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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 밤이 또 온다 ㅣ 소소한설 1
김강 지음, 이수현 그림 / 득수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에 끌리곤 한다.
상처를 보듬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서사는 분명 쓸모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차가운 진실, 서늘한 시선으로 포착한 현실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작고 재밌고 차가운 이야기'를 표방하는 '소소한설(小笑寒說)' 시리즈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따뜻한 위로 대신 담백한 시선으로 삶의 단면을 그린다.
첫 번째 결과물이 김강 작가의 『곧, 그 밤이 또 온다』이다. 아주 짧은 단편소설 20편의 이야기를 묶었다. 심훈 문학상으로 등단한 이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저자가 이번에는 힘을 빼고 밀도 높은 짧은 소설을 선보였다고 한다. 출판사 소개 글처럼 이전 작품이 큼직한 잎사귀의 나무였다면, 이번 소설집은 풀밭에 숨어있는 네잎클로버 같다는 말을 단편소설을 읽을 때마다 공감했다.
이 '차가움'은 무관심이나 냉소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군더더기를 걷어낸 본질에 가깝다. 작가는 우리가 외면했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의문들을 반복해서 묻는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감정 과잉을 덜어내고, 상실과 부재를 담백하게 비춘다.
<행복을 묻는 신, 욕망을 답하는 인간>
『곧, 그 밤이 또 온다』 중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20개 중 10개이다. 타율이 굉장히 좋다. 일반적으로 1/4만 건져도 만족하는데 1/2이나 되니 출판사의 말처럼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느낌이다. 마음에 든 단편소설을 차례대로 나열하면 '규동의 기도 ·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 · 곧, 그 밤이 또 온다 · 이기전 1, 2 ·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 물을 주다 · 요즘 나온 것 중 제일 긴 영화 · 소행성 L2001의 사멸 · 이것은 복권이야기'이다.
이중 가장 첫 번째 단편소설인 「규동의 기도」는 행복을 키워드로 웃픈 상황을 연출한 블랙 코미디다. 주인공에게 "어허, 이놈이 빨리 말하지 못하는냐? 너, 이 녀석, 행복이 뭔지는 아는 것이냐?"(14쪽)라고 묻는 장면에서 새삼 행복을 기도하는 인간들이 과연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외에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것은 복권 이야기」도 결이 비슷한데, 모 유명 가수의 꿈을 꾸고 복권 명당에서 복권을 구매한 남편이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둘의 의견 차이가 크다. "기부? 우리가 기부받아야 하거든."(211쪽)이라는 아내의 말은 고상한 이념이 생존과 욕망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는지 보여준다.
<영원을 꿈꾸다>
이 소설집은 '사라지는 것'과 '남기려는 것'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인간은 찰나에 불과한 순간, 특히 사랑을 어떻게든 영원 속에 각인하려 애쓴다. 표제작 「곧, 그 밤이 또 온다」는 이러한 욕망을 애틋하게 포착한다. 월지 바닥에 사랑의 증표를 던지며, 그것이 아주 먼 훗날 발견되어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그렇다.
'그때 이 스테인리스 조각이 발견되면 우리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지 않겠냐고, (...)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너와의 사랑은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71쪽)라는 문장은 바스러지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필사적인 염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소설 속 세계는 무심하게 흘러간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의 풍경처럼 존재는 그저 빛을 잃어갈 뿐이다. '저렇게 깜빡거리다가 언젠가는 빛을 잃을 터였다. 지금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누군가 알게 되겠지만 역시 뭘 하지는 않겠지.'(35쪽) 영원을 향한 욕망과 덧없는 현실의 대비는 이 '차가운 이야기(寒說)'가 주는 여운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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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 밤이 또 온다』에 실린 20편의 이야기는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고 재밌고 차가운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처럼, 독자를 향해 담백하고 서늘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행복은 무엇인지, 영원한 사랑은 가능한지, 우리는 스러져가는 것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작가가 던진 의문들은 독자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기호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책 속 인물들이 마주한 '부재 · 결핍 · 공백'은 낯선 타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 사랑의 시작과 끝, 무심코 지나쳤던 가로등의 깜빡임 같은 순간 앞에서 독자는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20편의 이야기는 독자 자신을 비추는 20개의 작은 거울과 같다. 「규동의 기도」의 신과 인간처럼 행복의 본질을 고민하고, 「가로등이 깜박거릴 때」의 인물처럼 외면의 대가를 생각한다. 대부분의 단편소설집이 그렇듯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만나는 순간 독자는 위로 대신, 자신만의 사유를 시작할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