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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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눈은 그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여자들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알려주지도 않고 분명하게 말해주지도 않는 어떤 것을, 말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이므로

 

 

이야기는 마르타의 출산으로 시작한다.

올라이와 마르타에겐 딸이 있다.

그들은 딸로 만족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아들이라고 올라이는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요한네스.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는 마르타의 고통의 외침과 초조하게 기다리며 태어날 아이에게 지어 줄 이름을 생각하는 올라이의 모습이 이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다.

 

남자들은 절대 알지 못할 순간이자

여자들에겐 온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이다.

생명의 탄생은 고통과 함께 희열을 뿜어낸다...

 

 

 

 

오늘도 여느 아침처럼,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어딘가 달라졌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요한네스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담배와 커피. 그리고 산책.

유난히 가뿐한 몸으로 시작한 하루는 그에게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게 해준다.

 

쉼표와 물음표가 마침표보다 많은 문장은 요한네스의 이상한 하루를 표현해 준다.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친한 친구도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던 삶.

친구가 먼저 떠나고, 아내가 떠나고, 막내딸이 가까이에 살면서 그를 챙겨주는 삶.

 

세상에 태어나 우렁차게 울어대던 아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는 이제 할아버지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모든 인간의 물음표인 죽음.

욘 포세는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그것을 말해준다.

상상할 수 있지만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죽음.

 

요한네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따스한 위안을 얻는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삶에 준비 없이 찾아오는 죽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한 느낌. 방금 죽은 망자의 혼란함을 먼저 간 이들이 이끌어 준다.

그에게 가장 친숙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그를 데리러 온다.

 

요한네스의 하루는 그렇게 따스한 여름날 한가롭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현실인 듯 꿈인 듯...

 

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딸 싱네는 추운 겨울의 쌀쌀함을 품고 그를 보지 못하고 관통해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딸이 그를 못 알아보는지...

 

책을 읽으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엄마를 생각했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그날을 마주하게 되면 요한네스가 생각날 거 같다.

그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누군가가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가 혼란스럽지 않게.

페테르가 요한네스를 이끌어주듯이...

 

맙소사, 담뱃갑이 거기, 아버지가 저녁이면 늘 두는 자리에 있네, 아버지는 매일 저녁 담뱃값과 성냥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오랜 세월 그래왔다, 그러고 나서 한 대 더, 커피를 마시며 또 한 대나 두 대, 아침마다 그러시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담배에 손댄 흔적이 없고 재떨이는 말끔히 비워져 있다. 맙소사,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남길지 궁금했다.

가지런한 담뱃갑과 성냥갑을 보고 싱네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다.

마치 내가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갓 태어난(?) 망자를 따라가다 보면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통과해야 하는 과정...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서 체험한 그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문득 떠오를 거 같다.

그 길은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위로가 위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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