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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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람을 죽이려 한다면 반드시 사고로 보이도록 만들어야 해. 그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죽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짓이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무엇을 품고 사는 사람일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을 응원했다.

범인인 걸 알면서도 잡히지 않기를 응원한 살인자는 그가 처음이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에서는 그 반대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전편에서 릴리에게 칼에 찔리고 스토커로 낙인찍혀 경찰을 그만둔 헨리 킴볼은 사설탐정이 되었다.

그에게 오래전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인 조앤 그리브가 찾아온다.

조앤은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확실하니 증거를 잡아 달라는 의뢰를 한다.

 

조앤의 등장으로 킴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소환한다.

그가 교사를 그만둔 이유이기도 한 그 기억.

교실에서 발사된 총.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

 

 






헨리 킴볼은 '촉' 이 좋은 형사였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릴리'를 알아봤으나 그녀를 사랑하게 돼서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형사를 그만두고 탐정이 된 지금.

아무 의심 없이 살아온 '조앤'을 알아보게 되고 그 조력자까지 찾아내어 또 한 번 죽음의 문턱에 선다.

그런 헨리를 위해 릴리가 나섰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살인자를 응원했던 나는 책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주인공의 살인을 용납하게 된 건지, 아니면 주인공의 심리를 너무 완벽하게 그려내서 내가 동화된 것인지 살인자를 응원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용서하면 안 되는 기분이었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또다시 소환된 릴리의 능력이 빨리 발휘되기를 바랐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죽이고 목격자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놓는 교활한 살인을 사주하는 그 그릇된 심리를 가진 자를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과 경찰이 닿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살인자.

그런 자는 그를 능가하는 살인자가 필요할 뿐이니까.

 

 

 

둘이 함께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일단 그런 짓을 하고도 빠져나가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 인생의 다른 모든 것들이 조금 색이 바래게 된다.

 

 

더 이상 아무런 잣대를 댈 수 없는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정의가 있을까?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범죄에서 빠져나가는 법을 알게 되면 계속 그 '맛'에 중독되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헨리의 '촉'과 릴리의 '실행력'이 무력한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라면 약간 실없고 야한 시를 짓는 기능에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악'의 기운을 감지하는 헨리.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을 믿으며 끈질기게 단서를 찾아내는 헨리.

세상의 모든 미결 사건에 헨리 같은 형사가 있다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

 

스스로를 몽크스하우스에 가두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려 하는 릴리 킨트너.

그런 그녀가 헨리를 위해 총대를 매는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받았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을 위해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해치우는 릴리.

내 통쾌함은 잘못된 걸까?

 

 

 

피터 스완슨의 작품은 일단 재미 보장이다.

그러니 무조건 무조건이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서 단지 재미와 스릴만 찾는 건 실례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한 번 교묘하게 법을 피했던 사람들은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안심하며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겠지만

완슨이 오빠의 이야기에 의하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다.

헨리와 릴리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세상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감시하며 공존하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살려 마땅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재미와 스릴 그리고 가을을 닮은 깊은 생각이 필요한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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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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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사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 반려자가 되었다. 상업 사진 스튜디오 사진가, 아니면 암실 기술자, 아니면 사진 세일즈맨으로. 나의 곡이 전부 금지곡이 되어 음악으로 한 푼도 벌 수 없을 때, 사진은 나를 먹여 살렸다.

 

 

1부 내 인생의 봄 : 1960년대 뉴욕, 서울

 

나에게 한대수는 오래전의 가수로만 기억되었다.

그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를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른 버전으로 듣고 그 곡 역시 다른 사람의 곡으로 알고 있었다.

원곡 가수가 한대수라는 걸 꽤 늦게 알았다.

 

이름은 알지만 본 적은 없는 가수.

그가 사진으로 글로 전혀 다른 면으로 살아왔음을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삶이라는 고통>에는 75세의 음악가이자 사진작가가 그가 한창 젊은 나이였을 때 찍은 필름 사진들과 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았다.

지난 사진들에 담긴 사람들도 배경도 공간도 모두 쓸쓸해 보인다.

필름 사진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세상의 모습, 그 세상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느껴진다.





뉴욕에서 수의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사진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사진은 평생의 밥벌이가 되었다.

장발의 그가 거친 음색으로 부르는 노래는 고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자유로운 영혼이 부르는 노래는 모두 금지곡이 되었다.

 

 

우리가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가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기쁨을 느낄 뿐이다.

 

 

 

2부 길 위의 고독 : 뉴욕에서 몽골까지

 

사진에 담긴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그가 아주 많은 곳을 다녔음을 보여준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거리의 음악가들과 노숙자들의 모습이 그가 사진을 통해서 바라본 세상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에는 <삶이라는 고통>이 담겨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재미와 즐거움 보다 고통에 초점을 맞춘 그의 진지한 시선이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3부 끝까지, 평과 : 히피의 기도





15세 딸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안타깝다.

그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그 전쟁은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끝났다.

그는 다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집필하는 시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이 책이 출간된 지금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하고 있다.

어린 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전쟁으로 물드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75년의 세월을 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추려진 사진들이 책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외면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고통을 그는 사진으로 남겼다.

세상은 외면하고 도망치는 사람들 보다 이렇게 묵묵히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회복된다.

 

한대수의 <삶이라는 고통> 속에 담긴 지나간 시간들을 보고 있자니 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그의 말처럼 맥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느껴봤다.

그때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평화다.

그들도 지금 우리도 평화를 원한다.

 

e-편한 세상이

e- 살벌한 세상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까지 오래된 필름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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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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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언젠가는 수사 현장으로 돌아올 생각일 테지만,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다.'

 

 

 

붉은 박물관은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으로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흉기, 유류품 등)과 수사 서류를 사건 발생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 와 보관하고, 또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수위 한 명과 청소부 한 명. 커리어 출신이지만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설녀라는 별칭을 가진 히이로 사에코 관장, 그리고 수사1과에서 좌천당한 데라다 사토시가 있다.

 

20년도 더 된 사건들의 집합소 <붉은 박물관>

다섯 편의 미결 사건들은 사에코와 사토시에 의해 해결된다.

 

유통되는 빵에 바늘을 넣고 1억 엔을 요구하는 범인에게 돈을 갖다주던 사장이 경찰이 감시하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서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는 <빵의 몸값>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사한 옛 여자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일기로 남긴 남자.

그러나 그 일기는 집에 들어온 도둑이 가져가고 그 도둑은 그 일기를 경찰서로 보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일기는 <붉은 박물관>에 증거품으로 들어와 있다. 이를 읽게 된 사에코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는데... <복수일기>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토시는 죽어가는 사람의 뜻밖의 고백을 듣는다.

이십오 년 전 자신이 교환 살인을 했다고 고백하고 죽은 남자.

사에코와 사토시는 이십오 년 전 9월에 일어난 여섯 건의 사건들을 조사하는데...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다섯 살 에미리는 1박 2일로 캠핑을 갔다. 돌아오는 날 모든 아이들은 부모들이 찾아와서 데리고 갔지만 에미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에미리가 캠핑을 가 있는 동안 부모님과 이모가 살해되고 집은 불탔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이모와 헤어지기 싫어했던 옛 애인이라지만 찾을 수 없었다.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다 에미리의 에세이를 읽은 사에코의 눈에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그래서 재수사에 들어간 사에코와 사토시가 풀어낸 사건의 진실은? <불길>

 

이십육 년 전 벌어진 사건의 모방범이 나타났다!

수사1과에서는 증거품으로 맡겼던 미해결 자료를 요구하고, 감찰청에서는 사토시와 사에코에게 따로 재수사를 의뢰한다.

아마도 범인을 수사1과의 형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감찰청. 과연 범인은 이십육 년 전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수사관 중 하나가 맞을까? <죽음에 이르는 질문>

 

초반에 사건의 전말을 다 얘기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맞출 수 없었다!

 

 

 

게다가 사토시도 놀라는 사에코의 추리력은 정말이지 생각하는 사람의 '허'를 찌른다.

인사성도 없고, 사교성도 없으며, 계급 의식도 없는 사에코에게 사토시는 '설녀'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추리는 읽고 있는 나 자신을 터무니없어 코웃음 치게 만들었는데 결국은 그게 맞네?

 

개성 있는 <붉은 박물관> 식구들.

4명뿐인 직원들

낡은 건물에 변변치 못한 사무실이지만 증거품을 보관하는 곳만은 최신식이다.

그곳에서 사에코와 사토시는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을 해결해 간다.

 

믿을 수 없는 추리로 묵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붉은 박물관>

사건들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다양한 측면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 예상치 못한 측면들을 발견해 내는 사에코의 예리한 촉과 사토시의 빈틈없는 수사가 다섯 편으로 끝내는 게 너무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후속이 나온다고 한다.

후속편엔 어떤 예상치 못하고 가늠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잠들어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붉은 박물관> 읽으신 분들 다섯 편 중에 범인을 맞히신 분 계시나요?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읽으시면서 한 번 맞춰 보세요~

정말 상상도 못할 범죄가 잠들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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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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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래된 법정 드라마를 몰아보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곱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맥스 왕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인어 공주> 에일.

에일이 자신을 구한 것을 알았음에도 카스 공주와의 결혼을 진행하려는 왕자.

에일은 그런 왕자의 마음을 알고 죽였던 걸까?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고유명사와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술'과 관련되어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다가 모두 술을 가리킨다는 걸 깨닫고 술이 땡겼던 <인어의 소송>

 

나무꾼에게 잡혀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이를 줄줄이 낳으며 베나 짜고 있던 선녀가 나무꾼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녀의 날개옷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발견되었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할 것을 안 선녀는 앙심을 품고 나무꾼을 죽였을까?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은 잘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할 선녀의 고달픔이 내내 가슴에 남았던 <선녀를 위한 변론>

 

오래 쓴 빗자루같이 부스스한 단발머리와 항상 조금씩 미안해하는 듯한 어리숙한 표정의 임기숙이 등장하는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는 탐정은 아니지만 탐정 뺨치는 실력을 가진 임기숙의 주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이야기에서 임기숙 이상으로 열연(?)을 펼친 이는 바로 타미와 메리라는 강아지들. 사소한 것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그것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내는 임기숙. 분리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타미의 울부짖음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카페 한 귀퉁이에 있는 자기 집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손님들을 관찰하는 메리의 눈길이 악한 마음을 다독인다.

 

앞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온기를 채웠다면 그건 마지막 이야기의 독기를 어루만지기 위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을 읽으며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 분리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은 가상세계의 것을 현실로 가져온다.

그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책임감도 없다.

그들의 일상이 된 가상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어린 범죄자.

그런 치기 어린 마음을 슬슬 꼬드겨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어른.

미성년자이기에 처벌이 가볍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해리성 정신장애를 연기하는 범인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여성이 주체가 되어 있다.

동화를 비틀고, 임기숙이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탐정을 등장시켜 재밌고 따뜻한 온기를 주더니 마지막 이야기에서 작가의 본심이 드러난 느낌이다.

끔찍한 범죄 보다 더 끔찍한 범죄자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읽는 이는 언젠가 뉴스에서 보고 경악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짤막한 뉴스와 기사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소설을 통해서 채운 느낌이다.

 

송시우 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단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장편으로 만나 보고 싶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송시우의 소설을 통해 이해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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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궁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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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 여인들을 죽였을까? 범인은 대체 어떤 이유로 그들을 살해하게 됐을까? 뿌예진 눈으로 나는 지저분하고 딱딱한 얼굴의 행인들을 바라봤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그들도 내 쪽을 힐끔거렸다.

나는 끔찍한 비밀이 숨겨진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형조판서의 서녀이자 내의녀인 백현.

그녀는 어느 밤 동궁전으로 불려간다.

아픈 세자를 돌보러 도착한 동궁 처소엔 세자 대신 늙은 내관이 있었다.

세자빈의 함구령으로 그날 밤을 세자 처소에서 치료를 하며 보낸 이후 퇴궐을 하다 백현은 혜민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마주친다.

난도질당한 의녀들과 용의자로 몰린 백현의 스승.

그리고 세자가 범인이라는 괘서가 사방에 붙는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스승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백현 앞에 나타난 서종사관은 18세에 과거에 급제한 영재였다.

변장에 능한 종사관과 동갑인 백현은 사건을 함께 수사하기로 하는데...

 

 

 




처음엔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다루는 작품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도세자의 죽음보다는 그가 처한 상황과 그가 저지른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었다.

 

<붉은 궁>은 2023년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수상작이다.

로맨스추리사극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장르를 정한다면 말이다.

익숙한 듯 어딘지 낯선 이야기라 느껴지는 건 아마도 우리의 시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고증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어쩜 내가 가진 고정관념 때문에 그리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조선 시대가 <붉은 궁>에서처럼 훨씬 더 자유스러웠을지도 모르니까.

백현과 서종사관의 노상에서의 키스신도 어색하지만 그만큼 그럴싸했다.

 

백현과 의진과의 로맨스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불편한 관계

남편의 광기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세자빈

왕과 세자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후궁

궁 곳곳에 퍼져있는 첩자들과 사사건건 자신을 망신 주는 아버지로 인해 무너져가는 세자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던 서녀의 복잡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붉은 궁>의 결말이 맘에 들었다.

해외 한국계 작가들이 가진 매력이 여기에 들어 있다.

우리가 우리 시각으로 보는 역사와 밖에서 보는 역사의 시각이 다르지만 같게 스며있다.

좀 더 생각의 자유로움이 담긴 이야기라서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붉은 궁>은 '신선한 피' 같다.

고정관념에 새로운 수혈을 해냈다.

역사적인 사건에 기대에 허구의 인물들로 복잡한 시대를 관통시켰다.

짧은 에피소드로 사도세자의 심정을 잘 풀어냈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어쩜 그 시대에 정말 백현과 같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영의녀와 같은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기록되지 않아 잊힌 이야기들이 <붉은 궁>을 통해 소생한 느낌이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신선한 감각으로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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