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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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망사 3권에서 눈길을 끈 것은 성직자 성 암브로시우스, 현제wise emperor 테오도시우스, 훈족의 위대한 군주 아틸라, 그리고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다.

쇠망사 1권에서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하지만, 겉으로는 잘한다, 잘한다, 말을 할 뿐 정작 황제 본인은 죽음의 침상에서야 겨우 세례를 받았고, 쇠망사 2권에서는 질투의 하느님에 의하여 뒷방 영감 신세로 떨어진 유피테르 이하 이교의 신들을 영웅적인 철학자 황제 율리아누스가 잠깐, 황제가 전쟁터에서 칼 맞아 죽을 때까지 복권시켰다가 다시 찌그러졌다는 얘기까지 했었다. 쇠망사 3권으로 가면, 이후 자기 말고 다른 신을 섬기는 꼴을 못 보는 기독교의 신이 본격적으로 불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최전방에서 유피테르를 비롯한 로마의 오래 묵은 신들의 조각상을 파괴하고, 신전을, 그냥 두고 교회 예배당으로 쓰면 될 것을 비싼 대리석 같은 초호화 자재들로 지은 신전까지 마구 파괴해버리는데, 집 나가서 아직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검은 양인 내 머리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이 대목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최고最高의 최고最古 불교 예술품인 부처 석상에다 폭탄을 설치해 터뜨려버리던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생각났는지 몰라. 하긴 난 천국 가긴 텄다, 텄어. 이제 기독교가 들어오고 불과 반 세기밖에 안 되어 사람들 생각이 언제나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수준까지는 안 갔을 터이니, 간혹 이교도 적인 생각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지. 이런 사고 행위조차 얄짤없이 배척하고 탄압하고 가능하면 때려 죽일 거 같은 사람이 바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용감하고 전략적이며 훌륭하게 동서 로마 제국을 두루 살피던 현제 테오도시우스가 쿵짝을 맞춰 아예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 비슷한 수위까지 끌어올리니, 거봐라, 거봐. 내가 쇠망사 2권 독후감에서 이제 다신교를 믿는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왔으니, 질투의 하느님이 엄청 바빠질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벌써 천년 가까이 비 오는 날 말뚝을 팍 박아버리고 터를 다진 유피테르 이하 다양한 신족들이 겨우 반백 년이 되지 않아 전부, 몽땅 거덜이 나버렸으니, 거참, 대단하다 대단해.

암브로시우스 주교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성인이다. 그래 이름 앞에 ‘성聖’자를 달고 다녀야 할 정도로 어린 백성을 귀애하고, 가난한 이들을 동정하며, 음으로 양으로 사람들 마음을 다독일 줄 아는 그야말로, 주교님한테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몰라, 그야말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양반이다. 근데, 다 좋은데, 얘기가 이교, 다른 종교, 잡신들 쪽으로 나왔다 하면 갑자기 요괴인간으로 변신해 찌르고, 베고, 자르고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니 정말 무섭다, 무서워. 이이에게 사랑해야 할 이웃은 엄연히 같은 그리스도교인들 뿐인 거였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세속 재산에 관해서는 또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교회 건물, 토지, 노예(교회도 노예를 소유한다면), 현금, 금괴, 은괴, 보석, 귀금속으로 만든 성구, 태피스트리 등등, 사실 이게 다 황실과 원로원을 협박해 얻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로마라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아니 이건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아니라 다른 대주교들, 동시에 몇 명 있었다고 기번이 이야기하는 교황들 얘기지만, 하여간 당시 기독교, 믿어도 된다고 승인 받은지 겨우 50년 정도 된 종교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이 그랬다는 말씀. 보면 로마 속주 곳곳에 다 예배당이 있고, 그것도 큰 예배당이 있어서, 예배당마다 한 명 이상의 주교, 또 한 명 정도의 대주교가 있었는데, 아직 정확하게 나온 건 아니지만 눈치를 보니까 이 대주교들이 또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서로 교황을 칭한 거 같다. “거 같다.”라고, 정확한 거 아니고 이제까지 읽어본 걸로 추리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 친구 가운데 사제, 성당에서 미사 집전하는 제사장 말고 공부하는 먹물 사제가 있어 물어볼까 싶지만, 성당 다니라고 그럴까봐 안 물어봤다. 하여튼 ‘인상적인’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엄청 인상 깊었다’. 예수 믿는 분들은 나보다 ‘훨씬 인상 깊게’ 읽을 거 같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최후의 제대로 폼 나는 황제라고 할 수 있겠다. 때는 바야흐로 로마의 전성기가 지나고, 로마가 이젠 시들시들해진 것을 눈치 챈 야만족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속주를 침범해 약탈과 살인을 저질러 눈 번히 뜨고 당하고만 있었다가, 이제 제대로 된 황제가 등장해 말 그대로 한 번 뜨면 제대로 청소기 돌려 말끔하게 야만족들을 소탕하고 다녔던 거다. 기번이 재미난 것은 그러나 이 용맹하고 똑똑한 황제의 단점도 기어이 이야기하고 만다는 점. 바로 평화시, 아니다, 평화로울 때만 그런 건 아니고 하여튼 위급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면 게으르고, 늘 (나처럼) 술에 절어 있고, (이건 나 같지 않음)사치스럽고, (이것도 나하고 다름)환락을 좋아하는 군주였단다. 신나게 놀고, 마시고, 섹스 파다가 야만인들이 대규모로 몰려온다든지 몇 개의 부족이 연합해 덤빈다든지 한다고 누군가가 불평을 하기만 하면, 아, 씨, 한 번 나가볼까, 한 마디 하고 이때부터 작전을 짜기 시작하는데 이게 시작부터 보통이 아니란다. 작전 짜고, 진군 코스 정하고, 지리적 판단해서 공격 방법 택하는 거 하나하나가 정말 전쟁이란 예술을 하는 거처럼 신출귀몰, 제갈량 바로 뒷자리 정도는 된다. 게다가 얼마나 용감한지. 제갈량은 쌈은 못했거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물론 이후에도 군인 황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백전백승이라 과장할 수 있는 마지막 황제였다. 그러나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이이한테는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 이렇게 아들 둘이 있었다. 아쉽게도 전부 함량 미달. 그저 저 두메산골에서 농부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인물에게 아르카디우스한테는 동로마제국, 호노리우스한테는 서로마제국을 맡겨 본격적으로 로마가 두 국가 체제로 확정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건 나라가 망하는 걸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물론 두 아들 재위기간에 망하지는 않지만 쓰러져가는 나라의 전형적인 상태는 점점 심하게 곪아간다. 그리하여 서로마 제국부터 문을 닫고, 닫기 전에 한 번 더 괜찮은 황제가 등극하지만 재위기간이 하도 짧아 그저 그러다가 놀랍게도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마지막 황제로 제국은 셔터를 내린다. 아이러니. 로마를 건국한 것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로물루스. 거기다가 황제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 로마 사람들은 마지막 황제에게 이름은 어찌 됐건 아우구스투스 호칭을 주는 대신 멸칭을 써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또 한 명. 훈족의 영웅 아틸라. 이 양반의 후손들이 지금도 헝가리 평원지대에 터를 잡고 살아 헝가리 식 발음으로 하자면 “어띨러”다. 보면 중국의 북방에서 몽고족 혹은 몽고족 옆에 살다가 걔네들한테 얻어 터져 서쪽으로 이동한 흉노 비슷한 족속인 것처럼 보인다. 틀림없지 싶다. 한나라 최고 미인 왕소군을 훔쳐간 민족. 유목민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말 타고 고기 육포 씹어가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다가 눈에 보이는 마을 있으면 약탈하고, 처첩 삼고, 죽이고, 불 싸지르고, 뭐 이렇게 살던 야만인인데, 세월이 좀 흘러 냉정한 승부사이자 엄혹한 장수가 나와 로마와 속주의 기술까지 섭렵해 성문을 때려 부수는 파성기를 비롯한 무기를 제작하고나서 전 유럽을 강타한 인물이다. 위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덩치 크고 힘 센 인종들한테 모피를 비롯한 말린 대구, 넙치 등을 공물로 받고, 아래로는 흑해, 크름 반도 이하 지방까지 그야말로 말 가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때려잡았던 인물이다. 동로마제국은 물론이고 서로마제국 언저리까지 와서 로마의 속국들이 연합군한테는 한 번 패전을 한 적도 있지만, 전투에 지는 건 병가의 상사라, 다시 훗날을 도모해서 맞은 거에 두 배 이상으로 코피 터뜨려준 왕 중의 왕, 영웅 중의 영웅, 아틸라. 저 서로마제국으로 원정을 가 이탈리아 아가씨와 혼인을 하고 잔치를 벌여 술을 잔뜩 퍼마신 다음에 신방에 들었는데, 다음 날 해가 저물어도 텐트에서 나오지 않는 거라, 대왕님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동맥 어디가 내출혈로 끊어져 한 대야의 피를 쏟고 죽어 있었단다. 이후 아틸라가 이끄는 종족들은 순식간에 헤쳐모여, 서로 왕을 해보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전부 망가져버리고, 아틸라의 아들이 이끄는 순종 훈족 몇몇은 헝가리 동쪽의 황무지 넓고 넓은 평야에서 아직도 살고 있으니, 네모난 턱에 검은 머리카락, 약간 찢어진 눈을 하고 있다니, 시간 있으면 한 번 가보시든지.

에드워드 기번. 역사학자가 참 글도 맛있게 써서 읽는 맛이 보통이 아니다. 다만 너무 길어서 눈이 뱅뱅 도는 것만 아니면 더 좋았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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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2-04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쇠망사 1, 2의 독후감은, 서재에선 뜨지만 독자리뷰엔 빠지는구나. 1인 1리뷰인 모양이다. 그게 공평한 거 같기도 하다.

공쟝쟝 2023-02-04 07: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나중에 로마역사 공부 필요해질 때 레퍼런스 삼겠습니다!!

Falstaff 2023-02-04 16:18   좋아요 2 | URL
토욜이라 오늘은 좀 일찍 일과를 끝내고 이제야 답글 답니다.
서재는 휴대전화에서 답글쓰기가 안 돼 불편하군요.
로마 역사 공부하시려면 이 책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네요.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프랑스혁명 전에 쓰인 책이라서, 후대의 연구가 더욱 많이 보태진 근현대 사가들의 역작을 고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3-02-04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덕분에 로마사 공부하는 기분! ^^

Falstaff 2023-02-04 16:19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기분 좋습니다. 이 책은 재미로 읽으시면 좋을 듯하네요. 글도 참 잘 쓰는데 우리말 역자도 힘을 보탠 거 같더군요. ^^

stella.K 2023-02-04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니 천하의 골드문트님이 친구가 무서워
알고 싶은 것도 못 물어 보시다니요.ㅋㅋ

지난 주 아틸라 전기 영화를 조금 보다가 말았는데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훈족 뭔가 동양스러운데 말입니다.
자꾸 유혹하시네요.ㅠ

Falstaff 2023-02-04 16: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친구가 무척 바쁜 인간입니다. 가톨릭 대학의 교수로 있지만 연구 또는 강의차 바티칸에도 자주 가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런 친구는 사제직 은퇴할 때까지 그냥 연락 안 하고 내버려두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제 은퇴...는 너무 늙어서 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살아 있으려는지 몰겠습니다. ㅋㅋㅋㅋ
주제페 베르디가 아틸라를 되게 우스운 꼴로 만들어(각색해) <아틸라>라는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초기 작품(아홉 번째)으로 전형적인 19세기 벨칸토 오페라라서 자주 공연하지는 않지만 들을 만합니다. DVD로도 나와 있으니 아마 U-tube에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유부만두 2023-02-05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루슈디 톤 같아요) 그런데 로마제국 샷따 3권에 내렸는데 나머지 세 권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Falstaff 2023-02-05 10:2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서로마 제국이 셔터 내렸습니다. 동로마제국은 더 오래가고 이어서 신성로마제국이 로마의 후예라고 구라를 칩니다. 영국인, 브리타니언들은 자기들이 진정한 로마의 자손들이라고, 심지어 망한 트로이 장군 아이네이스의 후예라고 아득바득 우기는 촌극까지 벌입니다.
원래 기번은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만 쓰려 했는데 주위에서 권하기도 하고 자기도 욕심이 생겨 동로마까지 집필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레이스 2023-02-05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훈족의 왕 아틸라>가 인상적이었어요
악마로 몰아갈 정도로 나타나기만 하면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투력. 하지만 그것은 로마인들의 시각이고.^^

역사가들이 로마사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겠죠?

Falstaff 2023-02-06 06:5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오죽했으면 훈족에 밀린 게르만족의 대이동...때문에 로마가 문을 닫았겠습니까. 유럽인들 입장에서 보면 되게 쪽팔린 한 페이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