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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평점 :
글은 솔직합니다.
어떤 제목을 지었는지, 주로 쓰는 단어가 무엇인지, 사물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등을 통해 저자의 성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요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작가가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 헤르만 헤세입니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분에 대해 제가 감히 평가하는 게 우습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잘 쓴다는 점입니다.
『싯다르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 등은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추천하는 책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삶을 견디는 기쁨』,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입니다. 오늘은 이 중 에세이 추천도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좋은 글귀 모음을 다섯 부로 엮었습니다. 각 부의 주제는 자연, 향수, 인간, 예술, 여행입니다. 글 길이는 편마다 달라서 짧은 글은 한두 쪽이고 긴 글은 스무 쪽이 넘습니다. 이번 개정판은 구판에서 빠졌던 글이 다시 실렸고 필사 노트가 추가되었습니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도 수록되어 있어 느낌이 색다릅니다.
<행복과 동경>
헤세는 시인이 되었고 집을 지었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룬 것마다 흥미를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에 설득력이 있는 건 헤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망했던 많은 것들이 삶에서 이루어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시인이 되었으며 집을 한 채 가지고 싶었는데 결국 집을 지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가지고 싶었던 소망도 이루어졌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던 꿈들도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모든 소망은 너무도 쉽게 싫증이 났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조차 내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집은 너무나 좁게 느껴졌고, 내가 이룬 목표들은 어느 것도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가던 모든 길에서 되돌아와야 했으며 모든 휴식의 끝에는 또 다른 동경이 남을 뿐이었다. (중략) 나에게는 아직도 환하게 불타오르는 빛이 있다.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강한 애착을 간직한 별들이 발산하는 찬란한 빛이.
184~185쪽
그에게 동경은 해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5부를 여행으로 채운 구성도 이 동경에서 나왔다고 짐작해 봅니다. 이룬 것이 없다고 조급해하는 독자가 이 글을 읽으면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복이 무언가를 이룬 뒤에 받는 보상이 아니라는 점을 헤세는 자기 경험으로 보여줍니다.
<아마추어 화가의 자부심>
헤세는 자신을 대단한 화가가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을 겸손을 내세운 과시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문장까지 읽으면 그 의심은 줄어듭니다. 자부심의 근거가 기법이나 경력이 아니라 관심, 시간, 경험에 있습니다.
나는 대단한 화가는 아니다.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드넓은 골짜기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지나간 날들과 시간들의 얼굴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다리 난간이 가진 주름의 모습을, 강기슭의 모양과 녹음 속에 뻗어 있는 다정한 길들을 나만큼 잘 알고 사랑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29쪽
그 범위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앎입니다. 사람들의 얼굴부터 난간의 주름, 강기슭의 모양까지 크기가 다른 대상을 같은 무게로 나열합니다. 이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거듭 단언합니다. 이 말은 작가가 확신하는 것이 그림 실력이 아니라 대상을 알고 사랑해 온 시간이라는 점을 알려 줍니다. 자연스럽게 힐링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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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나 『데미안』 같은 저자의 소설만 읽어본 분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리지 않고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쓴 글이라 헤세의 관심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정원, 나비, 구름, 음악, 수채화처럼 다루는 대상도 다양합니다. 어느 쪽을 펼쳐도 좋은 글귀가 많아서 필사를 즐기는 독자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이 책은 관찰과 사색이 중심이어서 빨리 읽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습니다. 뭐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는 느림의 미학을 알려줍니다. 각 글은 연속성이 많지 않기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에세이 추천 도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읽으며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