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시쿠 부아르키 지음, 루시드 폴 (Lucid Fall) 옮김 / 푸른숲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1944년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르주 부아르키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쿠 부아르키 데 올란다 (Francisco Buarque de Hollanda)는 어린 시절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로, 이탈리아의 로마 등지에서 성장해 60년대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삼바, 보사노바 장르의 대중음악 가수, 기타리스트,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등으로 활약한다. 물론 지금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면 다분히 낡은 창법과 돋보이지 않는 가창력으로 실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대엔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이는 음악 속에 브라질의 사회, 문화, 정치적 이슈 등을 담아 노래해 권력을 잡고 있던 군부에 의하여 잠깐이나마 투옥되었던 경험도 있다. 물론 1970년대에 일종의 복권을 해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서는 시와 소설을 쓰고, 극작도 하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쳐 세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하)고, 2019년엔 포르투갈 언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을 골라 주는 가장 권위있는 카모에Camöe 상을 받았다. 아직 살아있고, 돌싱이며, 슬하에 딸만 셋 두었다.

 

  주제가 참신하다. 대필작가. 화자 ‘나’, 주제 코스타의 직업이다. 코스타는 친구 아우바루 쿠냐와 동업으로 문화대행사를 차렸다. 아우바루가 물려받은 재력과 주로 정치 방면으로 괜찮은 연줄을 바탕으로 고객을 물어 오면, ‘나’가 곧바로 대필을 해주는 식이다. 물론 처음엔 부잣집 자재들의 대학 리포트부터 시작해서 진정서나 연판장, 심지어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맡았지만 이젠 ‘나’의 작품이 공업협회장, 연방 대법원장, 리우데자네이루 추기경이나 대주교 이름으로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일이 드물지 않을 만큼 ‘비밀리에’ 명성을 누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동업자이자 비즈니스 책임자인 아우바루는 이런 글들을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전시하고는 했는데, 이건 ‘나’에게 내 글을 자랑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동반된 공허만을 줄 뿐이었다. 하지만 아우바루 입장에선 사무실을 방문할지도 모르는 고객들에게 광고효과를 주어야 했으니 뭐라 하지는 못했다. ‘나’의 글이 다음 날 아침 신문 1면에 실려 독자들이 열광하면 할수록 ‘나’는 더 깊은 허무의 골로 빠져들었다.
  ‘나’가 젊지는 않다. 공영방송국에서 앵커로 뉴스를 진행하는 ‘반다’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아내와 비만 증세가 있으며 다섯 살 먹도록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이 있다. 반다는 뒤에 상파울루에서 방송하는 저녁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승진해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쓴 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가져다 바쳐도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사실 이건 남편의 글이기 때문에 읽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경우라고 믿는데, 글 또는 책이 성공한 사람의 베스트셀러라면 조금 달라서 읽고 경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대필업자로 돌아가면, ‘세계 대필작가 협의회’라는 것이 있어서 ‘나’는 멜버른 회의에 처음 참석을 했으며, 이듬해 이스탄불 회의도 참석했다. 이스탄불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할 예정이었으나 테러 위협을 받아 부다페스트에서 내려야 했다. 헝가리어. 지구에서 악마가 숭배하는 단 하나의 언어라고 한단다. 이것이 ‘나’, 주제 코스타가 처음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경험.

 

  이후 부다페스트에 다시 방문해 플라자 호텔, 플라자plaza이면서도 언덕 위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 여장을 푼 ‘나’는 헝가리 언어에 관심이 생겨 한 번 배워볼까 싶은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 기초 헝가리어를 뒤적거리다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여성이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야.”라고 초를 친다. 정신병원의 간호사 또는 조무사, 그것도 아니면 간병인으로 근무하는 퓔레뮐레 크리스티나, 라는 이름의 피부가 희디흰 여성. 헝가리에선 크리스티나를 애칭 ‘크리슈카’라고 부른단다. 크리슈카는 ‘나’ 주제 코스타에게 명함을 건넸고, 그리하여 월 3천 포린트의 수업료로 밤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 동안 개인 교습을 받기에 이른다. 그의 이름 주제 코스타 José Costa, 이것을 헝가리 식으로 발음하면 Zsoze Kósta, 조제 코슈터가 되어 크리슈카의 어린 아들 피슈티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를 미스터 코슈터, 라고 부른다.  주제 코스타는 한 작품의 주인공답게 나중엔 헝가리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래서 사고도 치게 되지만.
  아직 헝가리어에 별 조예가 없을 시절. 그러나 ‘나’가 브라질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직업 정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공업협회장, 연방 대법원장, 리우데자네이루 추기경이나 대주교가 자신의 글이라고 발표한 것을,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아서 어떤 인간이 등장해, 웃기지 마라, 그거 다 내가 돈 받고 써준 내 글이다, 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한다면 공업협회장 정도는 모르겠고, 한 나라의 대법원장이나 추기경, 대주교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독일에서 온 카슈파르 크라베라는 문인이 있다. 쿠냐 앤드 코스타 문화대행사는 크라베에게 거액의 하청을 받는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소설을 써달라는 것.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 개의 카세트테이프 양면에 꽉 채워 녹음하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300매가량의 장편소설을 청탁한다. 물론 작품은 카슈파르 크라베의 이름으로 발표할 것이며, 쿠냐 앤드 코스타 문화대행사는 저작권을 비롯한 어떠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다는 조건이다. 동업자 아우바르는 이 일은 오직 코스타 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에게 일을 맡기지만, ‘나’ 코스타가 테이프 한 개를 들어보니 더 듣고 말고 할 것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쉬운 말로 쓰레기 수준의 잡담에 불과했던 것. 그래 코스타는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자신만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원고를 넘겼으며, 출판까지 했는데 공전의 히트를 쳤고, 카슈파르 크라베는 그 사이 잘 나가는 앵커가 된 ‘나’의 아내 반다에게 야릇한 헌사를 적어 책을 선물 했으며, 이걸 알게 된 진짜 작가 코스타의 뇌 속에선 될 수 있는 대로 망측한 상상으로 번져, 아내의 양팔을 붙잡고 벽에 밀어부쳐 꼼짝 못 하게 해놓고서는 이를 악물고, ‘그 책 내가 쓴 거야.’ 영업비밀을 누설해버리고 그 길로 브라질을 떠 다시 부다페스트에 도착한다.

 

  재미있는 책. 짧아서 부담이 없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필? 나도 직장 다니면서 한 20년 동안은 사장 연설문, 담화문, 편지글 같은 걸 대필해왔다. 가장 마지막 대필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규모 희망퇴직을 하고 사장이 입 닦으려 하기에, 사장 이름으로 ‘굿바이 레터’라도 한 장 보내시지요? 해서 그걸 내가 썼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제가 믿는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끝맺는,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엔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간지러운 글이었다.
  사장한테 가져갔더니, 누가 썼냐? 묻더라. 그래서 제가 썼습니다. 했더니 그 새끼 하는 말이, 니가? 웃기네. 구라치지 마라. 그러더니 책상 위로 픽 던지면서, 그대로 보내. 해서 보냈다. 사장 새끼가 가톨릭 신자였다. 나이롱도 신자라고 치면 그렇다. 그 새끼 아빠 돌아갔을 때 내가 관도 들었다. 사장 새끼도 그 후 얼마 못 가서 잘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쨌든 난 아직 다닌다. 내가 이겼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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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8-20 08: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머? 옮긴이가 루시드 폴이네요??

Falstaff 2021-08-20 08:56   좋아요 3 | URL
넵! 그이가 공부도 잘 하잖아요.

잠자냥 2021-08-20 10:51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그 생각. ㅎ

그레이스 2021-08-20 09: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글이예요.
웃어야 할지...
대필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데다, 대필작가는 서글프기도 하고 화도 나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저는 이제목이 항상 헷갈리는데...

그때 잠시 생각했어요.
대필작가도 작가인데 차라리 이름 올려주고 원고료도 똑같이 주면 안될까 하고...

그런데 역자 루시드 폴이 그 루시드 폴 맞나요?^^

그레이스 2021-08-20 09:08   좋아요 3 | URL
벌써 질문에 답을.^^
제게 루시드 폴이 직접 쓴 책 한권 있어요
노래는 잘 못하는데 작사 작곡은 잘 함. 책은 잘 모르겠고... 그런데 번역을?!
지금 찾아보니 번역을 꽤 많이 했네요 !

Falstaff 2021-08-20 09:10   좋아요 4 | URL
예. 역자가 그 루시드폴이 맞습니다.

대필 작가의 가장 큰 흠결은 딱 하나, 유명하지 않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전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대필작가를 ˝중원의 고수˝라 칭했는데, 이젠 작품을 쓰지 못하는 등단작가들이 작가 타이틀 가지고(돈 좀 더 달라는 의미) 대필을 하기도 하더군요.

앗, 1분 차이! ㅋㅋㅋ

그레이스 2021-08-20 09:10   좋아요 3 | URL
이 책은 품절이네요

coolcat329 2021-08-20 1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폴스타프님 직장에서 대필작가로 활약하셨군요.

작가가 대중가수이면서 작가인 점이 역자 루시드 폴과도 겹쳐지네요.
브라질 소설은 한번도 읽어본적도 지금 생각나는것도 없네요. 대필작가가 주인공인점도 참 독창적이구요.

Falstaff 2021-08-20 11:34   좋아요 7 | URL
대필작가는 부수 업무였고요, 주 업무는 걍, 하루 종일 엑셀 파일 바라보고 수정하고, 보고하고, 승인받고 뭐 그땐 거였습니다. 한 마디로 엑셀로 벌어먹었습니다.

브라스꾸바스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전집에서 나온 건데 최초의 브라질 문학 어쩌구저쩌구 광고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말 그대로 이미 죽은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리.... ㅋㅋㅋㅋ

새파랑 2021-08-20 16: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직장에 다니시는 대필작가 폴스타프님 1승 이군요 ㅋ 역시 루시드폴도 폴스타프님 (다 폴씨임) 처럼 다재다능~!!

Falstaff 2021-08-20 16:4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다재다능.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재주 많은 놈은 빌어 먹는다는 게 있습지요.
즉, 진짜 잘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첫 직장 면접볼 때 그 회사 사장이 그러더라고요. 그 양반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