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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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나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그게 인생이 아니던가. 답답할 만큼 질질 끄는 자살.

 

사이러스와 이비.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고통스러운 과거가 담겨있다.

어느 쪽도 이해하기 힘든 고통의 과거가 공통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부모와 쌍둥이 누이가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을 본 사이러스.

그 범인은 바로 자신의 형이었다.

심리학자가 되어 어릴 때 살고 있는 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좋아하는 조 올로클린의 제자다.

 

이름, 나이, 그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하는 이비.

앤젤 페이스란 별명으로 불리던 소녀.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가졌지만 절대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는 소녀.

상대의 거짓말을 기가 막히게 감지하는 거짓말 탐지기 소녀.

이비를 쫓는 자들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녀의 과거.

 

피겨 스케이트 유망주였던 소녀의 참혹한 죽음.

DNA 증거로 경찰은 범인을 잡지만 왠지 그게 다가 아닌 거 같은 이 찜찜한 죽음은 서서히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마약, 근친상간, 욕망이 뒤섞인 이야기가 촘촘하게 그물을 짠다.

 

로보텀의 이야기엔 강렬한 서사가 존재한다.

늘 그냥 등장하는 인물이 없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난 건 사이러스의 과거뿐이다. 이비에 대한 이야기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하나 보다.

그러나 겹겹이 벽으로 둘러 쳐진 이 자그마한 소녀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어느 날 봇물처럼 쏟아 낼 이비의 옛이야기가 기대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한다. 나는 반쯤 박살 난 것들을 짜 맞춰 지금의 나를 완성했다. 어떻게 숨고, 도망치고, 안전을 유지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터득해왔다. 문밖에 멈춰 서는 발소리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스스로를 착실하게 단련시켜온 덕분이었다.

 

 

사이러스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은 무엇을 뜻할까?

아직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사이러스의 숨겨진 모습도 보고 싶다.

 

이비는 대놓고 숨기고 있지만 사이러스는 숨기는 거 같지 않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모든 스릴러 요소가 촘촘하게 넣어진 <굿 걸 배드 걸>

 

마이클 로보텀이 준비를 많이 한 시리즈 같다.

역대급의 과거를 지닌 채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파헤쳐 가며 사이러스와 이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고픈 분들께 추천.

두껍지만 하루 만에 호로록 읽을 수 있는 가독성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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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사람들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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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와 사이버 세계의 공통점.

 

오랜 세월에 걸쳐 사이비 집단 생존자 및 그들 가족 수십 명과 이야기를 나눠온 애비는 이미 그 두려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사이비 집단은 누구라도 전도할 수 있었다. 부자, 가난뱅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종교인, 문신론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 넘치고 극진히 아껴주는 가족이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의심이 많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고 해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가진,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어'라는 오해야말로 사이비에게 가장 귀한 자산이었다. 왜냐하면 사이비의 전도에 대한 백신은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조심하는 것. 그리고 당신이 이미 그런 데 면역이 있다고 자신한다면 사이비 종교집단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는 당신이 위험하는 뜻이다.

 

 

마이크 오머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사이비 종교 하면 대표적으로 길거리에서 만나는 '도를 아십니까?' 생각난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거는 사람들.

나도 몇 번 경험이 있다. 대부분은 듣지도 않고 도망치듯 걸어서 피해 다녔는데 한 번은 정말 끈질기게 따라와서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까지 쫓아와서 30분을 개기던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위의 글에 공감한다.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어'라고 자신을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으니까.

 

인질 협상 전문가 애비에겐 아직도 생각하기 싫은 과거가 있다.

사이비 종교에 몸담았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기억은 꽁꽁 묶어서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버렸지만 한 아이의 납치 사건이 그 과거를 현재로 가져다 놓았다.

납치된 아이는 애비가 오래전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의 아이였다.

 

네이선 납치 사건은 네이선의 누나 개브리얼과 관련 있어 보인다.

그녀는 유명한 인플루언서다. 납치범은 500만 달러를 요구한다.

개브리엘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범인이 요구한 500만 달러를 모금한다.

 

애비는 네이선의 납치가 개브리엘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피드를 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납치가 결코 개브리엘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납치에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떠올리기 싫은 애비의 과거까지 깨어나게 하는 소름 끼치는 사건이었다.

 

사이비 종교와 사이버 우상은 모두 허상을 쫓는 것이다.

모두가 홀려서 진짜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이비 종교에 얽힌 이야기와 동시에 사이버 세상의 진위 여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없이 자신의 사생활을 사이버 세상에 올린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사이버 세상에선 모두 친구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럴까?

 

인기와 명성만 가지면 다 가진 게 되는 걸까?

거기에 돈이 따라주면 다 되는 걸까?

사람들의 눈은 얼마나 속이기 쉬운 건지.

아내와 딸을 교주가 성 노리개로 삼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그것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 걸까?

 

세뇌는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평소의 생각을 바꿔 놓는 것이다.

종교에 빠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들을 보며, 피드 속 세상을 현실 그대로라 믿는 사람들을 보며 그 어리석음을 탓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오티스나 개브리엘이나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자신들이 무엇을 빼앗기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빠져들고 마는 세상.

 

<띠르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나의 현재를 점검해 보게 됐다.

너무 중독되지 말 것.

너무 빠져들지 말 것.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어떤 것이든.

그저 솔깃하다 말 것.

 

그저 내 지금을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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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의태어의 발견
박일환 지음 / 사람in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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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예쁜 말들을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쓰고 있는 언어가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모자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의성어의태어를 많이 썼었는데 이제는 최소한의 것도 거의 쓰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나라 말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소리나 동작을 표현하는 말이 풍부하다는 점이죠.

그러나 말을 줄여 쓰고,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사용하는 요즘에는 이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말들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한 페이지씩 펼칠 때마다 예전엔 잘 사용했지만 요즘은 듣기 힘든 말들이나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표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어떤 스릴러 보다 더 스릴 있어요.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말을 의성어,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말을 의태어라 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분명히 구분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의성어로 볼 수도 있고 의태어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둘을 묶어 '의성의태어'라는 용어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말로 '흉내말'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흉내말.

이 흉내말엔 소리뿐 아니라 동작이나 모양 등도 포함됩니다.

우리말은 살아있는 생물뿐 아니라 무생물에게도 '소리'를 부여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소리를 부여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 같네요.

 

이 책은 동작을 나타내는 말, 태도를 나타내는 말, 말과 소리를 나타내는 말, 동물과 식물에 관한 말들, 생각해 볼 말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부작사부작 발밤발밤 걸어요. 부랴부랴 하다 왜틀비틀 하면 헬렐레해 보여요.

사람들이 재그르르 하네요~

주전주전 하다가는 다이어트는 말짱 도루묵~

 

무슨 뜻일까요?

다 동작과 관계있는 말입니다.

어떤 뜻인지 맞춰보세요^^

 






부부 사이가 설면설면해 보이네요.

시시콜콜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알려고 하지 마세요. 좀스러워 보여요!

사람이 진중한 맛이 있어야지 그렇게 깝작깝작해서 되겠어요?

욜랑욜랑 거리지 좀 말래?

 

이건 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뭔가 대충 감이 오시죠?


 

아이고! 왕배야덕배야 그만 좀 해라!

저는 책을 댕글댕글 읽어요.

엉두덜엉두덜 하지 말고 할 말 있음 따북따북해!

말과 소리를 나타내는 말들인데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죠?

띵까띵까는 어디서 나온 소리일까요?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입니다. 글씨를 아무렇게나 써놓은 모양을 가리키죠.

그러나 거의 개발새발로 쓰고 있습니다. '괴'가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개발새발'로 고쳐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굳어지게 되었다죠.

 

강아지가 아즐아즐 거리네요~

'워리' 많이 듣던 소리죠? 개를 부를 때 쓰는 말이래요^^

'요개' 싸울 때 상대방에게 하는 소리죠? "요개 까불어!" 라면서. 근데 '요개'는 개를 쫓을 때 지르는 소리래요 ㅍ.ㅍ

 

주저리주저리도 좋지만 드레드레도 좋네요^^

동물과 식물에 관한 말도 참 예쁘고 다정한 말들이 많네요.


 

생각보다 뱐주그레하시네요^^

소개팅 남에게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요?

 

삐까번쩍 하다가 블링블링하네요.

삐까는 일본어 투 용어랍니다. 이제는 블링블링이라는 영어로 대체되고 있는 말이죠.

 

딩동 - 벨 소리를 나타내죠. 그러나 이 말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입니다.

땡땡 - 은 종소리를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초인종이 생기고 다른 표현이 필요해지면서 딩동이 쓰이게 되었답니다.

 

치카치카를 저는 외래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말이네요^^

올해는 과실나무가 아그데아그데했음 좋겠어요.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몸이 욜그랑살그랑 거리죠~

 

이렇게 많은 의성의태어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이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양하게 변해가는 언어들에 열린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결국 사전용 언어와 일상 언어로 분리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양한 의성의태어를 마주하다 보니 이 말들을 자꾸 써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예쁜 의성의태어를 자꾸 썼으면 좋겠어요.

자꾸 쓰면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어휘력이 풍부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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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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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거창하지만 솜털 같은 가벼운 그곳으로..

 

 

 

700년의 시간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지만 <클라우드 쿠쿠 랜드>라는 필사본으로 묶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애정을 갖게 만든다.

 

 

그 무덤은 팔 십 년은 남자로, 일 년은 당나귀로, 일 년은 농어로, 일 년은 까마귀로 산 아이콘이라는 자의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야기 속 아이톤은 자신에게 닥친 형벌 같은 상황 속에서도 끝없이 기도하며 자신을 바꿔가길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에서 당나귀로, 당나귀에서 농어로, 농어에서 까마귀로.

몸이 바뀔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좌절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에게 기도한다.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힘겨운 삶에서 신에게 기도하듯이.

 

 

"저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문,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란다. 네 앞에는 창창한 삶이 펼쳐져 있어. 그리고 앞으로 넌 오늘 본 것을 평생 누리게 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어떻게 생각하니?"

 

"어떤 이야기는." 안나가 말한다.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일 수 있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안나는 필사본을 챙겨들고 도시를 탈출한다.

도시 함락을 코앞에 두고 안나는 자신이 가진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든,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이든, 가진 게 그것뿐이어서 든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짧은 삶 동안 고통이었던 도시를 떠난다.

 

 

미래 우주를 가르는 우주선 안에서 콘스턴트는 홀로 격리된 채 홀로그램 속 지구의 삶을 체험하다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만난다.

같은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사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200일이 넘는 동안 격리된 소녀의 외로움과 절망스러움과 분노는 홀로그램으로 지구의 곳곳을 누비는 모험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공지능 시발도 알지 못하는 비밀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이 책은 콘스턴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때로 이젠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다만 감춰져 있을 뿐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기도 하니까."

 

 

안나, 오메이르, 지노, 시모어, 콘스턴트로 이어지는 필연이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통해 그들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간다.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안에 꽉꽉 담긴 다섯 명의 서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 같은데 모두 같은 걸 얘기한다.

그걸 깨닫게 되면 이 경이로운 이야기가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글로 써서 한 편의 이야기로 모았을까?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우리 모두가 나아가고 싶어 하는 방향이거나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세계이다.

그곳으로 가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우리가 맞이할 세상이다.

 

 

그것은 이상향일 수도 있고

종국에 모든 생명이 마주하게 될 죽음일 수도 있고

새로운 지구일 수도 있다.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나의 세상이다.

아무도 그곳에 대한 내 마음과 내 의지를 알 수 없다.

나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닿을 곳이니까..

 

 

 

<클라우드 쿠쿠 랜드> 이곳은 곧 인간이 가진 불굴의 의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굴의 의지만이 전쟁과, 전염병과, 재난과 고난을 견뎌 낸 인간의 승리를 뜻하기에.

그렇게 견뎌낸 뒤에 잠시 맞게 될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 모두의 바람일 테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시간에 쫓겨서 조급해지면 그저 두꺼운 책으로만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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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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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그다.'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아닙니까?"

"비열하고,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숨기려고 하질 않았잖아요. 증거인멸이나 단서를 꼬아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 조잡한 아이슬란드식 살인이지."

 

 

그렇게 단순해 보였던 살인사건은 그 깊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거슬러 간다.

50대 이혼남 에를렌두르 형사.

이 형사의 매력은 뭘까?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맛도 없고, 부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없고, 능숙한 말주변도 없는 에를렌두르 형사.

피살된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쪽지.

쪽지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단순해 보이던 살인사건은 그 쪽지로 인해 단순해지지 않는다.

피해자를 조사하다 보니 그가 전에 강간죄로 고소당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된 에를렌두르는 살인자를 찾는 대시 피해자의 과거를 파헤친다.

 

'과거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에야 그 뜻이 이해가 갔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거짓 화술로 여자들을 홀리고, 여자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신사적인 행동 뒤에 따른 강간.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그녀들의 몫.

그중 단 한 명만이 그를 고소했고, 부패한 경찰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의견을 묵살한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4살 되던 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이 과거의 사실이 현재 재떨이에 맞아 죽은 피해자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북유럽 스릴러를 자주 접해봤지만 아이슬란드의 스릴러는 뭔가 살짝 다르다.

그들의 생활방식보다는 단일민족인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유전학적인 부분에서 다른 소재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이 느껴진다.

 

왜? 어째서? 현재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찾을 생각을 안 하고 피해자의 과거 따위를 추적하는지 알 수 없는 동료들은 짜증스럽지만 그래도 에를렌두르의 지시를 착실하게 따른다. 그것 역시도 다른 스릴러들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

 

"어쩌면 여기 정말 간단한 해답이 있을지도 몰라. 어떤 미친 자식의 소행일 수도 있지. 그러지만 내 생각에 이 사건은 아니라고 봐. 살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더 깊을 수도 있어 전혀 간단한 사건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해답이 홀베르그라는 인물과 그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놓여 있을지도 몰라."

 

 

에를렌두르의 매력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는 게 매력이다.

 

약에 취해 그를 찾은 딸.

자신의 일에 상관 말라는 딸.

그런 딸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에를렌두르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딸에 대한 애틋함과 스스로를 악의 소굴로 빠뜨리는 딸에 대한 분노도 내비친다.

그가 부엌에서 딸에게 한바탕 화풀이는 하는 장면에서 그가 무섭다기보다는 애처로운 것도 그 이유다.

 

아이슬란드식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내 가슴을 탕탕 치게 만들지만 그것 또한 그들의 정서.

그나마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 동안 딸과의 관계도 호전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위로라면 위로라고나 할까?

 

잘도 오랫동안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용케 목숨을 보전했던 죽어 마땅한 놈은

결국 그렇게 자신이 뿌린 씨(?)를 마주하게 된다.

 

<저주받은 피>를 읽으며 어째서 피해자는 여자들인데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비밀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도 여자들인지.

왜. 그 여자들에게 뒤늦게라도 알게 된 사람들은 화를 내는지.

왜.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의 뒷배를 봐주는 무리들이 있는 건지.

그런 경찰 때문에 힘들게 찾아간 강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건지.

어째서 이런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시간과 상관없이 자행되고 있는지.

왜.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

오만가지 생각들에 휩싸였었다.

 

졸지에 살인자가 된 사람에게 드는 안타까움과 그들의 고통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에 그저 먹먹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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