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왕과 서커스 ㅣ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평점 :
소설을 읽다보면 호감가는 인물, 불편한 감정이 들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왕과 서커스』의 주인공 ‘다치아라이 마치’는 그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장신의 윤기 흐르는 긴 머리를 가진 모델 같은 여자이지만, 무표정한 얼굴과 무뚝뚝한 말투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인물과 사건도 편견없이 바라보기에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그래서 싫지 않았다.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님의 <베르푸 시리즈>는 현재(2022년 기준) 총 3권이 출간되었다. 『왕과 서커스』는 시리즈의 2편에 해당 하지만 1편을 읽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다. 여담으로 2015년 『야경』에 이어 2년 연속 일본 미스터리 3관왕을 달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다치아라이 마치가 프리랜서 기자가 된 이후의 첫 사건을 그렸으며, 2001년 실제 있었던 네팔 왕실 몰살사건을 모티브로 그에 얽힌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네팔 왕족 살해사건과 네팔이 처한 현실>
2001년 6월, 네팔의 디펜드라 왕세자(29)가 총기를 난사해 아버지 비렌드라 국왕(55)과 어머니 아이스라와 왕비(51)를 비롯 8명이 살해했다는 뉴스가 보도 된 적이 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총기 폭발 사고다, 국왕 동생이 꾸민 일이다 등 여러가지 음모론이 돌았지만, 사건의 잔인성과 네팔 국내외 사정 때문에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약간의 스포일러이지만, 괜히 기대하다 실망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알려드린다. 이 작품에서 ‘네팔 왕족 몰살사건’에 대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누가 왕족을 살해했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당시 상황만 전달할 뿐 작가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어떤 인물이 살해 당한 일을 다룬다. 그는 주인공과 만난 다음날 길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등에는 INFORMER(밀고자)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소설은 살인범을 찾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네팔의 문화 그리고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약간 크지만 영국의 식민지였고,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여 정세가 불안정한 나라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소설은 이러한 부분과 살인 사건과 연관지어 추리/미스터리 요소로 잘 버무렸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 찰리 채플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혹은 국내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는가?그리고 만약 그런 사건을 눈 앞에서 목격했을 때 핸드폰을 들이 밀지 않고, 지인들에게 카톡과 전화로 떠벌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이 작품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물론 주인공이 프리랜서 기자이기에 더 엄격하게 다루지만, 대중의 관심과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낳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 쯤 생각하게 만든다.
가십은 내가 제 3자 일때만 흥미롭다. 당사자가 되는 순간 일상이 무너진다. SNS의 핫이슈, 화제의 사건, 사고는 대중에게 즉각적인 소비→희열→쾌감을 안겨준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보며 ‘안타깝네. 하지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면의 ‘무엇’을 무시 혹은 방관한다. 『왕과 서커스』는 분명 추리/미스터리 소설이고 복선, 매력적인 등장인물, 사건, 긴장감, 반전과 같은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초, 중반까지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대화와 묘사를 통해 네팔의 풍경과 문화를 설명뿐이다. 독자에 따라 심심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서술 방식도 사회파-하드보일드 형식이라 밋밋하다.
하지만 그러한 서사와 방식 덕에 클라이막스 반전과 메시지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만약 앞부분이 손에 땀을 쥐는 사건으로 가득했다면 후반부 반전과 메시지가 무뎌졌을지 모른다. 낯선 나라 네팔을 여행하는 기분과 엘러리 퀸의 대표 시리즈가 생각나는 충격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소설 읽고 싶은 분에게 강력히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