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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의 코끼리 ㅣ 일공일삼 74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요코 다나카 그림,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오늘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나섰던 소년은 점쟁이의 광고 문구에 혹한다.
“1플로리만 내면 당신의 마음이나 머릿속에 간직된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드립니다. “
소년은 제 손에 쥐어진 달랑 1 플로릿을 내려다보며 갈등을 한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을 낳다 산고에 숨을 거든 엄마를 둔 소년은 저녁거리 비용인 1플로릿을 점쟁이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한 번도 소리내어 말한 적이 없는 자신의 가장 심오하고 여러운 문제를 점쟁이에게 묻는다.
“제 동생이 살아 있다면 전 그 애를 찾아내야 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넌 코끼리를 쫓아가야 해. 코끼리가 널 그곳으로 안내해 줄 거야.”
소년이 머릿속에 간직된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의 답을 구하고 있을 때, 도시 반대편의 블리펜도르프라는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미 나이를 지긋이 먹은 별 볼일 없는 마술사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술사는 베티나 라 본이라는 귀부인 무릎 위로 코끼리를 불러온 것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을 홀리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거짓심오라는 것이 있다.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해서 말을 하거나 모순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왠지 ‘심오’하게 받아드리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면에서 심오하다. 단순하고 깔끔한 이야기지만 받아드리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의미를 구하기 때문이다. 거짓인지 모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나에게 꽤 근사한 울림을 전해줬다.
마술사가 불러 놓은 한 마리의 코끼리 때문에 이 소년(피터)이 사는 마을 ‘발티스’는 난리가 나버렸다.
-귀부인 라본은 하루 아침에 서커스 구경을 갔다가 불구가 돼버렸다.
-마술사는 자신이 행한 위대한 마법(코끼리를 불러 온 것)에 대한 적잖은 자부심을 느낀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경찰 레오는 코끼리가 이 마을에 온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석수쟁이였던 바르트톡은 성당에서 떨어질 때 꼽추가 됐지만 인생은 우스운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석수쟁이에서 코끼리 시중꾼이 됐다.
-퀸테트 백작부인은 사교계의 중심이 된 코끼리를 가져다 사람들에게 전시했다.
-고아원에서 살던 피터의 동생 아델은 코끼리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자신에게도 갑자기 가족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 코끼리로 피터는 동생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 피터는 동생이 아닌 코끼리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아직도 순수와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피터를 돕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준다.
이 책이 심오(?)하다고 느껴지는 건, 그리 많은 인물이 나오지 않지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되고 싶고, 경찰 일이 탐탁지 않았던 선한 경찰 레오는... 시를 써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었다. 누군가 사랑하고 보살필 대상을 찾은 것이다. 동생을 찾기 위해 나선 피터는 자신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진 코끼리의 눈빛에서 코끼리를 구해주고 싶었고 귀부인의 하인이었던 한스는 피터의 눈빛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순수를 발견하고 피터의 여정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생의 위기에서 인생이 우습다고 생각했던 석수쟁이 바르트 톡도 눈 앞에서 펼쳐진, 순수와 희망이 가져온 기적과 같은 마술 앞에서 인생이 우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받아드린다. 그리고 코끼리를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고고 모두에게 (퀸테트 백작부인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끼리를 만나기 전 보다는 손톱만큼 나아진 인생을 얻게 된다.
긴 이야기는 아니지만 명확하고 확연한 교훈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권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동화, 그러나 삶에 지치고 나에게만 불행이 찾아왔다고 느껴지는, 무엇으로도 삶의 허무가 채워지지 않고 인생이 우스운, 마음에 들지 않은 직업으로 하루하루가 불편한 어른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