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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76년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상을 휩쓴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일본 문학계에 안겨준 충격은 작품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문학적 고뇌의 소산이라기보다는 마약, 섹스, 폭력(은 좀 약하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으로 얼룩진 포르노그라피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역시 군부독재 시절 판금 서적으로 낙인 찍혀 90년대 초반에서야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작품의 경향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이 작품이 무라카미 류가 어떤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 역시 그렇게 밝히고 있다) 단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름대로의 이미지로 전개시켜 나갔을 뿐이며 그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여기에는 이 작가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 한 몫 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이 작품의 비평을 먼저 접하고 책을 보았을 때 역시 그러한 비평이 결코 틀린 이야기는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문학의 무국적성에 대해서 이미 들은 바 있지만,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일본 문학의 보편적 경향이 눈에 띄었으며, 단지 문학뿐만이 아닌 근대화와 함께 일본인의 생활양식 자체가 차라리 미국의 그것이라 하는 편이 더 알맞을 것 같았다. 또한 그러한 문화적 무국적성이 이끌고 있는 일본인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도어즈, 믹 재거, 밀 월드론, 루이스 본파, 롤링 스톤즈), 모든 음료(콜라, 진, 브랜디), 심지어 영화나 자동차조차 모두 서양식이다. 또한 작품의 무대 또한 미군기지이다. 따라서 흑인이나 혼혈들이 자주 등장한다.
단지 주인공의 이름만으로 일본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무국적성에 대한 의식이 이 소설을 쓰게 했으며 또한 주인공 류의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자의식적 물음 또한 모두 이와 관계가 있다. 류는 의식적으로 문화적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인형'이나 '검은 새에게 쫓기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단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해도 존재론적 해석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주인공 류의 여린 감성은 '투구벌레'나 '나방' 같은 곤충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돌아갈 곳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젊은이들은 그토록 섹스와 마약에 탐닉하는가, 하는 질문은 결코 이 작품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작품 속에서 보자면 '아아!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언제나 아픈 거야. 아프지 않을 때는 고통을 단지 잊어 버리고 있을 뿐이야. 아프다는 것을 잊고 있는 거지. 내 뱃속에 종기가 생긴 탓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라도 언제나 아픈 거야. 그래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거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 느낌이 들어서, 아프고 괴롭지만 안심하는 거야.' 즉 극단을 통한 견딤을 류는 자신도 모르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마치 심심풀이 땅콩처럼 마약을 한 등장인물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이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작품 전반적으로 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류의 마지막 의식을 지배하는 검은 새이다. 이 검은 새는 작품 중반부에 '그린 아이즈'를 통해서 한 번 나오고 작품 후반부를 거의 뒤흔들고 있다. 류는 마약에 취해 환각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릴리에게 '내 도시를 파괴한 새야.', '새는 죽이지 않으면 안 돼. 새를 죽이지 않으면 나는 내 자신을 이해 못 하게 되는 거야. 새가 방해하고 있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숨기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거대하다, 라는 이미지를 통해 사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인식, 혹은 자신이 물든 미국 문화 혹은 마약, 혼음 등에 대한 이미지이다.