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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1
영화 '파이란'에서 장백지가 최민식을 부르는 음성이 읽는 내내 귀에 걸린다
"강재 씨..."
은교가 무재를 부를 때 마다 장백지의 음성이 덫입혀져 들리곤 했다
무재 씨...
2
황정은을 처음 읽는다
아마 k군?의 소개가 아니었나 싶다 그게 2년 전 쯤인가 보다
앞부분 조금 읽어나가다 덮어두고 요즘 일독했다 책과 독서란 것도 궁합과 때가
있긴 있나보다. 읽으려고 해도 읽히지 않는 때가 있고 스르르 다가와 살갑게 읽히는
때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책에는 특별한 서사(란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서 쓰기 싫지만)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읽고 나서)끌리는 작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설이나 작가가 대중적
인기는 없겠지만 다소 지루하고 따분한 감도 있지만 그런것이 좋으니 어쩌랴
최근에 출간된 황정은의 소설집도 읽어보아야 하겠다
3
조곤조곤
작가의 입술 또는 입을 본 적 없으나 그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있는 입을 생각하면
조곤조곤 이라는 낱말이 딱.
나도 작가를 따라서
조곤
조곤
조곤
...
좀 이상하긴 하다
아주 차분해서 마치 진공의 구 안에 사는 어떤 사람들의 세계속 이야기랄까
무재와 은교가 나누고 건네는 대사의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그런식으로 배치한 작가의
의도 또는 작법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철거예정인 건물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그림자가 일어난다니?
다소 황당하다고? 그렇지 않다.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보더라도
그림자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의미없어 보이는 그림자에 알게 모르게
지배받고 있다고한다면 억측일까? 아님 말고. 난 억측이 아니라고 보는 바.
그림자가 나를 데려가고 나는 그림자에 홀려 따라가고.
누구나 자기가 자신의 주체라고 여기지만 때론 자기 자신도 주체되지 못하는 자신을 따라
자기를 파괴해 버리는 일. 자주 듣는 일들 아니던가.
그림자를 따라가면 안된다는 외부의 충고는 무의미하기에 내 안에서 마음이 일어나
그 마음을 따라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강 한가운데까지 다리를 따라 걸어가고 하는 일.
그림자가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아님 말고. ㅋㅎㅎ
그림자는 어둡다. 마음 한 켠 땅거미가 깔리듯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면 그림자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든 누구든.
어두운 마음을 응시한 시간이 참 오래 돼기도 했다는 생각이다. 갈수록 너무가 쌓인다. 너무 쌓인다.
4
은교와 무재.
세상엔 그들과 같은 연인도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있기를 바란다.
은교가 부르는
무재 씨
무재가 부르는
은교 씨
모르긴 해도 같은 톤의 두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딱 그럴것이다
그런 연인들이 있다면 부디 행복하시라
은교와 무재가 있음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존재키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주인공은 없다 '百의 그림자'는 아주 공평한 소설이다 비록 소설 속 상황은
공평하지않지만서도. 무슨 말이냐
은교는 은교의 이야기를 하고 은교가 아는 사람들을 조곤조곤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너 따위는 대략 생략하겠어,가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하면 언더스탠?
5
지금은 가동 나동 다동 라동 마동 모두 철거가 됐겠지
여 씨 아저씨 공 씨 아저씨 유곤 씨 오무사 할아버지 은교 씨 무재 씨 ...
그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거기 한번 가봤을텐데 무재 씨가 은교 씨를 부르던 목소리
은교 씨
하고 부를 때 먼 데서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타인에게 무관심한 누군가는 '슬럼'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처럼 자꾸만 외곽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그림자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그런데 나는 영화 파이란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스치듯이 본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짧게 나오던 장백지의 음성 한 조각이 어딘가 떠돌다가
불쑥 귀에 내려앉았을 뿐이다
이유 같은 게 있을리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