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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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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이 진절머리 날만큼 유쾌한 설레발장이가 마음 독하게 먹고 무려 1,000 쪽의 (위화의 다른 저작과 비교하면) 길고 긴 장편소설을 썼다. 작가 스스로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처음엔 가비얍게 한 200 쪽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는 거야? 기어이 주인공 이광두와 송강, 이 의붓형제의 일대기 전부를 담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건 이 한없이 슬프고 유쾌한 주인공들이 개같은 가난과 문화혁명의 야만과 개혁개방에 따른 처절한 실패와 성공, 다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천박함까지 온 몸으로 다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식 공중 화장실을 아시는가? 쭈그리고 앉으면 겨우 아랫도리만 가릴 수 있는 낮은 칸막이에 쪼르르 앉아 일을 보는 재래식. 지방에 따라 그놈의 칸막이 마저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남녀 사이에는 벽이 쳐져 있지만. 그래도 중국인데 어딜 삼강오륜을 통째로 잊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진 나도 알고 있었던 그냥 인류학적 지식이다. 자, 그럼, 자유낙하 방식의 재래 화장실에서 고약하기 그지없는 암모니아와 메탄의 숙성 가스, 그리고 똥파리 애벌레의 머리카락 속과 콧구멍, 귓구멍 침공을 굳은 의지로 인내하며 변기 속으로 깊이 고개를 거꾸로 디민 상태에서 고개를 활랑 뒤집어 칸막이 옆 여자 화장실을 올려다본다는, 이런 걸 상상이라도 한 번 해보신 분, 거수하시압!
주인공 이광두는 실제로 그렇게 해보았으며 그 때 다섯 명의 여인네들의 거대하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탄탄한 엉덩이를 보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유난히 예쁜 엉덩이를 발견하고는 한 술 더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이광두의 눈 바로 앞에 놓였던,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던 그 엉덩이는 다섯 개 가운데 가장 그 모양이 둥글어서 마치 뭔가를 말아놓은 것 같았고, 탱탱한 피부는 조금 위쪽의 꼬리뼈를 살짝 드러나게 했다. 심장이 사납게 콩닥거리는 가운데 꼬리뼈 반대쪽에 난 털을 보고 싶었다. 여자의 거기 털은 어디서부터 자라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몸을 더 깊숙이 파묻고 머리를 처박아서 여자의 거기 털을 거의 다 보게 되었을 무렵, 뒷덜미가 낚아채져 버렸다." (1권 16쪽)
근데, 이 못말리는 사건이 우연이 아닌 것은, 이광두가 태어나던 14년 전의 어느날 그의 진짜 아버지이자 날건달 잡종자 역시 똥통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여자들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그대로 똥통에 빠져 온갖 건더기에 기도가 막혀 그만 세상 하직했던 바이니 위의 인용은 말 그대로 내리물림이었던 것. 그런 이광두가 나중엔 2,000만 달러 약 220억원을 들여 러시아의 우주선을 타고 가는 패키지 여행을 떠날 정도의 큰 부자가 되는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데, 어떻게 해서?
자, 난 단연코 줄거리에 관해선 더 이상 입도 벙긋하지 않겠다.
그러면 이 세권짜리 책이 참 웃기고 재미나기만 한 것 같이 생각하실 수 있을 터이다. 저번에 위화의 <인생>에서도 얘기했듯이 중국의 13억 잠재독자한테 책을 팔아먹기 위해서 그냥 재미만 있으면 절대 안 된다. 13억 인구가 그냥 우습게 보일지 모르는데 그건 우리나라 원화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게 얼마나 큰 숫자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13억? 얼마나 거대한 인구인지 내가 계산해드리지.
13억 중국인들이, 원래 점잖은 분들이라서 다른 인종들과 비교해 무척 적은 양인 하루 200 그램 씩의 똥 오줌 슬럿지(좀 쉬운 얘기로 '건더기')를 배설하신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260,000,000 킬로그램이고 이걸 드럼통에 담으면 일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30 만 개의 드럼통이 필요한데, 드럼통의 바깥쪽 높이가 90 센티미터라 130 만 개의 드럼통들을 똑바로 세우면 1,170 킬로미터를 위로 올릴 수 있다. 매일. 이 높이, 실감이 나지 않으시리라. 이해를 돕기 위해,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을 132개 포개 놓은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는 말씀.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얘기를 좀 더 천문학적, 우주공학적으로 옮기자면, 그래서 일년도 안 되는 328일 동안 중국인들의 분뇨를 모아 드럼통에 담은 다음 똑바로 높이 세우면, 그걸 타고 올라, 오직 중국인들의 똥 오줌만 부둥켜 안고 드디어 인류는 달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으때, 으시으시하시지? 그러니 이광두의 생부가 똥통에 빠져죽은 거, 그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거다.
이 거대한 중국인들한테 책을 팔아먹어야 하는 중국 전업작가의 입장에서 당연히 위화는 정말 터무니 없게 웃겨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이 책 속에, 같은 눈물이라도 종류를 달리한 또다른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과 슬픔과 염병무지할 분노와 애뜻함과 살뜰, 안타까움 그리고 인정, 사랑, 형제애, 의리 이런 것들도 같이 담아냈다. 그래서 억지스러운데가 있고 분명한 과장과 두드러지게 의도한 역설, 이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연출된 모습임을 뻔히 알면서도 즐거이 감동해줄 수 있었다.
위화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 잘 나가는 작가로 현재 자기 수입에 만족하면서 달마다 통장에 꽂히는 인세만 가지고도 남은 세월 편히 즐길 수 있는 위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는 개혁개방 전, 그 너머 문화혁명 전, 비교적 순수했던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싶었다. 아, 이 독후감을 쓰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고민. 그건 왜 위화의 고민을 이렇게 생각하는지 밝힌다면, 이 책의 마지막 모습, 즉 결론에 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그걸 얘기하느니 난 차라리 위화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한 내 생각을 취소하는 편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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