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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몇 년 전부터 ‘O며 들다’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 ‘최준에게 스며들다’를 줄여 ‘준며들다’라는 말을 사용하며 알려졌다고 한다. ‘스며들다’라는 동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린 표준어인데, <속으로 배어들다>와 <마음 깊이 느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 내가 스며든 인물은 ‘캐드펠 수사’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땅딸막한 키와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번뜩이는 지혜를 뽐내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모습에서 내가 본 받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다.
『수도사의 두건』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3권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로부터 ‘실버 대거 상’을 받은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이다.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가 1138년을 8월 여름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같은 해 12월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캐드펠 수사의 마음이 요동치다>
추천 역사 추리소설 『수도사의 두건』은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생애 가장 사랑했던 여인 '리힐디스 본'이 등장한다. 둘은 10대 시절,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가 십자군 전쟁을 떠나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으며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니 그 또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수도사의 두건』은 시리즈 중에서도 주요 사건이 빨리 발생하는 축에 속한다. 그 덕에 인물 간의 갈등이 초반부터 휘몰아치는데 살인사건 외에도 캐드펠이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 큰 변화가 찾아오기에 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닮고 싶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째를 읽으며 느낀 건 ‘캐드펠 수사'는 개성 강한 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탐정 캐릭터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에 비하면 눈에 띄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그런 인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지고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서 ‘참된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가 단순히 정의감 때문에 사건에 개입하는 건 아니다. 호기심과 약간의 오지랖도 품고 있다. 그럼에도 사건 관계자들이 그를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건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세랑 · 움베르토 에코 · 요네자와 호노부가 극찬한 역사 추리소설이라 기대가 컸는데 아주 흡족한 독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은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6~10권이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할 텐데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수도사의 두건』 내가 뽑은 문장>
1. 세상의 절반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나이 많고 순진한 몇몇 수사들 사이에서도 경악의 수군거림이 잠시 일었다. 14쪽
2. 모든 이의 죽음에는 그 죽음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82쪽
3. 독살자에게는 어딘지 음험하고 비밀스러우며 어두운 구석이 있는 법이다. 101쪽
4. 불완전한 세상에서 과신은 금물인 법이었다. 111쪽
5.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130쪽
6. 무턱대고 의심하기보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요. 누군가를 미리 찍어놓고 벌이는 표적 수사가 아니라, 정황에 들어맞는 사람은 누구든 조사하는 수사를 벌여야 한단 말이지. 148쪽
7. 힘이 든다고 진실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238쪽
8. 우리 인간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희생자가 될 수도 상속자가 될 수도 있다. 274쪽
9. 우리 안에 있는 악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어. 322쪽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