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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책을 열면 원서의 제목이 <길가의 풀 道草>이다. 어떤 내력으로 이게 <한눈팔기>가 됐을까? 엉뚱한 제목은 아니지만 원래의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터인데. 내가 아는 분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가장 좋아하는 잠자냥 님의 컬렉션을 보면 출판사 이레에서 나온 책은 제목을 <길 위의 생>이라 뽑았다. 그럴 듯하다. 풀을 한 살이라고 바꾸었을 뿐이니.
나쓰메 소세키는 나한테 찰스 디킨스 비슷한 인물이다. 두 양반의 작품 성격은 판이하지만, 판이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완벽하게 저울의 양 끝에서 팔짱을 낀 채 서로를 꼬나보며 서 있다고 하고 싶은데, 내겐 뭐가 비슷한가 하면, 막상 읽어보면 확 다가오는 친숙감도 별로 없고, 큰 재미도 없어서 에이 이 양반들 책은 이제 그만 읽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음에도, 인터넷 서핑 중에 안 읽어본 이들의 책이 눈에 띄면 어느 새 보관함에 들어 있고, 또 어느새 장바구니를 거쳐 아파트 현관 앞의 택배 박스에 들어 있게 된다는 거. 근데 이게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은 아니다. 병은커녕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언급을 했듯, 이게 소세키 파워 아니겠느냐, 주장을 해야겠다. ‘소세키 파워’라고 발음하니까 어감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한눈팔기>는 일본산 찌질이, ‘겐조’라고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자기 몸에서 버리고 온 먼 나라의 냄새가 배어있는 사람. 이 냄새, 이게 설마 정말로 체취 비슷하게 비강 깊숙한 곳에 있는 후각중추를 자극하는, 피부 분자의 브라운 운동을 말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읽자마자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터. 먼 나라가 영국이고 겐조가 소세키 본인의 분신 또는 일부라는 것도. 겐조 스스로가 이런 냄새, 즉 이국적 분위기를 싫어하지만 그러면서도 냄새 속에 스민 긍지와 만족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면서 은근히 풍기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소세키가 영국 유학을 떠난 것이 1900년, 노베첸토.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개화된 나라 일본이라고 해도 유럽의 중심으로 유학을 갔다 온 것이 어찌 어깨에 힘을 줄 이유가 되지 못할 수 있었을까.
소세키 본인이 아버지의 두 번째 정실 아내가 낳은 막내로, 늦둥이의 탄생이 남부끄러워했던 부모에 의하여 유·소년기 때 동네 고물상(또는 배추장수)을 거쳐 어느 부부에게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소세키를 입양한 부부는 자신들이 늙은 다음에 노후 부양을 위해 소세키를 애지중지 키웠다고 하는데, 이 장면이 책 속에서 겐조를 입양한 시마다 부부의 모습으로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다가 시마다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입양한 겐조를 다시 생부모 집으로 복적復籍시키는 과정에 친부모가 그간 겐조를 부양하는데 들어간 시마다 부부의 비용 등을 정산하고,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임을 문서로 작성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나. 이렇게 겐조 가족과 시마다 가족은 금전적 결산을 통해 완벽하게 절교 상태로 돌입하여, 이후 겐조가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취직을 하고, 당시만 해도 잘 나가던 공직자의 딸과 혼인을 하고, 맏딸을 낳고, 영국유학을 다녀오고, 둘째딸을 낳을 때까지 20년 가까이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낸다. 소세키도 혹시 이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소설은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 하더라고 완전히 같을 수는 없으니 짐작만 하고 넘어가자.
어느 비 오는 날, 겐조는 비옷도 없고 장화도 없이 그냥 우산만 쓴 채 외출을 하게 된다. 길을 가다 인력거 집 바로 앞에서 어느 노인을 마주친다. 아무리 적어도 육십오륙 세. 아직도 검은 머리카락이 성하지만 비 오는 날 모자도 없이 외출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노인은 겐조가 지나갈 때까지 유심히 바라보고 이날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난다. 며칠 후, 또다시 외출을 한 겐조 앞에 다시 등장한 모자를 쓰지 않은 노인. 겐조가 살아가면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중류 이하로 살고 있는 외모를 한 것을 본 겐조는 적어도 그보다는 더 부유하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이가 한 시절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남자, 시마다 씨. 일찍이 교만하다는 말을 들었던 인물로, 겐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극도로 인색하고 오직 돈을 모으기 위해 인심을 잃었었다고 저 먼 기억들이 조금씩 새롭게 떠오른다.
글쎄, 이게 어떤 기분일까. 7~8년 엄마, 아빠로 알고 살다가 파양을 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는 느낌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나도 그렇다.
이렇게 <한눈팔기>는 시작한다.
영국 유학을 다녀와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겐조. 그동안 부유하던 처갓집은 공직에서 쫓겨나고 주식에 실패, 금광에 투자한 것도 실패를 해 거의 거덜이 났고, 이복누나에게 매달 조금씩 용돈을 부쳐주었는데 용돈을 조금 올려주기를 부탁한다. 동복형은 장례식에 입고 갈 하카마(일본 전통의상 중 남성 정장 바지)를 겐조에게 빌려 입어야 하는 신세. 자기 월급 130엔 가지고 인색한 아내가 아무리 수건 짜듯 해도 결국엔 결혼할 때 입고 온 기모노를 전당포에 맡겨야 하는 살림. 여기다 겐조는 경제 개념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소학교만 나온 아내보다 더 완고한 의식으로 무장해 자기밖에 모르는 천생 샌님. 앞뒤 아래위 왼쪽 오른쪽을 둘러봐도 어디 한 군데 비빌 언덕이 없는 신세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모자 안 쓰는 노인이자 옛적의 아버지 시미다. 처가에선 장인이 은행 차입을 위한 보증을 서달라고 해서, 은행 보증 서주는 게 지옥을 향한 하이웨이인 줄은 들어서 아는 겐조는 보증 대신 친구의 친구에게 4백 엔을 빌려 장인에게 넘겨주고, 이제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한 시절의 아버지가 자기 집에 들를 때마다 돈을 뜯기기 시작한다. 여기에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지독한 우연인지 역시 한 시절의 어머니도 등장해 한 번 올 때마다 5엔씩 교통비 조로 받아간다. 대학교수 월급이 130엔이니까 5엔이면 얼마나 될까? 여기서 끝나나, 어딜. 아내의 배는 나날이 부풀어 올라 작품 후반에 가면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셋째 딸을 겐조의 손에 낳아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생활전선으로 몰린다고 할 수 있을 것.
솔직히 얘기하자. 겐조. 정말 지질한 남자다. 딱 한 가지, 남보다 공부하는 머리 좋아 영국 유학을 한 덕분에 사회적 가치가 오른 대학교수일 뿐, 소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아내와 비교해도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천생 꼰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은 책이 끝날 때까지 하나도 개선되지 않는 속물. 아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우월감에 전 전근대적 가부장. 근데 이렇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귀엽다. 왜 그럴까? 이건 나쓰메 소세키가 한 ‘인간’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의 어느 소설 주인공이 <한눈팔기>의 겐조처럼 할 것, 해줄 것 다 하고, 다 해주고 칭찬은커녕 오히려 욕(아니면 적어도 쪼잔한 비난)을 먹겠는가 말이지.
그런데, 소세키를 읽는 덴 이런 스토리도 자잘한 재미가 있지만 역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일본인들 특유의 섬세한 감정의 묘사가 압권이다. 이건 일본인이 아니면 습관 속에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흉내 내기 어려운 세밀화라고나 할까, 하여튼 사소설적 하이퍼 레알리즘 비슷하다 해야 할까 싶은 감각과 특색 있는 의식의 충돌이랄 수 있을 것. 초두에 디킨스와 소세키가 저울의 양 극단에서 서로 꼬나보고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디킨스는 죽어도 소세키처럼 쓰지 못했을 것이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지만, 도무지 두 양반 다 읽지 않고 그냥 넘기긴 지극히 섭섭하다는 공통점. 그리하여 어감은 좀 그렇지만 독후감의 마지막을 이렇게 쓰지 않을 수 없다.
소세키 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