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죽음
C. J. 샌섬 지음, 나중길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수도원의 죽음은 ‘어둠의 불’의 전작인데, 나는 후작을 먼저 읽었다. .T.T
이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어둠의 불을 좀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들지만, 이미 지나버린 것 어쩔 수는 없지 뭐..
크롬웰이 제인 시모어와 헨리 8세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제인 시모어에게서 에드워드 왕자를 얻었으니 크롬웰의 기세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기세 등등 했을 터이고, 뼈 속까지 신교도였던 크롬웰은 이 기세를 몰아 종교개혁에 나선다. 수도원을 해체시키고 수도원에 부속된 땅과 토지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흥선 대원군이 실행한 서원 철폐와 비슷한 모양이다) 귀족과 성직자라는 구세력과 상인, 변호사들로 이뤄진 젠틀리라는 신진세력이 세력다툼을 하며 구세력의 힘의 원천인 토지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작업을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을 실시하지 않았나 싶다. 수도원에서 빼앗은 토지와 건물들은 대부분 토마스 크롬웰 세력에게 넘어갔고, 헨리 8세는 든든한 세수원이 생겼으니 말이다.  

크롬웰은 스칸시 수도원을 해체시키고 싶어한다. 베네틱트 수도원 소속인 스칸시 수도원은 100명의 수도사들이 수도할 수 있는 꽤 큰 수도원이다. 그런데 크롬웰이 보낸 싱글턴 특사가 목이 잘려 죽은 채 발견된다. 크롬웰의 입장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기세 등등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누가 감히, 크롬웰이 심혈을 기울이는 종교개혁에 딴지를 건다 말인가!’ 수도원 해체를 반대하며 일어나는 시위, 폭동, 반역까지 일어나고 있던 때에 크롬웰은 자신의 심복인 변호사 샤틀레이크를 스칸시 수도원으로 보낸다. 싱클턴 특사 살인사건 수사를 맡긴 것이지만……
글쎄… 내 눈엔 싱글턴 특사의 살해사건은 시위와 폭동, 반역까지 벌어지며 여론 전에서 열세였던 크롬웰에게 명분을 세워 줄 수 있었던 살인사건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왕의 종교개혁 명령에 불복하고 특사를 살해한 반역 죄를 씌워 스칸시 수도원을 해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우리의 꼽추 변호사 샤들레이크는 서둘러 스칸시 수도원에 향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수도사들은 기득권만을 내세우며 위법하지 않은 선에서 수도원을 지키는데 필사적인 권위적인 수도사들을 만난다. 교구민들의 어려운 삶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웬만한 귀족들보다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사는 부패한 수도사들을 말이다. 이런 수도사들을 보면 한 순간 개혁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고도 싶지만, 개혁주의자들도 수도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진세력인 코핀저 치안판사도 지역민들의 삶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크롬웰이 신뢰하는 샤들레이크에게 밉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누가 싱클턴 특사를 살해했는지도 크게 관심 없다. 다만 수도원이 해체되면 주인 없는 땅이 될 수도원 부속 토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오늘날의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이라는 것은 단지 직업일 뿐, 그 직업을 통해서 얻는 부와 명예만 중요할 뿐이다. 국민들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져 자신들만의 리그를 치고 사는 것 말이다. -0- 정치인들은 종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자자.. 이런 와중에 진실을 알고 싶은, 자신의 임무를 끝마치고 싶은 샤들레이크. 그러나 양파껍질처럼 까도 까도 온통 비밀뿐이다. 거기다 샤들레이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사이먼 수련 수사도 살해당하고, 수도원 안 연못에서는 오펀 스톤가드의 시체마저 발견된다. 대체 이 수도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요? 제가 바라던 것이라곤 교회를 개혁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폭동에 반역, 거기다 이제는 살인까지. 어떤 때는 이 모든 시련에도 어떤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
“인간이 만들어내는 수수께끼 같은 일에는 적어도 하나의 돌파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싱글턴 특사를 따라온 굿햅스 변호사와 샤들레이크와의 대화 내용이다. (P92) 샤들레이크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 모든 시련의 돌파구를 진지하게 쫓아간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갈수록 자신이 품고 있던 신념에 의문을 품게 된다. 교황에게서 독립한 영국 국교회가 이전의 교회보다 더 나은 종교인가 의심을 갖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혼란 속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사람도 있고, 목숨까지 빼앗긴 소녀도 있다. 그렇지만 이 혼란이 누군가에게 제 잇속을 차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종교개혁은 신념만 있을 뿐, 신념을 통해 구해내려는 현실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결론. 자신들의 젊음을 희생해, 목숨을 바쳐 이루려고 하는 새로운 세상은 없다는 서글픈 현실

이 책을 읽고 며칠 동안 개혁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자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지?
헨리 8세는 자신의 국교회의 수장이라는 수장령을 선포하고 수도원을 해체시키고 그 자산을 국가에 귀속한다. (그런 주제에 그 돈으로 주구장창 전쟁만 해댔다. T.T) 샤들레이크가 겪는 위험처럼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만 바꿨을 뿐 서민들을 구속하고 착취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 끊임없는 전쟁 공포에 시달려야 했던 시기임으로 개혁이 지긋지긋 했을지도 모른다. 샤들레이크의 신념이 흔들리고 이런 종교개혁을 까칠한 시선으로 바라고 있는 서민들을 보면 이 책의 저자 샌섬도 개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개혁이 나쁜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나는 개혁을 겪어내는 샤들레이크에서 그 희망을 찾고 싶다. 구세력과는 다른 진실, 다른 논리로 무장한 샤들레이크의 힘 말이다. 예전에 통용되던 지식을 반문하고 새롭게 찾아가는 지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며 겸손한 아주 합리적인 인간형 말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무자비한 권력을 지닌 정점의 한 인간(크롬웰처럼)이 아니라, 샤들레이크나 마크, 앨리스와 같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다른 사람들을 믿어내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주는 책, 16세기 영국의 풍속화 같은 일상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책, 무엇보다도 그 일상속에서 개혁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미스터리의 껍질을 뒤집어 썼지만, 미스터리보다는 16세기 영국 종교개혁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샌섬의 후작, ‘어둠이 불’도 이런 느낌이다) 두껍고 무겁고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지루함 만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미스터리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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