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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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모신 하미드의 근본을 따라가면 펀자브와 카슈미르 출신의 후예, 그러니까 <악마의 시>를 써 세계적 명성을 누리기 시작한 살만 루시디와 한 고장 사람이다. 하지만 하미드 개인으로 보자면, 세 살 때 미국 스탠퍼드로 유학을 한 아빠의 손을 잡고 캘리포니아에 가서 아홉 살 때까지 지내다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 파키스탄 라호르의 미국인 학교에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미드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동부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이 정도면 파키스탄 은수저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하미드는 한 술 더 떠서 전공인 경영학 외에도 심심풀이로 토니 모리슨 등을 사사하며 소설을 쓰기도 하다가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이게 2000년. 이듬해 하미드는 연봉 8만 달러의 대졸 초임을 주는 기업평가 컨설팅 업체에 취직해 필리핀 등지의 아시아 지역을 출장 다니는 한편 소설 쓰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신 하미드의 작품 목록에, 비록 그가 파키스탄 아메리칸이기도 하지만, 아시안 무슬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이후 무슬림 아시아 국가 또는 정부와 아주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으니.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한 모신 하미드의 책을 원본의 출간 순으로 보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2007),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2013), <서쪽으로>(2017)의 순인데 <주저하는…>에는 뉴욕 무역센터 빌딩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냉담한 시선 등을 잘 그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구의 공격을 피해 유럽으로 피난하는 아시아 난민들을 묘사했다. 이 두 작품 사이에 발표한 <떠오르는….>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아라빈드 아디가가 써서 맨-부커 상을 받은 수작 <화이트 타이거>를 한 번 더 읽는 느낌이 든다. 일단 현대화, 근대화 말고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파키스탄이나 인디아를 예상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시골 출신, 그것도 깡촌 출신의 소년이 대도시로 옮겨와 온갖 고난과 부정부패 속에서 살아가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거부가 되고 등등의 장면을, 모신 하미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이게 무슨 자기계발서인 것처럼 가볍게 읽기에 즐거운 2인칭 소설을 써 놓았다.

  세상에 소설문학이 다 진지할 필요는 없다. 비록 삶이, 당신의 것이나 내 것이나 마찬가지로 온통 비극으로만 직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마저 전부 비극이어야 한다면 과연 그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부터 당장이라도 소설 읽기를 멈추고 말리라.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같은 묵직한 주제를 기대하는 대신, 한 발랄하고 기발한 작가가 자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가난한 열대 아시아의 촌놈을 오로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하여 조금씩 신분상승의 기회를 부여하고, 자본주의와 부패와 권위주의의 밀림 속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경쾌한 독서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시면 좋겠다. 물론 이 와중에 적절한 애정, 제일 재미있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등장하고, 거기에다 약간의 베드신까지 등장하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힌트를 드리자면,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


  주인공의 이름은 책이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2인칭 대명사인 ‘당신’으로만 대신한다. 이이가 사는 아시아의 시골을 소개해보자면, ‘당신’이 1930년 전후 출생인데, ‘당신’이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해 노란 색을 띤 눈의 흰자위를 갖는 질환, 즉 황달에 걸렸지만 높은 소아사망율에 단련된 부모는 ‘당신’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던 시절이니 한 1935년 정도일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당신’은 물론이고 동네의 누구도 초콜릿, 리모컨, 스쿠터, 운동화라는 것을 단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거 혹시 하미드의 첫번째 에러 아닌가 싶다. 이후 ‘당신’의 80대 중후반까지 시간이 흘러 201X년이 되는 터, 70~80년 전, 대략 1940년으로 말할 거 같으면, 파키스탄이나 인디아의 멀고 먼 시골이 아니라 도쿄는 아니더라도 교토에서도 초콜릿과 운동화는 먹어보고 신어본 아이도 있었겠지만, 리모컨, 스쿠터라는 건 구경조차 못했을 터이다. 하여튼 일제 강점기 말 조선반도의 시골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깟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려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소도구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뭐 솔직히 말해, 그건 아니겠지만서도…

  원래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도시로 나가 월 1만을 받는 요리사로 있다. 1만이라는 돈이 시골에서는 큰 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도시에선 결코 그렇지 않아 할머니, 엄마, 누나, 형, 그리고 ‘당신’까지 다섯 입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그저 1년에 서너 번 집에 들러, 밤이 깊어 아이들이 잠에 빠지거나 빠진 척을 하면, 엄마의 손을 이끌고 벌판으로 나가 사랑을 나누고 한 주일 정도를 보낸 다음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는 했다. 물론 자식 사랑도 깊은 양반이긴 했지만 빈 주머니에선 자식 사랑마저 그리 깊게, 많이 나오는 법이 아니니 독자가 이해해야 할 밖에. 이렇게 살다가, 황달 걸린 아들에게 약이랍시고 무즙만 떠먹이는 아내를 보던 아버지는 드디어 함께 도시로 가자고 선언을 해, 선언 한 달 만에 온 가족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을 실은 버스의 지붕에 올라 몇 시간이고 달려서 도시에 도착한다. 이제 서막이 올랐다는 거다.

  도시에 도착한 후 펼쳐지는 본론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건 책의 목차에 다 나와 있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처럼 일단 ① 도시로 나가서, ② 적어도 조금은 교육을 받고, ③ 사랑엔 빠지지 말아야 하며, ④ 꿈이나 좇는 이상주의자는 멀리하고, ⑤ 중원의 고수를 찾아가 그에게 배움을 얻어야 한단다. 여기에 ⑥ 스스로, 자신만을 위해 일을 하고 ⑦ 폭력 사용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며, ⑧ 무엇보다 부패한 관료와 친구가 되고, ⑨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해야 한단다. 이후에도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더 있는데, 그건 이미 더럽게 성공한 다음에 고려하는 사항이니 굳이 아까운 지면에 보탤 이유는 없다. 다만 이후에 나올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 두 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작지 않다는 정도만.

  서론을 소개했고, 본론으로 목차를 올리니까, 정말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 <화이트 타이거>하고 비슷하겠지? 그렇다. <화이트 타이거>를 읽어본 분은 굳이 이 책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한데, 그것도 쉬운 결정이 아닌 건, <화이트 타이거>가 그만큼 재미 있었을 것이니. 하여간 가벼운 분량의 책이라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울 수 있어 부담없이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기에 맞춤하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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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0-04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목차만 봐도 재밌습니다. ㅋ 남은 세 가지가는 또 뭘지 ㅎㅎ 궁금하네요.
킬링 타임용 책으로 찜해두겠습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가볍게 읽기엔 최고입니다. 마지막 세 가지, 이건 클라이맥스라서 말씀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어엿비 여겨 주세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10-04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금을 울리는 항목은 읽는 자에게!;;
9개도 어떤 흐름으로 갈지 짐작이 갑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오, 근데 예상 외일 수도 있답니다. 착한 소설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이요. ^^

다락방 2022-10-04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보고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는데 저자가 모신 하미드여서 뭐라고? 하고 읽었던 책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그 911테러에 대해 주인공이 느끼는 지점에서 아무리 미국인이 되고 싶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얻고 미국 여자를 사랑해도, 사람의 본질인 그 안에서 변화되지 않고 있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 그 책 되게 좋아했거든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을 읽고 저도 나쁘지 않았는데 뭐라고 써놨더라 봤더니 별은 네개 주고 슬펐다고 썼네요. 사람이 참, 기록을 자세히 해야 되는데, 내용 기억나지도 않으면서 슬프다고만 써놔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사랑에 빠졌던 남녀가 늙어서도 만났다 뭐 이런 어렴풋한 것만 기억이 납니다. 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제가 골드문트 님 리뷰를 읽고 화이트 타이거를 살려고 했었는데 그 다음이 기억이 안나네요. 샀나 안샀나..

Falstaff 2022-10-04 11:47   좋아요 1 | URL
모신 하미드가 경영대학 출신이잖아요. 그가 자기계발서를 썼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서 그저 휙~하고 지나쳤는데요, <서쪽으로> 독후감을 올렸더니 다락방님이 이 책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하미드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아하, 그랬나? 그러면 읽어봐야지, 하고 샀다가 이제야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 다락방님 덕에 재미난 책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22-10-04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타이거 다시 읽는 기분이라고요.
읽진 않았고 영화를 보았어요. 대충 그런 이야기구나 짐작이 되네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도 데려갑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베드신이 있긴 있다고요 ㅎㅎㅎ 늘 그렇듯 재미있게 리뷰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2-10-04 11:48   좋아요 1 | URL
근본주의자, 좋습니다.
ㅎㅎㅎ 제 독후감을 늘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10-04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ㅎㅎㅎ
왠지 딱 제 수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베드신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ㅋㅋ
작가가 진짜 은수저네요.
소설가들은 2인칭 소설 잘 안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경숙이 ‘경숙의 난‘ 있기
바로 전 <엄마를 부탁해>인가 어디서 2인칭 소설 썼는데 괜찮았는데 말이죠.

Falstaff 2022-10-04 14:30   좋아요 2 | URL
작가 같은 사람, 프린스턴 경영학과 나와, 소설가도 되고, 초봉 8만 달러를 받기도 한데, 만일 거기다가 몸 좋고 생기기도 잘 생겼으면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요? ㅋㅋㅋㅋ
제가 읽은 2인칭 소설 가운데 제일 좋았던 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였습니다. ㅎㅎㅎ 전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영숙이 얘기는 안 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