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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사람들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64
패트릭 화이트 지음, 이종욱 옮김 / 범우사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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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대산세계문학총서 165~166번, 패트릭 화이트의 장편소설 <전차를 모는 사람들>을 정말 인상 깊게 읽고, 시중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읽었다. 내가 읽은 책은 2008년에 나온 중판. 초판은 화이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1973년 11월 1일에 나왔다. 아시다시피 노벨 문학상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 몇 주가 더 지나야 한림원에서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해 수상소식을 알려준다. 상 받을 작가가 잠을 자고 있든지, 샤워 중이든지 전혀 신경 안 쓰고 무조건 스톡홀름 기준으로 업무시간에 전화 건다.
1970년대의 별로 바람직하지 않던 우리나라 문화적 환경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은 요새말로 블루 오션 취급을 받아, 문학상 발표가 나자마자 각 출판사들은 수상 작가의 책을 경쟁적으로 서둘러 출간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별 지랄들을 다 했다. 이 책,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64번에 자리한 《불타버린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금속활자 시대에 내가 좋아한 출판사였던 비상하는 독수리, 범우사 역시 1973년 가을에 기대하지 않았던 패트릭 화이트가 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화이트가 1964년에 출판한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The Burnt One》을 허겁지겁 얻어와 외대 대학원 아프리카지역 연구학과에서 공부한, 또는 공부하고 있는 이종욱에게 번역을 의뢰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건 당연히 납기였겠지. 세상에. 번역에도 납기가 있다니. 그땐 그런 시대였다. 아마 저작권이고 뭐고 그딴 것들도 신경쓰지 않았을 거다. 남한이 북한보다도 못 살았던 시기니까 뭐.
그런데, 이거 참, 얘기하기도 민망한데, 원래 패트릭 화이트가 쓴 《불타버린 사람들》은 모두 11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던 책이지만 열한 편을 다 번역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고 이종욱은 고백한다. 그리하여 중편 분량인 <말라죽은 장미>, <차 한잔>, <유쾌한 영혼>, <고양이를 길러서는 안 되는 여인>, 이렇게 네 편은 번역서에서 빠졌으며, 분명히 “지워지지 않는 활자”로 말하기를, “차후에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음에도, 사내가 이렇게 얘기했으면 못 먹어도 질러봐야 하는 게 당연하거늘, 내가 읽은 “같은 책의 중판”에도 어찌하여 똑 같은 서문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ctrl + v”하고 자빠졌느냐, 하는 거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뭐라고 보태느냐, 그대로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한다.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말로 옮기기에 만만치 않은 화이트의 작품을 서둘러 번역하느라고 졸역이 군데군데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부끄럽다.”
어떠셔? 욕 안나오셔?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세상에나. 단편을 번역하는 것이 장편보다 훨씬 더 어렵고, 단편에 비하면 시 번역하는 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종욱한테는 거꾸로였나 보다. 좋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우리말로 옮기기 만만치 않은 화이트라니. 어떤 외국 작가가 우리말로 옮기기에 편한데? 있으면 두 명만 대보셔. 하지만 무엇보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건 역자 자신이 졸역이 군데군데 있을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책을 찍는데 동의를 했다는 거다. 부끄러울 짓을 왜 해? 미치신 거 아니심?
범우사도 똑 같…거나 더하다. 35년만에 중판을 내면서 그래 초판 서문까지 그대로 베껴? 그럼 초판에 빼먹은 네 편을 중판엔 보완을 해야 할 거 아닌가 말이지. 이종욱이 이젠 늙어 힘들면 다른 역자한테 부탁을 해서라도. 아마 못했을 거다. 35년 세월 동안 세상이 바뀌어 엄중해진 저작권 법 때문에 새로 네 편을 번역하려면, 특정시기 이전 번역물의 복사 말고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이렇게 콕 집어 얘기하면 범우사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얄미울까?
그러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내가 범우사 사장이고 이 책을 중판까지 찍을 정도로 아꼈다면, 새롭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정식으로 출판하는 쪽을 선택했을 거 같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이이가 쓴 장편소설, 분명히 부담이 되는 분량이긴 해도, <전차를 모는 사람들>를 읽어보면 넉넉히 짐작하실 수 있다. 지금 알라딘을 검색해봐도 아직까지 독후감 올라온 건 내가 쓴 거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인상 깊었던 책이다. 이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은 <전차를…>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고드볼드 부인과 같거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집중 관찰한 작품들로 채웠는데, 물론 11편 가운데 7편만 실려 있지만, 이때 52세였던 패트릭 화이트의 시선이 어찌 이렇게 감각적이고 쓸쓸하고 애잔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삶에서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동성애자로 살면서도 동성애 해방운동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용한 삶을 유지하는 편을 선택한 천성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섯 편의 단편과 하나의 중편 가운데 나이 든 부부가 다른 나이든 부부의 집에 정찬을 하러 가서 초청한 부부의 취미였던 새 울음 소리 녹음을 듣는 과정에서 그만 행복한 부부의 기초가 삐긋거리는 장면을 우연히 듣게 되는 <달밤의 할미새>와, 고물상을 하는 가족이 쓰레기장으로 소풍을 가 결코 이혼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부부싸움을 하고, 쓰레기장 옆 공동묘지엔 평생 분방하게 살다 간 자그마한 여인의 장례식이 진행되는데, 고물상 집 장남과 고인의 조카딸이 이 사이에 자그마하지만 예쁘기도 한 사랑을 만드는, 또는 시작하거나 배우는 내용의 중편 <쓰레기장에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이 책의 초판이 모르긴 해도 내려쓰기를 했던 금속활자 시대의 것이었고, 그걸 그대로, 단 한 번의 추가 교정도 하지 않은 듯하게, 그대로 복사해서 책을 만들어 여기저기 눈에 거슬리는 철자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그것”이라 쓰지 않고 구태여 “그 것”을 고집하는 거. 정말 한 시절 도약하는 독수리, 범우사를 좋아하는 출판사로 꼽았었는데, 이제 더 이상은 미련을 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까 말까, 거 참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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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은 아직 특정 출판사를 좋아할 단계는 아니었다. 출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월간지 '소년중앙'을 막 떼고, 이제 겨우 '학원'을 읽어볼까 생각했던 소년 시절. 불과 몇 달 후 단번에 집구석 거덜이 나서 학원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X년 우리나라 남자들 가운데 유일한 내 라이벌 신성일이 역사상 거의 최초로 일본 로케를 떠났다. 이때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동무’들을 술집에선가 어디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신성일더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라가 가난한 주제에 간나들이 무슨 영화를 찍으러 일본까지 오고 그래?”
- 이렇게 말하니까 “치키치키차카차카쵸코쵸코촉!”의 저팔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라디오 전성기 땐 아마 이런 손오공 주문이 유행했을 걸? “우랑바티바라움 무따라까빠따라까 쁘라냐!”
- 도약하는 독수리는 범우사라는 회사가 독수리 스타일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회사 로고가 그랬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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