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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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눈은 그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여자들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알려주지도 않고 분명하게 말해주지도 않는 어떤 것을, 말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이므로

 

 

이야기는 마르타의 출산으로 시작한다.

올라이와 마르타에겐 딸이 있다.

그들은 딸로 만족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아들이라고 올라이는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요한네스.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는 마르타의 고통의 외침과 초조하게 기다리며 태어날 아이에게 지어 줄 이름을 생각하는 올라이의 모습이 이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다.

 

남자들은 절대 알지 못할 순간이자

여자들에겐 온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이다.

생명의 탄생은 고통과 함께 희열을 뿜어낸다...

 

 

 

 

오늘도 여느 아침처럼,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어딘가 달라졌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요한네스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담배와 커피. 그리고 산책.

유난히 가뿐한 몸으로 시작한 하루는 그에게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게 해준다.

 

쉼표와 물음표가 마침표보다 많은 문장은 요한네스의 이상한 하루를 표현해 준다.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친한 친구도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던 삶.

친구가 먼저 떠나고, 아내가 떠나고, 막내딸이 가까이에 살면서 그를 챙겨주는 삶.

 

세상에 태어나 우렁차게 울어대던 아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는 이제 할아버지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모든 인간의 물음표인 죽음.

욘 포세는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그것을 말해준다.

상상할 수 있지만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죽음.

 

요한네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따스한 위안을 얻는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삶에 준비 없이 찾아오는 죽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한 느낌. 방금 죽은 망자의 혼란함을 먼저 간 이들이 이끌어 준다.

그에게 가장 친숙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그를 데리러 온다.

 

요한네스의 하루는 그렇게 따스한 여름날 한가롭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현실인 듯 꿈인 듯...

 

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딸 싱네는 추운 겨울의 쌀쌀함을 품고 그를 보지 못하고 관통해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딸이 그를 못 알아보는지...

 

책을 읽으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엄마를 생각했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그날을 마주하게 되면 요한네스가 생각날 거 같다.

그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누군가가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가 혼란스럽지 않게.

페테르가 요한네스를 이끌어주듯이...

 

맙소사, 담뱃갑이 거기, 아버지가 저녁이면 늘 두는 자리에 있네, 아버지는 매일 저녁 담뱃값과 성냥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오랜 세월 그래왔다, 그러고 나서 한 대 더, 커피를 마시며 또 한 대나 두 대, 아침마다 그러시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담배에 손댄 흔적이 없고 재떨이는 말끔히 비워져 있다. 맙소사,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남길지 궁금했다.

가지런한 담뱃갑과 성냥갑을 보고 싱네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다.

마치 내가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갓 태어난(?) 망자를 따라가다 보면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통과해야 하는 과정...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서 체험한 그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문득 떠오를 거 같다.

그 길은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위로가 위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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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장면들 -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
민바람 지음, 신혜림 사진 / 서사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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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쭌한 글들이 마음에 담긴 시간.

 

은결든 시간이 오래 묵어 만들어진 알심은 단순한 알심이 아니라 꽃심. 귀하고 품격 있는 향기를 풍기는 마음이 된다.

 

 

요즘 나는 노루잠과 눈썹시름을 하는 나날이다.

불면증이라는 말보다 훨씬 괜찮은 상태라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도 왠지 그 뜻을 가늠할 수 있다.

<낱말의 장면들>에서 만나는 낯선 낱말들은 내가 아는 낱말들 보다 더 분위기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을까?

 

글솜씨 좋은 작가를 만났을 때는 마음이 해낙낙해진다.

나를 깨단하게 한다.

처음 읽는 작가님의 글에 마음이 누그러워지고,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나 역시 풀쳐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쓰였어야 했다. 미래를 상상하며 정신 차리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현재 속에 흠뻑 젖어 있으라는 뜻으로.

 

 

 

나 자신과 함께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세상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의 좋은 말과 글을 읽어도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낱말의 장면들>을 읽으며 나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글 곳곳에서 슬며시 나를 건드려 주는 문장들을 만났다.

 

낯선 낱말을 앞에 두고 내가 써왔던 단어들과 대체할 연습을 한다.

알쭌한 문장들 앞에서 숨을 고른다.

가만가만 들려주는 말들이 자꾸 나를 다독여준다.

 

누군가의 눈에 빛나지 않아도 나에게만은 내가 빛저운 사람이길, 바란다.

 

 

이 말을 떠올리지 못해서 나 역시 힘들었다.

누군가 힘겹게 견뎌낸 시간들이 나에게 위로가 된 시간.

<낱말의 장면들> 제목처럼 모든 낱말엔 그 말을 담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서로의 장면이 비슷하게 채워질 때 서로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책을 받고 읽어가는 동안 날이 더 많이 쌀쌀해졌다.

가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도 서늘하게 내렸다.

겨울 동면처럼 품고 읽으면 봄에 새처럼 재잘거릴 수 있을까?

이 책에 담긴 낱말들이 내 것처럼 말해질 수 있을까?

 

이렇게 멋진 낱말들을 배운 적 없이 살았다니 참 안타깝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는다면 좋은 말들로 채우지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이 책에 담긴 낱말들이 자주 사용되어서 기존의 말들을 대체하는 시간대가 왔으면 좋겠다.

더 많은 낱말들에게 그에 어울리는 장면을 만들어 주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에 나도 깊어지게 하는 글이 읽고 싶을 때

새로운 말을 쓰고 싶을 때

지치고, 거칠어진 마음을 다독다독하고 싶을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이 책과 함께 사라지시기를 ...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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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 겨레의 작은 역사 우리말글문화 총서 3
이길재 지음 / 마리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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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도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촌스럽거나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방언은 사실 우리의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는 그릇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며 지역문화를 가장 잘 읽어 낼 수 있는 핵심이다. 이를 지키려는 수고로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방언>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계속 살아온 나는 방언, 사투리를 그저 재밌는 지방말로 받아들였다.

태생이 서울이라 해도 부모님으로 연결되는 친인척들의 삶이 터전으로 인해 내가 이해하는 언어들의 폭은 넓어진다.

서울말 뿐 아니라 타지역말도 어릴 때부터 들어오거나 사용하니 말이다.

 

나는 충청도 말과 전라도 말 그리고 경상도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원어민(?)의 말로 들었단 뜻이다.

부모님의 고향말이자 친척들의 결혼으로 인한 지역의 말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다.

지역에서 쓰는 말의 억양과 표현법들이 다르다는 걸 습득하며 살았으나 성인이 되어 '진주'로 시집가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경상도라고 해서 다 같은 경상도 방언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부산과 진주의 말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제주에서 군 생활을 했던 사촌 오빠가 휴가 때 놀러 와서 하는 얘기는 외국말 같았다.

그때서야 제주도 말이 내가 쓰는 말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 좁은 땅에서도 언어는 다르게 통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사는 방식과 생각들은 또 얼마나 다를까?

 






'거시기'와 '머사니'라는 말에는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상황을 공유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슨 정보든 주고받을 수 있다. '거시기'와 '머시기'가 갖는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황산벌>이라는 영화는 이런 언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방언>에는 '거시기'라는 말도 담겨 있는데 '거시기'만 해도 표현하는 말이 '거시기'하게 많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넘친다.

 

이 책에 적힌 말들은 한반도 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동포들과 고려인 등 이 땅에 살지 않는 동포들의 말도 담아내고 있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동포들의 말과 북한의 말도 함께 담겨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쓰는 말이 투박하고 거칠고 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쓰는 말보다 훨씬 순우리말이 많다.

그건 뭘 의미하는 걸까?

 

<방언>을 읽고 싶었던 까닭은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였다.

같은 말이라도 감칠맛을 주는 말을 쓰고 싶었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방언>을 읽으면서 이렇게도 다양한 말들이 왜 사어가 되었는지 안타까웠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다른 나라의 말이 들어와서 토착어로 대체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어 차용어가 되거나 귀화어가 되는 말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외래어를 남발하느라 우리의 순수하고 예쁜 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처럼 게으를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자꾸 외국말을 가져다 쓴다.

각 지방의 말들조차도 게을러서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켜 버리고 있다.

10여 년 전과 지금 사용하는 말들을 비교하면 우리는 많은 말들을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이렇게 발품을 팔아서 '우리의 말'을 길어 올리는 분들이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낯선 단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시간이 즐거웠다.

난생처음 들어 본 말도 있었다. 무슨 뜻인지 맞춰보려 했지만 맞추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뭔가 과거와 자꾸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언어는 외래 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쉽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우리말을 찾아 쓰는 대신에 외국어를 남발하고 그걸 '멋'으로 여긴다.

 

언어가 그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다.

표준어의 그늘에 가려져 사라지고 있는 방언들.

그 방언들엔 그 말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 이야기들이 점점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을까?

 

불술기 타고 여행 가고 싶다.

동물원에 가서 두루바리를 보고 싶다.

머구리는 동면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을까?

장싸귀 불고기 먹고 싶다~

조선시대에 해개먹음이와 달개먹음이는 어떻게 관측했을까?

거! 꾹돈 받지 맙시다!!

 

세상이 하나가 되고

모든 문화가 어우러지는 편리한 세상이 된 건 좋지만

그것이 개성을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예전에 모 방송에서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그 지방의 노래나 말을 보전하기 위해 녹음을 해서 라디오에서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방언>을 읽으면서 이 말들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로는 말맛이 잘 살지 않으니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방언>을 보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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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기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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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에를렌두르가 말했다.

"저 사람은 여기서 그냥 도어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시내의 큰 호텔 지하방에서 칼로 난도질당한 시체가 발견된다.

그는 이 호텔의 도어맨이자 산타였다.

20년 넘게 호텔에서 살면서 도어맨으로, 각종 수리를 도맡아 한 잡역부로,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로 분장해왔던 그 사람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쓸쓸했던 적이 없다.

 

한때는 보이 소프라노로 어린이 스타였던 구드라우구르.

가장 눈에 띄는 모습으로 일했지만 아무의 눈에도 띄지 못한 남자.

크리스마스라는 시기가 한 남자의 죽음을 더 외롭게 만든 <목소리>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욕심으로 키워낸 아버지.

멋진 목소리를 가진 아이는 큰 공연장에서 그만 '늑대 목소리'가 되고 만다.

12살 어린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아이.

그런 아이에게 실망한 모습만을 보여준 완고한 아버지.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과 언쟁을 벌이다 그만 계단에서 떨어져 불구가 된다.

그 뒤로 아들은 집을 떠나고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낸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엔 어떤 감정이 담겨있을까?

 

심하게 폭행당한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학교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직감적으로 아이의 아빠를 의심한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아이의 아빠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그 와중에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운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어린 시절 눈 속에서 동생의 손을 놓친 어린 형은 혼자만 구조되었다.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산을 올랐던 아버지는 산속에 남겨진 아들을 찾지 못한 그날 이후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다.

혼자 구해진 아이는 홀로 그 죄책감과 고통을 감내하며 형사가 되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어린 동생의 훌쩍임이 들린다...

 

고질적인 아버지와 아들들이 등장하는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목소리>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기여서 그런지 피해자의 삶이 더 외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곁가지로 들려주는 또 다른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이야기 역시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를 얻어 놓은 듯하다.

 

어린 시절의 죄책감을 이고지고 살아온 에를렌두르의 삶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변성기로 인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어버린 구드라우구르처럼...

 

각자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들.

한 사람은 살해되고, 한 사람은 범인을 쫓는다.

그렇게 오래된 상처는 들춰지고, 헤집어지고, 풀어내진다.

 

에를렌두르의 메가리 없는 캐릭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전작 <저주받은 피>에서처럼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깊게 파내려 가 단순해 보였던 사건에서 깊디깊은 과거의 행적을 파헤쳤던 에를렌두르는 이번 <목소리>에서는 사건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많이 파고든 거 같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에를렌두르 보다 시구르두르와 엘린보르그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아이슬란드는 지나치게 들뜨지도, 지나치게 모험적이지도 않은 나라여야 한다.

 

 

아이슬란드 스릴러 독특한 매력이 있어 좋은데.

거 이름들, 고유명사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술~술~ 읽다가 이름이나 고유명사 나올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곱씹어야 함.

진짜 여러모로 먼~ 나라 아이슬란드.

그러기에 그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으로 느껴지나 보다.

 

가 본 적 없지만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문화와 생활, 사람들의 생각들을 알 수 있어서 재밌는 시리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목소리>를 읽으며

가족들 중 소외당하고 주목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 어른들 얘기는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깨물어 보면 압니다. 덜 아프거나 더 아픈 손가락이 있게 마련이라는걸.

모름지기 더 아픈 손가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정석.

이제는 덜 아픈 손가락에도 관심을 기울여주자.

그게 바로 이 <목소리>에 담긴 보이지 않는 메시지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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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 - 음악이 있는 아침
조희창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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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눈곱도 떼기 전에 음악부터 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는 잠들면서까지 음악을 들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음악을 안 트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건조해지는 제 감정을 바라보게 되었죠..

 

하루를 시작하는 음악을 고르던 시간이 이제는 사라졌어요.

그래서 다시 그 마음을 일으키려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고맙더라고요.

이 책에 담긴 QR 코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1년 365일 다른 음악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어떨까요?

 




책을 받고 일단 저와 관련된 날짜들의 음악을 찾아봤어요.

개인적인 기념일들의 음악을 찾아봤는데 제 생일에 걸린 음악이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이여'네요.

이날의 제목은 중세풍의 판타지라고 되어 있네요.

이래저래 저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최근에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어서인지 하루키의 <1Q84>로 유명해진 곡에 눈길이 가네요.

인간이 부르기 힘든 노래를 아세요? 그 노래는 바로 오페라 <북극성> 중 '매일 아침 그가 연주한 노래'라네요.

인간이 따라 부르기엔 거의 불가능한 초고난도의 콜로라투라 아리아라고 합니다. 이런 노래에는 조수미 씨가 단연 최고급이라고 합니다^^

 

음악사 최고의 스토커를 아세요? 바로 베를리오즈입니다.

그는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았던 배우 해리엣 스미스슨에게 푹 빠졌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거들떠도 안 봤죠. 그래서 탄생한 곡이 환상교향곡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입니다.

 

김연아 선수를 세계에 알린 곡이 기억나시나요? 2009 시즌 쇼트프로그램으로 사용한 곡 생상스의 <죽음의 춤>입니다.

 

70~80년대 '경양식 집'의 명곡은 뭘까요? 바로 <사랑의 기쁨>입니다. 제목처럼 행복한 내용이 아니라 사랑의 아픔과 쓸쓸함을 노래한 것인데 어째서 경양식집에서 유행했을까요? 그 시절에 경양식집을 안 가봐서 모르겠네요~

 

첼리스트가 가장 지루해하는 명곡은? 정말 뜻밖에도 파헬벨의 <카논 D장조>라고 합니다~~

QR코드 찍고 동영상을 보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네요~ 너무 리얼하게 지루함을 표현해서요~ 저는 좋아하는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야금 버전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 곡은 파헬벨이 제자의 결혼식 곡으로 작곡했는데 8마디 음을 계속 첼로로 반복 연주하게 해놨다고 합니다. 그래서 첼리스트들이 지루해한다는 의미의 동영상이 너무 재치 있게 만들어져서 즐겁게 감상했어요.

 

 

<서푼짜리 오페라>중 '칼잡이 잭'은 시나트라의 버전으로 들었는데 살벌한 가사를 아주 능청스럽게 부르는 시나트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는 매일 하루를 열게 해줄 음악을 나 대신 골라주는 책이자

그 음악에 담긴 에피소드와 그날에 태어난 음악가들과 그날에 일어난 음악사의 중요한 일들을 함께 알려주는 책이랍니다.

클래식만 담겼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가곡들도 담겼습니다.

클래식의 변형곡들도 담겨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타이핑 소리를 담은 음악과 4분 33초 동안 휴대폰 벨 소리와 각종 소리를 들으며 청중들과 오케스트라가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시간이 흐른 뒤 박수 치며 공연을 마치는 동영상을 보면서 클래식의 색다른 모습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들을 가끔 접했음에도 이렇게 신선한 기획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책입니다.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날이나 기념일에 담긴 음악이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이나

저처럼 매일 하루를 여는 음악을 나 대신 골라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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