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만일 후작이라면, 작위를 이어갈 자손에게만 증여할 수 있는 (대부분 부동산 형태의) 자산으로 자손이 여러 명이라도 후작위를 이을 맏아들에게 귀속하는 재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비슷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이 예컨데 종중재산을 들 수 있겠는데, 마조라는 철저하게 세습 재산, 작위를 세습하는 자손에게만 귀속하니까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하기는 뭐, 우리 집구석, 김포문중에서는 종중재산 전부를 제일 큰 장손께서 한 방에 다 말아 자셨으니까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신랑측의 재산이 이러저러한데, 이 가운데 어디 어디 부동산을 마조라로 정해 절대 허물지 못하는 자산으로 한다, 이런 거까지 다 계약서에 적어, 공증인의 공증까지 받는다.
그런데 예를 들어 신부가 10만 프랑의 지참금을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9만 프랑만 가지고 오면, 결혼 후 남편은 신부한테 1만 프랑의 빚을 지는 것이 된다. 뭐 그렇단다. 그래서 결혼에 따라 양가에서는 가문 최고의 공증인들을 대리인으로 삼아 철저하게 따지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무치고, 고는 과정을 겪는 모양이다. 여러모로 없이 사는 게 편할 수 있다. 위안으로 삼자.
아무리 유럽 잡것들이라 하더라도 다 그런 건 아니고, 결혼을 신분상승이나 작위 확보 또는 경제적 곤란의 탈피 등 순정하지 않은 의도일 경우에 문제가 되었을 터. 국가의 왕실간 정략결혼일 때는 훨씬 더 심각했겠지.
18세기 중엽에 마네르빌이라는 노르망디 귀족이 있었다. 이 양반이 평소 친분이 있던 리슐리외 원수(1696~1788 무지 오래 살았다)가 술김에 중매를 서는 바람에 보르도의 부유한 상속녀와 별다른 결혼 계약 없이 혼인을 했다. 마네르빌 씨가 보르도에 가서 아내가 소유한 랑스트락 성을 보니 얼마나 멋진 성인지 한 눈에 반해 노르망디 베생 지역의 영지를 모두 팔고 보르도로 이주해 가스콘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이는 대혁명기를 무사히 넘긴 후 1813년에 나름대로 편안하게 79세의 나이로 죽는다. 혁명 다음해인 1790년에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지인 마르크니크로 떠나면서 영지를 비롯한 모든 재산의 관리를 가문의 정직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데, 이 공증인이 실로 양심적으로 수완이 좋아 백작이 귀국할 당시엔 혁명군의 착복은커녕 높은 수익을 내 훨씬 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1800년에 아내가 죽은 다음 백작은 점점 수전노처럼 변해갔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도 예외가 없어서 용돈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 아들은 아들대로 반감이 커져 오히려 낭비성향은 날이 갈수록 커지기만 했다. 그려, 이런 반전을 발자크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니까. 아들 이름이 폴 드 마네르빌. <결혼 계약>의 남자 주인공 되시겠다.
폴은 1810년 말쯤 방돔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귀가해서 아버지하고 3년을 보내는 동안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저항능력을 상실함과 동시에 정신적 용기도 사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폭군 아버지한테 억눌린 감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恨이지, 한. 하여간 그는 늘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사유할 때는 비열하고 행동할 땐 무모했으며 오랫동안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했는데, 순진한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불문하고 대개 희생자가 되거나 기꺼이 속임을 당하는 법이다. 아버지가 죽자마자 폴은 상속받은 현금자산은 국채에 투자하고 영지관리는 성실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맡긴 다음 타지에서 6년동안 잘 먹고 잘 지냈다. 나폴리 대사관을 거쳐 서기관 신분으로 마드리드와 런던을 비롯해 온 유럽을 다니면서 70만 프랑을 해 잡쉈다. 이럭저럭 현금자산을 다 까먹은 뒤에 토지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에 손을 댈 수밖에 없게 되자 온갖 사치를 뒤로(한 것처럼) 하고 고향 보르도로 귀향해 직접 랑스트락 영지에서 귀족적 삶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제 자신은 영지를 더 크게 확장할 것이며, 귀족이니만치 결혼을 해 한 다스의 자녀를 생산할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보르도의 국회의원이 되리라고. 근데 내가 잘 쓰는 말이 있지?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있으면 그게 인생이냐고. 폴 드 마네르빌도 인생의 앞길, 그것도 코 앞에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세젤예, 나탈리 에방젤리스타 양.
스페인 부르주아 가문 출신인 에방젤리스타 양보다 사실 나탈리의 엄마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멈추지 못하는 낭비와 사치, 이 낭비벽과 사치벽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싶어하는 욕심이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의 가장 크고 험난한 난관이 되는데, 젊은 폴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세젤예 나탈리의 미모에 눈이 뒤집혀 아무 생각도 없이 장모짜리의 뜻을 따르려 한다. 이때 유일한 폴의 지원군은 역시 늙은 가신이자 유능한 공증인 마티아스. 이미 은퇴해야 마땅할 정도로 나이가 든 노 마티아스는 노구를 이끌고 뱀 같은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의도와 여사의 대리인인 젊디젊은 공증인의 속셈을 환하게 알아차리고 여지없이 카운터 어택을 날려, 겨우겨우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을 망쪼가 들지는 않을 정도로 만들어 놓는데, 노 공증인 역시, 생각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 아니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파리로 가서 신혼살림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보르도에 나타난 젊은 백작은, 서울 갔다가 남원 내려온 파립의 이몽룡처럼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을 하고 있었던 거디었으니……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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