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 겨레의 작은 역사 우리말글문화 총서 3
이길재 지음 / 마리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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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도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촌스럽거나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방언은 사실 우리의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는 그릇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며 지역문화를 가장 잘 읽어 낼 수 있는 핵심이다. 이를 지키려는 수고로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방언>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계속 살아온 나는 방언, 사투리를 그저 재밌는 지방말로 받아들였다.

태생이 서울이라 해도 부모님으로 연결되는 친인척들의 삶이 터전으로 인해 내가 이해하는 언어들의 폭은 넓어진다.

서울말 뿐 아니라 타지역말도 어릴 때부터 들어오거나 사용하니 말이다.

 

나는 충청도 말과 전라도 말 그리고 경상도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원어민(?)의 말로 들었단 뜻이다.

부모님의 고향말이자 친척들의 결혼으로 인한 지역의 말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다.

지역에서 쓰는 말의 억양과 표현법들이 다르다는 걸 습득하며 살았으나 성인이 되어 '진주'로 시집가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경상도라고 해서 다 같은 경상도 방언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부산과 진주의 말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제주에서 군 생활을 했던 사촌 오빠가 휴가 때 놀러 와서 하는 얘기는 외국말 같았다.

그때서야 제주도 말이 내가 쓰는 말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 좁은 땅에서도 언어는 다르게 통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사는 방식과 생각들은 또 얼마나 다를까?

 






'거시기'와 '머사니'라는 말에는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상황을 공유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슨 정보든 주고받을 수 있다. '거시기'와 '머시기'가 갖는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황산벌>이라는 영화는 이런 언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방언>에는 '거시기'라는 말도 담겨 있는데 '거시기'만 해도 표현하는 말이 '거시기'하게 많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넘친다.

 

이 책에 적힌 말들은 한반도 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동포들과 고려인 등 이 땅에 살지 않는 동포들의 말도 담아내고 있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동포들의 말과 북한의 말도 함께 담겨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쓰는 말이 투박하고 거칠고 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쓰는 말보다 훨씬 순우리말이 많다.

그건 뭘 의미하는 걸까?

 

<방언>을 읽고 싶었던 까닭은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였다.

같은 말이라도 감칠맛을 주는 말을 쓰고 싶었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방언>을 읽으면서 이렇게도 다양한 말들이 왜 사어가 되었는지 안타까웠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다른 나라의 말이 들어와서 토착어로 대체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어 차용어가 되거나 귀화어가 되는 말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외래어를 남발하느라 우리의 순수하고 예쁜 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처럼 게으를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자꾸 외국말을 가져다 쓴다.

각 지방의 말들조차도 게을러서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켜 버리고 있다.

10여 년 전과 지금 사용하는 말들을 비교하면 우리는 많은 말들을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이렇게 발품을 팔아서 '우리의 말'을 길어 올리는 분들이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낯선 단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시간이 즐거웠다.

난생처음 들어 본 말도 있었다. 무슨 뜻인지 맞춰보려 했지만 맞추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뭔가 과거와 자꾸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언어는 외래 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쉽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우리말을 찾아 쓰는 대신에 외국어를 남발하고 그걸 '멋'으로 여긴다.

 

언어가 그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다.

표준어의 그늘에 가려져 사라지고 있는 방언들.

그 방언들엔 그 말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 이야기들이 점점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을까?

 

불술기 타고 여행 가고 싶다.

동물원에 가서 두루바리를 보고 싶다.

머구리는 동면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을까?

장싸귀 불고기 먹고 싶다~

조선시대에 해개먹음이와 달개먹음이는 어떻게 관측했을까?

거! 꾹돈 받지 맙시다!!

 

세상이 하나가 되고

모든 문화가 어우러지는 편리한 세상이 된 건 좋지만

그것이 개성을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예전에 모 방송에서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그 지방의 노래나 말을 보전하기 위해 녹음을 해서 라디오에서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방언>을 읽으면서 이 말들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로는 말맛이 잘 살지 않으니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방언>을 보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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