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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제프리 켄트 유제니디스(Jeffery Kent Eugenides)는 1960년 3월에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에서 그리스 이민 2세 아버지와 아일랜드 혈통의 어머니가 낳은 세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사립학교를 거쳐 명문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인도 콜카타에서 테레사 수녀와 함께 자원봉사에 뛰어든다. 십대 시절에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고 문학에 큰 뜻을 두어 <베오울프>에서부터 시작하는 전통적인 영문학을 공부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애초 유제니디스가 브라운대에 진학한 건 미국의 포스트모던 소설가 존 호크스를 사사하기 위해서였고, 이후 스탠퍼드대에서 소설 창작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러니까 척 봐도, 미국에서 사립 중등학교에 다녔고,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는 취직 대신 인도로 가 자원봉사를 몇 년 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명문이긴 하지만 학비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스탠퍼드대에 또 다닌 것으로 보아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듯하다. 1993년 첫 번째 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를 발표해 단박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고 내 눈에도 띄게 된다. 동시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자 영화배우,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에 의하여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유제니디스는 9년 터울로 작품을 발표하니, 2002년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 바로 <미들섹스>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이제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반열로 오를 수 있는 퓰리처상을 받고, 기타 중요한 경쟁의 최종후보short list에도 오른다. 다시 9년 후에는 <결혼이라는 소설>을 발표해 또 몇 가지 상을 받지만, 아직까지 <결혼…>이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된다. 이외에도 여러 단편을 발표한 바 있고, 우리나라에는 《불평꾼들》 딱 한 권의 단편집만 번역 출판되었다.
이이의 가족관계를 보면 아들만 하나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번 이상 이혼을 한 돌싱 아닐까 싶다. 2018년 현재 피터 B. 루이스 센터의 예술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란다.
1960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칼리오페 헬렌 스테퍼니데스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이 아이는 14년 후 미시간주 피터스키 근교에서 뒤를 돌아보며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앞에서 돌진해오는 트랙터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혀 날아가는 사고를 당한 후에 남자아이로 바뀌어버려, 이후 칼 스테퍼니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누구나 얼핏 그리스 신화의 티레시아스를 떠올리겠지만, 칼리 또는 칼은 결코 교미하고 있는 뱀을 회초리로 때려죽인 적이 없다. 태어날 당시 미성숙한 남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늙은 의사 때문에 여자아이로 키워진 것일 뿐.
내가 아들만 둘을 키워서 그런지 이런 방면으로는 조금 안다. 책에선 임신 초기 생식기의 발달과정부터 상세하게 나와 있으나 간단하게 이야기해보자. 칼리오페 스테퍼니데스는 날 때부터 사내아이였다. 남자아이의 고환 두 개는 원래부터 몸 밖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복강에 있다가 점점 아랫배의 사타구니 근방(서혜부)을 탈출해 출산하기 전에 고환 주머니(음낭)에 자리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내아이가 하나 혹은 두 개의 고환 모두를 그냥 서혜부에 둔 채 출산을 하고, 이런 고환을 정류고환이라 칭한다. 이때 고환주머니는 유난히 주름이 많을 뿐 (여성의) 대음순과 매우 유사하게 보여 얼핏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한편 될 수 있는 대로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고환을 몸 안에 넣고 있으면 고환이 정상발육이 되지 않아 나중에 악성종양의 씨가 될 수도 있다고 하며, 이보다 훨씬 많은 경우엔 저절로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정관수술을 한 후에도 계속 만들어진 정자가 몸 안에서 저절로 없어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더 잘 봐야 할 것은 요도하열(尿道下裂). 정상 남자아이의 요도는 아래쪽 귀두부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귀두부이기는 하지만 요도가 있어야 할 정상적인 홈sulcus보다 더 아래쪽에 있거나, 음경의 중간 부분에 있거나, 음낭에 있거나, 아예 회음부에 위치할 수도 있다. 실물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음경이 아주 작은 경우도 있어서 아이를 유난히 발달한 음핵을 가진 여자애로 오해하기도 한다. 게다가 요도가 음경 중간 아래에, 그리고 더 밑에 있을 경우엔 소변을 볼 때 여성처럼 앉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만일 부모가 딸을 원했더라면 정류고환과 심한 요도하열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사내아이를 딸로 인식하고 키울 수도 있다. 검색하면 아주 작은 음경을 가진 심각한 수준의 요도하열을 보실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슬픈 장면이니 가벼운 호기심으로 구경삼아 검색해 보는 우를 범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예전에는 약 3백에서 5백 명 가운데 하나 꼴로 태어나는 이런 아이들을 남녀 생식기를 다 가지고 태어난 사방지 또는 어지자지라 불렀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으나, 이제는 아동 비뇨기과에서 수술로 정상 또는 정상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해야지 이 책의 주인공 칼리처럼 너무 늦게 발견하게 되면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미들섹스>의 주인공 칼리오페는 고환 두 개 모두 몸을 탈출하지 못한 정류고환이며, 동시에 심각한 수준의 요도하열을 겸하는데 이 아이의 경우는 ‘5알파환원요소결핍증후군’에서 비롯한다고 되어 있다.
작중 뉴욕의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 루스 박사는 이 ‘5알파환원요소결핍증후군’과 비슷한 케이스가 대단히 희귀한 유전학적 병례로, 이런 “돌연변이”들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도미니카 공화국, 파푸아뉴기니, 터키 남동부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칼리오페 스테퍼니데스의 조부모가 태어나 자란 곳이 문제의 터키 남동부에서 한 5백 킬로미터 떨어진 산골 비티니오스였던 것. 게다가 가장 강력한 열성유전자의 전이 방법이 근친 간 결혼이었는데, 작은 마을 비티니오스에서 그리스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촌, 육촌, 팔촌 간 결혼이 흔했던 건 뭐 그렇다고 치고, 칼리오페의 조부모는 서로 육촌 간이었으면서 동시에 친남매이기도 했던 바, 데스데모나 스테퍼니데스와 이이의 남동생 엘레우테리오스 스태퍼니데스는 자신들도 모르는 채 애초에 5번 염색체의 열성인자를 신세계에 퍼뜨릴 요인을 갖고 이민선에 올라, 선장의 주례로 선상 결혼을 했으며, 구명정에 덮개를 치고 첫날밤을 맞았던 거였다.
현재의 나, 칼 스테퍼니데스는 마흔한 살. 그러니까 2001년 연말이다.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인의 후예로 미국 땅에서 태어나 지금은 베를린 쇤베르크 지역에서 살고 있다. 미국 국무성의 해외 근무 직원으로 지금은 베를린 미국문화원에서 앤디 워홀의 매릴린 먼로와 마오쩌둥 그림을 전시 중이다. 일본계 여성 줄리 키쿠치와 연애를 하며 줄리에게 커밍아웃을 할 것인가,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이 정도에서 관계를 정리할 것인가를 저울질하고 있다. 칼이 비록 자웅양성도 아니고 정상적인 남자의 2차 성징을 보유했고, 사회적으로 남자로 기능함은 물론이요 남자 소변기를 사용하며,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합성 능력이 없어 평생 대머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큰 키에 맵시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지만 아이는 낳을 수 없다. 작품에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매우 작은 음경을 가진 경우라서, 사춘기 이후에 호르몬 투여를 많이 했겠지만 성교 불능 수준이거나, 심리적으로 여성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강박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건 아직 고환이 서혜부에 정류한 상태 그대로라는 것. 그러면 성교는 가능하더라도 씨톨의 생산이 어려운 경우일 수도 있다.
1980년, 할머니 데스데모나 스테퍼니데스가 작고한 후, 할머니와의 약속에 따라 자신의 5번 유전자에 관한 비밀, 구체적으로 조부모의 친족간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승낙을 얻어 이제 자기 가문의 저 먼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시간적 무대는 갑자기 1922년, 지금은 터키의 영토가 된 옛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자 소아시아 고원의 실크 무역 중심지였던 부르사의 펼쳐진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산골 비티니오스가 등장한다. 데스데모나는 1901년생. 어려서부터 어머니 에우프로쉬네 스테퍼니데스로부터 누에 치는 법을 배우며, 좋은 비단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우선 순결해야 해서, 남자 하나에 얼룩 하나가 생기는 법이라는 걸 각골명심, 근동에서 가장 훌륭한 누에치기가 된다. 그런데 엄마가 병환 중에 한 살 나이를 덜 먹은 동생 에레우테리오스 (레프티) 스테퍼니데스를 잘 보살펴 주라는 당부를 남기고 그만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만이었다.
이제 둘이 남은 스테퍼니데스 가족 앞에 1922년, 터키는 그리스한테 잃었던 땅 아피온을 탈환하기 위해 부르사로 쳐들어오고, 남매는 누에알을 담은 상자만 들고 스미르나 항구의 대화재와 터키군에 의하여 저질러진 살육 속을 정면으로 뚫고 간신히 이민선에 오른다. 미국에 도착해서도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삶이라는 새로운 정글. 이 속에서 태어난, 함부로 불행하다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겠다, 5번 염색체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칼리오페 스테퍼니데스의 삶과 숱한 우여곡절.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번영과 히피, 68 혁명세대와 냉전, 칼리 개인에게 닥친 성장과 사춘기의 갈등, 5번 염색체 이상에 관한 슬픈 내력 등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속에서 작품을 더 빛내는 것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놀라운 유머 감각이다. 유제니디스는 알고 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삶이라는 걸. 삶은 참을 수 없이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듯 못 견디게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얼마나 무거운 주제인가 말이지. 남매간 결혼과 전쟁, 살육, 이민선, 생존, 범죄, 불황, 또다시 큰 전쟁, 히피, 반전, 그리고 모든 것보다 더욱 가슴에 못을 박는 자녀의 성 정체성 혼돈과 방황, 죽음. 이것들 사이사이에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적절하게 촌철의 유머를 삽입해 과도한 감정의 누출을 미연에 방지해버린다. 근데 그게 보통의 솜씨가 아니다. 무척이나 심각하고 비탄어린 장면에서조차 독자로 하여금 미소를 짓거나 실소를 하게끔 만들어 결국은 슬픔을 극복하게 만드는 장치. 그건 직접 읽어봐야 알리라.
책을 읽자마자 이이의 세 번째 작품 <결혼이라는 소설>의 구매 버튼을 클릭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