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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평점 :
2021~2022년 일본 문학계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무후무한 주요문학상 9관왕을 석권한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님의 『흑뢰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표작 『고전부 시리즈』(2013~2021), 『소시민 시리즈』(2016~2021),『부러진 용골』(2012) 『야경』(2015) 등의 장점을 모두 합친 작품으로,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역사소설이라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주 기초적인 역사 지식만 알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사실 몰라도 괜찮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작품은 프롤로그에 해당 하는 인因을 시작으로 겨울, 봄, 여름, 가을 동안 아리오카 성에서¹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인因과 과果 사이에 제1장 설야등롱 雪夜灯籠, 제2장 화영수훈 花影手柄, 제3장 원뢰염불 遠雷念仏, 제4장 낙일고영 落日孤影 은 단편소설로도 훌륭하지만, 모든 이야기 합쳐지는 순간 완성되는 하나의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1578~1579년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기상천외한 트릭이나, 특이한 무대장치가 등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각 장 별로 작가가 20년 넘게 쌓아온 내공을 발휘하여 제시하는 사건과 해결 과정은 충분히 추리소설의 매력을 담고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점이 만개하다>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님의 작품은 코지 미스터리(일상 추리물)과 본격미스터리의 매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소설이 많다. 대표작 『고전부 시리즈』의 경우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가벼운 추리물이다. (애니메이션 「빙과」²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와 반대로 『부러진 용골』, 『왕과 서커스』는 진지한 장편 추리소설이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다룰 수 있는 작가이기에 『흑뢰성』 또한 각 장 마다 일어나는 사건에서 ‘물리 트릭’, ‘밀실 트릭’, ‘심리 트릭’, ‘시간 트릭’ 등을 사용한다.
다만, 소설 속 이야기의 구조는 각 장 별로 비슷하다. 사건이 일어나고 조사를 하고 증거를 모아 범인을 지목한다. 대부분의 추리 소설 구조와 동일하다. 자칫 지루해질수 있는 부분인데 소설은 닮은 듯 다른 두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를 상쇄한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라키 무라시게’에게 메인 탐정을 맞기고, 또 한 명의 안락의자 탐정(죄수 탐정) ‘구로다 간베에’를 배치함으로써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또한 독자가 등장인물과 동등한 정보를 가지고 추리를 할 수 있게 하여 몰입도를 높인다.
작품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괜찮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직접 추리하기에 충분히 공정한 작품이다.

<백성 그리고 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
책에서 묘사 된 ‘전국시대였다. 모두가 죽고, 죽인다. 남김없이 베고 태워 죽이는 일도 흔한 세상에서, 그래도 누부나가는 살생이 과했다’(497p)는 문장처럼, 전란의 시대 벌레만도 못한 목숨이 <백성>이었다. 높은 세금, 부역, 병역.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가장 착취당한 신분이다. 21세기 또한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전세계 모든 시민들도 세금을 내고 일을 하며 때론 전쟁에 동원된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리더란 무엇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인 세상은 과연 옳은 세상일까?’
책을 읽으며 여기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책값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흑뢰성』이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님의 최고작이냐고 묻는 다면 ‘No’이다. 앞으로 더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를 찾아올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작가님의 현재 최고작이냐 묻는 다면 ‘Yes’다.
역사 소설 혹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만족할 작품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 올바른 리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에게도 권하고픈 책이다. 다가오는 가을, 책읽기 좋은 계절을 맞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