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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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노먼 메일러. 조상이 만날 벨/노커를 두 번 울렸던/두드렸던 우편배달부였나 보다, 메일러라니. 일찍이 <밤의 군대들>을 읽고 또 메일러를 읽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지난번에 어떤 작품을 읽는 중에 등장인물이 <나자裸者와 사자死者 :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노상 입에 달고 다녀 두 권 1,20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을 읽었다. <밤의 군대들>을 읽고 왜 실망했느냐 하면, 정권 혹은 공권력에 의한 반(베트남)전 학생운동의 탄압에 대한 항의, 그건 동의한다 해도, 지식인인 자신한테도 일반 시위 군중과 거의 동일하게 적용한 공권력의 대처에 대한 불만은,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국가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일부국가에선 뭐 별로 감흥이 와 닫지 않는 수준으로, 이 양키들 엄살이 보통이 아녀, 퓰리처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오직 미국 시민에 있는 것과 같이 <밤의....>에서 보이는 메일러의 엄살에 감명 또는 동감을 얻을 수 있는 독자 역시 미국 시민에 국한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서유럽 국가에선 같거나 비슷한 질량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겠네. 소위 말하는 백인 선진국가들.
  <벌거벗은...>은 <밤의....>보단 좋았던 것이,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씨족 사회를 벗어난 호모 사피엔스들이 수만 년 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여왔던 전쟁/전장을 소설의 무대로 하며, 또 전쟁이 벌어졌다하면 언제나 발생하는 숱한 모순들, 공포, 분노, 허위, 희생, 동지애, 이기심, 살해, 죽음, 시신, 부패, 남근성男根性, 욕심, 공명, (인간이 인간과 인간의 목숨에 대하여 강요하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소모, 질투, 회상, 성병, 추악 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어 소설 속의 모든 상황을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 가상의 섬 아노포페이에 상륙한 미 육군 커밍스 사단과 직할 수색소대가 벌이는 작전 이야기. 그래서 두 주인공은 커밍스 소장, 그리고 수색 소대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어이없음은 육군 장군이나 말단에서 박박 기는 이등병이나 차별 없이 벌어지지만 당연히 육체의 고단함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장군의 말 한마디에 소수의 사병들은 가차 없이 살해되거나 절단의 부상으로 고통을 받거나, 아무 필요 없이 육체와 정신의 끝까지 소모해야 한다. 장군은 오히려 그가 없을 때 생각하지도 않게, 열등한 참모의 정신없는 오판에 의한 결정 때문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큰 전과를 거둘 수 있고, 온갖 회의와 경우의 수에 대한 곤고한 계산 끝의 훌륭한 판단 아래 내린 작전으로도 허벌나게 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병력 수와 무기와 식량이(었)다.
  문제는 이 작품을 읽고 이것을 반전 문학이라고 주장하는 건데, 노먼 메일러,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인종주의의 정체를 내놓고 밝힐 수 없었겠지만 읽는 내내 유대인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아리송해서 반유대주의를 지지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비록 적군이지만 왜소한 아시아인으로서의 일본인에 대한 태도 역시 애매모호한 것처럼, 그가 전쟁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인지, 전쟁이란 것이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왜 그런가하면, 앞에서 얘기했듯 노먼 메일러 한 사건(태평양 전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에서 벌어진 장면을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객관적이고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시 미국의 인종주의에 대해서라면, 전투병 가운데 흑인이 전혀 없었다는 건 다들 아실 것이다. 왜냐하면 흑인에겐 총을 줄 수 없었으니까. 지능이 백인의 60%밖에 진화하지 않은데다가 그동안 긴 노예생활로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지레 겁이 난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어떻게 총을 지급하겠는가. 그래서 몇 명 있지도 않은 흑인 병사는 주로 유럽이 아닌 태평양 전쟁 지역에서 총 없이 할 수 있었던 전쟁물품의 수송, 후방지역에서 벌어지는 공병 등의 작업에만 투입시켰고, 이 책에서도 단 한 명의 흑인 병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울러 20세기 초반의 반유대주의는 비단 독일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독일 못지않은 유대인 청소작업이 있었던 건 다들 아실 것이고) 전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수백 년 동안 유구한 전통처럼 이어지다가 갑자기 반짝 불꽃을 피웠던 건데, 노먼 메일러는 작중 수색소대에 두 명의 유대인 전입병을 등장시켜 각기 상반된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유대인도 우리와 같은 그냥 사람들이란 걸 얘기하는 것도 같고, 다른 소대원들이 그들을 더러운 유대인 어쩌고저쩌고 하는 걸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그들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메일러는 인종주의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거다. 오직 하나 그의 관점은 될 수 있는대로 세밀화를 그리려고 했던 것 외엔 없다. 사실을 사실대로 쓰려 한 거. 자신이 하버드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는데 오직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자원해 사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반골이니 사실적인 묘사에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이해가 갔다.
  근데 사실적 묘사. 그게 얼마나 뜨거운 건지. 사실이란 거, 그거 실제로는 함부로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되고, 정말로 쓰자면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부인 안나 카레니나의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가스와 건더기가 방출하면서 내는 맹랑하고 발칙한 소리. 그것도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들려오는 음향. 게다가 냄새까지 보탤까 말까. 이게 사실인데 그걸 누가 함부로 소설에다가 쓰겠느냐는 거. 총알이 귓바퀴 아래로 팽팽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허벅지에서 피가 콸콸 나는 듯 미끈거리는 느낌, 근데 알고 보니 나도 모르게 괄약근이 벌어지면서 새버린 분뇨라는 사실. 명치끝에 총알 한 방을 제대로 맞았으나 기대와 달리 장렬하게 죽지 못하고 모진 목숨 무슨 미련이 남아 삼박사일동안 더 이어나가느라 악을 쓰고 욕을 하다 까무러치는 사실. 사실은 뜨겁고 위험하고 무모하다. 근데 이 노먼 메일러, 뜨겁고 위험하고 무모한 짓을 기꺼이 그려내고 있다.

 

  아직도 난 할 말이 남았다.
  과연 이 작품을 평론가들이 얘기하는 대로 반전문학反戰文學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점. 나도 내가 느끼는 사실로 말하자면 (이거, 위험한데, 무모하고!) 만일 <벌거벗은....>이 반전소설이면 세상의 거의 모든 전쟁소설이 다 반전소설이게? 전쟁문학에서 전쟁의 비참함이 나오지 않는 것이 있나? 우리나라 전쟁소설에는 여군들의 비참한 행군도 나오는 걸 읽은 적 있다. 헤밍웨이의 전쟁소설이 반전소설인가, 하는 것도 문젠데, 헤밍웨이 역시 저널리스트로,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그 나라 군인으로 참전했으니 탈영만 했다하면 다시 조국 미국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소설을 썼는바(무기여 잘 있거라), 주인공이 정말로 탈영을 해버리는 거 그게 반전소설인가.
  에이, 반전소설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내 기준으론 아니다. 왜냐하면 난 하필이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를 읽어봐서, 적어도 그 비슷한 수준의 것이 나와야 반전소설로 인정할 수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벌거벗은....>은 몇 년 후 저널리스트가 될 젊은 참전 작가가 쓴 그냥 전쟁소설이다. 재미있지만 재미 면에서도 <캐치-22>만큼은 아닌, 그냥 전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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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7-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날카로우시네요. [캐치-22] 정도는 되야하는 거군요. 기억하겠습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구요.^^

Falstaff 2021-07-28 10:18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만큼 저는 <캐치-22>가 쇼킹했었더랬지요. 아니,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할 정도로요. 탈영병을 일컬어 영웅으로 환호할 수 있는, ˝미국˝ 소설이라니 말입니다.
메일러는, 역시 기자 출신이었던 헤밍웨이처럼, 기본적으로 반전주의자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 다 (전쟁의 경우) 소설은 재미나게 쓰는데 그걸로 끝인 거 같아서요. 물론 제 생각이 그렇다 하는 겁니다만.
옙. 스텔라 님도 보양식 열심히 챙겨 드시고 튼튼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

새파랑 2021-07-28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전 소설은 아니지만 전쟁 소설이군요. 리뷰보니까 좀 잔인(?)한 느낌도 약간 드네요. 직접 참전해서 썼다고 하니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폴스타프님의 감상평을 보면 재미만 있을거 같고... 🤔

Falstaff 2021-07-28 12:23   좋아요 1 | URL
앗!
재미만 있는 책이 어때서요? ㅋㅋㅋㅋ 소설읽기의 가장 큰 미덕이 재미잖아요!!!

hnine 2021-07-2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반전문학’이라고까지 할만한가 싶네요.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요. 지금 밤의 군대들 읽고있어요. 어렵네요ㅠㅠ

Falstaff 2021-07-28 12: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 읽는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겠습니다. 의견이야 달라야 제맛인 거고요.

coolcat329 2021-07-29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먼 메일러, 이 작가 아내를 칼로 찔러서 무섭고 싫어 제 개인 금지도서로 정해놓은 ㅋㅋ 얼마나 읽는다고 금지도서를 정했나싶어 웃기지만요 ㅋㅋ
그래도 이 책 재미는 있군요~
<캐치-22>참 궁금합니다.

Falstaff 2021-07-29 09:51   좋아요 1 | URL
앗, 메일러가 그런 인간이었어요?
열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찔러? 아우, 그건 안 되지요.
말로 하다가 안 되면 갈라서면 되지 참.....

<캐치-22>는 코미딥니다. 전쟁소설은 반드시 반전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종이라서, 이 책을 위대한 헤밍웨이의 것들보다 위에 놓을 용의가 있답니다.
전쟁하고 싶어하지 않는 군인들이 모인 병영이 무대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터지는 이상한 책입니다. 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비질비질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29 09:59   좋아요 1 | URL
네 좀 인성이 덜 됐더라구요. 바람피고 폭행에...ㅠㅠ

캐치22 전쟁소설인데 코미디군요. 아 저 이런 책 넘 좋아합니다. 아 전쟁하기싫은 군인들이라니 벌써부터 입에서 웃음이 터지려고하네요.

잠자냥 2021-07-29 10:07   좋아요 2 | URL
네, 노먼 메일러 그런 인간입니다.
저도 쿨캣 님과 같은 이유로 노먼 메일러 작품 안 읽고 있습니다. 너무 싫음...
그 인간에 대해선 제 이 페이퍼를 참조하세요. 진짜 쓰레기...

https://blog.aladin.co.kr/socker/11029081

<캐치-22>는 하원드 진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찜만 해놨던 책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29 10:22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 ㅋㅋㅋㅋㅋ 아주 속 시원하게 쓰셨구먼요!
<캐치-22>는 여성주의에 가까우신 분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지 웃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