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린 울만 지음, 이경아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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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아버지 나이 48 엄마 나이 27

나의 엄마는 4.5번째 아내였다

최고의 영화 감독 아버지

최고의 여배우 엄마

 

린 울만의 소설 <<불안>>을 읽기 전에 몇 가지 검색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책 뒷표지에 실린 첫 문장 때문이었다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과 노르웨이 배우 리브 울만

이 위대한 예술가들을 부모로 둔 여자아이

 

물론 이 말은 사실이겠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검색해 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한데 그의 부모는 그야말로 대단한 유명인사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린 울만이고

자신의 부모에 대해 쓴 소설이 이 작품이다

 

그렇다면 소설 <<불안>>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인데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존 인물들-부모님이나 아이들, 연인들, 친구들, 적들, 형제들, 삼촌들, 이따금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그들을 허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기억하는 것은 다시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매번 똑같이 경탄하는 행위다. /.../ 하지만 어떤 일은 아마도 내가 지어냈을 것이다.

373~374p

 

아버지가 일정표에 내 이름을 쓰는데 손이 떨린다. /.../ N 하나, N 하나, 자 끝났다.

484p

 

참고로 작가의 이름 철자다. Linn Ullmann



우리가 소설을 읽는다고 할 때는 작품에 속아야만 한다. 속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따지고 드는 건 비평가들이나 할 짓이고 소설을 읽는 독자의 바른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읽다보면 이 부분은 경험하지 않았다면 못썼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읽는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드러내서 좋을 게 없어 보이는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시시콜콜한 모습들과 카세트테잎 녹음 작업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 속의 감정 부침들이 그러했다.

 

 

자식들은 부모가 전매특허처럼 쓰는 단어와 표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식은 부모가 입버릇처럼 쓰는 말들을 알기 마련이다.

396p

 

 

이 소설은 반전이 있다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줄거리라고 해봐야 어린 여자아이에서부터 아버지의 사망 후까지 양친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게 하는 힘은 사실적 기억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공통적 기억 가운데 다른 집 부모와 자식은 어떠했을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소설 속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냥반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는 성격과 지위의 소유자들이다.

그 두 인물을 검색하다 본 것 가운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지독하게 영화를 찍는 것 때문인지 악마 감독이라나 뭐라나 그런 말도 있었고 배우 리브 울만에 대해선 실생활에서 대단히 잘 웃는 놀랍도록 쾌활한 사람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소설 속에서 그 딸이 이야기하는 어머니 리브 울만은 결코 쾌활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위치마다 꺼내 쓰는 가면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부모님이 /.../ 아이를 키우는 법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크면서 깨달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분명 사랑하셨다. 내 말은 양육에 대해서 몰랐다는 뜻이다.

396p

 

 

주인공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여덟이었고 어머니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거기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어머니는 다섯이며 나는 여덟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 그리고 나의 친어머니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어머니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식인 것이다. 모계 성을 따르고 있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앞서 올린 책보관함 영상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 같은 걸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언급하며 나름 이 소설에 대한 기대 또는 나름대로 짐작한 게 있었다면 그것과는 좀 다르게 전개가 되었다. 뭔가 극적이거나 반전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주 냉소적으로 흐르거나 할 줄 알았다.

만약 이 소설이 완전한 픽션이었다면 그게 가능했을 것 같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나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부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점과 맞물릴 수도 있는 아쉽다고 해야할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점은 <<불안>>이라는 소설의 제목이다.

 

원제 Unquiet [형용사] 침착하지 못한, 불안해하는, 동요하는

 

불안이라고 번역한 제목이 틀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불안이라고 하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적 느낌의 용어 같아서 소설 제목으로써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불안이라는 말은 너무 의미가 넓고 큰 말이 아닐까 한다.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직접 불안을 언급하는 몇 문장을 옮겨와 본다

 

왜냐하면 아침이 다가올수록 더 불안해지거든. 121p (아버지의 말)

아버지는 작별 인사를 하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고, 불안과 위통이 생긴다. 129p (어린 주인공의 말)

엄마는 곧 떠날 것이다. 캐더린은 공포의 의미를 모른다. 303p (어린 주인공의 말)

물론 엄마를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은 그대로였다. /.../ 내게 이런 일들을 억지로 시키는건 내 망상이라는 걸 나도 알았다. 314 (어린 주인공의 말)

눈앞에 떠오르는 나는 너무 큰소리로 말하고 너무 빠르게 걸으며 상대해 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불안에 집어 먹힌 여자다. 389p (중년의 주인공의 말)

 

불안의 극단까지는 아니라도 좀 더 깊은 불안의 심리나 상황들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야 제목과 어울리는 소설이 아니냐는게 내 생각이지만 제목을 지우고 읽는다면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은 잘 잡았다고 본다. 자극적 소재나 대단한 반전이 당연시 되는 세상의 유행에 젖어 이거 아니면 저거여야 한다는 식으로 편향된 내 성격 탓일 수도 있겠다.

 

소설의 제목을 소홀히 여기는 작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린 울만 역시 아무렇게나 제목을 Unquiet 로 짓지는 않았을 것인데 솔직히 나는 이 소설이 불안에 대한 소설인지 그게 아니라고 해도 불안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제목 따로 내용 따로인 소설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책 보관함 영상에서 제목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듯이 만약 제목이 <<불안>>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눈여겨 보지도 읽지도 않았을게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제목에 대해 투덜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으론 바로 그 제목 때문에 낯선 작가의 소설을 만났기도 했으니 잘 지은 제목인건가?(이 뭔 뜬금없는 소린지)

 

늙어가는 건 일이다. 늙어가는 육신이 뇌를 고분고분 따르도록 설득하고, 결과적으로 뇌가 그 자신에게 고분고분 따르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363p

 

총평

 

자전소설의 한계라느니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떠들었지만 그런 점들은 괜한 트집일 수도 있을만큼 독서욕구를 끝까지 이끌고 가주었다. 독특한 소재는 아니지만 픽션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자식이 그 부모에 대해 차분하게 써나갔다는 점이 장점이자 매력으로 읽혔다. 지독하게 깐깐하고 고집스럽던 아버지가 치매증상을 보이고 사망하기 까지 그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의 심정을 잘 그려냈다. 그런 점에 끌리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작품이란 것이다. 그리고 허구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로써의 두 유명 인사의 개인사나 가족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욱 추천할 만하다 하겠다.

 

 

오자 몇 개

 

227~228p 묵는다 묶는다 혼용

268p 밑에서 첫 줄 딱 한 번 나는 프렌치 양'' ->

301p 위에서 첫 줄 전에 한 번 들''라고 -> 들르라고

411p 밑에서 첫 줄 엄마는 내가 파리'' 가기를 원치 -> 파리''

441p 밑에서 셋째줄 돌아''기를 -> 돌아''기를

490p 위에서 10행 스위치를 킨다 -> 켠다

14행 스위치를 켠다 -> O

15행 스위치를 키면 -> 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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