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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ㅣ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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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작가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건 (우연히 이 책의 작가와 이름이 같은)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에비치와 브루노 슐츠를 연달아 읽고, 한 방에 뻥, 나가 떨어진 직후였다. 이 두 명의 소설가에 비톨트 곰브로비치를 얹어, 1920년대, 30년대 폴란드 유대인들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라고 영탄했던 것이 작년(2022년) 여름이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도서관에 가보니 아이고, 왜 그렇게 읽을 책이 많은 지 만일 여태 돈벌이를 했더라면 진즉에 사서 읽었을 책들은 메모리에서 까맣게 삭제되고, 은퇴 전에 사 책장에 올려 놓은 책들도 도무지 읽을 시간이 없게 되어버렸다. 집에 있는 거야 언제든지 읽을 수 있지만 도서관 책은 왠지 좀 서둘러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드는 현상, 이거 나만 그런 거야? 이렇게 1920년대와 30년대 폴란드 작가들의 놀라운 전위성에 깜짝 놀랐던 기억은, 어느 책 속에서 스타니스와프 렘을 읽은 것이 자기의 독서력에 큰 행운이었다는 얘기를 읽고, 아, 스타니스와프 렘, 비트키에비치 말고 렘도 있었지, 폴란드 작가들이 있었지, 기억이 다시 살아나 즉시 렘의 작품을 검색해보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읽을 렘으로 <솔라리스>를 골랐다. 이건 작품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의 힘이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1920년대 작가가 아니고, 1921년에 태어난 유대계 폴란드인이다. 비트키에비치와 슐츠, 그리고 곰브로비치도 유대계 폴란드인, 아쉬케나지였다. 렘은 그래도 잘 나가는 의사의 외동 아들로 태어나, 그것도 IQ 180에 빛나는 영재로 태어나,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2차 세계대전을 맞아 항독 운동도 하는 등, 동시대에 폴란드 땅에 살던 유대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 의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와 함께 곧바로 SF 소설을 쓰기 시작해 5년 후인 1951년엔 그까짓 의사 안 해, 나 글을 쓸 거야, 전업작가로 나선다. 새벽 네 시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규칙적인 글쓰기 직업인으로 60권이 넘는 책을 썼다고 하니, 이게 사람이야, 기계야? 혹시 모른다 베데스타 행성에서 우주선을 타고 도착한 외계인이었는지도. 다행히 맨 인 블랙, 검정 선글라스에 검정 수트를 입은 미국인에게 걸리지 않은 외계인이었을 수도 있겠지.
지구에서 우주 모선母船 프로메테우스 호에 탑승해 물병 자리를 궤도 비행하다가 캡슐을 이용해 솔라리스 행성 상공 몇 백 미터 위에 있는 우주정거장으로 출발하는 화자 ‘나’, 크리스 캘빈.
지구인들이 백년 전에 발견한 솔라리스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다. 하나는 붉은 태양, 다른 하나는 푸른 태양. 이 두 개의 태양이 서로 비슷한 힘의 인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두 개의 인력 사이에 낀 작은 행성은 불규칙한 공전을 해야 하는 관계로 수명이 길지 않을 거란 점은 아마추어 물리 애호가라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이에 더하여 가모프와 셰이플리 이론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 “두 개의 태양을 가진 행성에서는 생명체가 발생할 수 없다.” 작은 행성이라고 말은 했으나 그건 엄연히 행성이 공전하는 두 개의 태양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솔라리스의 지름은 지구보다 20% 더 컸다. 행성의 육지 면적은 유럽대륙보다 작은 반면에. 이후 지구 곳곳의 연구소는 독자적으로 또는 초국가적으로 솔라리스 행성을 탐사하기 시작했고, 셰너헌이 지휘하는 오텐스쾰트 탐사대는 이 별의 바다가 유기적인 물질이라고 발표했다. 유기적인 물질. 즉 생명체라는 것. 이어 생명과학자들은 솔라리스의 바다가 생명체의 원시적인 형태로 거대한 유동성의 세포이자 무시무시한 단일체일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도 바다라는 고도로 진화한 유기체가 행성의 궤도에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서 두 개의 태양 사이를 적절하게 공전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것 말고는 도저히 적합한 공전의 이유를 댈 수가 없었던 것. 천체/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원형질의 기계”라는 역설적 명칭으로 불렀고 곧 이를 공식화 했다. 그럼으로 해서 가모프와 셰이플리의 이론은 폐기된다.
대신 시비토와 비타의 가설이 등장한다. 바다가 항상성을 갖춘 바다로 단번에 진화해, 진화는 유기체 즉 생물만 가능한 일인데, 환경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실제로 솔라리스 행성의 바다는 지구의 바다처럼 넘실넘실, 바람이 좋으면 남실남실, 폭풍이라도 불면 우르릉꽝꽝 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끈적거리는 액체 같단다. 그래서 솔라리스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 바다를 놓고 ‘천재적인 바다’냐 아니면 ‘중력을 조정하는 젤리’냐의 논쟁에 불이 붙은 적이 있었다. 이게 주인공 크리스 캘빈이 태어나기 십 수년 전 이야기란다. 그러니까 솔라리스 행성 자체가 무게 1,700억 톤이 나가는 단 하나의 개체, 즉 생물로 인정을 했고, 지구인들은 자신들이 생명체를 구분하는 방법을 써서 솔라리스를 폴리테리아 문門, 신시티알리아 목目, 메타모르파 강綱이라고 해놓았다. (린네의 분류 방식, 문⊃강⊃목⊃과⊃속⊃종,인데 목과 강의 순서가 뒤집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이 즈음 해서, 솔라리스 연구는 사실상 중단되었는데, 이게 연구의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서인지, 포기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여튼 솔라리스 상공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 폐쇄까지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으며, 이건 정거장을 폐쇄하면 지구 학계의 노골적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라서 차마 주장할 학자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캘빈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빈이 구태여 우주 정거장을 향하기로 한 것은, 자신이 솔라리스학을 공부하게 된 가장 중요한 선배인 기바리안이 정거장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거장엔 세 명의 연구원이 탑승하고 있다. 기바리안과 스나우트, 그리고 몇 번 나오다가 끝내 흐지부지되고 마는 사르토리우스. 그러나 기바리안은 캘빈이 도착하는 날 아침에 자신의 방, 기밀복을 걸어 놓은 옷장 틈바구니에서 죽은 채로 서 있는 것이 발견된 상태였다. 사인은 치사량의 페르노스탈을 주사했기 때문이었고, 거의 틀림없이 신경쇠약 또는 우울증, 아니면 심각한 편집증에 시달렸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동료 스나우트 박사의 귀띔에 의하면. 그런데 이 별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캘빈. 스나우트는 캘빈에게, 이곳, 솔라리스 상공의 우주정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일종의 섬망상태라고 일러주었다. 캘빈이, 사실은 독자인 내가, 보기에 스나우트 박사 본인부터 섬망상태에 빠진 것 같았으며, 섬망도 카라마조프 형제들이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섬망과도 다른 착란 상태와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뒤로 갈수록 스나우트 박사는 어려운 와중에도 비교적, 아니, 훌륭하게도 정상 사고를 멈추지 않았지만 하여튼 처음에 보기에 그랬다는 뜻이다. 스나우트가 크리스 캘빈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고. 누구를? 정거장엔 오직 세 명만 있었고, 이제 다시 세 명이 되었는데 또 누가 있다고?
기바리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는 동료 탑승 과학자 사르토리우스와 공동으로 몇 십 년 전에 베르통, 셰너헌 탐사대가 행했던 탐사 방식, 솔라리스 바다를 향해 고단위 X선을 투사할 계획이었다. 고단위 X선은 위험성 때문에 국제연합에서도 사용을 금한 방식이지만, 솔라리스 바다를 향한 호기심은 금지까지도 해제를 시켜버렸고, 위험한 방식의 탐사를 시행하자마자 우주정거장 안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였다.
좋다. 이것까지는 알려드리지. 탑승자들의 기억 속에 가장 심각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 기억 속의 연령대 그 모습으로, 심장 박동을 지니고 호흡까지 하는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로 탑승자가 잠든 사이에 나타나 언제나 옆을 지키고 있다는 것. 예컨데 크리스 캘빈이 도착한 다음날 잠에서 깨는 순간 예전에, 벌써 십 년 전에 자살해버린 크리스의 연인 하레이가 흰 드레스 차림으로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것. 기분이 어땠을까? 잠에서 막 깬, 그리하여 비몽사몽일 것이 틀림없는 상태에서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린, 죽은 지 십 년이 넘은 여자가 큰 눈으로 자신을 내려보고 있으면.
그러나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지 말 것. 어마어마하게 큰 생명체,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생명체가 어쩌면 상상도 하지 못할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으니. 세상살이도 그렇다. 다른 이를, 혹은 한 사건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판단하지 말 것.
놀라운 SF 소설. 나는 SF가 실제 삶의 은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여태 이 장르를 가비얍게 알던 나는 반성해야 하리라. 정말 렘을 읽은 건 내 독서력에 한 전환이 될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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