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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진열장 1 ㅣ 펜더개스트 시리즈 1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서평은 엄청난 스포일러임으로 이 책을 정말이지 꼭 읽어야겠다는 분들은 이 서평을 살며시 덮어두길 바란다.
큰 키에 마른 몸매, 투명하리만큼 핏기 없는 흰 피부.
왠지 이 책의 주인공 팬더게스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기스러워진다.
약간의 고딕풍, 어두컴컴한 새벽녘의 고즈녁함.
오랜 된 건물에서 새어나는 쾌쾌함.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의 음산함.
내가 이 책 ‘살인자의 진열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 건설현장에서 130년 전의 시체들이 발견되고 롤스로이스를 타고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노라 박사를 찾아온 팬더게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이런 느낌을 기대했다. 등장한 인물의 기괴함이나 130년전의 사체를 놓고 법의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를 찾아온 이유가 왠지 이런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나는 2권까지 길게 늘어지지 말고 여기서 깔끔하게 고백하자.
내 기대가 과했다고, 개연성이 부족하고 독자에게 사건의 공감도 끌어 모을 수 없을 만큼 이 책은 산만하다고... -_-+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한다. 특히나 이런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독자들은 누가 범인일지, 작가들이 알려주기 전에 먼저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 그 놈일 줄 알았어. 그 놈이 이런이런 부분에서 수상했다니까..’
작가가 알려주기 전에 먼저 맞추고 스스로의 집중력이나 관찰력에 만족한다. 그게 추리소설을 읽는 아주 원초적인 매력이 아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스토리가 있다. 아주 쉽고 단순하고 유치하게...
‘그래서 에녹 랭 박사는 영생의 비밀을 푼 거야? 그런데 현대의 누군가가 그 비밀을 노린 거야? 그래서 살인이 벌어지는 거고. 그래서 범인과 팬더게스트가 1:1 혈투 끝에 그 비밀을 손에 넣는 순간, 그 비밀을 불에 타거나 강물에 흘러가거나, 그런 식으로 파괴되는 거야? 이런 이야기는 아니겠지. 설마, 이거 미국에서 꽤 인기 있는 시리즈라며.. 이런 식으로 B급 헐리우드 스토리로 막 나가는 건 아니겠지. 알라딘의 서평도 꽤 좋았잖아. 아닐 거야;’
살인자의 진열장 1권이 끝날 쯤은 내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지만 작가의 인지도를 믿었고 나의 뒤통수를 칠 기발한 반전을 기다리며 2권을 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내 기대는 또 다시 과했고 이 책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 130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 JC쇼텀의 편지가 발견되었을 때 이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주인공이 그랬다. 다국적 제약회사 가문의 FBI요원. 돈 많고 백 많은 인간이라서 자신이 원하는 사건만을 들쑤시고 다닐 능력을 지녔다. 운전사를 둔 롤스로이스를 몰고 사건 형상을 누빈다.
참 이런 매력적인 주인공이 하고 다니는 것은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처음에 노라를 왜 찾아갔을까? 법의학자도, 법인류학자도 아닌 노라 켈리 박사를 말이다. 그리고 130년 전 일어난 사건이 에녹 렝의 짓이라는 것을 그냥 처음부터 어떻게 알았지?, 뉴욕이라는 커다란 도시에서 갑자기 발생한 도리 홀랜더의 살인사건이 에녹 렝과 연결될 지 사체 부검을 하기도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한다. 찬찬히 훑어 보면 팬더게스트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에녹 렝이 영생의 비밀을 푼 것도, 그 비밀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마지막 꿈도... (물론 반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알고 있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알게 됐는지 개연성 있고 조리 있게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뭐든지 다 아는 팬더게스트니까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을 지루하게 만든다. 매력적인 거죽을 지닌 팬더게스트는 알고 보니 별거 아닌 폼만 잡는 허영덩어리라는 느낌?
팬더게스트만큼 재수 없는 탐정 셜록 홈즈도 어떻게 그가 지식을 얻게 됐는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왓슨’을 놀리면서 이야기는 다 해준다. 그제야 독자들은 셜록의 관찰력과 분석력이 얼마나 월등한 지 알게 되고 셜록 홈즈의 팬이 되는데 말이다. 사건의 모든 내막에 침묵하는 셜록이라니.. 그런 탐정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대부분 헐리우드B급 영화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간다. 주위 인물도 그렇다. 맨날 헛다리 짚는 구스퍼 경감님이나, 사리사욕에 눈 번 브리즈번 부관장들은 이런 류의 영화나 소설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또 이런 연쇄 살인이 벌어질 때는 공교롭게 꼭 선거철이다. 시장님은 그래서 진범보다는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성과만 필요할 뿐이다. 슬러셔 무비에서 가장 안타까운 정의로운 피해자나.. (난 오쿄네시를 가장 좋아했단 말이야.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워!!!) 야망이 큰 스미스백 기자나, 새로울 것도 없고 특이할 점도 없는 전형적인 인물,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주위 등장인물은 이 책의 매력을 떨어 뜨리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살인자의 진열장은 1권에서 온갖 폼을 다 잡고 멋들어진 연설을 해 놓았지만, 정작 그 연설의 끝맺음을 엉성하기 그지 없다. 조금만 더 치밀하고 조금만 더 꼼꼼했다면 하는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당신이 이 책을 잡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이 그대로 펼쳐지는 추리물...
범인이 누군지 생각도 하기 싫은 책.
독자에게 너무도 불친절해서 과연 작가가 생각이나 있었을까 라는 의심이 드는 책.
만약 이 책을 읽는 것보다 헐리우드 영화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살인자의 진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